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1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잔여 임기는 2년인가, 아니면 7년인가? 유엔사무총장의 임기는 5년. 취임 3년차를 마감하는 올 12월 31일자로 계산하면 2년이 맞다.
그러나 역대 유엔사무총장 7명 중에서 1명을 빼고는 전원이 연임에 성공했기 때문에 "반 총장의 실질적인 잔여 임기는 7년"이라는 얘기가 종종 들려온다. 제6대 사무총장이었던 이집트 출신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는 미국과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해서 연임에 실패했다.
한국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반 총장은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지인들로부터 '취임 2년 반'을 축하받는 자리에서 "반 총장의 잔여 임기 7년 반을 위하여!"라는 덕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화법으로 연임을 희망하는 속내를 내비친 바 있다.
반 총장의 연임은 본인만의 '희망사항'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도 그가 연임에 성공해서 큰 업적을 남기는 사무총장으로 기록되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권 순환의 흐름으로 보아도 그의 연임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미 국무부 차관 "러드 총리는 세계적인 플레이어"
그러나 지난 3월 9일, 케빈 러드 호주 총리의 동정을 주로 보도하는 웹사이트에 '호주 총리가 차기 유엔사무총장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부터 '호주 변수'가 등장했다.
그 후에도 호주 웹사이트 차원의 논쟁은 계속 이어졌다. 5월 중순에는 "그는 호주 같은 작은 연못에 계속 머물기를 원치 않는 큰 물고기"라는 보다 구체적인 글이 등장했다.
그뿐이 아니다. 미 국무부 커트 캠벨 차관이 "케빈 러드는 세계적인 플레이어"라고 자리매김해주면서 "그가 국제무대에서 펼치는 중요한 역할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높이 평가하자 호주 언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맞장구쳤다.
"러드 총리는 국제무대에서의 좋은 평가를 맘껏 즐기면서 다음에 맡을 배역을 고르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고 아내와 자녀를 가져서 교황이 될 수 없다. 또한 (미국이 법을 고치는 중이라고 하지만) 미국 출생이 아니라서 미국 대통령도 될 수 없다. 그의 유일한 출구는 뉴욕 이스트 강변에 위치한 유엔본부인 것으로 보인다."
거기까지는 일부 논객들이 쓰는 가십성 칼럼의 소재 정도에 머물렀다. 그러나 호주 유일의 전국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안>에서 본격적인 기사로 다루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그레그 쉐리단 외신부장이 '케빈 러드의 유엔사무총장 야망'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쉐리단 외신부장은 "나는 반기문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힌 다음 "그러나 그의 한국식 업무습관과 친 미국적인 성향, 그리고 코피 아난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유엔의 도덕성 회복에 실패한 것 등은 실망스럽다"고 비판하면서 "러드 총리의 포스트 반기문" 가능성을 공론화시켰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고위 공직자 세 명이 제공한 소스에 근거한 칼럼"이라고 밝혔다. 또한 "호주 총리실(한국의 청와대와 비슷함)에 보낸 3차례의 확인 이메일에 대해서 그 누구로부터도 부인하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no denial)"고 공개했다.
그레그 쉐리단 외신부장은 호주 언론의 대표적인 외교전문 기자로 높은 공신력을 평가받는 베테랑이다. 그는 한국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하여 호주 언론에 크게 보도한 바 있다. 특히 2006년 8월 유엔사무총장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호주를 방문한 반기문 당시 외무장관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칼럼을 발표하는 부담 때문이었는지 쉐리단 외신부장은 "그동안 러드 총리의 야망이 수면 아래에 잠겨있어서 그렇지, 그의 유엔사무총장 마스터플랜은 이미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사실들을 열거했다.
"정부의 지원 없이는 유엔사무총장 꿈도 못 꾼다"
"노동당 정부는 찬스를 최대화시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다음과 같은 노동당 정부의 외교정책 관련 예산안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2013-14년 임기의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서 책정한 1100만 호주 달러(약 110억 원)와 1억6500만 호주 달러(약 1650억 원)로 증액된 아프리카 원조기금이 그것이다. 호주 연방총독이 그 일과 관련하여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것도 '오비이락'이 됐다.
그뿐이 아니다. 1년 유엔회원국 회비 7000만 호주달러(약 700억 원)와 평화유지비용 부담액 1억5000만 호주 달러(약 1500억 원)도 러드 총리의 프로필을 최대한 보강하고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돈이 유엔사무총장 진출의 야망을 돕는다는 게 공공연하게 알려진 상황에서, 유엔사무총장의 꿈을 꾸었던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부총리가 정부의 도움(돈)을 받지 못해서 중도에 포기한 것도 뒷말을 남겼다.
비록 한국에서는 부정하고 있지만, 일부 한국인들로부터 반기문 사무총장이 선출되는 과정에서 많은 돈을 썼다는 진술이 나온 바 있다."
이 말을 행간의 읽어내다 보면 '반기문 총장은 노무현 정부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물론 아전인수에 가까운 호주의 일방적인 주장들이지만, 만약 차기 유엔사무총장 자리를 놓고 반기문 총장과 케빈 러드 총리가 맞붙을 경우 러드 총리가 유리하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그들이 예상하는 가능성들을 모아보면 대략 이렇다.
만약에 반기문 총장이 연임을 원치 않을 경우, 러드 총리는 집권 2기 도중에 별다른 부담 없이 유엔사무총장에 도전할 것이다. 집권 이후 70%대에 육박하는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그가 차기 연방총선에서 승리한다는 걸 전제로 말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 유엔사무총장의 지역적 순환이 아시아에 해당된다는 것도 러드 총리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호주가 유럽 문명의 배경을 갖고 있지만 지리적으로 아시아권에 속하고, 오세아니아권의 순환 배려가 그동안 없었던 것도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또한 "아시아 다음 순환이 유럽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러드 총리가 아시아-유럽을 동시에 아우르는 사무총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연임에 실패한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총장 후임으로 뽑힌 코피 아난 전 총장이 연임에 성공하면서 아프리카 출신들이 15년 동안 재임한 것처럼 아시아-오세아니아에서 15년 동안 재임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더욱이 유엔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에서도 러드 총리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도 나온다. 우선 러드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로를 '소울 메이트(soul mate)'로 부를 정도로 각별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학자 같은 반기문, 외교관 같은 캐빈 러드
기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캐빈 러드 총리를 직접 취재하고 인터뷰하면서 두 사람의 풍모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좀 무리하게 압축해보면, 반 총장한테서는 매사를 진지하게 다루는 학자의 모습을 발견했고, 러드 총리한테서는 화려하면서도 신중한 외교관 스타일이 몸에 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2006년 7월 25일, 차기 유엔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1차 예비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반 장관은 그 여세를 몰기 위해서 페루, 아르헨티나, 뉴질랜드를 거쳐 호주를 공식방문 했다. 겉으로 드러내놓은 행보는 아니었지만, 기자의 눈에는 방문외교에 곁들여서 유엔사무총장 진출을 위한 지지약속도 받으려는 '양수겸장'의 일정으로 보였다.
