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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도분이 어떤 스님에게 ‘삼매에 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묻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삼매’는 특정(特定) 수행을 통하여 도달하게 되는 특수(特殊)하고 고유(固有)한 정신상태입니다.
불교의 첫 단계 수행은 계정혜 수행입니다.
계정혜 수행은 ‘계행’, ‘정행’, ‘혜행’을 합친 말입니다.
계행은 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계율을 어기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정행은 삼매를 성취하는 수행을 말합니다.
혜행은 삼매를 성취한 수행자가 삼매에서 비롯되는 초월적인 능력을 이용하여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사실 그대로의 견해를 깨닫게 되는 신통 수행을 말합니다.
[[ 계정혜 수행 ]]
| 산수(算數)목건련경 [ 한글장경 : 중-2-330. 남전장경 : m.107 ]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는 사위국에 노닐으시면서 동원 녹자모당에 계시었다. 그 때에 산수(算數)범지 목건련은 오후에 천천히 거닐어 부처님께 나아가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여쭐 말씀이 있사온대, 들어 주신다면 감히 여쭙겠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목건련아, 네 마음대로 물어 스스로 의심을 가지지 말라." 산수 목건련은 곧 여쭈었다. "고오타마시여, 이 녹자모당은 1층, 10층 차례차례로 지은 뒤에야 이루어졌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이 녹자모당의 사닥다리는 처음에 1층을 오른 뒤에야 2·3·4층으로 오르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이와 같이 이 녹자모당은 층을 따라 차츰차츰 올라 가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이 코끼리를 다루는 사람도 또한 순서를 따라 차츰차츰 다룬 뒤에야 이루어지는 것이니, 곧 갈고리로 인해서입니다. 고오타마시여, 이 말을 다루는 사람도 또한 순서를 따라 차츰차츰 다룬 뒤에야 이루어지는 것이니, 곧 채찍으로 인해서입니다. 고오타마시여, 이 찰제리도 또한 순서를 따라 차츰차츰 이루어지는 것이니, 곧 화살을 잡음으로 인해서입니다. 고오타마시여, 이 모든 범지들도 또한 순서를 따라 차츰차츰 이루어지는 것이니, 곧 경서를 배움으로 인해서입니다. 고오타마시여, 우리들이 산수를 배우고, 산수로써 살아가는 것도 또한 순서를 따라 차츰차츰 이루어진 것입니다. 혹 남자나 혹은 여자의 제자가 있어도, 처음에는 2의 수를 가르친 뒤에, 22·33·10·백·천만으로 순서를 따라 차츰차츰 돌아가나이다. 고오타마시여, 이와 같이 우리들은 산수를 배우고, 산수로써 살아가는 것도 또한 순서를 따라 차츰차츰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문 고오타마시여, 그 법률 가운데에는 어떠한 순서가 있어 차츰차츰 성취하게 되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목건련아, 무릇 바른 주장이 있으면 그것은 순서를 따라 차츰차츰 성취하게 된다. 무슨 까닭인가. 목건련아, 나도 이 법률 가운데서 순서를 따라 차츰차츰 성취하였다. 목건련아, 만일 젊은 비구가 처음으로 와서 도를 배우고, 처음으로 법률에 들어오면, 여래는 먼저 가르친다. 곧 '너는 와서 목숨껏 몸을 보호하여 청정하게 하고, 목숨껏 입과 뜻을 보호하여 청정하게 하라'고. 목건련아, 만일 비구가 목숨껏 몸을 보호하여 청정하게 하고, 목숨껏 입과 뜻을 보호하여 청정하게 하면 여래는 다시 올라가 가르친다. 곧 '비구여, 너는 와서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고,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뜻다이 하라'고. 목건련아, 만일 비구가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고, 감각과 마음과 법을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관찰하게 되면, 여래는 더 올라가 가르친다. 곧 '비구여, 너는 와서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여 욕심과 서로 맞는 생각을 생각하지 말고,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하여 법 아님과 서로 맞는 생각을 생각하지 말라'고. 목건련아, 만일 비구가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다이 하여 욕심과 서로 맞는 생각을 생각하지 않고,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다이 하여, 법 아님과 서로 맞는 생각을 생각하지 않게 되면, 여래는 다시 올라가 가르친다. 