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아난존자를 데리고 길을 가셨습니다. 그때 어느 고총(古塚)앞을 지나시다 고총을 향해서 합장배례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난(阿難)존자가,
"세존이시여! 그것은 무주고혼(無主孤魂)의 고총이온데 어째서 절을 하십니까"
이렇게 부처님께 여쭈니 부처님 말씀이,
"과거 숙세(宿世)의 어느 생(生)엔가 몇 백세 전에 내 부모님의 무덤 이니라" 하셨단 말입니다.
우리는 보통 무슨 사람 뼈가 있고 어떠한 묘(墓)가 있으면,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비록 금생(今生)에 또는, 전생(前生)에 또는, 바로 그 전생에 자기 부모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 몇 생 전, 몇 백 생 전에는 우리 부모 또는, 형제간 관계의 무덤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경(佛經)에 보면, 우리가 과거 숙세의 누겁(累劫) 동안에 오랜 동안 살아오면서 우리가 죽고 살고 한 뼈를 모으면, 가장 높고 방대한 산인 수미산(須彌山)보다도 뼈무더기가 더 많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같이, 우리는 무수(無數)한 동안 죽고 살고 생사(生死)를 거듭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한 생사를 거듭한 곳이 어느 곳인가 하면, 바로 삼계(三界)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역시 삼계내에서 살고 있고 또, 과거 무수생(無數生)동안 삼계를 지내왔고, 미래의 무수생 동안 또 삼계내에서 헤매야 하는 것 입니다.
경(經)에 보면 '삼계여객사(三界如客舍)하니 일심시본거(一心是本據)라' 삼계는 마치 객사(客舍)와 같은 것, 여관집이나 같으니, 이 한 마음 이것이 본 고향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하나의 객사에 불과 합니다. 잠시간 왔다 가는 곳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것을 우리가 짚기 위해서 지금 삼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더러, 사람들은 "인간은 만물의 영장(靈長)이다" "불교는 인본주의(人本主義)니까 사람이 제일 높다" 이렇게 말씀합니다마는 실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람은 삼계라 하는, 죽었다 살았다 윤회하는 가운데, 저 밑 아래에 존재합니다. 삼계에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가 있는데 우리는 삼계 가운데서 제일 밑인 욕계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삼계를 넘어서 성불(成佛)로 가려면은 아득한 길입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자기 위치를 확실히 알지 못하면, 자기 위치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나'란 지금 대체로 어떤 곳에 있는 것인가? 나의 업장은 어떠한 것이 무거운 것인가? 우리는 지금 아무리 큰소리 친다 해도 역시 욕계 가운데서 식욕(食慾), 또는 잠욕(睡眠慾), 성욕(性慾), 기타 그런 욕심으로 우리는 칭칭 감겨있는 것입니다.
욕계도 또한 지거천(地居天), 공거천(空居天)이 있습니다.
조금 번쇄(煩쇄)합니다마는, 우리가 사는 곳이니까, 우리가 필경 거쳐야 할 그런 처소(處所)니까 알아두고서 그때그때 짐작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지거천(地居天)이란, 우선 땅 기운을, 불교말로 하면 지진(地塵)을 미처 못 떠난 곳입니다. 가사, 하나의 별이라 하더라도 토성(土星)이나 북두칠성(北斗七星), 그런 별들은 우리 지구와 마찬가지로 땅 기운을 미처 못 떠난 곳입니다.
그리고 공거천(空居天)이란, 땅 기운을 떠난 보다 더 순수한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같은 별도 수성(水星)이나 금성(金星)이나 그런 별이 되겠지요.
아무튼, 이런 너무 복잡한 문제는 더 이상은 말씀을 않기로하고, 이러한 지거천 가운데서 즉, 땅 기운을 미처 못 떠난 하늘 가운데에, 또 사왕천(四王天)이나, 도리천(도利天), 또는 수야마천(須夜摩天)의 하늘이 있습니다.
또 이러한 사왕천 가운데 저 밑에 가서 네 군데 처소가 있는데, 동지국천(東持國天), 남증장천(南增長天), 서광목천(西廣目天), 북다문천(北多聞天)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남증장천 밑에 가서 남섬부주(南贍浮州)라, 여기에 우리 인간이 있습니다. 가장 밑인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가운데서 너무나 잘난 척해서는 아만심(我慢心)이 되겠지요. 우리는 그런 가운데에 겨우 남증장천 밑에 가서 우리 인간이 지금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부처님 어머님께서, 부처님 어머니이니까 역시 업장(業障)도 가벼웠겠지마는, 또 내나야 부처님 덕으로 해서 겨우 도리천(도利天)에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때는 도리천에서 천녀(天女)를 데리고 내려와서 부처님의열반을 슬퍼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처님께서는 부모도 모르고 세속적인 것을 다 무시했다고 말을 합니다만, 부처님은 굉장히 효성(孝誠)을 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부처님께서 몸소 자기 동생들을 거느리고 아버지의 관을 앞에서 들고 운반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어머니께서 미처 업장이 무거우니까 어머니의 업장을 녹이기 위해서 도리천에 올라 가셔서 삼개월 동안 천중(天衆)인 하늘 사람들을 교화하면서 어머니를 위해서 설법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에 어머니께서 천녀들을 거느리고 오시니까 관에 누워계신 부처님께서 벌떡 일어나셨던 것입니다. 삼계대도사(三界大導師)이신 부처님께서 어미님이 오시니까 관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맞이했던 것입니다. 역시 모자(母子)의 정은 지극한지라 어머니께서 슬픔을 금할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고 계시니까 부처님께서 "어머님이시여, 한번 남이 있는 것은 반드시 다시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는 무상(無常)을 생각하시고 슬픔을 거두세요." 이렇게 위로하니까, 어머니께서는 그때서야 비로소 눈물을 거두시고 방긋이 미소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를 제도하셨습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효성이 극진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 불가(佛家)에서는 자식도 무시하고 부모도 무시하고 가정도 무시한 것이 아닙니다.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효성도 하고 또는 자식을 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은 그런 욕심도, 내나 욕심의 뭉치가 이런 욕계 아닙니까마는, 이렇게 올라갈수록 차근차근 줄어갑니다. 물욕(物慾)이나 남녀 이성간 욕심이나 차근차근 줄어갑니다. 그래서 색계(色界)에 올라 가려면, 욕심이 끊어져 버려야 색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욕심이 안끊어지면 색계에는 못 올라갑니다.