그런 그가 그해 8월 15일, 호주 방문 기간 동안에 유엔사무총장 선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존 하워드 당시 호주 총리 등 호주 정계인사들이 보인 반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진출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하고 무척 고무됐던 것.
바로 그날 저녁에, 기자는 시드니에서 반기문 장관을 인터뷰했다. 주로 한-호 FTA에 관한 인터뷰였지만, 유엔사무총장 당선 가능성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는 "호주에선 반 장관의 당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라는 기자의 발언에 환하게 웃으면서 다음과 같은 답변을 덧붙였다.
"유엔사무총장 선출은 나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역량과 위상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한국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반기문 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에 힘입어 한국인 최초의 유엔사무총장이 됐다. 뿐만 아니라 일부 미국언론의 비판보도에도 불구하고 그가 연임에 성공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도는 가운데 예상치 못했던 '러드 총리 변수'와 맞닥트리게 됐다.
호주 언론이나 야당에서 지적한대로, 현직 총리라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케빈 러드와,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궁금한 반기문 총장의 위치가 비교되는 시점이다.
또한 지금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열리고 있는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반 총장의 연임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는 조심스런 분석이 나오는 중이다. 만약 반 총장이 기대치 이상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거나, 그동안 코펜하겐 플랜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진 러드 총리에게 밀리면 반 총장의 연임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
한편, 지난 9월에 열린 UN총회 연설을 통해서 "코펜하겐 기후회의를 통해서 더 이상의 탁상공론이 아닌 실질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를 도출해야한다"고 역설한 바 있는 러드 총리는 요즘 실망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호주 상원에서 '탄소배출권거래(ETS)' 수정법안이 부결됐기 때문이다. 일부 EU국가를 제외하면 자국 의회에서 '탄소배출권 거래' 법안을 통과시킨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호주가 솔선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정작 빈손으로 코펜하겐으로 가게 된 것.
코펜하겐 회의는 기회일까, 위기일까?
이와 관련하여 토니 애보트 제1야당 당수가 abc-TV와 인터뷰를 통해서 색다른 주장을 펼쳐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ETS가 120빌리언 호주 달러(약 120조 원)의 세금이 부과되는 재앙에 가까운 법안인데 노동당이 너무 서두른다"고 비판하면서 "러드 총리의 UN사무총장 야망과 무관치 않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서 "러드 총리가 코펜하겐 회의를 이용해서 국제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긴 다음, UN사무총장에 출마하려는 욕심을 갖고 있다. 호주 수상이 국제무대에서 멋지게 보이는 건 좋지만, 국민들이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크다"고 공박했다. 러드 총리는 이 문제로 의회에서 제1야당 부당수와 설전을 벌인 바 있다. 그는 어제(14일) 호주를 출발해서 오늘 덴마크에 도착했다.
비록 반 총장과 러드 총리가 차기 유엔사무총장을 놓고 맞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두 리더는 그동안 지구 기후변화 문제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문제 등에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같은 외교관 출신이어서 개인적인 친분도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차기 유엔사무총장 선출이 2년 가까이 남았고, 아직은 국제적으로 공론화된 뉴스가 아니어서 호주 국민을 제외하고는 '반기문-케빈 러드의 코펜하겐 결투'를 상상조차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 국제 외교가의 파문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수 년 동안 기후변화에 대한 전 지구적 대응책 마련을 위해서 공을 들여온 반기문 사무총장과 '미들 파워 국가'의 리더로 부상한 러드 총리가 물밑 대결을 벌이는 코펜하겐 회의는 두 사람에게 기회일까? 아니면 위기일까?
2007년 1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잔여 임기는 2년인가, 아니면 7년인가? 유엔사무총장의 임기는 5년. 취임 3년차를 마감하는 올 12월 31일자로 계산하면 2년이 맞다.
그러나 역대 유엔사무총장 7명 중에서 한 명을 빼고는 전원이 연임에 성공했기 때문에 "반 총장의 실질적인 잔여 임기는 7년"이라는 얘기가 종종 들려온다. 제6대 사무총장이었던 이집트 출신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는 미국과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해서 연임에 실패했다.
한국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반 총장은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지인들로부터 '취임 2년 반'을 축하받는 자리에서 "반 총장의 잔여 임기 7년 반을 위하여!"라는 덕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화법으로 연임을 희망하는 속내를 내비친 바 있다.
반 총장의 연임은 본인만의 '희망사항'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도 그가 연임에 성공해서 큰 업적을 남기는 사무총장으로 기록되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권 순환의 흐름으로 보아도 그의 연임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미 국무부 차관 "케빈 러드는 세계적인 플레이어다(Kevin Rudd is a global player)"
그러나 지난 3월 9일, 케빈 러드 호주 총리의 동정을 주로 보도하는 웹사이트에 "호주 총리가 차기 유엔사무총장이 될 수 있을까?(Could the Prime Minister of Australia be the next Secretary-General of the United Nations?)"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부터 '호주 변수'가 등장했다.
그 후에도 호주 웹사이트 차원의 논쟁은 계속 이어졌다. 5월 중순에는 "그는 호주 같은 작은 연못에 계속 머물기를 원치 않는 큰 물고기(He doesn’t really want to remain a big fish in a small pond)"라는 보다 구체적인 글이 등장했다.
그뿐이 아니다. 미 국무부 커트 캠벨 차관이 "케빈 러드는 세계적인 플레이어(Kevin Rudd is a global player)"라고 자리메김해주면서 "그가 국제무대에서 펼치는 중요한 역할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높이 평가하자 호주 언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맞장구쳤다.
