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눈 축제 일본 삿포로를 가고 싶다' 는 나를 만류했던 남편의 고생은 소득 없이 실천력 강한 라일락 언니랑
나는 며칠 후 무사히 홋가이도 아사히가와로 날아갔다.
그로부터 2년 후, 선후배로 실천력 강한 정의파 라(라임,라일락)자매는 이번에도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올레의 집념을
통보하고는 며칠 만에 제주도로 훌쩍 떠났다. 합류한 언니들(愛언니,蓮언니)과 함께.
떠나는 날 아침, 친구인 B일보의 멀티뉴스팀장 마리는 트위터 메시지와 함께 7코스 이야기를 첨부하여 보내 왔다.
'2박3일에 제주 올레 두 개 코스...걸을 만하겠다. 친구야, 약간 쌀쌀한 날씨니 옷 여러겹 잘 챙겨입어.
나도 지난해 2월에 7코스는 한 번 걸어봤단다. 잘 다녀와. 내가 걸었던 7코스.'
나의 올레 이야기는 친구가 걸었던 7코스 이야기를 비행기안에서 읽음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도착.
제주야, 반갑다. 6년만의 해후였나? 그래, 제주는 늘 가슴 설레고 반가운 곳이다.
벌써 해는 뉘엿 서쪽 하늘에 반쯤 걸려 있구나. 첫날은 제주와의 상봉으로 만족 해야 하겠네.
공항을 나가 시가지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바다 냄새가 확 밀려든다. 거짓말 아니다.
다음날, 대충의 반찬과 된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마쳤다. 밤새 바람 소리 때문에 모두들 잠을 설쳤다는데,
나는 소리를 못 듣는 건지, 예민하지 않는 건지, 글쎄요?
7코스 마음의 빛깔
7코스, 외돌개에서 시작한다. 가장 아름답다던 7코스,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단연 7코스가 으뜸이라고 말해주었다.
어휴, 사람이 너무 많다. 휴일도 아닌데, 7코스는 벌써 만원이다.
그런데, 조금은 과장된 것처럼 느껴지던 올레꾼들의 7코스 자랑이 헛말이 아니었음을 금방 알았다.
그럼에도 파란 바다와 기암 절벽, 호젓한 산책길, 서라운드로 듣고 싶었던 바다 소리와 풀소리(사각 사각)와
새들 소리, 자박 자박 땅 소리는 사람의 소리에 묻혀 깨끗하게 듣지 못했다.
그래서 7코스는 조용한 때에 다시 올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7코스의 빛깔... 하늘은 창창히 맑았고, 바람은 거셌으나, 차갑지는 않았다.
따뜻한 바다의 기운이 바람을 순환시켜주는 것이리라.
함께 한 언니들과 나는 걸으면서도 너무 떠들었다. 아마도 우리 옆을 지났던 사람들은 우리가 조금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을 것이다. 웃음이 너무 많아서.
나는 REFRESH를 외쳤다. 그래, 이런 시간은 나의 것이라고.
7코스 길을 잃을 염려는 없는 듯 싶다. 워낙 올레꾼들이 많아서 그저 따라 가기만 하면 될 터였다.
군데 군데 보이는 파란색 화살표와 친절한 팻말이 마음을 움직였지만, 내게 있어서 실제의 파란색 화살표는 함께 했던
언니들의 움직임이 바로 그였다.
가장 쫄(卒)이였던 나. 나도 누군가에게 파란색 화살표 같은 의지가 되는 순간이 있었던가? 싶다.
체력으로 완전 다져진 언니들을 따라 걷는 자칭 저질 체력(?) 나, 걷는것은 젬병, 꽝, 나 못 걸어요, 얼굴에 딱 써져 있다.
그렇지만 이 대열에 합류한 이상 민폐는 끼치지 않아야 할텐데, 거기다가 사진 찍는다고 자꾸 후방에 서다가
실험 정신을 발휘하며 온갖 잡다한 퍼포먼스까지 벌이고 있으니, 언니들 아마 후회 했을 것이다.
'쟤(?)는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어' 라고
2코스 마음의 빛깔
성산 일출봉 앞 바다 광치기 해안에 섰다. 멀리 옛날 신혼 부부 필수 코스 인증 샷 날리는 푸른 언덕 성산이 보인다.
그런데 계속 시선이 가지는 않는다. 성산 일출봉보다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올레길이 더욱 마음에 꽂힌다.
이젠 유명하고, 화려하고 인위적인 모습보다는 자연스럽고, 소박하고,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그런 길이, 그런 곳이
마음에 쏘옥 들어오나보다.
광치기 해변 - 성산 습지 - 식산봉을 걷는다. 조용히 바다 끝 광치기 해변에서 성산 습지 주변을 걸었다.
말도 조용히 제 자리에서 풀을 뜯고 있었고, 바다 끝은 하늘과 맞닿아 있었는데, 하늘의 구름은 바다와 늪과 땅을
아우르는 거대한 그림과도 같았다.
무척이나 신비로운 느낌의 장관으로, 같은 곳에 가도 좋은 날을 만나지 못하면 이런 분위기의 연출은 그닥 쉽지
않을 것 같다.
바다와 성산 일출봉이 만나는 곳의 사이엔 주황색 지붕이 오물조물 살고 있다.
사람들이 살겠지. 그림 같은 풍경이지만 외로워보인다. 바닷가에 태어나 생활력을 키운 제주 여자들의 아픔과 생명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고기 잡이를 하다가 무심히 던져 놓은 그물이며 망태기며 바다에 소품처럼 어지럽게 널려 있고,어망과 장비를 보관하는
바닷가 어두운 창고도 내 눈에 들어온다.
