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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거사의 이야기
신안군 1004의 섬. 1박 2일 탐방기
(1편 : 도초도와 비금도의 보물 찾기)
2016. 8. 24(수) 아침
♣ 어제는 처서(處暑 : "더위를 처분한다“ 뜻으로 절기상 가을의 문턱)였는데도 날씨가 무지 찌는 폭염이었습니다. 아침 새벽에 몇차례나 잠자리에서 일어나곤 했습니다. 마치 코흘리던 시절 소풍가는 아이같은 그런 맘으로 안절부절했습니다.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KTX 고속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적어도 아침 4시 반까지는 용산역에 도착해야한다는 본행사 주관자인 임베드로 형제의 요청 때문에 새벽 3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 마포에서 안토니오 형님과 율리안나 그리고 김베드로와 임베드로 형제를 만나 승용차 1대에 올라 용산역으로 가야하기에 서둘렀던 것입니다만, 정작 KTX 고속열차의 탑승은 5시 20분이니깐, 5시까지 용산역에 가도 된다며 임베드로 형제가 ‘아주 공갈염소똥~!“하면서 웃으며 여유를 부렸습니다. 연식이 오래된 형제분들이라서 행여 늦을까 싶어 몹시 걱정을 했기에 겁을 준 것입니다. 어떻든 이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용산전자상가 앞 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워두곤 도보로 용산역으로 향했습니다. 어떻든 여유있게 Am 04시 30, 용산역에 도착했지요. 그 시각 충무로에서 출발한 이 야고보 형제님 내외분도 용산역 광장에 막~ 도착하셨습니다.
♣ 그런데 대합실은 이른 아침이지만 열대야로 인하여 찜통이라 역광장에서 담소를 나누며 진하게 담배를 몇 대 피운후 플렛홈으로 갔습니다. 작년 이맘때도 역시 위 멤버들이 다함께 KTX로 목포를 갔고 목포역 앞에서 랜트카로 땅끝마을 앞에서 넙도로 가는 배를 탔었는데, 이번에는 신안군 천사의 섬 중에서도 도초도와 비금도 그리고 우이도를 탐방하기로 한 것입니다.
고향인 목포인 임베드로 형제는 이번 우리의 여름여행을 위해 위 사진에서 보듯이, 사전 자기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아주 신안의 흑산도를 비롯한 이번에 우리가 탐방할 도초도, 비금도, 우이도 지역을 모두 점검했고, 식당과 숙소 그리고 배편을 비롯해 관광안내 택시까지 미리 예약을 해 놓는 등 사전 주도면밀한 계획를 수립해 놓고 있었습니다.
♣ 무엇보다 이번 여행을 위해 임베드로 형제는 자기 가족들과 함께 미리 1주일前 이곳을 사전 답사하는 등 한치의 오차도 없는 철저한 준비를 해 놓았기에 우리는 무한한 신뢰를 갖고 무조건 그의 지시에 따라야만했습니다.
♣ 우리 일행 7인은 Am 5시 10분, KTX 목포행 고속철도 플렛홈에 입장했습니다. 그리고 승차하기 전에 열차 앞에서 이 순간을 오래 오래 기억하고자 찰카닥~ 기념사진을 한장 박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탄 목포행 KTX 제501호 고속열차는 어김없이 Am 5시 20분, 여명을 뚫고 용산역을 출발했습니다. 여름 휴가철도 막다른 길목이고 또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아닌 평일 아침 새벽이라 승객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새벽녘이라 차창 밖은 아직 어두웠기에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었지요. 간밤에 잠을 설친 탓으로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겼습니다.
♣ 작년 여름 휴가시에도 지금처럼 이렇게 용산역에서 KTX 고속열차로 전라남도 목포로 향했고, 그때 옆좌석 앉은 임베드로 형제가 창밖의 풍경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던 기억들이 새록 새록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승차한 제501호 고속열차는 불과 15분만인 Am 05시 35분 광명역을 지났고, 30분 후인 Am 06시 5분 오성역을, Am 6시 35분 익산역을 지났습니다. 이때는 아침 햇살이 비치는 시각이었지요. 막~ 익산역을 지나면서 차창 밖에 펼쳐진 넓디 넓은 김제평야의 푸른 논밭이 아주 시원했습니다. KTX 좌석의 실내 모니터에는 시속 298km / h를 알리고 있었습니다. Am 06시 50분 정읍역을 지났는데 이때부터 계속 연속으로 山이었고 연속적으로 터널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Am 7시 11분 광주 송정역을 통과했습니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광주 송정역에서 하차하여 객차가 텅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용산역을 출발한지 2시간 25분만인 Am 7시 45분, 우리 열차는 목적지인 목포역에 도착했습니다.
