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잘린 목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그림이 많이 있는데 바로 바로크 시대의 한 부분을 장식했던 카라바조의 그림이 유독 기억이 남습니다.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perola barroca)’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에서 나온 단어로, 사실 귀품 있고 절제된 르네상스의 고전주의 미술을 으뜸으로 치는 분위기에서 나온 다소 경멸조의 용어였다고 합니다.
이 시대에 카라바조(Caravaggio, 1571?~ 1610)는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 즉 ‘강렬한 명암’은 그림 속 사물들의 입체감을 도드라지게 하는 효과도 있지만, 화면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연출하여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기도 합니다.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서른 일곱의 나이에 객사한 그의 그림은 강렬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그림을 보며 세례자 요한의 잘린 목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의 마지막 예언에서는 하느님이 인간들의 세상에 오시는 크고 두려운 마지막 날이 이르기전에 보내겠다고 하신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마지막 예언자의 목숨이,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춤 한번 잘 추고 얻은 허무한 결말이라니요!
하느님께서는 이렇게까지 위대한 종의 목숨을 이토록 하찮게 끝내야 하셨을까요?
세례자 요한은 많은 이들이 존경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그의 세례 운동에 동의하셨고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상을 살며 가장 엄격하게 지킬 것과 참을 것을 구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목이 잘렸습니다.
여성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가장 큰 사람이라고 칭찬받았지만,
그 역시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그가 목이 잘림으로써 예수님은 공생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십니다.
성서의 역사 발전의 일종의 법칙입니다.
요한의 잘린 목 역시 하느님의 구원의 사역 가운데 큰 발걸음입니다.
요한의 잘린 목은 바로 나의 이성과 생각입니다.
내 생각과 나의 공명심이 잘려 나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비통해하고 그로 인해 상처 받았을지라도
하느님의 계획은 멈출 수 없습니다.
나의 이기적인 생각과 숨은 욕심이 잘려 나갈 때
비로소 하느님이 내 안에 활동하십니다.
그래서 요한의 잘린 목은 나의 허상을 버리고 혹은 죽이고
진심으로 하느님께 의지하는 사람이 되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고난을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잘린 목을 통해 내 안에 가득한 허상을 버리고
온전히 주님께 의탁해 보라는 말씀으로 듣고
그림과 함께 깊은 묵상의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 <세례자 요한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