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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장 끈질긴 추적
강옥봉은 삼 일 동안 그녀들과 지내면서 침술과 약물로 치료를 해주
었다.
삼 일 후.
강옥봉은 언제 준비했는지 역용약과 옷을 가지고 와서 그녀들 전부를
남자로 변장시킨 다음 동굴에서 나왔다.
그들은 동굴을 벗어나 질풍처럼 신형을 날려갔다. 십여 리쯤 가니 하
나의 강 언덕이 나오고, 언덕을 넘자 장강의 푸른 물결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강옥봉은 그녀들을 데리고 서슴없이 강가로 달려갔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배 한척이 정박해 있었는데 강옥봉은 조금도 머
뭇거리지 않고 그 배 위로 올라갔다.
그들이 전부 올라타자 배는 서서히 장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날씨는 청명했고, 물결은 바람결에 세차게 뱃전을 때리고 있었다. 홍
목으로 만들어진 그 배는 다섯 칸의 선실에 돛이 두 개
였고, 구조가 산뜻하여 기분이 저절로 유쾌해졌다.
강변에 우뚝 솟은 산들은 바위와 수림으로 뒤덮여 절경을 이루고 있
었고, 멀리 보이는 널따란 암석은 마치 선인들이 노닐다가 승
천한 곳같이 보였다.
냉상아는 턱을 괴고 강 언덕의 풍경을 응시하다가 강옥봉에게로 시선
을 돌리며 간드러지게 웃었다.
"봉랑, 이제 보니 봉랑은 무림에 상당한 세력을 확보했군요?"
강옥봉은 그녀에게 자신의 본명을 알려 주었고, 강옥봉을 이미
낭군으로 생각한 냉상아는 그를 봉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강옥봉은 의아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소?"
"제가 이 배를 탈 때 사공이 봉랑을 아주 공경스럽게 대하는 것을
보았어요. 사전에 완전한 계획을 세워 이 배를 미리 대기시킨 것
같더군요."
강옥봉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아매는 정말 새심하고 총명하군 이제 성심장은 아매
같은 유력한 여걸을 잃게 되었으니 애석하게 줬소."
그녀는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놀리시면 싫어요."
"하하…… 내가 아매를 놀릴 리가 있겠소?"
그는 그녀를 지그시 웅시하다가 다시 말했다.
"내가 만일 사전에 아무런 계획도 마련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회서방과 성심장 같은 거대 세력과 대항할 생각을 했겠소?"
냉상아는 눈을 반짝이며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내가 멋도 모르고 봉랑과 끝까지 대립했다면 영락없이
패할 뻔했군요."
그리고는 미소를 짓자 강옥봉도 명랑하게 웃었다.
"일이란 계획을 완전하고 세밀하게 세워야 실패가 적소."
그녀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자 강옥봉은 팔을 벌려 기지개를 켜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매, 저렇게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보니
인생백년이 덧없이 느껴지는군"
냉상아는 간드러지게 웃었다.
"봉랑께서는 지금 아정 낭자를 생각하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사실 아정 낭자는 지금 규방을 홀로 지키면서 봉랑을 그리워하는
한편 원망하고 있을 거예요."
강옥봉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비록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방천지에 여인들의 정분이
쌓여 있으니, 일전에 내게 도화살을 조심하라던 노승의 말씀이
조금도 틀림이 없구나.'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저 멀리 산봉우리에는 엷은 안개가 휘감기고 있었으며,
수면에는 뽀얀 저녁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공이 등불을 밝히고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왔다.
강옥봉이 남장을 한 소녀들과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사공이 다시 들어와 나직하게 말했다.
"소협, 지금 강 위에 수상한 배가 자주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장강수로연맹의 인물들 같은데,그들이 회서방의 지시를
받고 냉 낭자의 행방을 수색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장강수로연맹은 장강 일대를 주름잡는 수적들의 연합체인데,
오래 전에 연맹의 맹주인 좌지군왕 허표가 회서방의 십일호 온서로
포섭되어 있었다.
강옥봉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소. 그들이 접근하도록 내버려두시오."
그리고는 사공의 귀에 입을 대고 몇 마디 속삭이자
사공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사공은 부여송의 먼 사질뻘 되는 인물로,
수룡신 낙궁이라는 무림의 고수였다.
