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역시 원도심의 마을살리기 현장 두 군데를 탐방했다. 오전에 먼저 찾아간 곳은 중구 영주2동 부산디지털고 바로 인근 마을회관, 이곳을 근거로 활동가 김한근씨는 산리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옛날 영주2동이 산리마을로 불리었다고 해서 조합의 명칭을 그렇게 정했다. 협동조합의 사무국장을 맡은 김한근씨는 부산경남의 향토사 연구와 자료 수집에 심혈을 기울여 온 분인데 그 귀결로 이런 지역살리기운동을 하고 있노라 말한다. 그는 여기서 협동조합 산하의 마을기업도 운영할 계획인데 천일염 판매, 된장-고추장 제조판매, 농산물직거래장터, 실내조경 등이 그가 주민들과 함께 준비하고 있는 사업 아이템들이었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 3층짜리 마을회관은 꽤 넓은 면적에 들어서 있는데 부지 매입을 포함하여 8억원 이상이 들었다. 이곳이 유달리 큰 이유는 김한근국장의 주도로 영주동 일대 3개 지구를 통합하여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르네상스 사업은 총 10개 지구). 그저께 가봤던 동구 산복도로의 사업 시설들이 규모가 너무 작아 실효성이 의문스러웠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당장 초량동의 마을센터는 개관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주민들이 운영을 포기하다시피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 시설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주민 주도로 정해지지 않은 채 지어진 시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총공사비가 3억이 들었다지만 공간 자체가 워낙 협소하여 용도가 극히 제한되는 문제도 있어 보였다. 아울러 행정의 경직성 또한 시설의 원활한 운영을 방해하는 요소인 듯하다. 이 센터는 동 경계에 있는데도 같은 골목을 사용하는 다른 동 주민들은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마을’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영주동 사례처럼 사업지구를 통합 운영하도록 장애물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오후에는 동구 범일5동의 매축지마을을 찾았다. 부산귀향이후 몇 번 와보긴 했지만 동네를 구석구석 다녀보긴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는 그간 가본 다른 동네들과 달리 부두에 인접한 매립지에 세워진 부산의 대표적 서민촌이다. 이곳 마을사랑방 ‘마실’에서 일하는 활동가 이재안씨의 설명과 안내로 마을을 돌아보고 동네의 유일한 병원인 혜명의원의 황수범원장님을 예방하기도 하고, 비공인 경로당에 가서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눠보기도 하였다. ‘마실’은 관청의 주도로 진행되는 르네상스사업과는 성격이 달라서 안하원목사님이 운영하는 동구쪽방상담소가 공동복지모금회의 공모사업 지원을 받아 시작한 마을센터이다. 동네사랑방인 카페와 마을도서관 기능을 겸하고 있었다.
사실 이곳의 주거환경은 산동네들보다 더 열악한 실정이다. 몇 개 아주 좁은 골목들은 아예 하수도가 없이 골목길 옆으로 홈을 파 하수를 흘려보내는 상황이었다. 물론 집안에 화장실이 없어서 공동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었다. 이런 실정인지라 경로당의 할머니들 대다수는 한시라도 빨리 재개발이 이뤄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동안 민간회사들이 사업을 추진하다가 주택불경기 탓에 진행을 시키지 않고 있는 중인데 동네 곳곳에 공가, 폐가가 많아 이 가난한 마을이 더욱 황폐화되고 있다. 이런 지역일수록 시범적인 공영재개발이라도 추진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그런 마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