"러드 총리는 국제무대에서의 좋은 평가를 맘껏 즐기면서 다음에 맡을 배역을 고르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고 아내와 자녀를 가져서 교황이 될 수 없다. 또한 (미국이 법을 고치는 중이라고 하지만) 미국 출생이 아니라서 미국 대통령도 될 수 없다. 그의 유일한 출구는 뉴욕 이스트 강변에 위치한 유엔본부가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 연임 가도에 예상치 못했던 '호주 변수' 등장
거기까지는 일부 논객들이 쓰는 가십성 칼럼의 소재 정도에 머물렀다. 그러나 호주 유일의 전국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안>에서 본격적인 기사로 다루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그레그 쉐리단 외신부장이 "캐빈 러드의 유엔사무총장 야망(Kevin Rudd’s ambition to be Secretary-General of the UN)"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쉐리단 외신부장은 "나는 반기문의 열렬한 팬(I'm a big fan of Ban's)"이라고 밝힌 다음 "그러나 그의 한국식 업무습관(his Korean work habits)과 친 미국적인 성향, 그리고 코피 아난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유엔의 도덕성 회복에 실패한 것 등은 실망스럽다"고 비판하면서 "러드 총리의 포스트 반기문" 가능성을 공론화시켰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고위 공직자 세 명이 제공한 소스에 근거한 칼럼"이라고 밝혔다. 또한 "호주 총리실(한국의 청와대와 비슷함)에 보낸 3차례의 확인 이메일에 대해서 그 누구로부터도 부인하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no denial)"고 공개했다.
그레그 쉐리단 외신부장은 호주 언론의 대표적인 외교전문 기자로 높은 공신력을 평가받는 베테랑이다. 그는 한국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하여 호주 언론에 크게 보도한 바 있다. 특히 2006년 8월 유엔사무총장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호주를 방문한 반기문 당시 외무장관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모든 외교관들의 마지막 꿈은 유엔사무총장"
케빈 러드 총리는 호주 최초의 외교관 출신 총리다. 중국 주재 호주대사관 근무를 포함한 그의 오랜 외교관 경력 중에서 대만국립대학 유학과 만다린어 구사 능력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을 정도다. 그는 유학생 시절에 '루커원(陸克文)'이라는 중국식 이름을 스스로 짓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러드 총리는 외교관으로 잔뼈가 굵은 정치인답게 외교적 수완이 아주 능란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그는 능통한(?) 만다린어를 활용해서 야당 당수 시절부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기도 했다.
중국어를 구사하는 최초의 서양인 출신 국가 지도자를 만난 후 주석이 러드 총리를 좋아한 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그가 호주 총리가 된 후부터는 후진타오 주석과의 관계를 '친분과 긴장 유지'라는 외교관 특유의 방식으로 갈무리해서 "역시 외교관 출신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쉐리단 외신부장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외교관들의 마지막 꿈은 유엔사무총장"이라고 한다. 이를 뒷받침이나 하듯 또 다른 언론인은 "러드 총리가 오랜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 짓고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For this reason he has gone into politics after a long career in the diplomatic field)"고 말했다.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칼럼을 발표하는 부담 때문이었는지 쉐리단 외신부장은 "그동안 러드 총리의 야망이 수면 아래에 잠겨있어서 그렇지, 그의 유엔사무총장 마스터플랜은 이미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사실들을 열거했다.
"정부의 지원 없이는 유엔사무총장 꿈도 못 꾼다"
"노동당 정부는 찬스를 최대화시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Labour Government can be doing everything to maximise Rudd's chance). 그래서인지 다음과 같은 노동당 정부의 외교정책 관련 예산안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2013-14년 임기의 안정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서 책정한 1100만 호주 달러(약 110억 원)와 1억6500만 호주 달러(약 1650억 원)로 증액된 아프리카 원조기금이 그것이다. 호주 연방총독이 그 일과 관련하여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것도 '오비이락'이 됐다.
그뿐이 아니다. 1년 유엔회원국 회비 7000만 호주달러(약 700억 원)와 평화유지비용 부담액 1억5000만 호주 달러(약 1500억 원)도 러드 총리의 프로필을 최대한 보강하고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돈이 유엔사무총장 진출의 야망을 돕는다는 게(money helps ambition at the UN) 공공연하게 알려진 상황에서, 유엔사무총장의 꿈을 꾸었던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부총리가 정부의 도움(돈)을 받지 못해서 중도에 포기한 것도 뒷말을 남겼다.
비록 한국에서는 부정하고 있지만, 일부 한국인들로부터 반기문 사무총장이 선출되는 과정에서 많은 돈을 썼다는 진술이 나온 바 있다(The South Koreans are alleged to have spent a lot of money getting Ban elected)." 이 말을 행간을 읽어내다 보면 '반기문 총장은 노무현 정부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러드 총리, 의사당에서 야당 부당수와 설전 벌여
한편, 위의 사안들을 놓고 연방국회의사당에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제1야당 부당수와 그림자내각(shadow cabinet)의 외무장관을 겸하는 줄리 비숍 자유당 부당수는 대정부 질문을 통해 캐빈 러드 총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노동당 정부는 왜 호주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시키기 위해서 필요 이상의 예산을 지출하는가? 수천만 달러의 예산을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표를 확보하기 위해서 지출하는 건 큰 문제다.
러드 총리의 개인적 야망을 달성시켜주기 위해서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왜 호주 국민들이 러드 총리의 유엔사무총장 구직(job application)을 위해서 세금을 내야 하나? 비상임이사국 임기가 고작 2년인데, 그 기간이 차기 유엔사무총장 선출 시기와 맞물린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나 답변에 나선 러드 총리는 "아마 비숍 부당수가 신문기사를 읽고 질문하는 것 같은데, 그 기사와 관련 칼럼 등은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사실무근의 기사들"이라고 일축했다.
러드 총리가 그렇게 얘기한다고 언론과 야당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을 리 없다. 그 후로도 논란은 계속 이어졌고, 러드 총리는 시침때기나 무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2월 1일 제1야당 당수로 선출된 토니 애보트 자유당 당수도 취임 첫날부터 '러드 총리의 유엔사무총장 야망'을 물고 늘어졌다.
