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ARDEN
Pyotr Il'ich Tchaikovsky
Overture Romeo & Juliet
Pyotr Il'ich Tchaikovsky (1840∼1893)
차이코프스키
러시아 작곡가. 보토킨스키 출생.
광산기사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프랑스계 어머니의 영향으로
프랑스식 교육을 받았으며 피아노도 배웠다.
185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법률학교에 입학하였고
52년 어머니를 잃은 뒤 독일 작곡가 R. 큔딩거에게
피아노와 음악이론을 배웠다.
1869년 환상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작곡.
1893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음악명예박사학위 받음.
교향곡 제 6 번 《비창》. 페테르부르크에서 《비창》을 자신의 지휘로 초연.
곡은 4개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차이코프스키의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적인 줄거리의 바탕위에 종교적인 색채를 띄고 장중하게 시작된다.
이 선율은 극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도사 로렌스를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이어서 거칠고 격앙된 반목의 테마가 폭발하는데,
이것은 몬테규와 캐퓰러트 두 가문의 피비린내 나는 격투의 장면이다.
이윽고 격투의 소란이 진정되면서 잉글리쉬 혼과
비올라에서 우아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이것은 로미와 줄리엣의 청순하고 덧없는 사랑의 테마이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것을
"러시아의 모든 음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테마"라고 절찬하고 있다.
음악은 반목의 테마와 사랑의 테마가 서로 얽혀
비극적인 색채를 차츰 짙게 하면서 파국을 향하여 전개되어 나간다.
차이코프스키의 독특한 색채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이 이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마지막은 파국의 장면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청순하고 아름다운 사람의 테마와,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하프의 분산화음이 인상적이다.
차이코프스키가 이 작품을 작곡하게된 배경
당시 <러시아 5인방>의 리더인
발라키레프(1837-1910)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당시 국민음악 창조를 목적으로 결성된 <5인방>의 멤버는
발라키레프, 큐이,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보로딘 등 쟁쟁한 젊은 작곡가들이었고,
차이코프스키는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발레키레프가 차이코스키에게 이 곡의 작곡을
권유했을 당시의 상황을 차이코프스키의 친구이며
또 그의 전기를 쓰기도 했던 카슈킨은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발라키레프와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나는 산책을 무척 좋아했다.
어느날 세 사람이 함께 산책하러 나갔을 때
발라키레프가 차이코프스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곡을 권유했다.
5월의 아름다운 어느날이었다.
우리가 산책하던 언덕의 그 초록빛 숲과 높다란 전나무들….
발라키레프는 차이코프스키의 재능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암시하는 소재를 차이코프스키가 충분히 소화하여
살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발라키레프 자신도 이 테마에 크게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것이 마치 완성된 음악인 것처럼 면밀하고 정확하게 그 구성을 설명해 나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젊은 차이코프스키의 환상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차이코프스키는
그해(1869년) 9월부터 11월 사이에 환상적인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를 완성하여 다음해 3월에 초연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데가 많아서 상당한 부분을 수정했고,
그후 11년이 지난 1881년에 다시 손질을 하여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형태로 출판했다
1869년의 제1고, 1870년의 제2고,
그리고 1881년의 제3고 등 세 가지가 있는 셈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전기를 쓴 바 있는 쿠닌은 이렇게 쓰고 있다.
"만약 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없었던들
1870년대의 표제적 교향 작품은 물론이요,
만년 시대의 웅장한 교향곡도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차이코프스키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
(총 연주시간 : 18분 23초)
**서곡 序曲 (overture) **
오페라 ·오라토리오 ·발레 ·모음곡 등의 첫부분에서
연주되어 후속부로의 도입 역할을 하는 기악곡.
역사적으로는 서곡은 우선 두 가지 중요한 형태로 분류된다.
17∼18세기에서의 프랑스풍 서곡과 이탈리아풍 서곡이 그것이다.
프랑스풍 서곡은 륄리가 그의 오페라에
느림―빠름―느림의 3부분의 서곡을 썼는데,
이것이 18세기 중엽까지 프랑스풍서곡의 정식(定式)으로 존중되었다.
그 전형에서는 제1부는 부점(付點)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장려한 성격,
제2부는 그 모방양식, 제3부는 제1부의 재현 혹은 제2부의 코다를 이루고,
제1부와 같이 제각기 장중한 성격에 의하고 있다.
그리고 유달리 바로크시대의 오페라에 즐겨 사용되었으며,
이탈리아오페라이면서도 프랑스풍 서곡을 가진 것도 많았다.
또 오페라 이외에 자주 모음곡의 첫머리에도 쓰여졌기 때문에
모음곡 전체를 서곡이라 부르는 일도 있었다.
이탈리아풍 서곡의 정식은17세기 말에
스카를라티가 빠름―느림―빠름의 3부분의 서곡을 창시하여,
이 형식은 오래 계속되어 신포니아라고도 해서,
18세기의 심포니의 선구로도 간주되고 있다.
제1부는 화성적 양식, 제 2부는 서정적인 성격,
제3부는 발랄한 춤곡풍의 성격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풍 서곡은 18세기 중엽 무렵에 소멸했으나,
신포니아는 3개의 각 부분의 규모가 점차 커져서,
독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교향곡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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