♣ 딱 1년만에 다시 찾은 목포는 왠지 자꾸만 깊은 情이 가는 내 고향 같은 느낌이듭니다. 그동안 여름 휴가철마다 수없이 갔었던 보길도(4회)와 청산도(3회)도 여향도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목포를 경유했고, 용산성당 형제들과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고 넙도를 갔을 때도,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추자도 환갑여행을 갈 때도, 재경고교동창생들과 진도여행을 갔을 때도 그리고 회사 업무차 무안 농공단지와 신안 매화도 농지현장 조사 출장을 갔을 때에도 목포에 머물렀기에 은연중에 목포를 많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남달리 애행심이 깊은 목포 출신 임베드로 형제를 좋아하기에 더 깊은 정을 느끼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 임베드로 형제를 통해 영산강을 바라보는 노적봉에 얽힌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신바람이 났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바다를 통해 들어온 해양세력들이 그 젖줄인 영산강을 따라 내륙까지 뻗으려는 그 첫 길목에 위치한 목포가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숱한 애환의 역사가 가슴 뭉쿨하기만 했습니다. 학창시절의 목포 오거리의 추억, 목포항 근처의 빨간 목포에 고아원이 많았던 이유도 그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불후의 명곡인 ‘목포의 눈물(이난영)’도 일제 강점기의 애절한 사회상을 너무도 잘 표현해 주고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고향 제방 뚝에서 친구들과 함께 불러 숱하게 불러 재켰던 가슴 아프게와 빈잔(남진), 먼데서 오신 손님(조미미), 여고시절(이수미) 등의 대중음악의 중심에 섰던 명가수들이 바로 이곳 목포출신이라서 더 정감이갑니다.
♣ 어떻든 목포역에 도착 즉시 우리 일행은 서둘러 2대의 택시에 분승해 목포 연안여객터미널로 향했습니다. 불과 10분도 안되는 거리였지만, 아침 8시에 목포에서 비금 – 초도로 출항하는 여객선에 승차해야 하기 때문에 서둘렀던 것입니다.
♣ 목포 연안여객터미널의 건물은 마치 예술의 전당처럼 보였습니다. 건물 앞에 미술 조각품들이 멋졌기에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역시 옛부터 예술과 문학이 발달한 예향의 도시라 건물도 운치가 있나봅니다. 어떻든 빨리 승선해야만 하는 바쁜 가운데지만 멋진 풍경 앞에서 기념사진은 찍어야만 했습니다.
♣ 우리가 승선할 여객선은 ‘남해퀸’이라는 아주 큰 여객선이었는데, 지붕이 닫혀있는 것으로 보아 초쾌속선인 것 같았습니다. 정원 349명, 배무게 321 ton, 항해속력 36.4 노트, 최대속력 37.5 노트인 것으로 보아 작년 봄 한성동우회 멤버들과 백령도를 갈 때 인천여객터미널에서 탔던 그 배와 같은 규모라서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Am 08시, 우리는 임베드로 형제가 미리 현지의 친구에게 부탁하여 미리 구매해 놓은 승차권을 받아 남해퀸호에 승선하였고, 잠시 후인 8시 10분 우리 배는 긴 기적소리를 울리며 1차 목적지인 도초도와 비금도를 향하여 출항을 하였습니다.
♣ 목포 연안여객터미널을 떠나면서 차창을 통해 바라본 목포대교(木浦大橋)의 전경은 가히 환상적이었습니다. 유달산과 더불어 이제는 목포를 상징하는 최고의 관광 상품임이 틀림없었습니다. 국도 제1호선의 자동차 전용도로교량으로 목포 신외항과 서해안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목포의 관문으로 2012년 6월 29일 개통 되었다고 합니다. 목포대교는 고하도와 허사도(목포 신외항) - 목포대교 – 목포 IC – 죽림 분기점 – 남악 IC – 서영암 IC – 대불산업단지로 구성된 사실상 목포 외곽순환도로의 한 주축입니다.