곧 '비구여, 너는 와서 모든 근을 보호하여 항상 막기를 생각하고, 밝게 알기를 생각하며, 생각하는 마음을 수호하여 성취하도록 하라. 그래서 언제나 바른 지혜를 일으켜, 만일 눈이 빛깔을 보더라도 그 상을 받지 않고, 또한 빛깔을 맛보지 말라. 그것은 성내어 싸우기 때문이다. 안근(眼根)을 수호하여 마음속에 탐욕과 근심과 슬픔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나게 하지 말라. 그리고 안근을 수호하여 거기로 나아가지 말라. 이렇게 귀·코·혀·몸도 또한 그렇게 하며, 만일 뜻이 법을 알더라도 그 상을 받지 않고, 또한 법을 맛보지도 말라. 그것은 성내어 싸우기 때문이다. 의근(意根)을 수호하여, 마음속에 탐욕과 근심과 슬픔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나게 하지 말라. 그리고 의근을 수호하여 거기로 나아가지 말라'고 목건련아, 만일 비구가 모든 근을 수호하여 항상 막기를 생각하고, 밝게 알기를 생각하며, 생각하는 마음을 수호하여 성취하도록 하고, 그래서 언제나 바른 지혜를 일으켜 만일 눈이 빛깔을 보더라도 그 상을 받지 않고, 또한 성내어 싸우기 때문에 또한 그것을 맛보지도 않으며, 안근을 수호하여 마음속에 탐욕과 근심과 슬픔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나게 하지 않고, 안근을 수호하여 거기로 나아가지 않으며, 이렇게 귀·코·혀·몸도 또한 그렇게 하며, 만일 뜻이 법을 알더라도 그 상을 받지 않고, 성내어 다투기 때문에 또한 그것을 맛보지도 않으며, 의근을 수호하여 마음속에 탐욕과 근심과 슬픔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나게 하지 않고, 거기로 나아가기 때문에 의근을 수호하면, 여래는 더 올라가 가르친다. 곧 '비구여, 너는 와서 드나들기를 바로 알고, 굽히고 펴기와 구부리고 우러르기와 몸 가지는 태도와 질서를 잘 관찰하고 분별하며, 승가리와 모든 옷을 바로 입고, 바루를 바로 가지며, 다니고 서기와 앉고 눕기와 잠자고 깨기와 말하고 잠잠하기를 다 바로 알라'고. 목건련아, 만일 비구가 드나들기를 바로 알고, 굽히고 펴기와 구부리고 우러르기와 몸 가지는 태도와 질서를 잘 관찰하고 분별하며, 승가리와 모든 옷을 바로 입고, 바루를 바로 가지며, 다니고 서기와 앉고 눕기와 잠자고 깨기와 말하고 잠잠하기를 다 바로 알면, 여래는 더 올라가 가르친다. 곧 '비구여, 너는 와서 멀리 떠나 혼자 살아 일 없는 곳에 있으되, 혹은 나무 밑·빈 곳·편안하고 고요한 곳·산의 바위·돌집·한데·짚가리로 가고, 혹은 숲 속이나 무덤 사이에서 살라. 네가 이미 일 없는 곳에 있어, 혹은 나무 밑·빈 곳·편하고 고요한 곳에 가거든, <니사단>을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 몸을 바로 하고 원을 바로 하여, 생각이 다른 데로 향하지 않게 하라. 그리고 탐욕과 마음에 다툼이 없고, 남의 재물과 여러 생활 기구를 보더라도 탐욕을 일으켜 내 소유로 만들려고 하지 말라. 그래서 너는 탐욕에서 그 마음을 깨끗이 없애라. 이렇게 분노와 수면과 조회에도 또한 그렇게 하며, 의심을 끊고 미혹을 막아 모든 착한 법에 있어서 망설임이 없어, 너는 의혹에서 그 마음을 깨끗히 없애라. 너는 이 오개(五蓋)와 마음의 더러움과 슬기의 잔약함을 끊고, 욕심을 떠나고, 악하여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제4선(禪)을 성취하여 노닐게 되도록 하라'고. 목건련아, 만일 비구가 욕심을 떠나고, 악하여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제 4선(禪)을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목건련아, 여래는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많은 이익을 준 것이니, 곧 가르치고 훈계한 것이니라. 목건련아, 만일 비구로서 장로·상존이나, 구학의 범지가 있으면, 여래는 더 올라가 가르친다. 곧 '구경하여 마치면 일체의 누가 다한다.'고 하리라. 산수 목건련은 곧 다시 여쭈었다. "사문 고오타마시여, 모든 제자들은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훈제하면, 다 구경의 지혜를 얻어 반드시 열반을 얻게 되나이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시었다. "목건련아, 한결같이 얻지는 못한다. 혹은 얻는 자 있고, 혹은 얻지 못하는 이도 있느니라." |
불교의 첫 단계 수행에 삼매를 성취하는 수행인 정행이 들어있고, 삼매를 성취한 후에 하라고 하신 혜행이 들어 있듯이, 불교에서 삼매수행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환언하자면, 삼매가 빠진 불교는 성립될 수 없다.
‘삼매에 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삼매에 들기 위해서는 특정한 수행, 즉 정행을 실천해야만 한다.
