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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사모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선경나라
시천면(矢川面).
화살 矢, 내 川.,화살처럼 빠른 개울.
경상남도 산청군 남부에 있는 면이다.
면소재지는 사리.
산간곡저를 제외한 전지역이 1,000m 내외 산지
면의 북부와 서부에는 천왕봉(1,915m)을 비롯한
삼신봉(1,284m)·제석봉(1,806m)·촛대봉(1,704m)
동부와 남부로 갈수록 낮아져 500m 내외의 산지.
덕천강이 면내 산간을 곡류하여 동쪽으로 흐르며,
덕천강 하천 양안에 소규모의 충적지가 발달했다.
쌀·보리·콩과 채소류가 생산된다.
원리에 덕천서원, 중산리에 법계사.
하천따라 지리산 입구와 의령을 잇는 국도가 있다.
사(絲)·원(院)·천평(川坪) 외공(外公)·내공(內公)·
반천(反川)·중산(中山)·내대(內大)·동당(東堂)·
중태(中台)·신천(新川) 등 11개 동리가 있다.
면적 127.70㎢, 인구 4,469(2000).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천왕봉(1,915m)이 위치
중산 내대계곡 등 자연 관광자원 잠재자원 풍부
남명 후학 양성지역으로 주민들의 자긍심이 높음
11개리 30 마을 58반
127.7㎢ (본군의 16%)
임야 113.2㎢(88.7%)
농경지 8.8㎢( 6.9%)
기타 5.7㎢( 4.4%)
인구(2006. 7.31 기준 1,702호 인구 4,104명
원래 조선시대에는 진주군 살천(薩川)이라고 하여
新川面(소재지 신천)으로 되었다가 矢川面으로 개칭
1906년 3월1일 산청군으로 편입되며 시천면이 되었다.
시천면은 낙동강의 발원지 강 상류로부터 흐르는 물이
화살과 같이 빠르다하여 矢川(화살시,내천)으로 불리며
물이 빠르고 계곡이 깊고 주변경관이 산자수명하여 유래
사리(絲里)는 골이 실처럼 길고 가늘어 실골
그후 한자로 바꿔쓰면서 사리(絲里)가 되었다.
원리(院里)는 덕천서원이 있어 원동,
원촌이라 하다가 원리(阮里)가 되었다
천평리(川坪里)는 마을앞에 넓은 들이 있어 평광(坪廣)
정자나무가 있어 당산촌(堂山村)이라하다가 천평(川坪)
중태리(中台里)은 여인이 누운 형태가 中자가 되고
삼태성(정격노리등, 비룡산 좌이정. 학무산우의정)
풍수지리설 삼태성 台자가 유래되어 중태(中台)
외공리(外公里)는 공전 바깥쪽이 되므로
바깥굉이,외굉이 또는 외공(外公)이라함
내공리(內公里)는 공전 안쪽이라 내공(內公)
반천리(反川里)는 냇물이 번쩍여 '번내'= 반천(反川)
신천리(新川里)는 새내,새냇골에서 신천(新川)이 됨
동당리는 동촌(東村) 하당(下堂)을 합쳐 동당(東堂)
중산리(中山里)는 지리산 산상(山上),산하(山下) 중간
내대리(內大里)는 골안이 넓어 한찰
한차리의 안쪽이라 내대(內大)라함
중산리
................국골.....↙...............마야계곡....중봉
....................↖......................................./
선녀탕~~~~칠선계곡~~~~~~~.........천왕봉...통천골..천왕샘..법천골...*중산리
..........................↖................↙.........제석봉............................↗
백무동....하동바위...>...........↙..........장터목 산장...산희샘......↗
한신(백무동)계곡↙.........................연하봉.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지금은 지도에서 사라진 옛 지명., '덕산'
일제 때 시천면 삼장면으로 나누어진 덕산
덕산은 고려시대부터 천민의 거주지였던 곳.
