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골산 봉서방(제218호)
2001년12월29일 토요일
창골산 봉서방 카페
여기를 누르세요☞cafe.daum.net/cgsbong 에 들어오시면 많은 자료와 창골산 봉서방 지난호를 보실수 있습니다. 한메일 검색에서 창골산 봉서방을 치시고 들어오시면 됩니다.많은 가입 바랍니다
창골산 봉서방은 여러분의 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창골산 이야기
****"의지야, 기도하러가자!"
순원들과[기도]에 대해 공부하며
시간을 정해 실천하면서 어려움을 느낄때
[영적메이크업]이란 책을 읽으며 발견한 글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는 내안에 기도하고 싶어하지 않은 부분…(과) 기도하고 싶어하는 부분이 있음을 발견했다. 기도하고 싶어하지 않는 부분은 나의
감정이요 기도하고 싶어하는 부분은 나의 지성과 의지였다. 그래서 나는 의지를 향해 ‘ 의지야, 너 기도할 준비가 되었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의지가 ‘ 예, 주인님, 준비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의지야 기도하러 가자.’고 말했다. 그래서 의지와 내가 기도하러 가기 위해 일어섰는데, 우리가 한 발짝 내딛는
순간 내 안에 있는 모든 감정들이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갈래. 우리는 안 갈래. 우리는 안 갈래.” 그래서 나는 의지에게 또다시 “의지야, 너는 여전히 기도할 수 있겠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의지가 “그럼요, 주인님이 하실 수 있다면 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의지와 나는
그 악한 감정들을 떨쳐 버리고 기도하러 갔다. 가서 한 시간 동안
기도했다.
만일 당신이 그 후에 내게, “그래서 좋은 시간을 보냈소?”라고
물었다면 내가 당신에게 “예”라고 대답할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그 한시간은 내내 싸움하는 시간 이었다.
만일 의지가 나와 동행하지 않았다면 내가 과연 어떻게 했을지 나도 모른다. 진지하게 중보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주요한
감정 중 하나가 골프장으로 나가 골프를 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급히 골프장으로 달려가 “돌아오라”고 말해야만 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운이 다 빠졌지만 아무튼 우리는
그 감정을 돌아오게 했다.
그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시계를 보니 기도할 시간이었다. 그래서 의지를 향해 “의지야, 일어나자. 기도할 시간이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내 안에 있는 모든 감정들이 나를 그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의지야, 너
기도할 수 있겠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의지가 “그럼요, 사실
어제 아침 그 곤욕을 치른 후 저는
오히려 더 강해진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의지와
나는 또다시 기도하러 갔다.
어제 아침과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났다. 반항적이며 소란하고 떠들썩하니 비협조적인 감정들. 만일 당신이 내게 “좋은 시간을 가졌소?”라고 묻는다면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아니요, 천국이 마치
놋쇠처럼 단단했다오 기도에 집중하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감정과
싸우느라 진땀을 뺐지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두주 반이 흘렀다. 그래도 의지와 나는 계속해서 기도하러 갔다. 세번째 주 어느 아침이었다. 내가 시계를 보고 “의지야, 기도할 시간이다. 준비되었니?라고 묻자 의지가 “예, 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러 가려는 순간, 내 안에 있는 주요 감정 중
하나가 나머지 감정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얘 들아,
옷 입고 나가 봤자 소용없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아무튼 이
자들은 기도하러 갈 테니까…”
(그로부터 몇 주후)어느날 의지와 내가 천국 보좌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 드리고 있는데 그 주요 감정 중 하나가 갑자기 “할렐루야!”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머지 감정들이 모두 “아멘!”이라고 소리쳤다. 생전 처음으로 (나의 전부가) 기도하는 일에(참여한 것이다.).
기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정말 훈련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또 충만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사역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당신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채워주실 수
있도록 그분 앞에 나아가 기도하려면 세가지를 결정하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 시간을 정하라
2. 장소를 정하라 – 조용한 곳으로
3. 계획을 정하라
★ 출처 : 영적메이크업
****나의 아홉가지 선택
주위는 고요하다. 이른 시간, 따라놓은 커피에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피어오른다. 주위는 캄캄하고 세상은 잠들어 있다.
