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江華)는 강(江)의 꽃(華), 이 나라 강의 중심(華)이라는 뜻을 갖고있다.
한강이 흘러 서울을 지나 임진강을 만나고 염하(鹽河)와 예성강을 만나
하래비강(祖江)을 이루어 서해로 빠저나가는 강(江)의 중심(華) 바로 강화이다.
그 강의 중심 뜻 깊은 곳에 자리한 섬 강화도(江華島)이다.
강화도는 넓이 410㎢, 남북 27km, 동서 16km로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1970년 1월 26일 강화교가 준공 되면서 육지와 연결되었고 1997년 12월 31일에는 강화대교로 확장공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서울이나 인천 등지로 들고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남쪽의 마니산 정상에는 단군왕검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이 있으며,
섬의 해안과 강화읍에는 고려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국난을 겪은 역사유적들이 남아 있다.
또한 특산물인 인삼과 화문석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섬 내의 내가저수지와 분오리저수지 등은 낚시터도 유명하다.
그 섬에는 민족의 영산 마니산이 있다. 마리산, 머리산이라고도 불린다.
마리란 고어로 머리를 말하며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땅의 머리를 뜻한다.
산 정상에는 하늘에 제를 지내는 참성단이 있다.
마리는 강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 민족, 전 국토의 머리 구실을 한다는 뜻이다.
<고려사>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마리산(摩利山)으로 되어 있으며 그 뒤에 마니산으로 바뀌었다 한다.
마니산은 삼면이 바다에 면해 있어 산록 해안에는 이들 진보나 돈대의 유적이 많다.
서북단의 장곶보(長串堡)는 숙종 때에 만들어진 것이며 서쪽으로부터 검암돈대·미루돈대·동막돈대·
분오리돈대·칠오지돈대 등의 유적들이 많이 있다.
마니산 정상에는 단군이 하늘에 제천의식을 봉행하신 참성단이 있다.
‘88 세계 장애인 올림픽을 비롯 매년 전국체전시 성화를 채화 봉송하고 있는 민족의 영산이다.
등산로를 따라 918개의 돌계단을 올라가노라면 서해에 진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왕성한 기(氣)를 받을 수 있는 160 계단과 1004계단을 걸어서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으로 오를 수 있다.

강화군 화도면 에 위치한 산으로 가운데 부분 봉우리에 참성단이 있다.
마니산 정상(469.6m)은 참성단(465m) 동쪽의 헬기장 오른쪽에 멀리 보이는 봉우리이다
한반도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마니산은 한라산의 백록담과 백두산의 천지 까지의 거리가 똑 같다고 한다.
강화도 주민들은 모두 마리산 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머리에 해당하는 산이라는 뜻이다.
옛날 지도에는 마리산(摩利山) 으로 표기된 것도 있고, 마니산(摩尼山) 으로 표기된 것도 있다.
현재 한자 표기는 마니산(摩尼山) 이다.
한자로 마니산(摩尼山)이라고 표기하니 지역주민 모두가 마리산이라고 부르더라도
마니산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중앙지명위원회의 결정을 따라서 마니산이라고 표기한다.
참성단은 대한민국 내의 유일한 단군유적이다.
적어도 1,000년 가까이 마니산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으로 우리 의식 속에 들어와 있다.
참성단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원종 5년 (1264년)에 " 왕이 친히 이곳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 라는 기록과
또, " 고려사에는 참성단을 두고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단으로 전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이로 미루어
원종 이전에 이미 참성단이 설치되었음을 말 하고 있으며
광복 이후에 소개된 사서에 따르면 " 단군 기원 51년에 단군왕검께 춘추로 제사를 올리기 위해 참성단을 쌓았다"고 한다.
이는 기원전 2282년에 해당하며 고려이후 참성단은 조전 인조 17년(1640년) 강화 유수 최석항에 의해 개축되어
현재 참성단 중수비에 잘 기록이 되어 있다.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제단과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의 광장으로 조성된 참성단은 제사를 지내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천. 지. 인 삼재가 한자리에 구현된 조형 양식이다. 이는 "홍익인간" 의 이념을 잘 표현한 자리라고 하겠다.
몽고의 침입으로 수군(水軍)에 약한 몽고군과 대처하기 위하여 섬이자 한반도의 중심에 자리한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고려 왕조는 이곳 강화도에서 39년간 몽고에 저항하였고 단군을 중심으로 한민족이 국력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단단히 하였다고 생각된다.
참성단을 조성한 연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보수 또는 수축한 기록이 곳곳에 있다.
고려 원종 11년(1270년), 조선 인조 17년(1639년), 숙종 43년(1717년)에 단을 보수한 기록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이곳 참성단에서 제천의식이 행하여 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편 전국 체육대회 때마다 대회장에 타오르는 성화는 이 참성단에서 7선녀에의해 채화되어
대회장으로 점화 봉송 되고 있다. 이는 단군에 대한 제사에서 유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