남명이 정착후 주자가례 등 예법을 보급
남명 영향으로 문인들의 고장이 된 덕산.
남명은 이조 중기 영남의 대표적인 문인.
(덕천 서원, 1558년 '남명의 유두류록)
(자세한 내용은 지리산 이야기 - 열 둘)
중산리는 지리적으로 진주와 가까운 곳.
옛부터 중산리는 진주와 연계된 생활권.
대중교통도 진주를 거쳐야 중산리로 연결.
이조시대 김일손의 속두류록 기록 속 중산리.
계단식 논을 경작하는 농민들이 많이 살던 곳.
이조시대에는 지금보다 산간 마을들이 많던 곳.
쓰러진 고사목이 뒤엉켜 썩어가는 밑으로 산죽.
커다란 뱀이 많았고 법계사까지 오르기 험한 길.
예나 지금이나 천왕봉의 위용이 한눈에 보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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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리는 이름 그대로 산 중턱에 있는 마을이다.
이조 창건 당시 고려 지지 세력 은둔지가 중산리.
그 때문에 이조의 탄압을 받았던 곳이 중산리 마을.
2004. 6.18. 청학동과 중산리 잇는 순환도로 개통.
경남지역에서는 이곳까지 거리가 가까워 많이 이용.
천왕봉 아래 해발 500m의 고지와 계곡이 있는 휴양촌
이조 초 현재 삼장면과 시천면을 통틀어 덕산(덕산동)
덕천강의 물살이 화살처럼 빠르다 하여 시천으로 명명
남명 조식선생이 덕천서원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며,
이곳의 경치가 빼어나 무릉도원과 비교할 정도였다.
특산품은 덕산곶감, 지리산복조리,
작설차, 밤, 토종꿀, 둥굴레차 등.
매년 2∼3월 고로쇠 축제 행사
밤 줍기 및 복조리 만들기 체험
산채부침, 산채밥, 토종닭, 옻닭, 염소
봄 - 고로쇠 축제(2∼3월), 지리산 작설차 시음(3∼4월)
여름 - 지리산 철쭉제(6월), 지리산계곡 야영, 물놀이 체험
가을 - 지리산 평화제(9월), 밤줍기
겨울 - 설경감상, 황토찜질방, 덕산곶감 접기,복조리만들기
옛부터 지리산 여신으로 여겨왔던 천왕봉 성모상
모시면 만사형통한다 하여 여러 마을로부터 수난
한때 사라졌으나 천왕사 혜범스님에 의해 발굴돼
지금은 천왕봉 바로 아래 있는 천왕사에 모셔있다.
현재 중산리 마을 앞에는 새로 복원된 성모 마고상
지금도 소원을 기원하는 치성객 발길이 줄을 잇는다.
중산리 마을에서 한시간 거리에는 신선 너덜지대
그 아래로 경남 자연 학습원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
순두류계곡 옆으로 난 숲길은 호젓하고 아름다운 곳.
이곳 중산리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
성모마고(천왕 할매)의 8 딸이 8도 무당의 시조
<중산리 마을 찾아가는 길>
진주(대전, 통영간 고속국도) -> 단성 IC(20번국도) -> 중산리마을
청학동과 중산리 자동차 이동 시간이 1시간 30분( 80㎞ )에서 20분( 12㎞ )
중산리는 지리산 순환도로 개통에 따라 노고단 못지 않게 급속한 개발 진행.
이 일대에 대단위 집단시설지구 조성,
2-3년 이내 관광명소로 탈바꿈할 조짐.
중산리에서 지리산 중턱까지 케이블카나 모노레일 가설하자는 지역단체 제안.
개발도 중요하지만 편리함 보다는 생태계 보전 문제가 가장 우려되고 있는 현실.
☞ 교통편....... <진주- 중산리행 직행버스 : 40분 간격으로... 1시간 30분 소요.>
.................. 중산리에서 장터목 가는 길.....................