러드 총리가 반 총장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물론 아전인수에 가까운 호주의 일방적인 주장들이지만, 만약 차기 유엔사무총장 자리를 놓고 반기문 총장과 케빈 러드 총리가 맞붙을 경우 러드 총리가 유리하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그들이 예상하는 가능성들을 모아보면 대략 이렇다.
만약에 반기문 총장이 연임을 원치 않을 경우, 러드 총리는 집권 2기 도중에 별다른 부담 없이 유엔사무총장에 도전할 것이다. 집권 이후 2년 넘게 70%대에 육박하는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그가 차기 연방총선에서 승리한다는 걸 전제로 말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 유엔사무총장의 지역적 순환이 아시아에 해당된다는 것도 러드 총리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호주가 유럽 문명의 배경을 갖고 있지만 지리적으로 아시아권에 속하고, 오세아니아권의 순화 배려가 그동안 없었던 것도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또한 "아시아 다음 순환이 유럽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러드 총리가 아시아-유럽을 동시에 아우르는 사무총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Rudd could be just the Asia-Europe compromise)"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연임에 실패한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총장 후임으로 뽑힌 코피 아난 전 총장이 연임에 성공하면서 아프리카 출신들이 15년 동안 재임한 것처럼 아시아-오세아니아에서 15년 동안 재임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더욱이 유엔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에서도 러드 총리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도 나온다. 우선 러드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로를 '소울 메이트(soul mate)'로 부를 정도로 각별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학자 같은 반기문, 외교관 같은 캐빈 러드
기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캐빈 러드 총리를 직접 취대하고 인터뷰하면서 두 사람의 풍모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좀 무리하게 압축해보면, 반 총장한테서는 매사를 진지하게 다루는 학자의 모습을 발견했고, 러드 총리한테서는 화려하면서도 신중한 외교관 스타일이 몸에 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06년 7월 25일, 차기 유엔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1차 예비투표(straw poll)에서 1위를 차지한 반 장관은 그 여세를 몰기 위해서 페루, 아르헨티나, 뉴질랜드를 거쳐 호주를 공식방문 했다. 겉으로 드러내놓은 행보는 아니었지만, 기자의 눈에는 방문외교에 곁들여서 유엔사무총장 진출을 위한 지지약속도 받으려는 '양수 겹장'의 일정으로 보였다.
그런 그가2006년 8월 15일, 호주 방문 기간 동안에 유엔사무총장 선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존 하워드 당시 호주 총리 등 호주 정계인사들이 보인 반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진출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하고 무척 고무됐던 것.
바로 그날 저녁에, 기자는 시드니에서 반기문 장관을 인터뷰했다. 주로 한-호 FTA에 관한 인터뷰였지만, 유엔사무총장 당선 가능성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는 "호주에선 반 장관의 당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라는 기자의 발언에 환하게 웃으면서 다음과 같은 답변을 덧붙였다.
"유엔사무총장 선출은 나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역량과 위상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한국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코펜하겐 지구환경회의는 차기 유엔사무총장 시험무대?
결과적으로 반기문 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에 힘입어 한국인 최초의 유엔사무총장이 됐다. 뿐만 아니라 일부 미국언론의 비판보도에도 불구하고 그가 연임에 성공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도는 가운데 예상치 못했던 '러드 총리 변수'와 맞닥트리게 됐다.
호주 언론이나 야당에서 지적한대로, 현직 총리라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케빈 러드와,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궁금한 반기문 총장의 위치가 비교되는 시점이다.
또한 지금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열리고 있는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반 총장의 연임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는 조심스런 분석이 나오는 중이다. 만약 반 총장이 기대치 이상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거나, 그동안 코펜하겐 플랜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진 러드 총리에게 밀리면 반 총장의 연임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
한편, 지난 9월에 열린 UN총회 연설을 통해서 "코펜하겐 기후회의를 통해서 더 이상의 탁상공론이 아닌 실질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를 도출해야한다"고 역설한 바 있는 러드 총리는 요즘 실망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호주 상원에서 '탄소배출권거래(emissions trading scheme, ETS)' 수정법안이 부결됐기 때문이다. 일부 EU국가를 제외하면 자국 의회에서 '탄소배출권 거래' 법안을 통과시킨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호주가 솔선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정작 빈손으로 코펜하겐으로 가게 된 것.
빈손으로 코펜하겐에 도착한 캐빈 러드 총리
이와 관련하여 토니 애보트 제1야당 당수가 abc-TV와 인터뷰를 통해서 색다른 주장을 펼쳐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ETS가 120빌리언 호주 달러(약 120조 원)의 세금이 부과되는 재앙에 가까운 법안인데 노동당이 너무 서두른다"고 비판하면서 "러드 총리의 UN사무총장 야망과 무관치 않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서 "러드 수상이 코펜하겐 회의를 이용해서 국제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긴 다음, UN사무총장에 출마하려는 욕심을 갖고 있다. 호주 수상이 국제무대에서 멋지게 보이는 건 좋지만, 국민들이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크다"고 공박했다.
그뿐이 아니다. 러드 총리가 코펜하겐에 도착한 16일 오전, 시드니에서 열린 '밀레니엄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토니 애보트 당수는 "그의 진짜 목적은 차기 유엔사무총장 진출을 위한 신용구축으로 보인다(His real object seems to be establishing credentials to be the next secretary-general of the United Nations)"고 연설해서 러드 총리의 유엔사무총장 도전을 기정사실화했다.
비록 반 총장과 러드 총리가 차기 유엔사무총장을 놓고 맞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두 리더는 그동안 지구 기후변화 문제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문제 등에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같은 외교관 출신이어서 개인적인 친분도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차기 유엔사무총장 선출이 2년 가까이 남았고, 아직은 국제적으로 공론화된 뉴스가 아니어서 호주 국민을 제외하고는 '반기문-케빈 러드의 코펜하겐 결투'를 상상조차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 국제 외교가의 파문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수년 동안 기후변화에 대한 전 지구적 대응책 마련을 위해서 공을 들여온 반기문 사무총장과 '미들 파워 국가'의 리더로 부상한 러드 총리가 물밑 대결을 벌이는 코펜하겐 회의는 두 사람에게 기회일까? 아니면 위기일까?
