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게 빗줄기가 내리던 날, 바쁜 농사일을 잠시 놓고 한두명씩 마을구판장으로
모여 들더니 이내 윷판이 펼쳐진다.
“모야, 윷이다”를 외치면서 팽팽한 윷놀이는 계속된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가마솥
에선 마을 아주머니들이 국수 삶기에 여념이 없고, 마을구판장 앞마당은 사람들로
가득차 한 솥 가득 삶은 국수는 바닥을 드러낸다.
욕심부리지 않고 서로 나누며 정겹게 살아가는 모습은 후포리(이장 김동묵) 주민
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이다.
후포리는 화원면소재지 서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신덕저수지를 지나 인지리 삼거리
에서 우측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가다보면 익살스럽고 정겹게 서있는 ‘후산대장군,
후산여장군’ 장승이 마을을 찾는 수고로움을 덜게해준다.
40여년전만해도 300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살았던 후포리는 현재 43가구 110여명
이 벼, 고추, 겨울배추 등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1670여년경 경주최씨가 터를 잡은 후포리엔 한집 건너 서로 아재, 삼촌 등 친척으
로 통하는 경주김씨가 가장 많이 살고있고 타성받이들도 서로 친척보다 가까운 사이
로 살고 있다.
후포(厚浦), 지금의 농경지가 아닌 바다였을 때 앞마당에서 낚시를 하고 각종 곡
물과 물건을 실은 배들이 드나들었던 포구였다.
포구가 깊고 양호하여 공물 및 각종 생활물자를 교환하는데 두텁다고 하여 후포
(厚浦)라 칭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후포리는 해남군에서 아니 우리나라에서 빠지지 않는 명당이요”라고 이야기를 꺼
내는 김영환씨(68)는 “마을앞산이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말의 형국이요, 그중에
경주김씨 도산소 자리는 ‘말안장’에 해당하는 명당으로 조상들의 감응을 받아 김
대중 대통령 재임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차관 등을 역임한 김학래씨 같은 인물
도 나왔고 예전엔 만석꾼,천석꾼 등 많은 인물들이 배출됐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후포리 사람들은 노인 공경하고 마을민들끼리 단합력도 뛰어나 정말
로 재미나게 살고 있다.
경로효친 시범마을로 지정된 후포리는 노인회, 청년회, 부녀회가 각각 마을의 발
전과 단합을 도모하고 노인들과 마을민들을 위해 마련한 잔치는 그들만의 잔치를 넘
어 이제 매년 8월1일 고향을 떠나있는 향우들을 불러들여 풍성하고 아름다운 잔치
를 만들어 가고 있다.
후포리 주민들은 말한다. “농로포장이 안된 곳이 많고, 마을주변이 모두 산이다
보니 비만오면 온 마을로 쏟아지는 물 때문에 걱정과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수
로정비가 중단되어 늘 노심초사”한다.
산골마을이다 보니 면소재지와 외지를 가기위해 산길을 넘던 이야기, 동네 처녀총
각들의 은밀하고 가슴설레게 했던 연애담, 마을에 위치해 있던 후산초등학교 이야
기, 포구였을 당시 묻혀진 일들, 바다와 산골마을, 많은 이야기가 있음직 하지만 이
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없어 아쉬움이 남지만 이제 그들만의 이야기, 전통을 만들
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자료출처 : 해남신문]
첫댓글 제고향을 이렇게 접하니? 참으로 감사드린다고 해야하나요?.....제가 학교다닐대는 후산리 였죠?그런데.....후포로 바뀌었나요?전 참고로 후산리를지나 온덕리에서 살았네요...
상록수님! 후산리는 법정리명으로 후포, 온덕, 송촌, 가마, 질마를 모두 포함한 명칭이고, 온덕리는 행정리명입니다. 동네사람 만나서 반갑습니다. ^ ^
음~ 온덕리가 전에 앤댁이라고 불린것같아요~ 아주 오래전에 ... 전 장수리에서 살았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