중산리 - 2 Km- 법계교 -2 Km- 칼바위-1Km-법천폭포
-2,5Km - 홈바위- 0,5Km 유암폭포- 3Km - 장터목 산장
<총 11Km, 오르막 길 : 4시간 50분, 내리막 길 3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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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밤기차를 타고 구례구 역에 내리면.., 노고단 行.
종점까지 마음 놓고 달려가 진주역에 내리면..,중산리 行.
천왕봉까지 오르는 최단거리 들머리로 각광받는.., 중산리.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중산리엔 천상병 시인의 시비 '귀천.'
천상병 시인과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그곳에 세워진 시비.
2004. 5. 12. 부인 목순옥 씨와 한국시사랑 문인협회 세움.
2005년 5월 21~22일 중산관광단지에서 열린 3회 천상병 문학제.
`귀천', `주막에서' 등의 시집과 `괜찮다 다 괜찮다' 등 산문집
문학제 행사는 학생 백일장, 문학세미나, 시 낭송회 순서로 진행.
'어떠한 사연이 있어 여기서 문학제가 열리는걸까?'
1993년 4월28일 고단한 삶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시인.
서울 인사동 카페 ‘귀천’에서 숱한 일화를 남겼던 기인.
20년간 귀천을 운영해온 부인은 인사동에 천상 기념관 설립.
고인이 생전에 이상향이라 여겼던 지리산 천왕봉.
평소 건강이 나빠 산에는 가지 못했던 천상병 시인
수락산 아래 살며 천왕봉과 백록담을 가고 싶어했다.
‘귀천’은 삶에 대한 애착과 이상향을 노래한 것이다.
하여, 생전 그의 꿈을 사후 미망인과 지인들이 세운 시비.
귀천 시비는 중산리를 찾는 이들에게 소박한 감동을 줄 듯..
타향살이, 동심초, 보리수 노래를 즐겨 부른 천상병 시인
고인은 생전에 7살 어린이처럼 순박하고 아이들을 좋아했다.
대표적인 시 '귀천'을 여기 소개하여 천상병 시인을 추모한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산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作.
법천골.
법천골은 장터목을 거치지 않고 천왕봉으로 직접 가는 등산로.
법천골을 보려면 국립공원 관리공단 매표소 지나 법계교를 건너
'지리산 산신령' 字天 허만수 추모비를 지나 칼바위로 향하면 된다.
법천골 따라 하늘 가득 바라보이는 천왕봉.
투박한 험로와 칼바위 암릉은 바윗길 구간.
법천사 주위엔, 천왕성모의 위력을 느낄 수마의 흔적들.
법천골은 수량이 적다가도 폭우가 오면 산 전체가 물골.
그곳 너덜지대에 굴러 쌓인 바위들을 보면 무서울 정도.
단 한번 폭우로도 '천왕봉 남서쪽 급경사 협곡' 통신골엔 산사태.
천왕봉 정상으로부터 통신골을 거쳐 유암폭포로 몰려드는 물줄기.
그 일대를 무너뜨려 중산리까지 폐허로 만들만큼 위력을 보여준다.
하늘을 찌를 듯 두개 바위가 칼처럼 우뚝 솟은 '칼바위'.
칼바위에는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이성계가 태조에 오른 직후 그 목숨을 노리는 자의 은신처.
그 소문을 듣고 이성계는 부하에게 그 목을 베어오라 명령.
선비를 발견하고 칼로 쳤더니 갈라져 유암폭포 아래 ‘홈바위’
그 칼이 부러지며 2km 위인 여기에 날아와 꽂혀 지금의 '칼바위'.
홈바위교 가로 질러 10분 정도 오르면 유암폭포.
매끈한 여인의 속살같은 바위를 타고 수줍게 졸졸
지리산에는 이성계와 관련된 설화 몇 가지가 전해온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이조창업 때 지리산만 불복했다는 설.
그래서 지리산은 반역산 혹은 불복산으로도 불렸다는 설.