조금 후면 날이 밝아올 것이고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저 아래 차도를 시끄럽게 만들 것이다.
새벽의 고요함은 아침의 소란스러움으로 바뀔 것이다.
고독의 평온함은 사람들의 쿵쿵거리는 소리로 바뀔 것이다.
이른 아침의 은신처는 결정해야 할 일들과 급히 처리해야
할 일들 때문에 침범당할 것이다.
이후 열두 시간 동안 나는 하루가 요구되는 일에 내 자신을
내 맡겨야만 한다.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는 때는 바로 지금이다.
갈보리의 은혜로 나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첫째, 사랑을 선택한다.
어떤 경우라도 미움은 정당화될 수 없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해서 보복할 수는 없다.
나는 사랑을 선택한다. 오늘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사랑할 것이다.
둘째, 기쁨을 선택한다. 나는 나의 하나님을 모든
형편과 여건에서도 하나님이 되도록 초청할 것이다.
나는 냉소적 모습으로 변하려는 유혹을 거부할 것이다.
그것은 게으른 사상가의 도구일 뿐이다.
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연의 인간 이하로
취급하려는 태도를 거부할 것이다. 나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기회로 삼을 것이다.
셋째, 화평을 선택한다. 나는 용서를 받으며 살 것이다.
내가 살아가기 위하여 용서할 것이다.
넷째, 인내를 선택한다. 나는 이 세상의 불완전함을
너그럽게 용납할 것이다. 나의 자리를 빼앗은 사람을
저주하기보다는 그가 나의 자리에 앉도록 청할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불평하기보다는 기도할
막간이 생긴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겠다.
새로운 과업에 대해 투덜대기보다는 그것을 기쁨과
용기로 대면하겠다.
다섯째, 친절을 선택한다. 나는 가난한 자들에게 친절
하겠다. 그들은 외로운 이들이기 때문이다. 부유한
자들에게 친절하겠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친절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겠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대접하셨기 때문이다.
여섯째, 선함(착함)을 선택한다. 나는 부정직한 돈을
버느니 차라리 빈털터리로 살아가겠다.
나는 내가 자랑하기 전에 무시를 당하겠다. 비난하기
전에 먼저 고백하겠다. 나는 선함(착함)을 택한다.
일곱째, 신실함을 선택한다. 오늘 나는 약속을 지키겠다.
나에게 돈을 빌려준 이들은 날 믿은 것을 후회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협력자들은 내 말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내 아내는 나의 사랑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내가 집에 돌아오지 않을까 염려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여덟째, 상냥함을 선택한다. 강제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내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오직 찬양할 때
뿐이기를 원한다. 내가 주먹을 움켜쥐는 것은 기도할 때
뿐이기를. 내가 요구를 한다면 그것은 내 자신에게만
국한되기를.
아홉째, 절제를 선택한다. 나는 영적 존재이다.
육체가 죽고 나면 혼은 비상할 것이다. 나는 썩어질
것이 영원한 것을 지배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나는 기쁨
에만 취할 것이다. 나는 나의 믿음에만 감격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영향받을 것이다. 나는 예수님
으로부터만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나는 절제를 택한다.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친절, 선함(착함), 신실함,
상냥함, 그리고 절제, 이러한 것에 나는 나의 하루를 바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성공적이라면 나는 감사드릴 것이다.
만일 실패한다면 나는 그분의 은총을 바랄 것이다.
그리고 오늘 하루가 지나가면 나는 침대에 누워 휴식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 그분을 선택한다.