그리고, 욕계내에서는 중생같은 이런 몸은 못 벗어납니다. 조금 더 무겁고 가볍고,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이런 몸뚱이는 못 벗어납니다.
색계(色界)에 올라가서야 비로소 이런 몸뚱이를 벗어나 광명(光明)으로 몸을 삼습니다. 색계에 올라가면 그때는 광명이 몸이 됩니다. 말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더라도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마음이 통해서 서로 말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색계(無色界)에 올라가면 몸은 전혀없이 다만 마음만 존재합니다. 마음만 깊은 선정(禪定)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선정(禪定)의 깊이와 낮음 따라서 이와 같이, 높고 낮은 천상(天上)의 구분이 약간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사는 천지, 지구나 천체는, 나중에 천지우주가 무너지는 괴겁(壞劫) 때가 오면 욕계는 다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욕계는 무너지고 다만 광명으로 된 색계, 무색계만 남으나, 색계도 역시 초선천, 2선천, 3선천, 이런 것은 어느 정도다 침륜(沈倫)되고 다만, 사선천(四禪天) 이상만 영원히 존재합니다. 우주가 텅 비어서 공겁(空劫)이 된다 하더라도 4선천 이상은 그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있다가, 나중에 공겁이 지나가서 다시 우주가 구성될 때에는 천상에서 내려와서 이것 되고 저것 되고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법문에는 그런 것이 다 세밀히 나와 있습니다.
태초에 인간이 이런 하늘 가운데 광음천(光音天)에서 지구(地球)로 맨 처음에 올 때는 그냥 비행자재(飛行自在)라, 몸이 광명의 몸이니까 마음대로 비행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구에 내려와서 지구의 거치러운 것을 맛봄에 따라서 그것에 걸려서 차근차근 몸이 더러워지고 무거워지니까 다시 하늘에 올라갈 수가 없어서 울고불고 하지만 그때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과정들이 부처님 경전에는 소상(昭詳)히 말씀되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남섬부주(南贍浮州)라 하는 데에 업장(業障) 많은 중생이 되어있는 관계상, 우리가 안다는 것은 남섬부주의 업장을 둘러 쓴 것 밖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가사, 우리가 업장이 좀 가벼워서,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색계에 태어났다고 하면은, 그때는 천지우주를 훤히 다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천안통(天眼通)을 하니까 말입니다.
우리가 보다 더 닦아서 무색계의 공무변처(空無邊處)에 태어났다고 하면, 그때는 천지우주를 모두가 다 텅 비게 보는 것입니다. 천지우주를 다 공(空)으로 본다는 말입니다.
더 올라가서, 우리가 더 닦아서 다행히 식무변처(識無邊處)에 있다고 하면, 천지우주를 전부 다 식(識)의, 마음의 존재로만 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보는 견해는 그때그때 우리가 어느만치나 가서 있는가, 어느만치 올라가 있는가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데서, 우리는 자기가 아는 것, 우리 인간이 아는 것에 대해서, '이것이 허망(虛妄)하다' '이것이 망령 된다' 하고 느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삼계에 있는 '나' 다 하는 것은 망아(妄我), 망령된 나에 불과합니다. 참다운, 진짜 '참 자성(自性)' '부처의 나' 가 못 되는 것입니다.
삼계를 초월(超越)한 뒤에 참다운 실상(實相)을 증명(證明) 해야만이 '참다운 나' 인 것입니다. 그래야만 모든 것을 바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까 제가 허두(虛頭)에 말씀마따나, 삼계여객사(三界如客舍)라, 비록 높고 낮은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삼계, 이것은 결국은 객사와 마찬가지고 다만, 자성(自性), 불심(佛心), 그것만이 시본거(是本據)라, 영원히 변치않는 자기의 집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삼계를 비약적으로 초월해서 본집인 부처한테 가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삼계를 초월하는 가장 지름길이 참선(參禪) 아닙니까.
여기에 따르는 여러 가지 복잡한 설명이 많이 있습니다만, 전문적인 시간이 아니니까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공부하는 분들은 나중에 더 세밀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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