지난 2007년 1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잔여 임기는 2년인가, 아니면 7년인가? 유엔사무총장의 임기는 5년. 취임 3년차를 마감하는 올 12월 31일자로 계산하면 2년이 맞다.
그러나 역대 유엔사무총장 7명 중에서 1명을 빼고는 전원이 연임에 성공했기 때문에 "반 총장의 실질적인 잔여 임기는 7년"이라는 얘기가 종종 들려온다. 제6대 사무총장이었던 이집트 출신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는 미국과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해서 연임에 실패했다.
한국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반 총장은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지인들로부터 '취임 2년 반'을 축하받는 자리에서 "반 총장의 잔여 임기 7년 반을 위하여!"라는 덕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화법으로 연임을 희망하는 속내를 내비친 바 있다.
반 총장의 연임은 본인만의 '희망사항'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도 그가 연임에 성공해서 큰 업적을 남기는 사무총장으로 기록되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권 순환의 흐름으로 보아도 그의 연임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미 국무부 차관 "러드 총리는 세계적인 플레이어"
그러나 지난 3월 9일, 케빈 러드 호주 총리의 동정을 주로 보도하는 웹사이트에 '호주 총리가 차기 유엔사무총장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부터 '호주 변수'가 등장했다.
그 후에도 호주 웹사이트 차원의 논쟁은 계속 이어졌다. 5월 중순에는 "그는 호주 같은 작은 연못에 계속 머물기를 원치 않는 큰 물고기"라는 보다 구체적인 글이 등장했다.
그뿐이 아니다. 미 국무부 커트 캠벨 차관이 "케빈 러드는 세계적인 플레이어"라고 자리매김해주면서 "그가 국제무대에서 펼치는 중요한 역할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높이 평가하자 호주 언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맞장구쳤다.
"러드 총리는 국제무대에서의 좋은 평가를 맘껏 즐기면서 다음에 맡을 배역을 고르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고 아내와 자녀를 가져서 교황이 될 수 없다. 또한 (미국이 법을 고치는 중이라고 하지만) 미국 출생이 아니라서 미국 대통령도 될 수 없다. 그의 유일한 출구는 뉴욕 이스트 강변에 위치한 유엔본부인 것으로 보인다."
거기까지는 일부 논객들이 쓰는 가십성 칼럼의 소재 정도에 머물렀다. 그러나 호주 유일의 전국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안>에서 본격적인 기사로 다루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그레그 쉐리단 외신부장이 '케빈 러드의 유엔사무총장 야망'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쉐리단 외신부장은 "나는 반기문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힌 다음 "그러나 그의 한국식 업무습관과 친 미국적인 성향, 그리고 코피 아난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유엔의 도덕성 회복에 실패한 것 등은 실망스럽다"고 비판하면서 "러드 총리의 포스트 반기문" 가능성을 공론화시켰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고위 공직자 세 명이 제공한 소스에 근거한 칼럼"이라고 밝혔다. 또한 "호주 총리실(한국의 청와대와 비슷함)에 보낸 3차례의 확인 이메일에 대해서 그 누구로부터도 부인하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no denial)"고 공개했다.
그레그 쉐리단 외신부장은 호주 언론의 대표적인 외교전문 기자로 높은 공신력을 평가받는 베테랑이다. 그는 한국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하여 호주 언론에 크게 보도한 바 있다. 특히 2006년 8월 유엔사무총장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호주를 방문한 반기문 당시 외무장관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칼럼을 발표하는 부담 때문이었는지 쉐리단 외신부장은 "그동안 러드 총리의 야망이 수면 아래에 잠겨있어서 그렇지, 그의 유엔사무총장 마스터플랜은 이미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사실들을 열거했다.
"정부의 지원 없이는 유엔사무총장 꿈도 못 꾼다"
"노동당 정부는 찬스를 최대화시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다음과 같은 노동당 정부의 외교정책 관련 예산안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2013-14년 임기의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서 책정한 1100만 호주 달러(약 110억 원)와 1억6500만 호주 달러(약 1650억 원)로 증액된 아프리카 원조기금이 그것이다. 호주 연방총독이 그 일과 관련하여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것도 '오비이락'이 됐다.
그뿐이 아니다. 1년 유엔회원국 회비 7000만 호주달러(약 700억 원)와 평화유지비용 부담액 1억5000만 호주 달러(약 1500억 원)도 러드 총리의 프로필을 최대한 보강하고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돈이 유엔사무총장 진출의 야망을 돕는다는 게 공공연하게 알려진 상황에서, 유엔사무총장의 꿈을 꾸었던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부총리가 정부의 도움(돈)을 받지 못해서 중도에 포기한 것도 뒷말을 남겼다.
비록 한국에서는 부정하고 있지만, 일부 한국인들로부터 반기문 사무총장이 선출되는 과정에서 많은 돈을 썼다는 진술이 나온 바 있다."
이 말을 행간의 읽어내다 보면 '반기문 총장은 노무현 정부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물론 아전인수에 가까운 호주의 일방적인 주장들이지만, 만약 차기 유엔사무총장 자리를 놓고 반기문 총장과 케빈 러드 총리가 맞붙을 경우 러드 총리가 유리하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그들이 예상하는 가능성들을 모아보면 대략 이렇다.
만약에 반기문 총장이 연임을 원치 않을 경우, 러드 총리는 집권 2기 도중에 별다른 부담 없이 유엔사무총장에 도전할 것이다. 집권 이후 70%대에 육박하는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그가 차기 연방총선에서 승리한다는 걸 전제로 말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 유엔사무총장의 지역적 순환이 아시아에 해당된다는 것도 러드 총리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호주가 유럽 문명의 배경을 갖고 있지만 지리적으로 아시아권에 속하고, 오세아니아권의 순환 배려가 그동안 없었던 것도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또한 "아시아 다음 순환이 유럽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러드 총리가 아시아-유럽을 동시에 아우르는 사무총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연임에 실패한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총장 후임으로 뽑힌 코피 아난 전 총장이 연임에 성공하면서 아프리카 출신들이 15년 동안 재임한 것처럼 아시아-오세아니아에서 15년 동안 재임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더욱이 유엔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에서도 러드 총리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도 나온다. 우선 러드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로를 '소울 메이트(soul mate)'로 부를 정도로 각별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학자 같은 반기문, 외교관 같은 캐빈 러드
기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캐빈 러드 총리를 직접 취재하고 인터뷰하면서 두 사람의 풍모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좀 무리하게 압축해보면, 반 총장한테서는 매사를 진지하게 다루는 학자의 모습을 발견했고, 러드 총리한테서는 화려하면서도 신중한 외교관 스타일이 몸에 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2006년 7월 25일, 차기 유엔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1차 예비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반 장관은 그 여세를 몰기 위해서 페루, 아르헨티나, 뉴질랜드를 거쳐 호주를 공식방문 했다. 겉으로 드러내놓은 행보는 아니었지만, 기자의 눈에는 방문외교에 곁들여서 유엔사무총장 진출을 위한 지지약속도 받으려는 '양수겸장'의 일정으로 보였다.