♣ 그리고 목포대교는 사장교 형식이지만, 세계에서 두 번째, 한국에선 최초로 시도된 3웨이 케이블공법이란 고난이도 공법을 사용함으로써 한국의 대교역사의 새로운 획을 그엇습니다. 일반적인 사장교는 상판 좌우측에 각각 2쌍의 케이블로 지탱하지만 3웨이 케이블공법은 좌우측의 케이블을 1쌍으로 줄이고 이를 상판의 중앙에 옮겨 상판을 고정하는 방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계나 시공등에서 고난이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며, 케이블을 중앙에 배치함으로써 사장교 좌우측의 경관을 살릴 수 있는게 장점이있습니다. 특히 목포대교는 목포의 시조이며, 상징인 학(鶴)을 형상화하여 우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 또한 목포는 태풍이나 강풍이 자주 부는 지역이기 때문에 다리의 상판은 초속 67.4m, 주탑은 초속 74.9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고, 또한 상판을 유선형으로 만들어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시켰다고합니다. 북항~고하도 간 총연장 4.129km를 잇는 왕복 4차로로 3,346억원을 투입, 길이 167.5m짜리 주탑 2개, 교각 36개, 상판 슬라브 36경간이 시공되었다는데, 2004년에 착공하여 8년만인 2012년에 완공한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은 멋진 교량입니다. 해상에서 바라볼 때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현대조선소를 비롯한 대불공단 그리고 목포항 등대를 뒤로 한채 우리가 승선한 ‘남해퀸호’는 쾌속정이란 이름답게 빠른 속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 목포 연안여객터미널을 떠난지 불과 30여분만에 안좌도라는 섬의 큰 간판이 보였습니다. 이 안좌도 앞에 이르기 전까지 1004의 섬이라 부를 만큼 그동안 수많은 작은 섬들을 지나쳤는데, 정작 그 이름을 알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집에 문패를 단 듯 “섬 이름이 큼직하게 쓰여진 것”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신안 앞바다에 있는 1004의 섬 모두에게 이렇게 문패를 달아 주면 얼마나 정겹게 느껴질까 하는 그런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 “남해퀸호”가 쾌속정이란 이름값에 걸맞게 시속 60~70Km의 속력으로 달리는 듯 싶었습니다. 일반여객선이라면 2시간 이상이 소요될 거리라고 하는데, 우리가 승선한 이 쾌속여객선은 목포 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한지 약 1시간이 흐를 쯔음인 Am 9시 5분경 ‘도초도’를 알리는 커다란 입간판이 보이는 곳을 통과했습니다. 이곳 도초도까지 오면서 무인도를 포함한 수없이 많은 섬들이 있었습니다만 그중 ‘안좌도’와 ‘도초도’만이 이렇게 이름표를 달고 있었습니다.
♣ 도초도 여객선터미널로 진입을 시도했는데, 도초도는 비금도와 연결하는 해상교량이 있었습니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해상교량을 “연도교”라고 호칭합니다. 그런데 연륙교(連陸橋)는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다리를 총칭하는 말이지요. 보통 큰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다리를 연륙교라고 부르나 면적이 큰 섬 또는 육지와 연결된 섬과 작은 섬을 잇는 다리를 '연도교'라는 명칭 대신하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 Am 9시 5분, 드디어 우리는 1차 목적지인 ‘도초도’에 도착했습니다. 쾌속정이기 때문에 불과 1시간 남직한 시각에 금방 도착한 것입니다. 그리고 ‘남해퀸호’는 쾌속정이라 창문도 밀폐되어 있고 창은 유리가 아니고 특수투명 플라스틱이라서 창밖의 자연경관을 보는데는 다소 제약이 있었습니다만 비교적 투명한 곳을 골라 창밖의 전경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지요.