하여 이조에서 역적을 지리산으로 귀양 보냈다는 지리산록.
반면 14세기말, 왜구가 전국을 휩쓸때 운봉의 황산전투.
이성계가 대승을 거둬 지금도 '황산대첩비'가 남아 있다.
이성계가 왕이 된다는 예언서가 나온 곳도 지리산 '칼바위'.
지리산은 곳곳마다 조상들과 역사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하다 못해 바위 하나 오솔 길 하나에도 저마다 깊은 사연.
법천골에 관련된 역사는 '고려'에서 좀 더 알아보기로 하자.
'법계교에서 법계사로 가는 길목의 칼바위 지대.'
이곳 <망바위와 칼바위> 2개의 바위가 있어 망바위길이라 한다.
칼바위는 칼끝같은 바위가 번개를 맞아 둘로 갈라졌다는... 전설.
망바위는 이조시대 김일손이 세존암이라 부른 기록이 남아 있다.
망바위는 전국 어디를 가도 전망 좋은 바위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망바위에서 <법계사 쪽과 장터목 쪽> 갈림길.'
칼바위를 지나면 등산로와 100 m 떨어진 곳에 법천폭포가 있다.
법천골은 물줄기 흐름과 관계 없이 법계사 가까이 있어 붙은 이름.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등산로와 동떨어진 법천골을 무심히 지나친다.
'한 물줄기 계곡을 두 이름으로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법계사 위치에서 천왕봉 위용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법계사를 기준으로 위 쪽은 통신골이고 아래 쪽은 법천골이다.
칼바위를 지나 등산로는 법계사와 장터목 산장쪽으로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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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 계곡길은 중산리계곡 지명이 마땅.
그런데, 엉뚱하게도 '법천계곡'이란 이름.
여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담겨져 있다.
1950 6.25 전후 불타 폐허로 변한 법계사
그곳에 초막을 치고 살고 있었던., 손보살
1960년대 지리산 산악인들의 어머니.,손보살.
법계사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이 계곡으로 간다는 생각으로
법천폭포, 법천골이라고 불렀다
그 물길은 순두류 위에서 중봉골과 합류.
지리산에는 이렇게 잘못된 지명들이 많다.
요즘 잘못된 옛 지명을 바로 잡으려는 조짐.
중산리 계곡 홈바위 위쪽은.. 홈바위골
유암폭포 위는 통신골로 다르게 부른다.
잘못된 지명 바로잡기는 바람직한 운동
유암폭포.
중산리 들머리인 법계사 길과 유암폭포 길
모두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을 향한 등산로.
천왕 일출을 기대하는 이들은 대개 유암폭포 길
장터목 산장에서 1박 일출감상후 법계사 길로 하산
로타리 산장에서 자고 올라가는 이들도 있지만
장터목에서 자고 오르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지리산 남부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지름길 통로
경남 일원 등산 동호인에게 가장 유용한 등산로.
<법천골>은 유암폭포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이루는 계곡.
<유암폭포>는 10m 높이의 기름칠 한 듯, 미끌미끌한 바위.
그 아래 너덜지대 급경사 면을 타고.. 폭포가 쏟아져 내린다.
너덜지대의 큰바위들은 천왕봉 일대가 무너져 몰려왔던 흔적.
천왕봉 일대 빗물이 모두 합쳐져 유암폭포로 몰리기 때문이다.
폭포에 기름이 떠 오르는 현상도 자주 나타나고 있어..유암 폭포.
물에 기름이 뜨는 '신비의 베일'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천신의 정기를 받은 '천왕성모'가 출산한 징후라는 토속신앙의 성역.
유암폭포는 중산리 주민들에게는.. 성역의 경계선과 같던 곳이었다.
기름 油, 평평할 坪, 유평리 지명은 유암(油巖)에서 유래.
유암폭포는 '유평리' 지명에까지 영향을 끼칠 만큼., 성역.
현대 과학의 발달로 옛 성역의 의미는 점점 퇴색해 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