낙궁은 강옥봉의 지시를 받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어느덧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별빛만이 강물에 어려 파랗게 보였고
물결이 뱃전을 때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 주위는 매우 조용했다.
그런데 강바람이 점점 거세게 불고 있어서 찬란하게 비치던 별빛이
흐트러졌고, 강옥봉의 배에는 등불이 전부 꺼져 있었다.
이때였다.
별안간 언덕에서 칠팔 명의 검은 그림자가 마치 유령처럼 어른거리더
니 강가에 있는 소형 쾌속선에 뛰어올랐다. 그 쾌속선은 급히 강옥봉
등이 타고 있는 배로 접근하다가 다시 그 인영들이 질서있게 빠른 동
작으로 몸을 날렸다.
휙! 휙! 휙!
그 인영들은 귀신 같은 동작으로 강옥봉이 타고 있는 뱃머리에 가볍
게 내려섰다.
그 중 한 사나이가 나직이 속삭였다.
"이 배에는 확실히 무슨 곡절이 숨어 있소. 우리 두목님이 이 배를
수상하게 생각한 것도 절대 억측은 아니오."
옆에 서 있던 키가 큰 사나이가 말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이 배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지 않소?"
"흥! 그래서 두목님이 당신을 바보라고 한 거요.
확실한 사실이 드러나 있는데 아직 무엇을 발견하지 못했단 말이오?"
키가 큰 사나이는 깜짝 놀랐다.
"뭐라고요? 그럼 이 배가 수상한 점을 말해 보시오."
"정말 답답하군. 처음에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이런 엉뚱한 곳에
정박한 것을 보면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게 아니겠소……?"
순간 방금 말을 한 사나이가 갑자기 화살 맞은 기러기처럼 그 자리에
쓰러지듯 앉았다.
"아니?"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놀랐다.
다음 순간,
"억……!"
"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그들은 무릎이 쑤셔 왔고, 전신의 맥이 탁 풀어졌던 것이다.
그들은 대경 실색하여 급히 몽을 움직이려 했으나 전신이 마비되고
눈앞이 아찔했다. 수적들은 비틀거리면서 당황하더니 무형와 경력에
밀려서 세차게 강물로 떨어져 버렸다.
풍덩! 풍덩!
순식간에 그들의 신형은 물속 깊숙이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강옥봉의 배는 다시 스르르 미끄러져 가기 시작하더니 돌연
뱃머리를 돌려 강 가운데로 쏜살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와 함께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휘이이잉!
난데없이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해 배는 그야말로 바람처럼 달려나가
는 것이 아닌가!
그때 냉상아의 놀란 외침이 들려 왔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그녀는 수적들의 암습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지 않
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배가 돌연 빠른 속도로 움직이자 급히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았다.
순간 옆 선실에서 강옥봉의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아매, 아매를 미행하던 적을 귀신도 모르게 처치했으니
이젠 안심하고 자도록 하시오."
냉상아는 어안이 벙벙했다가 물었다.
"이 계절에 어찌 순풍이 불어올까요?"
강옥봉의 웃음 섞인 대답이 들려 왔다.
"계절도 계절이겠지만 일기란 예측하지 못한 바람과 비가 있는 법이
오."
"저는 잠도 오지 않으니 봉랑의 선실로 가서 이야기나 하면서
밤을 지새우겠어요."
"밤이 깊었으니 얘긴 내일 하고 그냥 자도록 하시오."
그러나 냉상아는 이미 자신의 방을 빠져 나와 그의 선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선실로 들어선 그녀는 대경 실색했다.
강옥봉의 선실 안에는 물 한 통이 놓여져 있었고, 물통 안에는 조그
만 배 한 척이 작은 인형들을 싣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옥봉은 이미 들어온 그녀를 다시 나가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매, 놀라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냉상아는 그제서야 모든 것을 짐작하고 감탄했다.
"아! 봉랑께서 술법에까지 정통하다는 것을 미처 몰랐어요.
제가 만일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믿지 않았을 거예요."
강옥봉은 그녀를 응시하며 빙그레 웃었다.
"우연히 이인 한 분을 만나 기문둔갑술을 전수받은 일이 있었소."
냉상아는 그가 바람을 일으켜 배를 빨리 달리게 했다는 것이 아직도
완전하게 실감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퍼뜩 고개를 쳐들고 탄성을 발했다.
