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이후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가증스럽다. 정말 밉다.
노무현 대통령이 파렴치범 수준(뭐라구? 생계형 범죄? 그게 측근이라는 조병갑 손녀딸이 한 말이라니)으로 떨어져 검찰 조사를 받는 동안 누가 그를 도왔는가?
민주당?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 매일같이 조문다니며 상주 노릇하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를 보면 아, 정치란 저런 것이구나 하고 다시 한번 진저리치게 된다. 모든 언론이 나서서, 심지어 진보언론들마저 노무현을 비아냥거리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을 때 민주당의 누가 나서서 옹호해주고, 막아주려 했는가?
지금 일정을 다 비우고 매일같이 빈소로 출근하는 민주당 지도부가 그 정성으로 검찰 권력에 맞서주었더라면 과연 노무현 전대통령이 외로움에 치를 떨다 투신자살하는 일이 일어났을까? 내 기억에 노무현을 구하기 위해 애쓴 사람은 박지원 의원 밖에 없었던 것같다.
* 조사하면 다 나온다. 지난 몇달치 신문 모아놓고 민주당의 반응을 스크랩하면 살 떨릴 사람 많을 것이다. 송아무개처럼 노무현하고 선을 그어야 한다고 외친 이나 대선 때 노무현의 노 자도 꺼내지 않은 정아무개, 등등 아주 많다. 이 자료 들이대면 입닫아야 할 민주당 의원들이 적지 않다.
민주당은 서거 직후 재빨리 지구당에 빈소를 마련하면서 지구당 위원장들이 일제히 상주로 나서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사전선거운동일 뿐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검은 제복을 입고 애도하는 시늉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리본까지 달고 돌아다니며 저렇게 부지런을 떠는 것도 역시 꼴사납다. 작년 총선에서 박근혜 얼굴도 보지 못한 이들이 친박연대 후보로 나서던 게 생각난다. 그냥 정치일 뿐이다. 저들은 하품하는 것도 정치, 방귀뀌는 것도 정치다.
그래서 내가 노무현 전대통령을 투신자살하도록 만든 범인을 알려주겠다.
검찰일 거라고?
천만에, 검찰은 아니다. 검찰은 원래 그런 일하라고 만들어 놓은 기관이다. 혐의가 있으면 조사하는 게 그들의 일이다. 조사해야 할 사람을 안해서 문제지 하는 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입맛에 따라 조사를 면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검찰 잘못은 아니다. 검찰은 조직이라서 장관이 조사하지 말라면 못한다. 그러니 대통령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 강정구 조사하지 말라고 천정배 장관이 지시한 것이나,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 조사를 할 때 김영삼 대통령이 조사하지 말라고 해서 안하고, 2002년 대선 뒤에는 이회창 씨의 차떼기 사건이 있었지만 역시 불법선거자금이 일부 노출된 노무현 정권에 의해 유야무야된 것들이 그런 것이다. 이렇게 덮어두고 모른 척하는 게 문제지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 다음 혐의를 둘만한 게 바로 언론이고, 이게 정답이다. 언론은 통제가 안된다. 대통령도 안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5년간 애를 써도 결국 통제하지 못한 곳이 언론이다. 언론은 자그마한 실마리만 잡히면 침소봉대한다. 마음껏 써제낀다. 요샌 맞춤법까지 무시하면서 써댄다. 검찰의 혐의는 변호사의 변호를 거치고, 판사의 판결을 거쳐 확정되는데 비해 언론은 거의 멋대로 수준이다. 거름장치가 전혀 없다.
노무현 전대통령과 그 일가족, 측근들이 조사를 받는 동안 언론은 수많은 의혹 기사를 토해내며 열심히 광고를 팔아먹었다. 파렴치범, 생계형범죄, 벼라별 인신비방기사가 난무했다. 정치인들은 언젠가 이런 언론이 자기 자신에게 칼을 겨눌지도 모른다는 걸 늘 잊는다. 국민장 뉴스 다루면서도 광고를 끼워 파는 걸 다 알잖는가. 판결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어떤 피의자도 무죄로 간주된다는 이 원칙을 왜 좋은 대학 나오고, 법 잘 아는 언론이 매번 어기는가.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언론이 불법을 저지르고, 검찰이 이를 방조한 것이다.
* 피의사실 공표죄(被疑事實公表罪)는 검찰·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사람이나 감독.보조하는 사람이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공판청구) 전에 공표하는 죄이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형법 126조).
노무현 전대통령을 투신 자살할 수밖에 없는 심리적 자포자기 상태로 빠뜨린 직접적인 주체는 언론이다.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한강에 투신한 것도 언론을 통해 걸러지지 않은 채 방영된 노무현 전대통령의 악담 때문이었다. 옛말에도 중구난방(衆口難防)이란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이 떠드는 말, 혹은 여러 사람의 말인 것처럼 꾸며대는 말은 막아낼 길이 없다는 뜻이니, 언론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개인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자살까지 비화되지 않을 수 있지만 방송을 탄 순간 견딜 재간이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은 임기 중에 한 가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으니 그의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즉 검찰 조사 중인 내용은 언론이 접근할 수 없도록 해야 했다. 거대 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을 갖고 있을 때 이런 걸 제도적으로 고쳤어야 했지만, 그는 하지 않았다. 언론에 한이 많다면서도 정작 자신의 집권기에는 필요를 느끼지 못했거나, 잠시 착각했던 듯하다.
언론 문제는 비단 노무현 사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대개의 피의자들은 범죄가 확정되기도 전에 언론의 심판, 비방, 학살을 당한다. 피의자 얼굴을 멋대로 내보내며, 마음대로 범지를 추정하며, 마치 재판정에 선 검사처럼 마음껏 떠든다. 그래놓고 나중에 정작 무죄가 돼도 그때는 독자들의 관심이 흐려졌다는 이유로 아무런 보도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피의자들은 대개 판사에 의해 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가 죄값을 치루는 게 아니라, 조사 단계에서 신문과 텔레비전에 의해 죄값을 가불로 치른다. 언론에 대항해서는 변호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하다 못해 검찰에서는 변호사의 보호라도 청할 수 있는데, 언론은 청할 변호사가 없다. 그냥 기자의 눈에 띄거나 노출되면 그냥 얼굴이 나가고, 주워들은 얘기가 검증 과정없이 그대로 보도된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이런 병폐를 잘 알면서도 제도적으로 고치지 못했다. 검찰에서는 사건 관련하여 브리핑해서도 안되고, 기자들이 상주해서도 안된다. 어떤 피의자든 범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비밀리에 조사받을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기자들이 가야 할 곳은 검찰청이나 경찰청이 아니라 재판정이다. 그래야 억울한 사람이 줄어든다.
이번 사건 같은 경우 노무현 전대통령은 주범이 될 수 없는 여러 가지 정황이 있었지만 언론은 이런 가능성 따위는 애당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무조건 찢어발기고 상처에 마구 소금을 뿌려대기만 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연일 조문 방송을 해대고, 빈소를 찾아다니며 가십을 찾아 헤매는 걸 보면 저이들도 사람인가 싶다. 싫다. 정말 싫다. 저 끔찍한 위선이.
첫댓글 선생님 글에 적극 동조합니다. 매스컴이 국민들의 정서까지도 좌지우지하는 걸 보면 섬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