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지도자들에 의한 유란시아의 종교의 발달
92:5.5 오나가로부터 구루 나낙까지 1백만 년 동안 유란시아의 인간 역사에서 수백의 종교 지도자가 있었다. 이 기간에 종교적 진리와 영적 믿음의 물결에는 썰물과 밀물이 여러 번 있었고, 지난날에 유란시아에서 있었던 각 종교 부흥은 어떤 종교 지도자의 일생과 가르침과 동일시되었다. 근래의 선생들을 고려하면서 아담 뒤에 유란시아에서 7대 종교 시대로 이들을 묶는 것이 도움이 될까 한다:
92:5.6 1. 셋 사람 시기. 셋 사람 사제들은 아모삿의 지도 밑에서 다시 생겨난 바와 같이, 아담 뒤에 큰 선생들이 되었다. 그들은 안드 사람의 땅에서 두루 활동했고, 그들의 영향은 그리스인, 수메르인, 힌두인 사이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후자 사이에서 이 사제들은 힌두 신앙의 브라만으로서 오늘날까지 계속하였다. 셋 사람들과 그 추종자들은 아담이 계시한 삼위 일체 개념을 결코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다.
92:5.7 2. 멜기세덱 선교사 시대. 유란시아 종교는 그리스도보다 거의 2천 년 앞서 마키벤타 멜기세덱이 살렘에 살면서 가르쳤을 때, 그가 임명한 선생들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적지 않게 다시 살아났다. 이 선교사들은 믿음이 하나님에게 은총을 얻는 값이라고 선포했고, 그들의 가르침은 비록 금방 나타나는 종교를 낳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기초를 형성했고, 그 위에 후일에 진리의 선생들이 유란시아 종교들을 세우도록 예정되었다.
92:5.8 3. 멜기세덱 이후 시대. 아메니모피와 이크나톤 두 사람이 이 시기에 가르쳤지만, 멜기세덱 이후 시대에 뛰어난 종교적 천재는 레반트의 베두인 집단의 지도자, 히브리 종교의 창립자―모세―였다. 모세는 일신교를 가르쳤다. 그는 말했다: “듣거라, 아 이스라엘아, 주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님이라.” “주, 그는 하나님이로다. 그 외에 아무도 없도다.” 모세는 그의 민족 가운데 귀신 숭배의 찌꺼기를 뿌리 뽑으려고 끈질기게 추구하였고, 그 신봉자들에게 사형을 내리기까지 했다. 모세의 유일신 사상을 후계자들이 더럽혔지만, 나중에 그들은 그의 많은 가르침으로 돌아갔다. 모세의 위대함은 지혜와 총명에 있다. 다른 사람들은 더 위대한 하나님 개념을 가졌지만, 어느 누구도 큰 무리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앞선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데 그렇게 성공하지는 않았다.
92:5.9 4. 그리스도 전 6세기. 많은 사람이 이 세기에 진리를 선포하려고 일어났는데, 이 때는 유란시아에서 일찍이 구경했던 바 종교적 각성이 있던 큰 세기 중에 하나였다. 이들 가운데 고타마·공자·노자·조로아스터, 그리고 자이나교 선생들을 기록해야 한다. 고타마의 가르침은 아시아에서 널리 퍼졌고, 그는 수백만에게 부처로 존경받는다. 공자와 중국인의 도덕성의 관계는 플라톤과 그리스 철학의 관계와 같았고, 이 두 가지 가르침에 대하여 종교적 반향이 있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어느 쪽도 종교 스승은 아니었다. 공자가 인간성에서 본 것이나 플라톤이 이상주의에서 본 것보다, 노자는 도(道)에서 하나님을 더 보았다. 조로아스터는 좋은 영과 나쁜 영, 이 2영(二靈) 사상의 지배적 개념에 많이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하나의 영원한 신의 관념과 궁극에는 빛이 어둠을 이긴다는 생각을 분명히 높였다.
92:5.10 5. 그리스도 후 1세기. 종교 스승으로서, 나사렛의 예수는 세례자 요한이 세운 종파를 가지고 시작했으며, 금식과 형식으로부터, 할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나아갔다. 예수를 제쳐 놓고, 타르수스의 바울과 알렉산드리아의 빌로는 이 시대에 가장 위대한 선생이었다. 그들의 종교 개념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닌 그 신앙이 진화하는 데 지배적인 역할을 해 왔다.
92:5.11 6. 그리스도 후 6세기. 모하메드는 그가 살던 시대의 많은 교리보다 뛰어난 종교를 창시했다. 그의 종교는 외국인 신앙의 사회적 요구에 대하여, 또 자기 민족의 종교 생활의 모순에 대한 항쟁이었다.
92:5.12 7. 그리스도 후 15세기. 이 시기에는 두 가지 종교 운동을 보았는데, 하나는 서양에서 그리스도교의 통일이 무너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양에서 새 종교가 합성된 것이다. 유럽에서는 제도화된 그리스도교가, 계속된 성장이 통일과 양립할 수 없게 만든 정도까지 굳어졌다. 동양에서는 이슬람·힌두교·불교의 통합된 가르침을 나낙과 추종자들이 시크교로 합성했는데, 이것은 아시아의 가장 진보된 종교의 하나였다.
92:5.13 유란시아의 앞날은 의심할 것 없이, 종교적 진리―하나님이 아버지이고 모든 피조물이 형제임―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등장하는 특징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이 미래 선지자들의 뜨겁고 성실한 노력을 종교 사이에 장벽을 높이는 데 쏟기 보다, 사타니아에서 유란시아의 특징을 무척 나타내는, 다른 지적 신학을 따르는 많은 추종자 사이에서, 영적으로 숭배하는 종교적 형제 정신을 확대하는 데 더욱 쏟기를 희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