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드디어 그 날이 왔습니다. 아침에 부엌으로 가 수고꼭지를 돌리는데 조용합니다. 일 년에 몇 번씩 찾아오는 날. 가뭄이 아주 심할 때 찾아오는 날. 바로 벽에서 물이 안 나오는 날이지요. 벽에 달린 수고꼭지에서 물이 안 나오는 거죠. 마을 50여 가구가 쓰는 마을 상수도가 더운 여름에 계속되는 가뭄으로 바닥이 드러났나 봅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랄 때 우물에서 물 길어서 생활하고 냇가에 빨래하러 가던 것은 매일 하는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수고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편리하게 쓰는데 익숙한 요즘엔 물이 안 나오면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당장 직장 가고 학교 가는 가족들이 씻기가 어렵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기본적인 집안일도 몇 배나 수고롭습니다. 다행히 마을에서 녹색농촌 체험마을 사업을 시작하면서 따로 지하수를 파서 지은 화장실과 샤워장이 있어 식수는 길어 나를 수 있어 다행입니다. 씻고 빨래하는 그 곳까지 가서 하구요.
물이 안 나오면 종종 잊고 사는 물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깨닫고, 보통 땐 무심코 흘러 보낸 한 방울의 물도 아껴 쓰게 되는 계기가 되니 수고롭지만 좋은 공부를 하는 시간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번 여름에 계속되는 폭염과 함께 물이 안 나오는 날이 일주일 이상 계속 되면서 속이 타들어 가는 고민을 했습니다. 폭염과 가뭄.
그 원인이 바로 우리 사람들이 스스로 불러 온 것이라 생각되니까요. 공업화와 산업화 그리고 과도한 육식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와 물소비의 결과로 여름의 폭염과 물 부족이 찾아온 건 당연하겠지요.
당장 생활용수도 부족하니 텃밭의 채소에 물을 주는 건 꿈도 꾸지 못하니 호박과 오이는 거의 말라 가지만 아직까지 그래도 매일 조금의 깻잎과 상추, 토마토, 가지, 풋고추 등을 따 먹을 수 있으니 감사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그리고 현미채식을 하니 기본적인 식생활에서 물과 에너지를 덜 쓰게 되니 이 또한 고마운 일이지요.
더운 여름에 집 밖으로 물 길러 나르고 불편하지만 잘 살아준 가족들을 위해서 팥빙수를 만들어 주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빙수기로 얼음을 돌리며 마냥 행복합니다. 빙수기로 얼음을 갈고 그 위에 삶은 팥(팥을 푹 삶은 뒤 조청과 죽염을 넣고 조림), 미숫가루, 빙수떡(친환경 매장에서 나온 것으로 백년초, 녹차, 단호박, 감자전분등으로 색을 냄), 건포도(아이들이 하도 원해서 우리 땅에서 난 건 아니지만 조금 샀습니다)를 얹고 산야초 효소와 집에서 만든 오곡두유를 부었습니다. 잠시나마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함.
도시에서 살 거나 시골에서 살 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름나기가 만만치 않았을텐데 더위를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단순한 여름 더위가 아닌 폭염의 원인을 생각 해 보고 나름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첫댓글 실천과 나눔의 선생님의 생활기록속에 이제는 겸손함도 함께 느껴져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