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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삶 ! 글쓴이 : 정태경 목사 ( 대전 호산나 교회 ) |
* 목차 * 1, 나의 삶과 신앙성장 과정 2, 교회 개척 과정 3, 교회 비젼과 목회 비젼을 나누며
“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것이니 ,,,,,,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아멘 ! (고전 15:10 )
저의 삶을 가만히 돌아보면 태어나고 자라고 예수 믿고 결혼하고 사업하고 주의 종이된 것 등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살아온 삶에서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그동안의 짧지만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겨봅니다 ^^. 모두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받은바 하나님의 은혜가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다는 것을 고백하며 이글을 통해 다시 한번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분들은 이 글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작은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늘 주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며 사랑합니다. ! 늘 부족한 남편을 믿고 목회사역에 동참해준 사랑하는 아내 장성숙과 아빠, 엄마를 믿고 자기들이 누리고 싶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개척 교회 목회 현장에서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사랑하는 세아들 의진, 의영, 의성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 |
▶ 출생과 성장 과정 ◀ |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경남 고성군 하일면의 작은 마을로서 농사일을 하시던 부모님의 4남 3녀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제가 태어날 때에 저를 낳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셨습니다. ^^ 60년대 농촌의 어려운 시절에 먹고 살기는 힘들지요, 딸린 자식들은 많지요 (3남 3여) , 나이도( 38세 ) 있으시고 또한 일본에서 사업하시던 외할아버지는 우리 어머니가 시골에 살면서 너무 고생 하시는 것이 보기 싫어 이제 더 이상 아이 낳지 말라고 신신 당부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할아버지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저를 낳지 않으려고 결심하고 삼천포 병원에 수술하러 가셨다고 합니다 ^^ . 그런데 그때 담당 의사가 하는 말이 “ 지금 아주머니 몸도 않 좋으시고, 아기도 아직 어리니 며칠 후에 다시 오시라“ 고 하셨답니다.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서 몸조리 좀하고 며칠 후에 다시 갈려고 생각했는데 농촌에서 이런 저런 일하시느라 바빠서 차일 피일 미루다가 어느날 병원에 갔습니다. 그때 또 의사가 하는 말이 “ 아주머니는 지금 아기가 5개월이 넘어서 수술하면 산모도 위험하니 그냥 낳으세요 “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낳은 아들이 바로 접니다. ^^ ( 태어나지 못할 뻔 했던 이몸이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나 건강하게 잘살고 있습니다. 내가 없었다면 우리 아이들도 없고 ^^ 감사! ) 처음 제가 그 말 들을 때는 어찌나 아슬하던지 정말 큰일 날뻔 했네 하면서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나중에 예수를 믿고 난후 그 시절을 돌아보니 어찌나 감사한지,,, ^^ 그 의사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살아계시면 정말 생명의 은인인데 무엇으로 은혜를 보답해야 할지,,,, 그 의사가 수술 못하게 이리저리 막으신 하나님께 너무 너무 감사 ^^.
그리고 부모님께 죄송한 것은 도시에 와서 생활하면서는 시골 사는 부모님 보면서 왜 시골 살아가지고 고생하느냐고 ,우리까지 왜 고생시키느냐고 서운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농사일이 바빠서 병원에 못 가게끔 시골에서 살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 만약 그때 어머니가 외할아버지가 집과 과수원 사준다고 대구 올라 오라고 할때 올라가서 병원 가까운 도시에 살았더라면 정말 큰일 날뻔 했습니다. ^^ ( 그때 도시 갔으면 땅값이 올라 무지하게 졸부가 되었겠지만 부자 안되어도 좋으니 가난한 농촌에서 살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전도사 사역을 시작하면서 시골인 생초교회에 가서 살다가 이렇게 대전에 왔다가 개척하게 된 과정을 보면 이런 시골이나 도시나 어디든지 보내시면 갈수 있는 환경에 자유하게 된 것이 바로 이런 부모님 덕분이요 하나님의 은혜^^ |
자라면서는 고향의 하일 초등학교와 하일 중학교를 다녔는데 나름대로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도 많았고 어릴 때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은 것이 얼마나 내 인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도시에 살아도 나름대로 순수하고 착하고 시골틱 한 것은 그때의 정서 때문이니 늘 감사합니다. ^^ 어릴 적 소 먹이러 다니며 산과 들에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던 것이 지금 예배때 찬양할 때 마다 생각나면서 큰 힘이 되니 감사합니다 ^^ 소 먹이러 갔다가 열심히 친구들과 공차고 서리하고 놀다가 소를 잃어버려서 울며 불며 찾아다니던 기억은 잊을수 없습니다. 찾지 못할 때는 아버지 손을 잡고 등불 들고 밤에 이웃마을까지 넘어가서 소를 찾아 올때는 얼마나 기뻤는지,그런 기억들이 이제 주의 종이 되어 한 영혼 찾아 전도하러 다니면서 어릴 적 소를 잃고 찾아다니던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 같은 길 잃은 소(양)를 찾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쓰셨구나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잊을 수 없고 내가 구원 받은 것이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 아버지와 함께 밤중에 잃어버린 소 찾으러 갔다가 찾아서 돌아올 때는 눈물도 없었고 감사와 기쁨으로 찾아 돌아왔던 것처럼 오늘도 나를 예전처럼 손잡고 같이 동행해줄 육신의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영원히 변치 않으시고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잃어버린 한 영혼 찾으러 갈 때면 너무 감사합니다 ^^.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오게 될 것을 믿으면서 오늘도 복음 전하러 나아 갑니다^^. (시 126: 6)
