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 5장 1절-5절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를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 잠시 흐르는 음악 *****
샛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다시 한 주의 시작점에 섰습니다. 이제 삼월도 이번 주로 4월에 자리를 넘겨 줄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봄은 제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목련가지에서는 봉오리가 부풀대로 부풀어 올라 이제 장명등처럼 환한 그 꽃을 보여줄 기세입니다. 이 팽팽하게 물올라 있는 사물들을 눈 감고 느껴봅니다. 대기의 바람은 지난 1, 2월의 그것에 비해 정신을 상큼하게 하고 땅거죽은 밀가루 반죽처럼 발효하여 풀싹들이 쉽게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듯 대기로 올라올 수 있게 유연해졌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유연함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에 반해 죽은 것들은 무기물적 딱딱함으로 자신을 닫아겁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확실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예측 가능한 일도 많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서 접하는 불확실성이야말로 현대인이 갖는 불안감의 뿌리가 아닌가 합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우리 삶에도 크고 작은 기복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살다간 옛 사람들은 자신의 묘비명을 살아 있는 동안에 써 놓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답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리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하면서 삶을 성찰하는 행위였지요. 어떤 이는 살면서 대여섯 차례에 걸쳐 이와 같은 글을 쓰고 또 썼습니다. 죽음을 염두에 두는 삶이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진 행위라기보다는 삶을 위한 작업이었으며 스스로의 삶에 방향을 주고 희망을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주변을 돌아볼 때 희망의 근거가 될 일들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에서처럼 원자로와 관련된 사고에서 우리라고 예외일 수 없을 것이고 지진 역시 그렇습니다. 크고 작은 전쟁 행위들이 세계 각지에서 오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안함 너머 자리한 희망의 저울추가 더 무겁습니다. 3월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이 시점에서 희망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희망이 없다면 고통은 무의미합니다. 희망을 달리 표현하여 꿈이라고 합시다. 꿈 없는 삶이 역동적일 수 없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하루하루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순간이고 절정입니다. 어디선가 껍질을 깨고 작은 새 한 마리 태어나는 일, 작은 못에서 하늘하늘 헤엄치는 물고기, 목덜미를 스치고 달아나는 바람의 상큼함, 선운사에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지는 동백꽃 무리, 해 돋는 지리산 천왕봉의 아침 풍경 등. 여러분 잠시 눈을 감고 이 생에서 얻은 좋은 기억들을 생각해 보세요. 좋은 만남들. 좋은 풍경들. 부석사 무량수전의 풍경소리. 안동 하회마을 강변의 솔숲을 통과하는 소리. 맛있는 음식들. 백석의 시 ‘국수’나 ‘여우난곬족’에 나오는 예사로우면서도 그리운 음식 냄새. 메밀묵 한 사발, 어묵 한 꼬치, 우동 한 그릇.
감각을 일깨워 보세요. 졸린 눈을 거두고 명민하게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합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인내롭게 견디고 그 견딤 속에서 우리의 인간됨이 단련되고 희망이 자랍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희망의 뿌리는 저 깊이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분에게 가 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