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서정과 촛불의 시심
―송은애 시집 『관저동 연가』에 붙여
리헌석(문학평론가)
茶軒 송은애 시인을 2004년 4월, 대전문인협회 문학기행에서 처음 만났다. 충남 서천의 ‘한산모시관’ ‘동백정’ ‘화력발전소’ ‘춘장대해수욕장’ 등을 견학하며 서정의 샘물을 긷기 위한 행사였는데, 이영주 시인과 동행한 여류 시인이 그였다. 물끄러미 창가를 바라볼 때의 그는 우수에 젖은 눈빛이기도 하였지만,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단발머리의 소녀 같기도 하였다.
그 후, 같은 지역에서 살다 보니, 문학 행사와 친목 행사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고, 문학적 교감을 나누게 되었다. 송은애 시인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만남이 지속될수록 진솔한 멋이 우러나서, 이제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약간 남성적으로 보이지만, 섬세한 서정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천성적으로 타고난 시인이라 하겠다.
아직도 풀어낼 사연이 산더미 같은데
바다를 품고 살던 나는
과감히 바다를 놓아주었다.
10여 년을 끼고 살던
그 바다를
자의든 타의든
버릴 수밖에 없었다.
몇날 며칠을 뜬눈으로 그리워하다
구봉산 자락에 안겼다.
송은애 시인은 「아직도 못 다한 이야기」에서 서정의 대상을 바다에서 산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된다. 하나는 삶의 근거지 이동인데, 그는 강원도 동해시에서 살다가 내륙이라 할 수 있는 대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데에 근거한다. 또 하나는 서정의 중심 대상을 바다에서 산으로 바꾸었다는 내면의 변화라 하겠다. 과거의 작품이 바다와 관련된 시어와 이미지 창출(創出)이 많았던 데 비해, 새로운 시집에서는 산과 관련된 시어와 이미지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노을빛 모으는 구봉산」에서 시인은 <가을빛으로 노을을 만든다>는 멋진 시어를 빚기도 하고, 산 아래 강을 바라보며 시인은 <물 건너 손짓하는 그대>를 따라 <가슴 저리게 외롭던 사랑 하나>를 가꾼다고 「적벽강 歌」에서 고백한다. 과거 ‘바다’를 노래하던 그의 서정은 이제 현재의 중심 서정으로 다가선 ‘산’을 노래함으로써 아름다운 무지개를 빚는다.
몇 번 더 만나면서 그는 아름다운 서정을 가꾸는 시인인 동시에, 사회에서 소외된 이웃을 찾아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아름다운 천사였음을 알게 되었다. 벽지 학교에 책을 보내기도 하고, 교도소를 찾아 봉사를 하며, 지역 사회를 위해 스스로 촛불이 되고자 했다. ‘몽골’에 개원하는 한국문화원에 도서를 기증하면서 필자에게도 권하여, 필자 역시 합심하게 될 정도로 이웃과 겨레 사랑에도 남다르다.
이런 까닭에, 그는 「그리고 별」에서 <작고 가냘픈 별을 만나러 가는 길><작고 예쁜 별을 만나러 가는 길>을 노래한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는 <옆구리가 시리다 못해 춥습니다./ 그냥 주저앉아 통곡하며 울고만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라고 「좀스런 일」에서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시인은 「사랑의 승화」를 통해 <우린 행복했습니다./ 슬픔만은 아니었기에 우린 행복했습니다.>라고 노래하기에 이른다.
이렇듯이, 그의 따뜻한 손에서 어려운 이웃은 힘을 얻게 되고, 그의 다정한 마음에서 위로를 받게 된다. 그러한 힘이 되고자 그는 밤을 새워 꽃을 피운다.
이슬이 해맑은 건
그대가 있어서입니다.
아침 햇살이 따사로운 것도
그대가 있어서입니다.
저녁노을도 보고 싶지만
그것마저도 하늘은
허락하지 않으므로
모두들 잠든 밤이면
다음 날을 위한 꽃이 됩니다.
茶軒 송은애 시인은 「나팔꽃」을 통하여 아름다운 꿈을 실현하고자 한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과거의 물결에 흘려보내고, 해맑은 이슬을 머금은 채 피어 있는 아침꽃이기를 소망한다. 「관저동에서 3」에는 <오랜 방황 끝에 머문 그 자리>에 터를 잡고 정착하려는 시심이 들어 있다. 이 곳에서 그는 <뒤엉킨 사연 뒤로/ 새 싹>을 피우고자 서정의 삽날을 세운다.
그는 이제 관저동에서 <새 봄>을 맞아 <채색되어 가는 사랑>을 노래할 것이다. <뿌리 내리지 못한 허망한 꿈>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런 기대와 소망으로 그의 시를 다시 읽는다.
첫댓글 대우가 본 다헌시인님도 그러했습니다 ㅎ
역시 회장님은 예리하십니다 ^^*
지금은 흑석리 평촌에 뿌리 내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