조용히 혼자 걷다가, 갈대를 만나 인증샷도 날려본다. 신발이 바닷물에 가끔 젖어들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라일락언니랑 걷다가 혼자 걷다가 愛언니랑 또 걷다가.
늪 건너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손을 흔들어 보는데, 도시에서는 생각도 못할 시츄에이션이다.
멀리 일행을 놓쳐 화살표도 찾다가 동네 어망을 정리하는 할머니에게
'식산봉이 어디예요?' 묻기도 한다. 가다 보니 길이 또 헷갈린다. 좀 뛰다보니 일행의 꼬리가 또 보인다.
식산봉 오르는 길, 마치 원시림 같다. 작은 오름에 올랐는데 덩굴 식물이 고목을 꽁꽁 휘감고 있는 모습에
바닥은 덩굴 식물이 장악해버렸나, 신기하다. 전혀 가꾸어지지 않은 작은 언덕 산이 너무 매력적이다.
올레길에서의 어떤 분 이야기가 생각난다. 젊었을때, 건강할 때 시간 낭비를 많이 해서 후회가 된다고.
제주 냉바리(제주방언-아줌마)에게 물었다. 말 잘하고 암팡진 모양새가 얼굴에서 티가 확 났다.
"굉장히 생활력이 강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잖아요"
나의 기자 친구 마리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편지를 쓴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런데 '바닷가 우체국'은 찾을 수 없었다, 우체국을 만나면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을 텐데,
많이 아쉬웠다.
제주도를 걸으면서 선인장 과일(용과)을 만 오천원을 투자해 1/4쪽을 먹었다. 보리빵도, 귤도 먹었고, 붕어빵도 먹었다.
절물 휴양림에서 약수로 받은 물도 愛언니 물통에 넣어 두고 훔쳐 먹었다.
밤 8시 50분 제주를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드디어 종점에 온 셈이다~ 날은 대충 맑은지 달이 보였고, 마지막 인증샷을 얻기 위해 마구 셧터를 눌러댔다.
공항에서 인생은 아름다워에 출연하는 지나역의 아역 탤런트와도 인증샷을 날렸다.
이륙합니다.
착륙합니다.
올레와 제주를 함께 한 길 동무 언니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길을 걸으며 느꼈던 마음의 여백도 좋았고, 마음의 여백에 새로 담은 그 무엇(?)도 좋았고,
3일간 푹 퍼질 수 없게 만들어준 적당한 나의 긴장감에게도 감사한다.
대신 3일동안 요망지게(제주방언- 야무지게) 집안 설거지와 청소를 해준 나의 조근년(제주방언-맏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냉바리(제주방언-아줌마)를 반대 없이 여행 보내준 남편도 무지하게 고맙다.
추억은 짧은 글로 적은 것으로는 언제나 부족하다.
분명 머리 속에 그려지는 것과 마음에 영원히 남는 것이 추억일게다.
* 라임오렌지~ 트위터로
'마리, 다녀온 올레가 더욱 그립구나. 출력해 둔 너의 7코스 이야기를 비행기에서 읽으며 여행 시작~ 난 2코스가 좋더라.
구름 낀 하늘, 바다, 마을길, 돌담'
* 마리~ 트위터로
'어이, 친구~ 제주 올레 재밌게 잘 다녀왔나봐. 다행이다. 난 7코스밖에 못 가봐서...네가 좋다는 2코스도 다음에 한 번
꼭 걸어봐야겠다. 아마 나도 조만간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 것 같아. 11월 중에 휴가 받아서... '
첫댓글 라임오렌지님 폭삭 속아수다 올레길 잘 보고 갑니다. 내년에는 또 어디를 계획 하실지...
글쎄요?
깊어가는 가을날에 낭만의 올레길을 순례하듯 다녀온 님들이 모습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낍니다, 3일간의 제주 올레길 좋은추억 오래 간직하시고 늘 행복하소서,
시간만 맞으면 제주도 올레길 모두 둘러 보고 싶어요. 그런데 건강이 허락해야 가능할 듯 싶네요.
올레길~ 아줌마들 수학여행 코스로 제격이구나... 잘 읽었어요...
쉰이 넘은 아줌마, 일흔 다섯 되신 할아버님, 모두 왜 이제야 이곳을 왔나? 하셨습니다.
내려올땐 내릴래? 맞나요 ㅋㅋㅋ 좋은여행하신것맞죠?
올레길중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숨어 있는 아름다운 길을 몰레라고 한대요
아~ 벌써 그립다~~!!^^
담쟁이 그 넝쿨>>>ㅋㅋㅋ
너~무 웃어서 주름살 몇개 더 늘엇더니다..
라임오랜지..!! 그대 덕분에 더욱더 이~ 쁜 추억이 되엇답니다~^^
찍는다 수고하셧고 ~ 인증샷 고맙고 ~ 이쁜 그대 사랑합니다~~^^*
라벤더 언니~ 문수 사랑 회원이 되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함께 문수 사랑 하며 더욱 행복한 추억 만들어가요.
라일락 다음, 라벤더 다음, 라임오렌지~ 먼 순서?!
나이~~~!!
라뽕맘 다음, 라일락 다음, 라벤더 다음, 라임오렌지 막내~~~!! 앗, 문수 사랑 라 라인 작렬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