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제3절 불교 교리의 전개
7. 선
4) 한국선(韓國禪)의 전개
한국선의 정신은 원효의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衆生)’이라는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 선(禪)이 본격적으로 전래되기는 신라 말 시작하여 고려 초에 이르기까지
구산(九山)으로 대표되는 선문(禪門)이 개창되는 때의 일이다.
구산선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 처음으로 법랑(法朗)이 중국 선종 4조 도신의 법을 전해왔고,
그의 제자 신행(信行)이 또한 신수 보적 계통의 북종선을 전수받아 와서
준범(遵範)에게 전하고, 혜은(惠隱)을 거쳐 뒷날 지선(智詵)에 의해
문경 봉암사에서 희양산문(曦陽山門)이 건립된다.
그리고
② 도의(道義)는 마조계통의 홍주종 서당 지장에게 남종선법을 전수받아
귀국하여 설악산 진전사에 은거하였으며,
그 문하의 염거(廉居), 보조선사 체징(體澄)에 의해
장흥 보림사에서 가지산문(迦智山門)이 건립되고 있다.
③ 홍척(洪陟) 또한 서당 지장의 심인(心印)을 전해 받고 귀국하여
남원 실상사에서 실상상문(實相山門)을 개창하였으니
연대적으로 구산선문 가운데 가장 빠르다.
④ 혜철(慧哲) 역시 서당 지장으로부터 선법을 전수받아
곡성 태안사에서 동리산문(桐裡山門)을 건립하였으며 문하에 도선국사가 있다.
⑤ 현욱(玄昱)은 마조의 다른 제자 장경회휘의 법을 이었으며,
그의 제자 심희(審希)에 의해 창원 봉림사에서 봉림산문(鳳林山門)이 건립된다.
⑥ 무염(無染)은 마조 문하의 마곡 보철의 법을 이어서
보령 성주사에서 성주산문(聖住山門)을 개창하였으며,
⑦ 범일(梵日)은 마조 문하의 염관 제안의 법을 받아
강릉 굴산사에서 사굴산문(淞堀山門)을 건립하였다.
⑧ 도윤(道允)은 마조의 제자 남전 보원에 사사하고 귀국하여
화순 쌍봉사에서 선법을 폈으며,
그의 제자 절중(折中)에 의해 영월 법흥사에서 사자산문(獅子山門)이 건립되었다.
⑨ 이엄(利嚴)은 조동종의 운거 도응에게 심인을 받아
해주 광조사에서 수미산문(須彌山門)을 개창했다.
이로써 구산선문이 모두 건립되는데
실제로는 구산선문 이 외에도 혜소(惠昭), 순지(順之) 등이
산문을 건립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구산선문이 표방하는 선의 종지는 ‘무위임운(無爲任運)’, ‘무념무수(無念無修)’로서
남종선의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라고 하는 돈오견성의 무념법문을 토대로 하고 있다.
나말여초에 형성된 구산선문을 중심으로 한 선불교가
고려 중기에 이르러 보조 지눌에 의해 다시 중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보조는 길상사(현, 송광사)를 수선사(修禪社)로 고치고
정혜결사(定慧結社)의 근본도량으로 하여 참선을 위주로 한 결사불교를 전개하였다.
정혜결사의 이념은 “명리를 버리고 산림에 은거하여, 정혜쌍수(定慧雙修)에 힘쓰고
예불전경(禮佛轉經)으로 노동운력하며, 인연 따라 어느 곳에서나 성품 단련에 힘을 쓰며,
진인달사(眞人達士)들이 세상을 통쾌하게 살다간 고행(高行)의 길을 본받자”
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혜결사의 수행은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경절문(徑截門) 등이며,
성적등지문에서 정혜쌍수(定慧雙修), 돈오점수(頓悟漸修),
원돈신해문에서 화엄과 선의 일치인 선교회통(禪敎會通),
경절문은 화두 참구에 의한 간화선의 수행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보조는 『간화결의론』을 저술하여 한국불교 최초로 간화선을 선양하고 있다.
보조가 결성한 수선사에는 이후 혜심(慧諶), 몽여(夢如), 혼원(混元) 등
16국사를 차례로 배출하게 되는데 이로써 송광사는 승보사찰이 된다.
고려 말에 선을 중흥하고 있는 선사로는
태고 보우(太古普愚), 나옹 혜근(懶翁慧勤), 백운 경한(白雲景閑)을 들 수 있는데,
세 사람 모두 원나라에 유학하여 임제정맥을 이어 간화선풍을 진작시키고 있다.
태고는 가지산문에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고,
다시 원나라로 건너가서 석옥 청공(石屋淸珙)에게 참문하여 인가를 받았다.