고등학교 때는 시골에서 멀리 도시로 유학을 가서 마산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하숙집을 세 번 옮겼는데 두 집은 예수 믿는 집이었고 한집은 성당 다니는 집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분들의 고마운 마음과 수고를 잊을 수 없습니다. 감사 감사 ^^
대학교는 진주 경상대학교를 다녔습니다. 공부하는 친구들은 모두가 서울로 가는데 어린 마음에 나도 서울 가면 좋겠지만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연로하셔서 농사 짓기도 힘들어 하시고, 또 학교를 서울로 가면 한번 내려오기도 힘들겠다 싶어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셈치고 고향에 가까운 곳에 대학을 가서 자주 찾아 뵈어야 겠다고 생각해서 시골의 대학교로 지망했습니다. ( 덕분에 자주 찾아 뵙고 일은 잘 못하지만 도와드린것 생각하니 감사 ^^) 그곳을 다녔기에 대학 3학년 겨울 방학 때 극적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대학과 가까운 개척 교회에 등록해서 신앙생활 하다가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 된 자매를 만나 결혼했으니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음에 감사드립니다. ^^ |
어떤 사람들은 가끔씩 사모님이 누구냐고 궁금해 하다가 막상 우리 집사람을 만나면 나보다 사모님이 낫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우리 집 사람을 만나기 위해 결혼하기 위해 교회를 다닌 것이 아니냐고 하시는데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리지만 전혀 아닙니다. ^^ 그냥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교회에 가서 만났습니다. 그때 아내는 벌써 대학부 부회장으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었고 저는 방황하다가 처음 교회에 나온 초신자 였습니다 . 조그만 개척교회에서 형제, 자매로서 만나서 서로 열심히 공부하고 신앙 생활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은혜 받고 장래를 놓고 기도하다가 자매를 놓고 간절히 기도해서 얻은 기도의 결과요 하나님의 선물이 지금의 제 아내입니다 ^^. ( 잠 19:14 - 아내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을 믿고 기도했는데 좋은 아내를 선물로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자매를 놓고 평생처음 새벽기도를 작정하고 다녔습니다. 저는 자매를 놓고 새벽마다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저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고후 5:17)
저는 육신적인 것을 놓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영적인 힘을 주셨고 내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것이 믿으지면서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거기서 새로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내 영혼의 만족을 주시고영적인 것이 우선적으로 응답되고 나니 나중에 자매를 기도한 제목은 자연히 응답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기도할때마다 중보기도의 원리를 알기에 저의 기도보다 하나님의 뜻과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 기도가 우선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나중에 돌아보면 저의 기도는 자연히 응답되어 있었습니다. ^^
대학 4학년에 다니면서 바로 신대원에 가고자 결심했지만 신대원 입시 요강을 보니 신대원에 입학하여 목사가 되려면 세례 받은지 7년이 지나야 된다고 하기에 신앙 생활한지 갓 2년밖에 안된 저로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 하고 직장으로 내 진로를 돌렸습니다. 그때도 언젠가는 세상일 하다가 주님 부르시면 주의 일 하리라 생각했습니다. ( 하나님께 나중에 내 하고 싶은것 다해보고 난후 불러 달라고 기도했는데 진짜 그대로 되었습니다. ^^ )
대학 졸업하고 난후 직장은 동아생명보험 회사와 삼성화재등 영업하는 일과 개인 사업을 통해 사회경험을 쌓았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교회 권사님들이나 안 믿는 사람들 앞에 서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보험회사 수 많은 여사님들 등살에 끼여 살아 남았기 때문입니다. ^^ 또한 영업하면서 이런 저런 온갖 경험을 했기에 전도할 때도 별로 두렵지 않게 하신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제가 사회에서 배운 여러 가지 경험을 지금도 사용하고 계십니다. 각 영업소, 지점의 영업전략 짜느라 밤을 세워 일했던 경험을 통해 지금도 교회 비젼등 전략과 목표를 수립하고 계획하는 것은 재미있게 일합니다.^^ |
또한 전도하러 다니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전도하다 보면 방문해서 계약 체결하는 영업과 매우 흡사하기에 지금도 즐거운 마음으로 전도지를 들고 가면 재미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사람 만나는게 좋고, 세상에서 파는 물건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치 있는 복음을 전하기에 너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개인 사업을 시작하면서 손님 한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귀한 줄 알았습니다. 꾸준히 단골로 오는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친밀하게 잘 지내고 했는데 교회의 목회자가 되고 난후에 한 영혼 귀한 줄 알게 되었고, 단골처럼 교회 자주 오시는 권사님, 장로님, 집사님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 같은 부족한 사람이 뭐길래 하나님은 나같이 약한자를 불러서 이런 귀한 일을 맡기시는지 ,,,,감사 감사 !!