♣ 목포 연안여객터미널을 떠난지 약 1시간만에 드디어 우리는 1차 목적지인 ‘도초도’에 도착한 것입니다. 하선을 시도하는 일행중 연세가 가장 많은 안토니오 형제님의 표정이 아주 밝고 또 쌩쌩하여 얼마나 마음이 안도 되었는지 모릅니다. 작년 이맘 때 땅끝 마을 해남에서 넙도를 갈 때, 그분은 급작스런 장염 때문에 엄청 고생했던 그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 도초도 여객선터미널 앞에는 멋진 팔각정 정자가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꿈이 있는 인재의 고장”이라는 커다란 상징 탑이 우뚝 서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그 상징탑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우리 일행이 올 것을 미리 알고 기다리고 있는 이곳 도초도와 비금도의 관광을 담당하는 관광택시 기사분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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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우리의 여름휴가의 인솔 책임자인 목포 출신의 임베드로 형제는 이렇게 미리 관광 안내의 택시 기사까지 예약을 하는 등 주도면밀한 계획과 준비를 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또한번 깊은 감동을 받았지요
♣ 우리 일행 7명은 관광택시인 9인승 승합차에 올라 본격적으로 도초도와 비금도 일대의 구석 구석을 탐방했습니다. 택시기사님은 마치 해외여행시에 흔히 보아왔던 관광을 안내하는 1급의 가이드 같았습니다. 해박한 지식과 재치있는 유모어 그리고 친절한 안내가 참으로 우리들을 기분 좋게 했습니다. 아마도 이곳 신안의 도초도와 비금도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분들을 안내 하셨기 때문에 깊은 내공이 쌓이신 것 같았습니다.
♣ 이번 우리가 탐방할 섬은 신안군 1004의 섬 중에서도 3곳입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흑산도도 꼭 가보고 싶었지만 1박 2일 제한된 시간이라 '도초도와 비금고 그리고 우이도'를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첫 여행지인 도초도와 비금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전체적으로 신안군부터 이해를 해야만 할 것 같아 여기 요약하여 소개합니다.
♣ 신안군은 전라남도 서해상 다도해의 군입니다. 흔히 우리에겐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된 중국 당나라와 또한 고려의 무역선에서 발견된 청자와 각종 도자기 등으로 인해 마치 신안은 보물섬처럼 인식된 곳이기도 하지요. 옛날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섬이 발전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섬과 섬을 연결하는 해상교량인 연륙, 연도교가 생겨 섬에서 생산된 각종 귀한 농수산물과 또한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광관지 개발로 인해 오히려 섬이 육지보다 소득이 더 높은 부촌화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 금번 우리 일행이 탐방한 도초도와 비금도만 하더라도 '서남문대교'의 건설로 인하여 큰 2개의 섬이 하나가 되기도 했습니다.
♣ 중국과 서남해안의 관문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비금도와 도초도를 연결하는 서남문대교는 특히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비금도 • 도초도 권역의 산업, 관광, 문화교류의 연결고리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우리 일행은 승합차 관광택시에 올라 택시 기사겸 1급 관광 가이드께서 안내하는대로 모든 걸 맡겼습니다. 도초도는 섬이라기 보다 그냥 우리의 옛날 시골 동네같은 정겨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 풀이 무성해서 말을 키우기 좋겠다며 도초(都草 /도읍도, 풀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신안군에서 가장 넓은 곡창지대인 교란 평야가 있습니다. 삼면이 산과 바다로 마치 병풍을 쳐놓은 듯한 포근한 지형에 2.5km의 백사장이 깔려있는 아름다운 시목해수욕장은 도초도와 신안의 아니 전라남도의 큰 자랑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 관광택시 기사께서는 도초도에서 곧바로 비금도로 넘어가는 '서남문대교'를 지나 비금도 일대부터 안내하셨습니다. 약 2시간에 걸친 관광택시 튜어로 비금도와 도초도를 광광한 후 낮 12시쯤 다시 도초도 여객선터미널 앞으로 돌아와 근처에 있는 돌고래 횟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지요.
♣ 소금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비금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천일염전을 시작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섬의 모양이 새가 날아 오르는 형상이라해서 비금도(飛禽島 / 날비, 날짐승금, 섬도)라 하였으며 해안절경으로 유명한 신안의 자랑스런 보물섬입니다.
♣ Am 9시 10분, 도초도 여객선터미널 앞에서 관광안내택시에 승차한 우리 일행은 도초도의 서남문대교를 넘어 먼저 비금도로 진입했습니다. 약 10분도 안된 Am 9시 20분경 우리 일행은 아스팔트로 잘 포장된 도로를 질주해 멀리 우뚝 솟아 보이는 멋진 암석의 산인 선왕산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주변의 농경지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금도에는 천일염전도 많았지만 특히 시금치가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벼를 베고 난 뒤에 그 논과 밭에 시금치를 재배하는데, 비금도의 시금치는 우리나라 전체 시금치 공급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랍니다. 이곳 비금도에서는 일년 365일 일손이 딸릴 정도로 쉴틈이 없기에 시골 할머니들께서도 자기 통장에 수천만원씩 갖고 있을 정도로 부자들이라며 관광안내를 하는 택시기사님께서 침을 튕겨가면서 열변을 토하셨습니다.