[[ 삼매에 드는 수행 - 정행]]
| 마하나마 경1(A11:12)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 원림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많은 비구들이 ‘가사가 완성되면 세존께서 석 달 안거가 끝난 후에 유행을 떠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존의 가사를 만들고 있었다. 삭까족 마하나마는 많은 비구들이 ‘가사가 완성되면 세존께서 석 달 안거가 끝난 후 유행을 떠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존의 가사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다. 그때 삭까족 마하나마는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삭까족 마하나마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많은 비구들이 ‘가사가 완성되면 세존께서 석 달 [안거가] 끝난 후 유행을 떠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존의 가사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머뭅니다. 이 가운데 누구의 방식대로 저희들은 머물러야 합니까?” “장하고 장하구나, 마하나마여, 마하나마여, 그대들이 여래에게 와서 ‘그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머뭅니다. 이 가운데 누구의 방식대로 저희들은 머물러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하는 것은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마하나마여, 믿음 있는 자는 완성하고, 믿음 없는 자는 완성하지 못한다. 열심히 정진하는 자는 완성하고, 게으른 자는 완성하지 못한다. 사띠를 확립한 자는 완성하고, 사띠를 놓아버린 자는 완성하지 못한다. 삼매에 든 자는 완성하고, 삼매에 들지 못한 자는 완성하지 못한다. 반야지혜를 가진 자는 완성하고, 반야지혜가 없는 자는 완성하지 못한다. 마하나마여, 그대는 이런 다섯 가지 법에 굳게 서서 다시 여섯 가지 법을 더 닦아야 한다.” “마하나마여, 여기 그대는 다음과 같이 여래를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Anusati. 隨念].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시며, 영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佛]이시며, 세존(世尊)이시다.’라고.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여래를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얽매이지 않고, 성냄에 얽매이지 않고, 어리석음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때 그의 마음은 여래를 의지하여 올곧아진다. 마하나마여, 여래를 의지하여 올곧은 마음을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주석서를 의지하여 생긴 희열과 환희를 얻고, 성전을 의지하여 생긴 희열과 환희를 얻으며, 법과 관계된 환희를 얻는다. 환희하는 자에게 희열이 생기고, 희열을 느끼는 자는 몸이 경안하며,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자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 마하나마여,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가 탐∙진∙치로 고요하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서 고요함을 얻고, 악의에 찬 사람들 가운데서 악의 없이 머물고, 법의 흐름에 들어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각함[Anusati]을 닦는다.’고 한다.” - 하략(下略) - |
부처님께서는 삼매에 드는 수행을 설법의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정리된 이론으로 가르치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삼매를 성취하기 위한 수행에 대해 설하신 바가 그 내용에 있어서 다소 변화를 보인다. 그러나 그 변화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고, 소위 수행방편과 수행기법에 있어서 약간의 변경이나 추가가 전부이다.
저자는 이를 『불교수행』이라는 책을 통해서 자세하게 밝혔다.
그리고 삼매를 성취하는 실천 수행에 대해서도 누구나 따라 할 수 있게 잘 정리하여 『수행교본』이라는 책으로 발행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불교 수행자가 정행 수행을 통하여 삼매에 드는 과정을 네 가지의 순차적(順次的)인 경험인 사선정(四禪定)으로 설명하셨다.
환언하자면, ‘삼매에 든다는 것’은 정확하게 이 ‘네 가지의 순차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 외에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다.
[[ 네 가지 선정 – 삼매에 들기 ]]
“그는 마음의 오염원이요 반야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이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여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sampasādana)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희열이 사라졌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사띠-삼빠쟈나 하며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평온하게 사띠하며 행복에 머문다’라고 일컫는 제3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즐거움도 버렸고 괴로움도 버렸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이 사라졌기 때문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사띠의 청정함이 있는 제4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
‘삼매에 든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는 불교수행을 열반에 드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환언하자면 부처님 입적 이후 지난 2500여 년간 불교를 자칭하며 세간에 떠도는 그 어떤 수행 방법과 가르침이라도, 부처님의 이 가르침과 적확(的確)하게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런 길을 가고, 그런 가르침을 따르는 이는 억겁(億劫)을 닦아도 결코 삼매에 들 수 없다는 것이다.
[[ 유일한 길 – 불교수행 ]]
| 대념처경(大念處經) D2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꾸루의 깜맛사담마라는 꾸루들의 성읍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도(道)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의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사띠의 확립(四念處)'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身隨觀)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삼빠쟈나 사띠하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삼빠쟈나 사띠하는 자 되어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삼빠쟈나 사띠하는 자 되어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삼빠쟈나 사띠하는 자 되어 머문다." |
저자의 스승이신 금강법기사 법기 대아라한 스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삼매라는 것은 귀로 듣고 글로 배워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올바른 방법과 올바른 방향으로 직접 실천 수행하고 경험함으로써만 알 수 있고, 알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