--- 맥스 루카도 /『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중에서 ---
★ 출처 :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하나님이 쓰신 인물의 공통점
(마 22:34-40)
1. 철저하게 자기 존재의 전부를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스러기 마음을 가진 부스러기 인생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2. 상대적 가치보다 절대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헌신 이하의 것도 좋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3. 겸손한 마음과 겸손한 신앙고백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우리는 항상 "부족합니다!"를 날마다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4.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으로 신앙의 배수진을 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나는 하나님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다"는 일념으로 사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5. 잘못했을 때에는 진지한 참회, 최대의 참회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잘못했을 때 참회하는 자세는 일상생활에서의 성실한 자세와 책임적 자세를 반증합니다.
6. 정직하고 진실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직하고 진실한 사랑이란 행동으로 보여주고 생활로 나타내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 출처 : http://www.john316.or.kr
***내일이라는 함정
월 스트리트 저널에 "직장과 가정"이라는 칼럼을 연재하는 수 셸렌바거는 자신이 말하는 이러한 사람들, 곧 "자신과 가족들이 언젠가는 편안하고 보람있는 삶을 살 것이라는 비전을 마음의 피난처로 삼고 미래를 위해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녀는 이것을 "내일이라는 함정"이라고 부르는데, 즉 사람들은 실제로는 일이나 다른 것에 파묻혀 살면서 내일이라는 신기루와 같은 것을 쫓아간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결코 오지도 않을 가상적인 내일을 위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오늘이라는 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골로새서 3:12-25을 읽으면서 각 구절마다 오늘이라는 말을 붙여서 읽어보십시오. "그리스도의 평강이 오늘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15절). "그리스도의 말씀이 오늘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16절). 아내들, 남편들, 아이들 그리고 아버지들에게 특별히 주시는 말씀들에 오늘이라는 말을 붙여 보십시오 (18-21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면서 미래의 어느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 순종할 것을 촉구하시며, 긴급하고 즉각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시며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내일이라는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일과 우리의 가족 관계에서 바로 오늘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밖에
없습니다.
오늘 그리스도가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어제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행할 새 은혜를 주시리니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좋은 의도가 아닌 복종을 원하신다.
***믿어도 되는 하나님
우리는 로마서 8:28을 인용할 때 그냥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시작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믿음에서 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시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어느 난파선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존자가 작은 무인도에 도착했는데 하나님께 구조해 달라고 기도를 하였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주위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떠내려온 나무들을 가지고 오두막집을 지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 돌아오는데 그 오두막집이 불에 타며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치민 그는 "하나님,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하고 외쳤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구조대가 와서 그를 깨웠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는지 어떻게 아셨습니까?"라고 묻는 그에게 그들은 "연기로 보낸 신호를 보았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루드 골즈 목사님은 "어떤 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시련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항상 하나님 사랑의 참된 뜻이 드러납니다"라고 썼습니다.
다음에 만약 당신의 마지막 희망이 연기로 사라졌다고 느껴질 때에는 "우리가 알고있는" 그 진리를 기억하십시오(롬 8:28).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으로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할 때
우리가 겪는 시련은
잘못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신실하심을 믿도록 하시려고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신다.
*** 아버지의 사랑
TV에 자주 나오는 한 유명한 사람이 그의 자서전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이 많은 분이라면 왜 직접 내려오셔서 갈보리 언덕에 가시지 않았을까?"라고 썼습니다. 이 말은 그 명사가 이 세상의 한 선한 아버지의 사랑의 이야기와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속에 나타나신 사랑의 깊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세상의 한 아버지가 보여준 아들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여 봅시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이 산에 오를 때에 아버지가 마음 속으로 겪었을 아픔을 상상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자기가 죽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랬을 것입니다.
나도 한 아버지로서 그러한 선택의 자리에 서게 된다면 내 자식과 자손을 위하여 대신 죽는 선택을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아버지로서의 우리의 사랑은 단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과 또 우리를 향해 가지신 사랑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님은 너무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고후 5:19)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가 갈보리 언덕에서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을 같이 하셨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하늘에 계시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감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직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 고통만 안겨드린 나를 위해,
그분을 죽게까지 한 나를 위해 그분이 돌아가셨다니요?
놀라운 사랑이여! 어떻게 나의 하나님 그분이
날 위해 죽으셔야 했단 말인가요?
아버지의 사랑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