"이제 알겠에요. 봉랑께선 누남광의 기서에서 이런 신술을……"
강옥봉은 급히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아매, 그런 말이 타인들에게 알려지면 참변을 면키 어려우니 조심하
시오."
"염려 마세요. 봉랑께선 절세의 보도와 도법을 가지고 계신 데다 유
령천자의 무공을 얻고, 게다가 이런 신술까지 익히고 계시니 누가 당
해 낼 수 있겠어요?"
냉상아는 다정스런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다가 자기 선실로 가버
렸다.
강옥봉은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배교대법을 계속 시전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동녘 하늘이 회끄무레해지며 바람도 자고, 배는 멎었다.
냉상아는 소녀들과 함께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배는 어느 작은 항구에 닿았고, 주위는 온통 갈대밭으로 둘러사여 있
었는데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돌연 저쪽 갈대밭에서 몇 개의 인영이 비조처럼 날아서 뱃머리에 사
뿐히 내려섰다.
그들 중에는 어젯밤에 보았던 사공, 수룡신 낙궁도 끼여 있었다. 모
두가 사공으로 분장한 그들은 움직이는 신형으로 보아 절정고수들임
이 분명했다.
낙궁은 선실 앞에 서 와서 크게 불렀다.
"강 소협!"
곧 선실 문이 열리면서 강옥봉이 나와 뱃전에 선 채 미소를 지었다.
"낙 형, 어젯밤에는 수고가 많았소이다."
"천만에요. 어젯밤에는 순풍을 만나 사백여 리나 되는 이곳 대통진
까지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냉상아는 자신들이 탄 배가 하룻밤 사이에 물길을 사백 리나 지나왔
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강옥봉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우린 이제 배를 버리고 대통진을 거쳐 안경으로 갑시
다."
그리하여 그들은 배를 빠져 나와 땅에 내려섰다.
이날 신시쯤,
태양은 포근하게 내리쪼이고 봄바람은 버들가지를 애무하면서 스쳐
갔다.
그때 돌연 관도 위에 한 대의 쌍두마차가 나타났다.
두두두……
쌍두마차는 뽀얀 먼지를 일으키면서 줄기차게 달리고 있었으며, 마차
옆과 뒤에는 십여 기의 말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검은
경장을 하고 있었는데 어깨에는 병장기를 메었으며 눈에서는 새파란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마차에는 주렴이 길게 드리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지위 높은 어느 관
인의 행차처럼 보였다.
마차 앞에서 말을 모는 두 사람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냉정했다.
마차가 계속 세차게 달리고 있을 때 뒤에서 또 말굽 소리가 들렸다.
다가닥…… 다가닥……
그 말굽 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리더니 세찬 기세로 마차를 스치고 지
나갔다.
마차를 호위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 이목구비가 수려한 청삼소년이 나
직이 말했다.
"아매, 우리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강호인들이 자주 나타나는 것을
보니 아마도 회서방에서 이미 안휘성 일대에 삼엄한 잠복을
배치해 놓고 우리의 동태를 염탐하는 모양이오."
그러자 다른 사람이 굳은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설령 우리들의 모습이 밝혀진다 해도 회서방에선 감히 덤비지 못할
거예요."
"아무튼 우리는 신중을 기해 원래의 계획대로 행사해야 하오."
이들은 바로 변장한 강옥봉과 냉상아의 일행이었다.
그들의 행렬이 칠 리쯤 가자 길가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고 수십여 채의 민가가 나타났다.
그 중 한 집에 안상객잔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현판 좌측에는 어옹이 고기를 낚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는데 오
래된 그림이었으나 뚜렷하게 보였다.
강옥봉이 크게 외쳤다.
"자, 우리 저 객잔으로 갑시다!"
강옥봉이 먼저 말을 몰아 그 객잔으로 가니 마차도 곧 따라왔다.
"깨끗하고 조용한 방이 있는가?"
산간 벽지에 있는 그 객잔에 좋은 방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강옥봉은 무슨 고관 대작의 행차라도 되는 것처럼 일부러 크
게 외쳐서 타인의 의심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었다.
객잔 안에서 사십여 세쯤 되어 보이는 사나이가 급히 나왔다.
"손님, 어서 오십시오."