태고는 임제의 정종(正宗)을 해동에 전해 간화선을 불러일으켜 송의 대혜 종풍을 계승했다.
그의 선풍은 ‘인간 본연에 돌아가 불조의 본지(本旨)에 의거하여
시방세계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서원력을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고와 함께 석옥의 법을 이어받은 사람이 경한인데,
그는 무심무위(無心無爲)의 선지를 강조하고 있다.
나옹은 공덕산 요연에게 출가하여 양주 회암사에서 개오하고,
원나라로 들어가 연경의 법원사에서 인도 승 지공(指空)에게 참배하고,
임제의 정맥을 계승한 평산 처림(平山處林)에게 입실하여 불자(拂子)와 법의를 받았다.
나옹의 선사상은
“선수행자가 돈독한 신심을 가지고 여일하게 화두만을 참구한다면
승속과 노소, 또는 초참후학에 관계없이
본지풍광(本地風光)을 체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선시대의 불교를 한마디로 특징 지워 말하면 산중불교(山中佛敎)라 할 수가 있다.
조선의 숭유배불 정책으로 말미암아 종파가 강제로 통폐합되어 11종이 7종이 되고,
7종이 다시 교종과 선종의 양종으로 재편되었다.
결국 산중에 은거한 선종만이 남게 되었으니
오늘의 조계종이 바로 이 통불교(通佛敎)적 선종에 해당된다.
이런 폐불의 시기에 서산대사 청허휴정(淸虛休靜)이 출세하여 한 때 선을 부흥시켰다.
『선가귀감』에서 휴정의 선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데,
먼저 그는 선교관에 대하여
“말 있음으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을 교(敎)라 하고,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이 선(禪)”이라고 규정하고,
“누구나 말에서 잃어버리면 염화미소가 모두 교적(敎迹)이 되고,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다 교외별전의 선지(禪旨)가 된다”라고 하여
선교일치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화두 참구에 의한 공부(간화선)를 강조하고 있는데,
참구 방법에 대해 “대저 학자는 모름지기 활구(活句)만을 참구할 것이며,
사구(死句)는 참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화두에는 어구(語句)와 의의(意義)의 두 가지 문이 있다.
어구를 참구한다는 것은 경절문의 활구이니, 마음의 길도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모색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의의를 참구한다는 것은 원돈문의 사구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참선에는 반드시 삼요(三要)를 갖추어야 하는데,
삼요란 첫째, 대신근(大信根)이 있어야 하며
둘째, 대분지(大憤志)가 있어야 하며
셋째, 대의정(大疑情)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삼요가 갖추어지면 화두를 결택하여야 하는데
화두에는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 왜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하는가?)’,
‘시심마(是甚匿 : 이뭣고?)’,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 뜰 앞에 잣나무)’,
‘마삼근(痲三斤 : 삼 서근)’, ‘건시궐(乾屎猛 : 마른 똥막대기)’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 본래 모습)’ 등
1700가지 공안이 있다.
그는 참선하는 사람의 정신에 대해
“한 생각 일어나고 멸하는 것을 생사라 하는데,
이 생사의 사이에 있으면서 모름지기 힘을 다해 화두를 들어야 한다.
화두에 간단(間斷 : 사이가 끊어짐)이 있으면 곧 생사라 하고 번뇌라 한다.
화두가 불매(不昧)하면 곧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이며, 스스로의 집이 된다.
사대(四大)로 된 이 추한 몸이 찰나 찰나에 쇠하고 썩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사은(四恩)의 깊고 두터움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호흡 사이에 있음을 알고 있는가?
일어나고 앉기가 편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고 있는가?
이것이 참선하는 사람의 일과로 삼아야 할 일이므로 또한 점검하고 점검해야 한다”
라고 하여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대승정신으로 선지를 삼고 있다.
그는 또한 출세 자유인의 깨달음의 경지를
“신령스러운 빛이 어둡지 않아서 만고에 길이 빛난다[神光不昧 萬古徽猷]”
라고 설하고 있다.
조선 말기에 활약한 경허(鏡虛)는 쇠미해진 선풍을 다시 진작시키고 있으며,
그의 문하에 만공, 해월, 수월, 한암 등의 걸출한 선승이 배출되어
근대선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용성(龍城)은 대각운동과 생활선을 주창하며 독립운동과 교화에 진력하고 있다.
그의 제자로는 동산, 인곡, 동헌, 고암, 자운 등이 있으며,
성철 또한 그 문손이다.
만공, 용성은 근대 한국선(韓國禪)을 중흥시킨 양대 산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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