그런 그가 그해 8월 15일, 호주 방문 기간 동안에 유엔사무총장 선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존 하워드 당시 호주 총리 등 호주 정계인사들이 보인 반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진출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하고 무척 고무됐던 것.
바로 그날 저녁에, 기자는 시드니에서 반기문 장관을 인터뷰했다. 주로 한-호 FTA에 관한 인터뷰였지만, 유엔사무총장 당선 가능성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는 "호주에선 반 장관의 당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라는 기자의 발언에 환하게 웃으면서 다음과 같은 답변을 덧붙였다.
"유엔사무총장 선출은 나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역량과 위상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한국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반기문 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에 힘입어 한국인 최초의 유엔사무총장이 됐다. 뿐만 아니라 일부 미국언론의 비판보도에도 불구하고 그가 연임에 성공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도는 가운데 예상치 못했던 '러드 총리 변수'와 맞닥트리게 됐다.
호주 언론이나 야당에서 지적한대로, 현직 총리라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케빈 러드와,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궁금한 반기문 총장의 위치가 비교되는 시점이다.
또한 지금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열리고 있는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반 총장의 연임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는 조심스런 분석이 나오는 중이다. 만약 반 총장이 기대치 이상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거나, 그동안 코펜하겐 플랜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진 러드 총리에게 밀리면 반 총장의 연임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
한편, 지난 9월에 열린 UN총회 연설을 통해서 "코펜하겐 기후회의를 통해서 더 이상의 탁상공론이 아닌 실질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를 도출해야한다"고 역설한 바 있는 러드 총리는 요즘 실망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호주 상원에서 '탄소배출권거래(ETS)' 수정법안이 부결됐기 때문이다. 일부 EU국가를 제외하면 자국 의회에서 '탄소배출권 거래' 법안을 통과시킨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호주가 솔선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정작 빈손으로 코펜하겐으로 가게 된 것.
코펜하겐 회의는 기회일까, 위기일까?
이와 관련하여 토니 애보트 제1야당 당수가 abc-TV와 인터뷰를 통해서 색다른 주장을 펼쳐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ETS가 120빌리언 호주 달러(약 120조 원)의 세금이 부과되는 재앙에 가까운 법안인데 노동당이 너무 서두른다"고 비판하면서 "러드 총리의 UN사무총장 야망과 무관치 않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서 "러드 총리가 코펜하겐 회의를 이용해서 국제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긴 다음, UN사무총장에 출마하려는 욕심을 갖고 있다. 호주 수상이 국제무대에서 멋지게 보이는 건 좋지만, 국민들이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크다"고 공박했다. 러드 총리는 이 문제로 의회에서 제1야당 부당수와 설전을 벌인 바 있다. 그는 어제(14일) 호주를 출발해서 오늘 덴마크에 도착했다.
비록 반 총장과 러드 총리가 차기 유엔사무총장을 놓고 맞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두 리더는 그동안 지구 기후변화 문제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문제 등에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같은 외교관 출신이어서 개인적인 친분도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차기 유엔사무총장 선출이 2년 가까이 남았고, 아직은 국제적으로 공론화된 뉴스가 아니어서 호주 국민을 제외하고는 '반기문-케빈 러드의 코펜하겐 결투'를 상상조차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 국제 외교가의 파문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수 년 동안 기후변화에 대한 전 지구적 대응책 마련을 위해서 공을 들여온 반기문 사무총장과 '미들 파워 국가'의 리더로 부상한 러드 총리가 물밑 대결을 벌이는 코펜하겐 회의는 두 사람에게 기회일까? 아니면 위기일까?
2007년 1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잔여 임기는 2년인가, 아니면 7년인가? 유엔사무총장의 임기는 5년. 취임 3년차를 마감하는 올 12월 31일자로 계산하면 2년이 맞다.
그러나 역대 유엔사무총장 7명 중에서 한 명을 빼고는 전원이 연임에 성공했기 때문에 "반 총장의 실질적인 잔여 임기는 7년"이라는 얘기가 종종 들려온다. 제6대 사무총장이었던 이집트 출신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는 미국과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해서 연임에 실패했다.
한국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반 총장은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지인들로부터 '취임 2년 반'을 축하받는 자리에서 "반 총장의 잔여 임기 7년 반을 위하여!"라는 덕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화법으로 연임을 희망하는 속내를 내비친 바 있다.
반 총장의 연임은 본인만의 '희망사항'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도 그가 연임에 성공해서 큰 업적을 남기는 사무총장으로 기록되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권 순환의 흐름으로 보아도 그의 연임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미 국무부 차관 "케빈 러드는 세계적인 플레이어다(Kevin Rudd is a global player)"
그러나 지난 3월 9일, 케빈 러드 호주 총리의 동정을 주로 보도하는 웹사이트에 "호주 총리가 차기 유엔사무총장이 될 수 있을까?(Could the Prime Minister of Australia be the next Secretary-General of the United Nations?)"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부터 '호주 변수'가 등장했다.
그 후에도 호주 웹사이트 차원의 논쟁은 계속 이어졌다. 5월 중순에는 "그는 호주 같은 작은 연못에 계속 머물기를 원치 않는 큰 물고기(He doesn’t really want to remain a big fish in a small pond)"라는 보다 구체적인 글이 등장했다.
그뿐이 아니다. 미 국무부 커트 캠벨 차관이 "케빈 러드는 세계적인 플레이어(Kevin Rudd is a global player)"라고 자리메김해주면서 "그가 국제무대에서 펼치는 중요한 역할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높이 평가하자 호주 언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맞장구쳤다.
