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중교통을 상징하는 전철이 천안까지 연장 운행되면서 부터 천안의 경제가 유출되는 후유증이 있긴 하지만,인근의 병천은 지금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독립기념관과 유관순열사의 자취가 남아있는 병천(아우내)의 순대국밥이 식도락가들의 거침없는 입줄에 오르내리면서 유명해졌다.
그래서 서울이나 경기도에 거주하는 일단의 노인층들이 이용료가 싼 전철을 타고 천안역에 내려 그다음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병천에 도착,주변의 문화유적지를 돌아본 후 그 유명(?)한 병천의 순대를 시식하고 귀가하는데 소일거리가 마땅찮은 노인층들의 하루일정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충남 천안의 병천은 순대국밥으로 유명하다. 그렇다 저렴한 값에 걸직한 맛이 서민들에게는 포만감을,주머니 사정이 여유로운 사람들에겐 별미가 되는 것이 순대국밥이다.돼지의 굵은 내장을 깨끗이 빨아서 그 안에 선지(피)와 두부,부추,당면등을 적당이 썰거나 믹서하여 넣은 다음 삶아내는것이 순대이고,오랜시간 동안 곰삶은 육수에 돼지의 부위별 고기와 순대를 썰어넣고 밥을 말아,고춧가루에 새우젓에 파를 띄워 먹으니 그게 순대국밥이다.
그러나 알려진바와 달리 순대국밥의 원조는 조치원이다.지금은 상권이 쇠락하여 별반 호황을 누리지 못하고 있지만 옛날엔 원근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별미를 찾아 올 정도로 제법 유명했었다.지금도 행정단위로는 조치원 읍 정리에 속하는 부럭안에 몇몇 식당이 조치원의 순대국밥,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4,9,14,19,24,29일자의 장날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곤 한다.
내가 조치원순대국밥 맛을 처음 익힌때는 60년대 초반였던것 같다. 그때만 해도 순대국밥 한 그릇 먹어보는 것이 어린나이의 소원 아닌 소원였다.한 그릇 값이 얼마였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가난한 집 자식으로 그 골목길을 오고 가며 순대를 삶는 냄새로 족할 수 밖에 없었으니 어찌 먹고싶은 귀한 음식이 아니었겠는가.
조치원순대국밥의 그런 역사를 훑어 보더라도 지금의 병천순대에 원조를 빼앗긴 셈이 된다.
그러니 이 지역에 살아가는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빼앗긴 원조의 이름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나 한편으로 그 당시의 명성과 맛을 세월속에 묻어두거나 인근지역에 빼앗긴데는 그럴만 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도 속칭 순대국집 골목이라 일컫는 정리에 가면 우선 첫 인상에 청결해 보이지 않는다.옛날 건물에 뛰어나지 않은 간판, 어지럽게 널부러진 주변상가등 미락을 위한 발걸음을 옮기기가 꺼림직할 수 밖에 없다..더욱이 출입구의 풍경은 일반 도시사람들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핏물이 낭자한 잘린 돼지 머리나 내장들이 고무통에 담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그러하니 요즘처럼 까시로운 식도락가들에게 주는 인상이 좋지도 않을 뿐 더러 음식맛을 반감하게 되므로 한번 다녀 간 사람이 두번을 오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된것이다.
요즘 연기군에서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모색하기 위한 지원의 일환으로 상가지역 정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재래시장이라 함은 단지 영세상인들이 몰려있다고 해서 불려지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특화된 시장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일례로 조치원의 재래시장은 마늘전거리,고추전거리,가구전거리,옹기전거리,쌀전,그리고 순대국밥집골목으로 형성되어 오랜 전통을 이어왔음을 기억해 보아야 한다. 그런 기억의 전통을 지우지 말고 현대에 맞도록 개선하여 편리성과 위생척도를 높여 원조의 이름을 지켜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