점소이는 요란스러운 마차와 기세가 등등한 무사들을 보고 어려둥절
해졌다.
강옥봉이 그의 표정을 살피며 다시 말했다.
"이봐, 이 객잔의 객실을 우리가 전부 세낼 테니 어서 차와 음식
을 준비하시오."
그리고는 다시 마차 곁으로 다가가서 발을 걷어 올리며 공손히 굽신
거렸다.
"대인, 어서 내리십시오."
그러자 청의를 입은, 위풍 당당한 중년인 하나가 마차 안에서 점잖게
내렸다.
그들의 웅장한 행차에 산촌 사람들은 큰 구경거리라도 난 것처
럼 우르르 몰런들었다 그러나 여러 무사들이 검을 가슴에 안고 무서
운 눈초리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객점 문 양쪽에 일렬로 늘어서
있자 아무도 더 이상 얼씬거리지 못했다.
마차에서 의젓하게 내린 중년인은 곧 객잔으로 들어갔고, 여러 무사
들은 여전히 밖에서 파수하고 있었다.
해는 어느덧 서산으로 기울어 석양이 되었다.
객잔 안에 들어갔던 중년인은 방에서 나오더니 점소이들과 담소를 나
누면서 민정에 관한 얘기도 곁들여 물었다.
그 중년인의 자상스럽고 인자한 풍채로 보아 벼슬아치임이 분명했다.
그 중년인은 다시 방으로 들어와 흔자서 빙그레 미소 지었다.
강옥봉은 예리한 눈초리로 주위를 살피다가 한곳으로 눈길을 모았다.
객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한그루의 버드나무 아래에 머리와
수염이 하얀, 괴이하게 생긴 노인 하나가 담뱃대를 빨면서 하얀 연기
를 푹푹 내뿜고 있었다.
그 노인은 호리호리한 몽에 청수한 안색이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평
온해 보였다.
강옥봉은 느릿느릿 그 노인의 곁으로 갔다.
"노인장의 연세는 어떻게 되십니까?"
노인은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 늙은 것이 헛되이 칠십 세가 되었다오."
강옥봉은 다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 노인의 옆에 앉았다.
"이곳 일대에 작년 농사는 잘되었습니까?"
사실 노인은 천리일순 방각의 변장으로 그와 노인은 짐짓 이 일대의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은밀하게 전음술을 주고받고 있
었다.
"방 노인께선 수고가 많으십니다,"
"하하…… 강 소협에 비할 바가 되겠소?"
"음적양과 도중웅의 행방은 어떻게 됐습니까?"
"음적양과 두중웅은 대통진까지는 동행해서 소협의 뒤를 은밀히 따르
고 있었는데 대통진에서 서로 헤어졌소. 그 뒤 음적양은 안경으로
가고 도중웅은 여전히 수하들을 이끌고 소협을 추적하고 있소이다."
"음적양은 필시 냉상아의 추격을 도중웅에게 맡기고
자신은 총단으로 돌아가는 걸 겁니다. 그는 어디로 갔습니까?"
"강 소협이 알면 놀랄 거요. 그는 안경의 조가장으로 갔소이다."
강옥봉은 흠칫 놀랐다.
"조가장이라면 안휘성의 명숙인 용호풍운검 조중화의 거처가
아닙니까?"
"그러게 말이오. 조중화는 공명 전대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어느새 회서방에 포섭되었는지 모르겠소."
강옥봉은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전음성으로
말했다.
"일이 조금 복잡하게 되었군요. 음적양은 필시 조중화의 조가장에서
며칠 묵으면서 총단과 연락을 취한 후 귀환할 겁니다.
아니면 조가장 내에 총단으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든지……"
그의 말을 듣자 방각의 표정도 굳어졌다.
"만일 조가장에 비밀통로가 있다면 큰일 아니오? 그렇다고 무턱대고
조가장에 침입했다가는 그들을 경동시키게 될 텐데……"
"제게 한 가지 계획이 있으니 방 노인은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보다 남들이 의심할지 모르니 방 노인께선 그만 가보십시오."
방각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강옥봉은 안색이 변하며 급히 장력을
모아 허공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꽤액!
사나운 바람 소리와 동시에 십여 장 밖에 있는 회나무 위에서
괴상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케에에……"
그와 함께 한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그자의 심맥은 어느새 끊어져 있었다.