제가 대학 다닐때 예수님 처음 믿고 난후에 하나님께 고백한게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택하신것 너무 잘하셨습니다. 나같이 하나님을 불신하다가 예수 믿게 된 사람을 택하셧으니 앞으로 어떤 불신자를 만나도 담대하게 복음 전할수 있습니다. 저 택하신고 손해는 안보실 거예요 ^^저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의 종으로 신학을 준비하며 기도할 때도 똑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주의 종으로 택하신 것 너무 탁월한 선택입니다. 세상에서 직장, 사업장 경험 많지요, 전도 해도 두려워 하지 않지요,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서도 말씀 잘 전하지요, 사람들 귀한 줄 알지요, 정말 좋은 일군 택하셨어요. 하나님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께요, 주님 감사해요,,,,”저의 고백이었습니다.
직장 다니고 사업하면서 그렇게 세상일 하면서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내 마음에는 전혀 열정이 없었고 어느새 내 삶은 이리 저리 의미없는 시절을 보내며 방황하고 세상일에 점점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동안 재미있던 일을 해도 재미가 없어지고, 이것 저것 해도 잘 되지 않고 너무 너무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을때 문득 나를 부르시는 세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 이렇게 살다가 갑자기 주님 부르시면 너는 무엇이라고 대답할래?. 너는 무엇하다가 왔느냐 ? 물으시는데 나는 아무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가게에서 사람들 앞에서 은혜받고 하염없이 울어 보기도 하고 아내에게 이런 내 마음을 이야기 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목회는 자신이 없다고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내가 애를 태우고 있으니 아내도 본격적으로 기도하게 되었고 계속 기도하던 아내가 마침내 승낙(?)하여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사업을 정리하고 부산 장신대 신대원에 입학하고 목회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 저는 부산 장신대학교가 있는지도 알지 못했는데 제 친한 동기가 그곳에 지원한다고 했고 또한 고등학교 후배를 (신대원은 선배^^) 학교에서 만났는데 |
그 형제가 부산장신대는 교수님도 좋고, 학교 분위기도 좋다고 한참 자랑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마음에 결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 신대원도 모두가 서울에 갈려고 하고 입학부터 재수, 삼수하고 전도사가 되어도 아무도 시골에 올려고 하지 않는데 우리까지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지방이나 시골에도 좋은 목회자가 있어야 지요, 우리가 그런 사람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는데 그말에 마음에 감동을 받고 그날로 부산장신대에 지원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서울에 가려고 장신대를 목표로 공부했는데 세월을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좋은 교수님들을 많이 만났고, 좋은 동기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감사 감사 ^^ 신대원에 입학하여 3년 동안 여러 가지를 배우며 많은 분들을 통해 신학의 기초를 쌓았습니다. ( 처음에 공부할때는 도저히 내 신앙의 척도로 받아 들이기 힘든 신학도 있어서 열띤 토론도 벌였지만 나중에 공부하면서 아하 그런것도 있구나 알게 되어 감사하고 많은 것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내 나름대로의 학문과 신학을 정립하는 영적 성숙의 좋은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
이 자리를 빌어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학문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내 학문의 세계에 폭을 넓혀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리고, 같이 운동하며 부족한 제자를 동생같이 아껴주셨던 교수님들에게 감사드리고, 성경에 대한 말씀의 깊이를 깨우쳐 주셨던 최무열 교수님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도와주고 함께 있어서 힘이 되어 주셨던 선배님, 동기들 여러 목사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늘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어려운 시절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던 수많은 사람들,,,,, ( 가족들, 형제, 자매들, 교회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은혜와 사랑을 어찌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 저는 늘 감사하며 사랑에 빚진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뿐입니다^^ ) 우리도 그 사랑의 빚을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후대들에게, 어려운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나누며 그 사랑을 전하며 살아 가겠습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여러분 모두의 그 아름다운 섬김과 헌신이 하늘 나라에서 해같이 빛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2004년 1월 1일 신학을 시작하면서 부터 전도사로 바로 생초 교회에서 4년을 섬겼고, 2008년부터 대전에 있는 둔산 중앙 교회에서 2년 전임 사역을 했습니다. 작년 봄에 대전 서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올해 1월 28일 반석동에 대전 호산나 교회를 개척하여 교회도 집도 이사하고 오늘 이렇게(2010년 3 월 21일 ) 뜻깊은 창립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감사 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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