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몇 급수가 나올까?”지난달 31일 전북 정읍 능교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섬진강 지류인 매듭천에서 수질 검사를 하고 있다/김영근기자 | |
은어도 살고 장구벌레도 사는 550리 물길 섬진강. 이 일대 17개 초·중·고등학생들이 매주 수질을 측정해 오염지도를 작성하며 섬진강을 3년째 지켜오고 있다. 전근이 잦은 산골학교에서 담당교사는 바뀌고, 도시로 떠난 학생도 있지만 남은 이들은 여전히 수첩에 또박또박 ‘오늘 섬진강 2급수’를 적어 넣는다. 섬진강도 BOD(생물학적 산소 요구량)가 2002년(전북 임실 기준) 1.3?에서 올해 1.1?으로 깨끗해지고 있다.
◆매주 한 번 오염 지도 그려
지난달 27일 전북 정읍 산내면 옥정호 부근. 능교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 10명이 따가운 햇살을 등지고 앉아 작은 실험용기에 섬진강 지류 매듭천의 물을 담는다. “물에 측정 시약 20방울 넣고 10분 기다리는 거 알지?” “네!” 정재영(45) 교사의 말에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한다. 10분 후 서은미(13) 어린이가 용기에 담긴 물을 보며 외쳤다. “투명한 보라색으로 변했어요!” 시약반응결과 나온 보랏빛은 COD수치가 3.0? 이하임을 나타낸다. 2급수(목욕·수영이 가능한, 냄새가 나지 않는 물)라는 뜻이다. “에이, 지난번 비 왔을 땐 1급수(1?이하) 나왔었는데….” 은미가 아쉬워한다.
시약 측정이 끝나면 아이들은 결과를 꾹꾹 눌러 적은 수첩을 들고 스쿨버스로 10여 분을 달려 학교 교무실로 향한다. 홈페이지 ‘섬진넷(sumjin.net)’에 접속해 결과를 입력하자 능교리 지도에 2급수를 뜻하는 초록색이 새겨졌다. 매주 한 번 수질을 측정해 만드는 오염지도다.
여기서 150여㎞ 떨어진 경남 하동 악양면 악양초등학교. 이 학교 5~6학년 학생 11명도 오염지도에 그림일기를 쓴다. “오늘은 3급수, 지난주도 3급수…, 엄마에게 축사를 청소하자고 말해야겠다.” 김은지(12) 어린이의 일기장 내용이다.
전남 순천 주암면 주암종합고등학교 3학년 유세열(17)군은 전교생 중 유일하게 3년째 활동 중이다. “강 모래톱 냄새, 반짝이는 물빛… 이런 것 때문에 하는 거죠.” 매주 COD농도·부영양화 정도를 측정하면서 유군의 꿈도 변해갔다. “나중에 꼭 친환경공법 연구를 해보고 싶어요.”
◆선생님도 ‘지킴이’
전북 장수군 번암초등학교 김재홍(56) 교사는 섬진강을 공부하는 모임을 동료들과 만들었다. “섬진강의 섬(蟾)자가 두꺼비를 뜻한대요. 두꺼비가 왜구를 물리쳤다는 전설 때문이죠.”
능교초등학교 변원섭(47) 교사는 틈이 나면 경남 하동에 가서 은어가 파닥이는 낚시터의 사진을 찍는다. 모기의 애벌레인 장구벌레를 잡아 유리병에 넣어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2급수 생물이에요.”
같은 학교 정재영 교사는 아이들이 요즘 과학수업을 유난히 열심히 듣는다고 했다. “애들 눈이 초롱초롱해요. 직접 보고 듣는 교육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새삼스레 느낍니다.”
활동의 걸림돌은 교사들의 잦은 전근과 측정도구 부족. 화개초등학교 지킴이 담당이었던 정현태(53) 교사는 “전근오면서 지킴이 활동을 이어주지 못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악양초등학생들은 측정키트가 든 노란멜빵가방을 메고 매주 수질검사를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약품이 모자라 답답하다”고 김태성(37) 교사는 말했다.
◆함께하는 마을 주민들
전남 광양 진월면 농협 이기태(50)씨는 ‘섬진강 살리기 환경운동’ 회장이다. 마을 농부 10여명과 함께 지난 4월 섬진강 주변 하천 쓰레기를 허리가 아프도록 주웠다. “진월 월길분교 아그들이 강이 탁해져서 지도를 그린다던디요. 한번 봤는디 부끄러워 말이지….”
능교초등학교 학부모 5명도 수질검사에 참여한다. 학부모 박정순(39)씨는 “이젠 설거지를 꼭 쌀뜨물로 해요. 생활폐수도 흙에 삭혀 거름으로 쓰고요”라고 했다.
경남 하동 화개면 매운탕집을 운영하는 김월선(46)씨는 음식점 주인 10명과 함께 ‘섬진강 정화모임’을 결성했다. “음식 맛이 좋으려면 강물도 맑아야 한다고 애들이 그러대….” 화개초등학교 이희종(54) 교장은 “아이들 덕분에 녹차 재배하는 농민들도 강 살리기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