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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머리 없는 개발
임실 청소년수련원으로 들어가는 작은 돌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에는 임실각시붕어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시인은 각시붕어를 보면서 지금은 전 국토가 죽어가는 시절임을 강조했다. 시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죽어가는 국토를 살리는 것이다.
“마을, 학교, 강을 살려야 해.”
어쩌면 이것이 시인의 고통인지도 모른다. 이 고통이 시를 낳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연인처럼 시인의 마음에는 작게는 마을과 학교의 죽음이, 넓게는 이라크전을 비롯한 전쟁의 죽음이 뱀처럼 고통의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년에 출간하겠다는 시집의 화두는 역시 환경과 전쟁에 관한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살면서 쓰는 것이다. 시는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고, 노래다. 시인은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후회 없이 치열하게 살면 돼. 떳떳하고 당당한 사람이 되어야지. 가끔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손가락질을 당하더라도 자신이 진실하다면 그것은 언젠간 풀리지. 진실한 사람의 모습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야.”
그러다가 문득 이런 말도 한다.
“강산이 저렇게 아파하는데, 시는 뭐하게 쓰냐.”
죽어가는 마을 앞에서 시 쓰는 일보다 ‘쓰잘머리 없는 개발’을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공서에 강연요청을 받아 가는 자리에서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고, 제발 관에서 쓸데없는 개발을 안 하기를 당부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시인일 수 있게, 시를 좀 쓰게 해달라고 당부한다고 했다.
전주에서 진매마을로 가는 길에 아름다운 풍경이 많이 있다. 그런 곳엔 어김없이 서양식의 어색한 건축물들이 산을 깎고 들어서 있다. 이른바 ‘전원마을’인 모양인데 시인은 그것이 영 어색하고 볼품없다고 타박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산과 물과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동막골에 들어선 탱크 같은 모습이다. 저것이 어쩌면 폭격이 아닐까 싶다.
“옛 선비들은 절경의 자리엔 거처를 짓지 않았어. 좋은 풍경은 가끔 와서 보는 거여. 그것이 좋은 것이지.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절경이 보이는 곳에 저렇게 집을 지으려고 안달이야. 좋은 것도 자주 보면 그저 그래. 아껴서 봐야지. 그리고 우리 그림을 보면 사람이 얼마나 작아. 산수화에 있는 사람은 나무나 풀과 같이 작아. 큰 것은 산과 물이야. 자연에서 사람은 그 정도지.”
진매마을의 집들은 주위의 자연과 어울려 있다. 겸손하게 낮게 엎드려 산과 물과 나무와 같이 산다. 시인은 키가 작은데, 진매마을 섬진강의 낮은 물길을 닮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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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선생은 아이들의 몸을 가진 분이다. 아이의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은 어른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선생의 2학년 교실에는 다혜와 지연, 재석이 있다. 서울에서 내려온 다혜는 할머니 집에서 살고 있고 부모가 서울에 있다. 지연이는 시골아이다. 재석이는 목사님 아들이다. 다혜는 의젓하고 성숙한 아이다. 가끔 선생이 잔소리를 하면 ‘선생님, 집에서 할머니 잔소리도 많이 들으니 잔소리 좀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곤 한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그런 아이가 어느 날 서럽게 울고 있었다. 선생은 깜짝 놀랐다. 간이 큰 녀석인데 어쩐 일일까. 재석이와 지연이도 곁에서 울먹이고 있다.
이유는 손난로 때문이었다. 지연이가 손난로 가지고 다니는 것을 부러워하던 다혜. 할머니는 서울에서 엄마가 내려오면 사 준다고 했다. 서울서 내려온 엄마가 손난로 2개를 사 주었다. 그런데 지연이가 손난로를 가지고 놀다가 그만 망가뜨렸다. 똑딱거리는 손난로의 가열 장치가 부러져버린 것이다.
애들은 애들이다 싶어 그것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500원이라고 한다. 선생은 주머니에 있던 500원을 책상에 올려놓고 이걸로 다시 사고 울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뚝 그치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500원을 주머니에 집어넣는 다혜. 은근히 부아가 나는 선생이다. 녀석, ‘고맙습니다’라든지 ‘아니에요. 엄마한테 또 사달라고 할게요’라든지 한마디는 해야지. 요 녀석 봐라. 시치미를 뚝 떼고 있어. 그래도 이미 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다음 시간이 바른생활 시간이었다. 예의범절을 가르치면서 선생은 다혜에게 말한다.
“어른이 돈이나 물건을 주면 어떻게 하면서 받지?”
“고맙습니다, 잘 쓰겠습니다, 하면서 받습니다.”
“그런데 다혜는 아까 어떻게 했지?”
“….”
“그럼 다시 해보자. 다시 그 돈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다혜가 주머니에서 500원을 다시 올려놓자 김용택 선생은 얼른 그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었다고 깔깔대며 웃었다. 다혜는 다시 울고….
선생의 교육관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대충 넘어가면 반드시 뒤탈이 있다. 아이들과 문제가 있으면 끝까지 대화를 해서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공부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것이 시인 김용택의 교육방침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섬진강의 물과 바위와 바람과 그리고 산과 나무와 풀과 같이 사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이 어울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을 고생시켜서라도 반드시 인간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택 부부의 금실이 유난히 좋은 비결은 ‘자세히 들여다보기’였다.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쁜 구석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나도 내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해. 대충 보면 안 돼. 자세히 봐야지.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 같아. 대충 보는 사람은 대충 쓰지. 그리고 어쭙지않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보려고 하고. 자기 자신만을 보려고 하고 말이야. 집사람이 처음에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주 명언이야. ‘우리 기왕에 만났으니 잘살자’였어. 나에겐 아주 심오한 이야기야. 기왕에 만난 사람들, 다 잘살았으면 좋겠어.”
자세히 들여다보기
산다는 것은 복잡한 일이다. 부인을 어떻게 만났냐는 말에 시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님 탈상에 와서 만났는데,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만난다. 기차에서 만나고, 비행기에서 만나고, 길거리에서도 만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만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살고 있느냐다. 말은 쉽지만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부부사랑은 잘 가꾸는 거여. 그리고 아내를 부려먹으려 하면 안 돼. 집안일도 서로 도와가면서 하는 거야. 그렇게 작은 것을 자세히 보면 지루한 것이 좀 괜찮아. 같이 20년 살면서 그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
선생의 전주 집에서 차를 마시고 나와, 홀로 진매마을을 다시 찾았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진다. 섬진강은 선생의 시에 나온 대로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의 섬진강이었다. 강은 삶이다. 그것은 시인의 삶이 아니라, 사람의 삶이다. 시는 강물에 조금 흐드러져 있는 억새이거나, 조금씩 고개를 내밀고 있는 달이다.
억새와 달은 사람들에게 묻는다. ‘어떻게들 살고 계시는가. 아직도 어떻게 살 것인가만을 꿈꾸는가’ 하고. 시인은 말한다. 꿈꾸지 말고 죽도록 열심히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