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 주인공에서 깡패역까지 연기의 폭을 꾸준히 넓혀온 박신양씨와 <엽기적인 그녀>로 인기 절정에 이른 전지현씨를 캐스팅해 화제가 됐던 이수연 감독의 데뷔작 <4인용 식탁> 촬영현장 공개와 제작발표회가 지난 28일 강원도 설악산 켄싱턴 스타 호텔에서 열렸다.
박신양씨는 기자회견 내내 자신의 출연 결정이 거의 전적으로 시나리오 때문이었음을 강조했다. “본디 무서운 영화엔 출연 않겠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어요.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안 좋았거든요. 근데 이 시나리오는 처음 읽었을 때 무서운 정도가 아니라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잤어요. 뭔가 나를 괴롭히는 겁니다. 무서운 건 좋은데, 왜 자꾸 이게 생각이 나지 이게 대체 뭐지 그 느낌이 도대체 뭔지 알아보고 싶어서, 무서운 영화지만 출연하기로 했어요.”
박신양씨는 결혼을 앞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나온다. 그는 이 직업에 관한 한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일가견이 있다. 소파, 침대, 책상, 선반, 옷선반 등 “벽에서 떨어져 있는 가구”는 모두 다 직접 디자인했을 정도다. “아버지께서 손수 집을 짓고 싶으셔서 30년 넘게 설계도를 그리셨어요. 그 영향으로 저도 제 집을 직접 짓고 싶어서 틈틈이 인테리어 공부를 한 게 3년 됐네요.” 내년 1월엔 강남의 한 가구매장에 그가 설계한 소품들을 판매하는 특별 부스까지 생길 정도다.
지난 9월 결혼 직후 신혼여행도 떠나지 않고 촬영에 합류한 박신양씨는 그 ‘빚’을 갚기 위해 이번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을 맡을 때까지 내내 신혼여행을 갈 생각이라고 한다. “아니, 아주 평생 신혼여행을 다니겠다고 약속했어요. 촬영이 끝나고 다음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계속 여행 다니는 거죠. 세계를 아예 한바퀴 돌 생각입니다.” <4인용 식탁>에서 전지현씨는 혼령을 보는 연이란 기혼여성으로 출연한다. 전작인 <엽기적인 그녀>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배역이다. “저도 제게 너무 안 어울리는 옷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제가 잘 하고 있는 거냐고 늘 감독님께 묻죠. <엽기…> 이후 들어온 시나리오는 모두 ‘엽기’의 아류 캐릭터였어요. 비슷한 연기를 하면 편하긴 하겠죠. 그러나 전 편하게만 지내면 분명 다음엔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편하기만 할 순 없기 때문이죠. 또 배우의 이미지가 한 가지일 순 없죠. 여러 가지 해보는 게 필요하단 생각에서 가장 ‘엽기’와 닮지 않은 얘기로 가고 싶었어요.”
이미지 변신을 위해 그가 가장 많이 한 건 ‘발성연습’이다. 특유의 쾌활하고 발랄한 음성 대신 주인공의 우울하고 스산한 이미지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전지현씨는 주인공이 혼령을 보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증세를 겪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비디오 자료까지 챙겨보는 열성을 발휘했다. “연이란 인물은 복잡한 과거를 지닌 여성이죠. 어둡고 무서워요. 촬영 내내 혹시라도 웃으면 감정이 끊어져 힘들어져요. 그러나 여자로서 충분히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각각 ‘무서운 연기’와 ‘어두운 이미지’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두 배우가 빚어낼 공포는 과연 어떤 빛깔일까. 공포영화에도 몇 가지 격이 있다. 선혈 뚝뚝 떨어지는 난도질의 공포가 있는가 하면, 악몽 같은 몰골로 관객을 몸서리치게 만드는 공포도 있다. 그러나 이런 흉기나 흉물을 스크린에 내비치지 않고 상황 전개만으로 관객을 얼어붙게 만드는 공포도 있다. <식스 센스>나 <디 아더스>가 이 범주에 속할 것이다. <4인용 식탁>은 시나리오의 의도대로 완성된다면 아마 이 세 번째 범주에 속하는 드문 공포영화가 될 것 같다.
●‘4인용 식탁’ 어떤 영화?
어느날 갑자기 혼령들이 보인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정원(박신양)은 약혼녀 희은(유선)과 결혼을 코앞에 두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지하철에서 버려진 아이들의 죽음을 목격한 뒤 정원의 인생은 흔들린다. 그의 눈에 혼령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얼마 뒤 정원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연(전지현)이란 여성을 알게 된다. 연 또한 혼령을 보는 사람이다. 원치 않는 ‘능력’ 때문에 혼란에 빠진 정원은 연의 도움으로 자신이 느끼는 공포의 정체에 한발한발 접근해간다. 그러나 비밀에 다가설수록 정원은 진실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다.
지난 28일 계획된 촬영 일정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이 감독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존재한다고 믿는 현대인의 속성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영화 기획 의도를 밝혔다. “‘4인용 식탁’은 ‘가족’의 환유입니다. 가족은 인간관계가 시작하는 곳이지만 사람 사이에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죠. 가장 큰 상처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입는다는 것, 그런 상징으로 영화의 제목을 ‘4인용 식탁’이라고 했습니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장르영화 팬이든 ‘숨은 그림 찾기’를 즐기는 관객이든 모두 즐길 수 있는 드라마”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현재 40% 정도 촬영을 마친 <4인용 식탁>은 내년 봄 개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