"러드 총리는 국제무대에서의 좋은 평가를 맘껏 즐기면서 다음에 맡을 배역을 고르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고 아내와 자녀를 가져서 교황이 될 수 없다. 또한 (미국이 법을 고치는 중이라고 하지만) 미국 출생이 아니라서 미국 대통령도 될 수 없다. 그의 유일한 출구는 뉴욕 이스트 강변에 위치한 유엔본부가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 연임 가도에 예상치 못했던 '호주 변수' 등장
거기까지는 일부 논객들이 쓰는 가십성 칼럼의 소재 정도에 머물렀다. 그러나 호주 유일의 전국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안>에서 본격적인 기사로 다루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그레그 쉐리단 외신부장이 "캐빈 러드의 유엔사무총장 야망(Kevin Rudd’s ambition to be Secretary-General of the UN)"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쉐리단 외신부장은 "나는 반기문의 열렬한 팬(I'm a big fan of Ban's)"이라고 밝힌 다음 "그러나 그의 한국식 업무습관(his Korean work habits)과 친 미국적인 성향, 그리고 코피 아난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유엔의 도덕성 회복에 실패한 것 등은 실망스럽다"고 비판하면서 "러드 총리의 포스트 반기문" 가능성을 공론화시켰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고위 공직자 세 명이 제공한 소스에 근거한 칼럼"이라고 밝혔다. 또한 "호주 총리실(한국의 청와대와 비슷함)에 보낸 3차례의 확인 이메일에 대해서 그 누구로부터도 부인하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no denial)"고 공개했다.
그레그 쉐리단 외신부장은 호주 언론의 대표적인 외교전문 기자로 높은 공신력을 평가받는 베테랑이다. 그는 한국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하여 호주 언론에 크게 보도한 바 있다. 특히 2006년 8월 유엔사무총장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호주를 방문한 반기문 당시 외무장관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모든 외교관들의 마지막 꿈은 유엔사무총장"
케빈 러드 총리는 호주 최초의 외교관 출신 총리다. 중국 주재 호주대사관 근무를 포함한 그의 오랜 외교관 경력 중에서 대만국립대학 유학과 만다린어 구사 능력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을 정도다. 그는 유학생 시절에 '루커원(陸克文)'이라는 중국식 이름을 스스로 짓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러드 총리는 외교관으로 잔뼈가 굵은 정치인답게 외교적 수완이 아주 능란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그는 능통한(?) 만다린어를 활용해서 야당 당수 시절부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기도 했다.
중국어를 구사하는 최초의 서양인 출신 국가 지도자를 만난 후 주석이 러드 총리를 좋아한 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그가 호주 총리가 된 후부터는 후진타오 주석과의 관계를 '친분과 긴장 유지'라는 외교관 특유의 방식으로 갈무리해서 "역시 외교관 출신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쉐리단 외신부장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외교관들의 마지막 꿈은 유엔사무총장"이라고 한다. 이를 뒷받침이나 하듯 또 다른 언론인은 "러드 총리가 오랜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 짓고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For this reason he has gone into politics after a long career in the diplomatic field)"고 말했다.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칼럼을 발표하는 부담 때문이었는지 쉐리단 외신부장은 "그동안 러드 총리의 야망이 수면 아래에 잠겨있어서 그렇지, 그의 유엔사무총장 마스터플랜은 이미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사실들을 열거했다.
"정부의 지원 없이는 유엔사무총장 꿈도 못 꾼다"
"노동당 정부는 찬스를 최대화시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Labour Government can be doing everything to maximise Rudd's chance). 그래서인지 다음과 같은 노동당 정부의 외교정책 관련 예산안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2013-14년 임기의 안정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서 책정한 1100만 호주 달러(약 110억 원)와 1억6500만 호주 달러(약 1650억 원)로 증액된 아프리카 원조기금이 그것이다. 호주 연방총독이 그 일과 관련하여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것도 '오비이락'이 됐다.
그뿐이 아니다. 1년 유엔회원국 회비 7000만 호주달러(약 700억 원)와 평화유지비용 부담액 1억5000만 호주 달러(약 1500억 원)도 러드 총리의 프로필을 최대한 보강하고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돈이 유엔사무총장 진출의 야망을 돕는다는 게(money helps ambition at the UN) 공공연하게 알려진 상황에서, 유엔사무총장의 꿈을 꾸었던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부총리가 정부의 도움(돈)을 받지 못해서 중도에 포기한 것도 뒷말을 남겼다.
비록 한국에서는 부정하고 있지만, 일부 한국인들로부터 반기문 사무총장이 선출되는 과정에서 많은 돈을 썼다는 진술이 나온 바 있다(The South Koreans are alleged to have spent a lot of money getting Ban elected)." 이 말을 행간을 읽어내다 보면 '반기문 총장은 노무현 정부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러드 총리, 의사당에서 야당 부당수와 설전 벌여
한편, 위의 사안들을 놓고 연방국회의사당에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제1야당 부당수와 그림자내각(shadow cabinet)의 외무장관을 겸하는 줄리 비숍 자유당 부당수는 대정부 질문을 통해 캐빈 러드 총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노동당 정부는 왜 호주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시키기 위해서 필요 이상의 예산을 지출하는가? 수천만 달러의 예산을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표를 확보하기 위해서 지출하는 건 큰 문제다.
러드 총리의 개인적 야망을 달성시켜주기 위해서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왜 호주 국민들이 러드 총리의 유엔사무총장 구직(job application)을 위해서 세금을 내야 하나? 비상임이사국 임기가 고작 2년인데, 그 기간이 차기 유엔사무총장 선출 시기와 맞물린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나 답변에 나선 러드 총리는 "아마 비숍 부당수가 신문기사를 읽고 질문하는 것 같은데, 그 기사와 관련 칼럼 등은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사실무근의 기사들"이라고 일축했다.
러드 총리가 그렇게 얘기한다고 언론과 야당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을 리 없다. 그 후로도 논란은 계속 이어졌고, 러드 총리는 시침때기나 무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2월 1일 제1야당 당수로 선출된 토니 애보트 자유당 당수도 취임 첫날부터 '러드 총리의 유엔사무총장 야망'을 물고 늘어졌다.
