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만에 하는 해외나들이라 기대도 많았고 일말의 긴장감도 있었으나 일상에서의 복잡함과 사람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외로움 같은 것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잠자던 용인 중국인 기지개를 켜고 세상을 향해 포효하기 시작한 것이 10여년, 해마다 두 자리의 경제 성장을 이루며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잘 나가는 미국, 일본, 유럽이 중국에 대고 얼굴 도장 찍기에 분주하고 우리나라도 예외 일 수 없어 북경으로 상해로 몰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본 중국은 5박 6일의 짧은 일정에 실크로드의 몇 곳을 둘러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규모의 대단함과 만만디라 불리는 이유와 상술 그리고 잠재력을 실감했다. 중국은 투자유치를 위한 설명회가 따로 필요 할 것 같지 않았다. 그냥 차에 태워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기만 해도 정치인이나 경제인 특유의 감각으로 알아서 투자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 같은 급성장이 불러올 부작용 또한 상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30년 전의 천안문 사태 같은 사건이 재발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과거처럼 탱크로는 안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시작되어 우루무치가 종점이 되는 실크로드를 역으로 수박 겉핥듯 훑어보았지만 케이블 TV에서 가끔 본 정도의 사전 지식이 많지 않고 시간적으로 짧은 것이 많이 아쉬웠다.
청도나 심양, 곤명 같은 곳은 우리나라의 기후와 비슷해 살기 좋은 곳이라 하였지만 우루무치, 투루판, 돈황, 서안 등은 구경할 곳은 되어도 살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김치나 된장이 없는데...
실크로드는 천산 남로, 북로, 인도, 티벳 등 수없이 많은 길이 있어 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나 꼭 경제적 의미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정치적 의미 또한 상당하다.
후자의 의미 중 신라 스님인 혜초의「왕오천축국전」과 삼장법사의 애제자로 원측과 주비가 있는데 손오공의 원측이 신라 사람이고 고구려 출신의 당나라 당수 고선지 장군은 한(漢)족이 아닌 사람으로 유일하게 중국 역사의 10대 명장에 오르지 않았는가? 실크로드는 중국사적 의미에 우리 역사의 중요한 관련성도 함께 연구해 볼만하다. 한반도가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시대에는 당나라와는 아주 밀접한 역사적 고리를 물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에 대한 약간의 견문을 넓히게 된 것이 큰 보람이었지만 양쪽으로 갈린 국내 언론매체의 북한에 대한 견해와 조선족 사회를 현지 안내원을 통해 약간은 정립 될 수 있었다.
긍정적인 면은 제쳐두고 말하자면 우리가 말하는 민족 개념의 조선족과 민족 감정을 이용한 돈벌이 장소 정도로의 조선족의 생각에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밥이 하늘인 사람에게 민족을 운운하기엔 오히려 사치일지도 모른다.
길림성 동부의 조선족 연변 자치주가 올해 말을 기점으로 소수민족자치주로서의 지위가 없어진다는 것이 씁쓸하다. 한국이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몇 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곳곳에‘연변처녀와 결혼합시다.’라는 현수막을 우린 많이 보았다. 연변엔 조선족 처녀가 없어 농촌총각은 노총각이 되어버리고 한국으로 돈 벌러 간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잠적하며 자식 며느리 한국 보낸 노모는 손주를 업고 길거리를 배회하고 우리아빠 한국에서 돈 많이 벌어온다고 학교는 땡땡이치고 초등학생이 담배를 꼬나물고 거들먹거린다 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55개 소수 민족 가운데 20위권이라는 우리 민족이 자치주 없이 이곳저곳 떠돈다는 사실은 우리 정부로 해외동포 정책의 기초를 세워야 하고 또 실행에 옮겨야 하지 않겠는가. 조선족(중국), 제일동포(일본), 고려인(러시아), 한인(미국)... 700만 해외동포라면 유럽에 이보다 적은 숫자의 국민국가가 얼마나 많은가.
내 스스로도 중국에 대한 와! 하는 놀라움이 있었지만 우리 것의 소중함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지난 해 북경의 자금성을 다녀온 사람에게“경복궁과 자금성을 비교해 보니 어떻던가.” 하고 물었더니“경복궁을 안가봐서 모르겠네요.”라는 말을 듣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자금성을 본 사람은 경복궁을 자금성의 행랑채로 비하하고 돈황의 막고굴을 보고나서 석굴암을 우습게보고 진시황릉을 본 다음 우리 왕릉을 밥그릇 엎어 놓은 정도 여긴다면 문제점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사막의 풍화석에 세긴 불상과 화강암을 쪼아 만든 불상이 같을 수가 없고 송나라의 백자와 고려의 청자가 같을 수가 없지 않는가.
알프스, 앙코르와트, 금강산, 베르사이유, 라스베가스가 한 곳에 있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문화란 지역과 역사와 환경 그리고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흘러가는 시간의 연장선에서 미래 설계의 기초가 되기에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대주의는 우리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하나 잘못된 역사 인식과 미래에 대한 불안, 주인의식의 결여가 아닐까.
당나라 태종이 중국의 위인이면 당태종의 비인간성을 굴복시킨 연개소문은 누구인가?
현지 안내원(특히 조선족)의 한국관광도 이러한 측면에서 이뤄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 더 보탠다면 우리가 배우는 한자와 중국이 사용하고 있는 간자의 차이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누가 대답 좀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여행 중 느낀 점 또 하나가 있다면 물어보는 것을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많이 물어보면 볼수록 편리해지고 빨라지며 또한 경제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물어보는 것이 여행의 참 맛이라는 사실이다.
끝으로 이 행사를 주관하고 협조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여행사의 이선우 부장님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