♣ 우리가 탄 관광택시는 잠시 후, '경노 효친의 마을'이란 슬로건이 들어간 내촌리(內村里) 마을로 진입을 했습니다. 내촌리는 돌담장 길로 유명한 마을입니다. 정교하게 쌓은 돌담장은 마치 예술작품처럼 아름답기 그지 없으며 특히 그 돌담장은 일반적인 해풍은 물론이고 심한 태풍에도 견딜 수 있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과학적인 담장입니다. 우리가 탄 관광택시는 내촌리 마을을 지나 선왕산으로 오르는 산악도로를 타면서 차창밖의 '마음바위', '키스바위'를 비롯한 갖가지 기암괴석을 볼 수 있었습니다.
♣ 관광택시는 비교적 가파른 언덕을 올라 산 등성이에 올랐습니다. 앞에 보이는 각양각색의 형상물을 품고 있는 바위산은 바로 비금도의 등산코스로 유명한 선왕산이었습니다. 암산에 조성된 소나무들도 신비롭기만 했습니다. 어떻게 바위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신비롭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비금에서도 소나무의 에이즈라고 불리우는 재선충으로 곤혹을 치루고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 없었습니다.
♣ 내촌리 뒷산 산등성이에는 마치 성벽을 쌓은 것 같은 돌담이 있었습니다. 이 돌담은 내월우실이라고 부르는 해풍으로부터 농작물과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돌담입니다. 이 산언덕의 성벽처럼 쌓은 돌담은 아마도 사람들이 정착하면서부터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비금도의 수대리 수도마을 뒷산 8부 능선에는 최치원의 샘물이 있는데, 이 샘물은 최치원이 중국 유학길에 이곳에 조성한 샘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신라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산등성이에는 '내월우실'이라는 안내문이 돌비석에 아래와 같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내월우실
신안군 향토자료 제18호
길이가 각각 20m. 45m인 두 개의 담장, 높이 3m 폭 15m의 규모로 하누넘 해변과 비금도 내월리 사이의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있다. 우실의 어원은 ‘울실’이라고 한다. 올실은 마을의 울타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누넘 해수욕장 가는 길목의 내월리 내촌마을 뒤편 고개의 우실이 대표적이다.
♣ 내월우실을 지나 곧 이어 하누넘 해안을 내려다 보는 전망대에 다다랐습니다. 이 전망대에는 포토죤이 있었고 그 옆에는 아래와 같은 '비금도 하누넘 해안'을 소개하는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비금도 하누넘 해안
비금도 서쪽해안에 위치한 하누넘 해안은 오랜 세월동안 파랑에 의한 침식작용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비교적 강도가 약한 암반은 부서져 모래가 되고, 강한 암반은 상대적으로 침식이 덜 이루어진 차별침식의 결과로 현재와 같은 하트(Heet) 모양의 해안을 이루었다. 하누넘 해안은 드라마 촬영지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며, 이곳에서 연인들이 사진을 찍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 탐방객의 발길을 잡아끈다. 하누넘이라는 이름은 다양한 유래를 갖고 있는데, 하늘과 바다만 보이는 바닷가라는 뜻과 거센 하늬바람이 넘어오는 언덕이라는 뜻이 있다.
♣ 우리일행은 관광택시 기사께서 코치해 주는 그대로 포즈를 취하고 하트해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그 옆에는 '비금도 하트해변 사랑의 마법'이 아래와 같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우린 잠시나마 그 마법의 주인공이나 된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비금도 하트해변 사랑의 마법
비금도의 하트해변를 보는 순간 그리움의 바다가 삼켜버린 비금도의 애절한 억겁의 사랑!
배타고 고기잡이 나간 하누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너미, 하지만 하누는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고...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하루 하루 하트를 만든 너미는 지금도 하트해변에 누워 억겁의 세월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움으로 하트 안에 눈물의 바다를 만든 여인. 하누와 너미의 전설이 부활하여 하트해변을 지켜보고 연인들에게 그리움의 간절한 사랑이 두 사람의 심장에 영원히 지울 수 없고 그 어떤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고리를 연결 시킨다는 전설이 내려 오고 있다.