러드 총리가 반 총장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물론 아전인수에 가까운 호주의 일방적인 주장들이지만, 만약 차기 유엔사무총장 자리를 놓고 반기문 총장과 케빈 러드 총리가 맞붙을 경우 러드 총리가 유리하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그들이 예상하는 가능성들을 모아보면 대략 이렇다.
만약에 반기문 총장이 연임을 원치 않을 경우, 러드 총리는 집권 2기 도중에 별다른 부담 없이 유엔사무총장에 도전할 것이다. 집권 이후 2년 넘게 70%대에 육박하는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그가 차기 연방총선에서 승리한다는 걸 전제로 말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 유엔사무총장의 지역적 순환이 아시아에 해당된다는 것도 러드 총리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호주가 유럽 문명의 배경을 갖고 있지만 지리적으로 아시아권에 속하고, 오세아니아권의 순화 배려가 그동안 없었던 것도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또한 "아시아 다음 순환이 유럽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러드 총리가 아시아-유럽을 동시에 아우르는 사무총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Rudd could be just the Asia-Europe compromise)"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연임에 실패한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총장 후임으로 뽑힌 코피 아난 전 총장이 연임에 성공하면서 아프리카 출신들이 15년 동안 재임한 것처럼 아시아-오세아니아에서 15년 동안 재임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더욱이 유엔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에서도 러드 총리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도 나온다. 우선 러드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로를 '소울 메이트(soul mate)'로 부를 정도로 각별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학자 같은 반기문, 외교관 같은 캐빈 러드
기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캐빈 러드 총리를 직접 취대하고 인터뷰하면서 두 사람의 풍모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좀 무리하게 압축해보면, 반 총장한테서는 매사를 진지하게 다루는 학자의 모습을 발견했고, 러드 총리한테서는 화려하면서도 신중한 외교관 스타일이 몸에 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06년 7월 25일, 차기 유엔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1차 예비투표(straw poll)에서 1위를 차지한 반 장관은 그 여세를 몰기 위해서 페루, 아르헨티나, 뉴질랜드를 거쳐 호주를 공식방문 했다. 겉으로 드러내놓은 행보는 아니었지만, 기자의 눈에는 방문외교에 곁들여서 유엔사무총장 진출을 위한 지지약속도 받으려는 '양수 겹장'의 일정으로 보였다.
그런 그가2006년 8월 15일, 호주 방문 기간 동안에 유엔사무총장 선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존 하워드 당시 호주 총리 등 호주 정계인사들이 보인 반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진출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하고 무척 고무됐던 것.
바로 그날 저녁에, 기자는 시드니에서 반기문 장관을 인터뷰했다. 주로 한-호 FTA에 관한 인터뷰였지만, 유엔사무총장 당선 가능성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는 "호주에선 반 장관의 당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라는 기자의 발언에 환하게 웃으면서 다음과 같은 답변을 덧붙였다.
"유엔사무총장 선출은 나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역량과 위상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한국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코펜하겐 지구환경회의는 차기 유엔사무총장 시험무대?
결과적으로 반기문 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에 힘입어 한국인 최초의 유엔사무총장이 됐다. 뿐만 아니라 일부 미국언론의 비판보도에도 불구하고 그가 연임에 성공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도는 가운데 예상치 못했던 '러드 총리 변수'와 맞닥트리게 됐다.
호주 언론이나 야당에서 지적한대로, 현직 총리라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케빈 러드와,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궁금한 반기문 총장의 위치가 비교되는 시점이다.
또한 지금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열리고 있는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반 총장의 연임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는 조심스런 분석이 나오는 중이다. 만약 반 총장이 기대치 이상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거나, 그동안 코펜하겐 플랜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진 러드 총리에게 밀리면 반 총장의 연임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
한편, 지난 9월에 열린 UN총회 연설을 통해서 "코펜하겐 기후회의를 통해서 더 이상의 탁상공론이 아닌 실질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를 도출해야한다"고 역설한 바 있는 러드 총리는 요즘 실망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호주 상원에서 '탄소배출권거래(emissions trading scheme, ETS)' 수정법안이 부결됐기 때문이다. 일부 EU국가를 제외하면 자국 의회에서 '탄소배출권 거래' 법안을 통과시킨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호주가 솔선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정작 빈손으로 코펜하겐으로 가게 된 것.
빈손으로 코펜하겐에 도착한 캐빈 러드 총리
이와 관련하여 토니 애보트 제1야당 당수가 abc-TV와 인터뷰를 통해서 색다른 주장을 펼쳐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ETS가 120빌리언 호주 달러(약 120조 원)의 세금이 부과되는 재앙에 가까운 법안인데 노동당이 너무 서두른다"고 비판하면서 "러드 총리의 UN사무총장 야망과 무관치 않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서 "러드 수상이 코펜하겐 회의를 이용해서 국제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긴 다음, UN사무총장에 출마하려는 욕심을 갖고 있다. 호주 수상이 국제무대에서 멋지게 보이는 건 좋지만, 국민들이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크다"고 공박했다.
그뿐이 아니다. 러드 총리가 코펜하겐에 도착한 16일 오전, 시드니에서 열린 '밀레니엄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토니 애보트 당수는 "그의 진짜 목적은 차기 유엔사무총장 진출을 위한 신용구축으로 보인다(His real object seems to be establishing credentials to be the next secretary-general of the United Nations)"고 연설해서 러드 총리의 유엔사무총장 도전을 기정사실화했다.
비록 반 총장과 러드 총리가 차기 유엔사무총장을 놓고 맞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두 리더는 그동안 지구 기후변화 문제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문제 등에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같은 외교관 출신이어서 개인적인 친분도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차기 유엔사무총장 선출이 2년 가까이 남았고, 아직은 국제적으로 공론화된 뉴스가 아니어서 호주 국민을 제외하고는 '반기문-케빈 러드의 코펜하겐 결투'를 상상조차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 국제 외교가의 파문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수년 동안 기후변화에 대한 전 지구적 대응책 마련을 위해서 공을 들여온 반기문 사무총장과 '미들 파워 국가'의 리더로 부상한 러드 총리가 물밑 대결을 벌이는 코펜하겐 회의는 두 사람에게 기회일까? 아니면 위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