이것은 강옥봉의 태극혼원신공 중의 진자결을 운용해 떨친 것인데
그 위력이 실로 가공스러웠다.
그때 어둠 속에서 한마디 냉랭한 음성이 들렸다.
"매우 악랄한 장공이군."
강옥봉은 냉소를 쳤다.
"귀하는 매우 대담하군. 감히 관부의 행차를 넘겨다보는 자는
첩자가 아니면 도둑놈이기 때문에 마땅히 극형에 처했을 뿐이오."
어둠 속에서 체구가 건장하고 태도가 거만스러운 중년인 하나가 질풍
처럼 나타나 광소를 터뜨렸다.
"나는 지금까지 관부에서 잔뼈가 굵었기 때문에 고관으로부터 현령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소. 그런데 당신의 얼굴은 처음 보았으니
아마 여우가 호랑이 탈을 쓴 모양인데 어찌 날 위협하오?"
강옥봉은 피식 웃었다.
"귀하의 말을 들으니 아마 관부에 있는 모양인데 성명이 어떻게 되시
오?"
"내가 물을 말을 먼저 묻다니 정말 뻔뻔스럽군."
강옥봉은 냉엄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정말 관부의 사람이란 말이오?"
동시에 우장을 서서히 밀어 내자 그 중년인은 냉소를 쳤다.
"정말 죽고 싶은 모양이군!"
그는 말을 하면서 몸을 피했으나 사나운 장풍에 안색이 싹 변했다.
강옥봉이 쳐낸 일장에는 태극혼원신공 중의 탄자결이 담겨 있어
그 중년인은 몸이 진동되어 저절로 튕겨 나갔다.
그가 강적을 만났음을 알고 대경 실색하여 머뭇거리는 사이에 강옥봉
은 재빨리 그에게 접근하면서 탄자결을 점자결로 바꾸어 번개같이
인후혈을 찔러 갔다.
강옥봉의 칼날같이 예리한지력에 그 중년인은 칼로 뼈를 에는듯한
통증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크윽!"
강옥봉은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귀관이 데리고 온 일행들은 이미 우리의 손에 제압되었소.
귀관이 과연 관부 사람이라면 왜 성명을 밝히지 않소?"
그러나 중년인은 여전히 거만한 태도였다.
"나는 대내의 이등시위인 위조덕이다. 네가 아무리 대담하다 해도
나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게다."
강옥봉은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내가 만일 강호 사람이었다면 귀관을 벌써 처치했을 것이지만
귀관과 동료라는 점을 감안하여 참겠소. 하지만 귀관이 사적으로
대내를 떠나서 악인들과 결탁한 것은 그 죄가 반역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 당장 이 자리에서 죽여도 누가 욕하진 않을 거요."
위조덕은 그제서야 사색이 되어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귀관도 대내에 계신 모양인데 어찌 서로 안면이 없을까요?"
강옥봉은 슬쩍 물어 보며 능청을 부렸다.
"위 시위는 어느 때에 대내를 떠났소?"
위조덕은 그에게 한차례 추궁을 당하고 나자 그렇게도 거만스럽던
태도가 씻은듯이 사라졌다.
"저는 반년 전에 말미를 얻어 대내에서 떠났습니다."
그러자 강옥봉은 담담하게 웃었다.
"나는 하 승상의 지우지은을 입어 현재 시위영반의 직책에……"
순간 위조덕은 안색이 새파랗게 변하면서 황급히 그 자리에 엎드렸
다.
"소인이 모르고 시위영반께 실례를 범했으니 만번 죽어도 마땅합니
다."
그러나 강옥봉은 손을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나는 하승상의 부탁으로 일종의 비밀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사복 차림으로 은밀히 나온 것이오.
그래서 내가 출도한 것을 아무도 모르오."
그는 다시 냉엄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그럼 위 시위는 자신의 죄를 알겠지?"
위조덕은 전신을 사시나무 떨듯 발발 떨면서 목소리마저도 더듬거렸
다.
"주…… 죽을죄를 지었으나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강옥봉은 품에서 금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대며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위 시위는 오랫동안 대내에 있었다니 이 금패를 잘 알아보겠군."
용이 다섯 마리 그려진 그 금패는 모든 시위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오룡금패가 아닌가?