▘하누넘 – 하누와 너미
▘ 하트해변 끝자락을 살펴보면 하누를 기다리는 너미의 누워있는 형상이 보임
♣ 하누와 너미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하누넘 해수욕장(하트해수욕장)은 청춘남녀들이 절로 사랑이 싹틀수 있는 자연환경으로 잘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바닷물은 파랗게 물들어 있었지만 가까이에서 볼 땐 색깔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바다의 바닥이 모래인 곳과 또 뻘(진흙)이 있는 부분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조류의 흐름에 따라 바닷물의 색깔이 달라진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 관광택시 기사의 안내에 의하면 이곳에는 돌고래와 비슷한 상괭이도 아주 많다고 했지요. 비금도 하누넘 해수욕장의 백사장은 너무나 고왔습니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지요. 해안선을 따라 암석 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무성한 절벽과 햇볕에 반짝이는 금모래밭 백사장은 한폭의 동양화였습니다.
♣ 산길과 등산로에는 고사리와 드릅이 지천이고 야관문을 비롯한 약초가 많은 보물섬인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산등성이를 오르는 길목 돌담주변에는 시누리대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약초와 대나무가 많은 곳인지 이곳 비금도에는 뱀도 많다고 합니다. 관광택시 기사께서는 키스신 바위에 이어 임신한 바위산을 설명하면서 이곳에 ‘누드 해수욕장을 만들면 국내외에서 수많은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몰려들 최고의 관광지가 될 것이라며 한때 지방자치단체장이 이를 추진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 이런 저런 재미난 이야기를 하다보니 금방 마을의 돌담장길을 지나게 되었는데, 비금도의 내촌돌담(등록문화재 제283호)길은 약 3km에 이르는데 섬 특유의 돌담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감개무량하기만 했습니다.
♣ 이 섬의 돌담장은 마치 조형작가로 불릴만한 예술가에 의한 창작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마 뛰어난 담장 기술자 한사람이 후계자를 길렀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비록 크고 작은 돌담장이 많았으나 그 모양은 한결같이 같은 공법에 의해 쌓은 돌담으로 아름답기 그지 없었으니깐요.
명사십리
♣ Am 10시, 도초도 연안여객터미널 앞에서 9인승 관광택시에 승차해 서남문대교를 건너 비금도의 하누넘 해수욕장을 비롯한 내월우실, 내촌리 돌담길 그리고 비금도와 다도해해상을 한눈에 조망하는 그림산에 오르는 길목을 탐방한 우리는 비금도가 자랑하는 또하나의 감추어둔 최고의 보물인 명사십리 해변으로 들어가는 입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명사십리에 진입하는 마을의 이름은 '평림마을'이었습니다.
♣ 평림마을은 주로 농사를 많이 짓는 곳이긴 했으나 그 마을 앞에는 큰 방파제를 만들었고 그곳엔 태풍을 피해 안전한 대피를 할 포구를 조성했는데, 이제 그 기능이 저하되어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자연 그대로 놓아 두어도 더 좋았을 인공 방파제가 그 기능을 아주 상실한 것이었기에 안타까웠습니다. 애물단지로 변한 방파제는 오물이 많아 인근의 명사십리에 오히려 오점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 관광택시 기사는 평림마을의 백사장인 이 '명사십리' 길을 힘차게 내달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해안백사장은 비행기 활주로처럼 단단하기만 했습니다. 아~! 놀라웠습니다. 아주 미세한 분말같은 백사장 모래가 단단한 시멘트와 같았습니다. 그 길이는 수백미터로...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 명사십리를 소개하는 팜프렛에는 명사십리 해변 길이는 무려 4km나 된다고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려쪼았지만 우리들은 아이들처럼 백사장에서 갖은 포즈로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 잡아봐라~!'도 하면서 뜀박질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멋진 마치 비행기 활주로같은 천연해안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작년 봄 원우회 멤버들과 백령도를 갔을 때 그때 경험한 천연 비행기 활주로같은 해안을 이곳 신안의 섬에서 똑같이 경험하다니...
♣ 아이같은 마음으로 백사장을 수없이 달려 보았습니다. 아~! 정말 대한민국 만세였습니다. 이런 천연비행장 같은 해안이 우리나라 서울 근교에 위치했다면 아마도 금방 훼손이 되었을 것입니다. 서울에서 무려 7~8시간 떨어진 먼곳에 위치한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내용이 길어서 1편은 여기서 총총 맺습니다.
제2편은 비금도의 또하나의 자랑인 비장의 무기인 이세돌 바둑기념관을 비롯한 천일염전 등 탐방한 이야기를 상세히 기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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