나는 면(麵) 종류를 좋아한다. 면 중에도 국수장국을 좋아한다.
육수는 멸치 다시마 끓인 후 건져 낸 국물이 좋다.
사실 국수는 별거 아니다. 면이야 찰지고 쫀득한 것은 다 비슷비슷하다.
국수의 정점(頂點)은 국물이다. 국물이 얼마나 감칠맛이 나는지에 성패(成敗)가 달려 있다.
우선 멸치는 국산으로 남해산(南海産)을 써야 한다. 9월에 잡힌 오사리 멸치가 좋다.
일단 ‘멸치 똥’을 정성껏 띠어야 한다. 하나라도 들어가면 국물맛이 쓴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국물맛이 끝내준다. 고명은 애호박, 계란지단, 양파, 홍당무, 김 가루 등이 있으면 좋다.
내 경우 국물맛이 좋아야 -국수장국은 바로 이거야- 하며 목구멍에 수월하게 넘어간다.
그 옛날 나의 약혼식 때 일이다.
지금도 아내는 국수장국, 수제비 해 먹자 말하면 핀잔을 주는 말이 있다.
‘그때 벌써 무례하고 참을성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봤다나 어쨌다나’
하마 50년 전 약혼식 때 일을 내깔기곤 한다. 나는 늦게 장가를 갔고 약혼식은 처가에서 했다.
양가 가족이 모이는 것이고 신랑을 맞이하는 것이니 상다리가 휠 정도로 거나하게 차렸다.
약혼 절차를 마치고 음식을 먹을 차례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신랑을 위해 장모님이 직접
국수장국을 만드셨다고 한다. 장모님 음식솜씨가 맛 자랑에 나올 정도로 좋으셨다.
어찌나 맛이 좋은지... 다른 음식은 필요 없다. 김치 앞으로 놓아 달라하고 한 그릇 뚝딱했다.
그리고 한 그릇 더 청해 두 그릇을 비웠다. 옆에 앉아있는 색시는 부끄러운지 전혀 먹지를 못한다.
나 혼자 먹기가 뭐해서 두서너 번 국수가 맛있으니 들라 했다. 그래도 전혀 들지를 못한다.
순진한 모습을 보여 신랑에게 점수를 딸 요령인가. 신랑에게 순진성을 보여 예쁨을 살
작전인가. 교사 생활을 해서 명랑한 편인데 하면서 나는 염체불구하고 국수 두 그릇을 비웠다.
그러던 그 색시가 지금은 호랑이가 되었다. 나는 애칭(愛稱) 왕호랑이라 부른다.
요즘도 국수장국이나 수제비를 얻어먹을라치면 예의 핀잔을 듣는다.
그러나 그 핀잔은 듣는 척 언제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장모님 닮아서 음식솜씨가 좋다.
나는 이를 할미표 국수장국이라 칭한다.
살자면 불평불만이 왜 없겠는가. 크고 작은 어려운 일이 어찌 없겠는가.
나도 내 능력 부족함, 노력 부족은 생각하지 않고 내자(內子)에게 ‘내로남불’하지 아니했는가.
남의 허물, 남의 탓만 하고 살지 아니했는가 되돌아보며 반성하여 본다.
60년대 후반, 70년대 초 연탄으로 생활할 때이다. 더운물이 어디 그리 흔한가. 세탁기가 어디
있는가. 일회용 기저귀가 나온 것은 그 이후 아주 한 참 후 일이다.
엄동설한에 시간 맞추어 밤에 일어나 연탄 갈고 차디찬 물로 기저귀 빨아 아이들 키웠다.
내 인생 내가 사는 것이다. 어느덧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10년이면 상전벽해(桑田碧海)를 한다고 했다. 여러 번의 상전벽해로 사는 것이 너무 많이 변했다.
영원한 것이 없다. 기쁨도, 슬픔도, 젊음도, 사랑도, 친구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던
고통도 영원치 않다. 이런 가운데 나의 일상도 달라졌다.
전에는 집안 잡일(雜事)은 아니 했다.
그 알량한 봉급 갖다주는 득세(得勢)로 집안일은 나 몰라라 했다.
요즈음 득세할 일이 전혀 없다. 오늘도 삼식이 끼니를 위해 달그락거리며 밥 차려 주는 할멈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느덧 서로 등 긁어주는데 편한 신세가 되어버렸다. 금혼식을 마친 우리는
인생 길동무이다. 같은 길을 함께 걷는 길동무이다. 밥 짓고 청소하고 빨래하며 두 아이 기르느라
허리가 휠 정도로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러면서 세월이 흘러 어느새 젊음을 잃었다.
주름이 늘고 삭신이 쑤신다고 한다. 아련하게 늙어가는 모습을 보며 안쓰럽고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들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또 나는 설거지는 안 해봤다.
내가 설거지를 좀 해줄 양이면 극구 못하게 한다. 그 이유가 더럽게 설거지를 한다는 것이다.
할멈의 마음을 읽는다. 왜 흐르는 수돗물에 뽀도독 소리가 날 정도로 힘있게 설거지해주는데
어찌 더 더럽겠는가. 설거지만은 시키지 아니하려는 할멈의 마음이다.
나는 세월이 이만큼 흐른 후에야 삼시 세 때 밥 챙겨주는 할멈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나를 믿고 따라준 사람, 할멈의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한날한시에 죽을 수는 없겠지만 ‘혼밥’인생만은 서로 기간이 짧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혼밥’은 정말 싫다. 재수 없으면 100세를 산다고 하였으니 재수 없기를 바란다.
할멈과 나이 차이가 6살이 난다. 의당 그렇게 되겠지만 하루라도 내가 먼저 저승에 가기를 기원한다.
그런데 요즈음 할멈이 힘이 달리는 모양이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그래서 뭐든지 도와주려 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 오히려 일을 망쳐놓는 수가 많다.
핀잔을 듣는다. 잔소리를 들을망정 또 도와준다. 핀잔 듣는 것이 반복된다.
그래도 측은하고 불쌍한 마음에 도와주려 하는 것인데 이를 어쩌란 말인가!
오늘도 할미표 국수장국 얻어먹는데 그 예의 핀잔을 들었다.
그러나 우린 묵묵히 함께 걸어가는 인생 길동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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