그러니 위조덕이 어찌 벌벌 떨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거의 다 죽어 가는 사람처럼 안색에는 핏기도 엿보이지 않았다.
강옥봉은 오룡금패를 서서히 품에 넣으며 미소를 지었다.
"같은 입장에서 너무 가혹한 형벌은 내리지 않겠다.
그러나 위 시위는 한 가지 문제에 대해 승낙해라."
위조덕은 살았다는 듯이 뤼가 번쩍 뜨였다
"대인의 분부라면 제가 물불인들 사양하겠습니까?"
강옥봉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내가 이번에 극비리 행동을 취한 것은 혹시라도 강호인들에게
번거로운 일을 당할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네.
그러니 위 시위는 이곳에서 나를 만났다는 사실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도록 하게."
위조덕은 허리를 굽히며 공손한 태도로 응했다.
"예, 삼가 명령대로 거행하겠습니다."
강옥봉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국법은 엄중하여 강호에 비할 바가 아니므로, 위 시위의 이번
자취가 탄로나면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이 몰살을 당하게 될 테니
알아서 신중히 행동을 취해 다오."
"대인의 분부와 가르침을 소인은 명심하겠습니다."
강옥봉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럼 위 시위는 언제 대내로 가겠는가?"
"삼 일 후에 가겠습니다."
강옥봉은 껄껄 웃으며 내심 그를 빨리 보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어서 가보아라."
그러자 위조덕은 마치 대사령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매우 기뻐하며
포권의 예를 갖추고는 급히 야음 속으로 사라졌다.
강옥봉은 잠시 그가 사라지는 광경을 보고 있다가 몸을 돌리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싸악!
싸늘한 기운이 감돌며 흑의인영 하나가 불쑥 나타나더니 다짜고짜
검을 휘둘러 강옥봉을 급습했다.
강옥봉은 급히 유령보를 펼쳐 옆으로 피함과 동시에 쌍장을 교묘히
날렸다.
파릉!
매서운 강기가 몰아치자 흑의인영은 흠칫 놀라며 눈에 불을 켜고 맞
서갔다. 한데 그 초식이 하나같이 괴이했고, 동작도 민첩하기 그지없
었다.
파파파팍!
사방이 온통 흑의인영이 뿜어 내는 검광에 휘감겨 버린 듯했다.
하나 강옥봉은 마치 한줄기 연기처럼 유연하게 검광 속을 헤치며 흑
의인영에게 접근해 갔다. 흑의인영은 안색이 변한 채 사력을 다해 검
을 휘둘렀다.
하나 강옥봉은 조금도 거리낌없이 검광 속을 자유자재로 누비며 그의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눈 깜박할 사이에 흑의인영의 코앞으로 다가간 강옥봉은 쌍장을 날카
롭게 휘둘렀다.
쐐액!
흑의인영은 황급히 옆으로 몸을 피했으나 완벽하게 피하지는 못하고
옆구리에 일장을 격중당했다.
쾅!
"크윽!"
그의 입으로 핏줄기가 뿜어 나왔다.
강옥봉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번개같이 다가들며 발길질을 했다.
우두둑!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음향과 함께 흑의인영은 정통으로 가슴팍을 걷
어채이고 오 장여나 날아가 버렸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그의 입에서는 시뻘건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
지고 있었다.
쿵!
바닥에 꼴사납게 떨어진 흑의인영은 꿈틀거리며 일어서려고 애를 썼
다.
"끄으으……"
하나 이미 갈비뼈가 모조리 부서지고 그 중 하나가 폐를 찔러 흑의인
영의 몸은 곧 축 늘어지고 말았다.
강옥봉은 천천히 흑의인영에게 다가가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흑의인영은 다름 아닌 회서방의 삼호 온서인 금시조 도중웅이었다.
이로써 이번에 냉상아를 추격해 온 회서방의 고수들은 모조리 전멸당
하고 만 것이다.
강옥봉은 담담한 눈으로 도중웅의 시체를 내려다보다 화골산을 뿌리
고는 다시 객잔으로 향했다.
악이란 아무리 사나운 기세로 날뛰어도 결국에는 피를 뿌리며
그 죄값을 달게 받는 법이다.
그래서 옛말에도 사필귀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 때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첫댓글 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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