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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아는 분으로서는 저기 광주에서도 오셨고 또 포항서도 오셨고 스님도 한 분 오셨고 그렇습니다. 그 외 또 늘 먼데서 힘들게 오셨어도 내가 모르니까 미처 말씀을 못드린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실 줄 믿습니다. 부처님 법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멀고 힘들고 어렵고 하는거 다 감안하고 그런것을 극복하고 오면은 공덕이 더 있고 공부도 더 됩니다. 쉽게 오는것보다도
옛날 설산동자같은 이들은 부처님 말씀 한 구절 듣기 위해서 그 아까운 몸을 던져서 나찰에게 공양한 그런 사실도 있는데, 늘 뭐 쉽게 듣고 많이 듣는 것이라고‘쉬운 것이다. 언제나 있는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뭐 하찮은 법문이겠지만은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은 아주 소중한것입니다. 그것도 이제 각자의 마음에 달려있어요. 그 법이 무슨 뭐 소중하다. 소중하지 않다. 스스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그만치 이제 신심과 어떤 그 보리심을 가지고 마음을 쓰는가, 안쓰는가 거기에 달렸죠.
아주 먼데서 오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은『법화경』「신해품」127쪽에 위에서 세째 줄 71번부터 할 차례입니다.「신해품」은 이제 4대성문들이 당신들의 공부한 것을 부처님께 피력하고 또 그것을 하나의 비유로 들어서 그동안의 그 오랜 세월동안 그러니까 49년의 세월이라는, 이게 이제 마지막 8년 그러니까 40여년동안 부처님께 귀의해서 공부해온 그런 그 여러 가지 사정들과 거기에 또 어떤 심리변화와 그리고 평소에 부처님 법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의 수행은 어느 정도였었다 하는 그런 것을 아주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하는데 수보리, 가전연, 마하가섭, 목건련 얼마나 큰 제자들입니까. 그 분들도 평소에 이렇게 이렇게 생각했었다.
무려 40여년이란 세월을 전문적으로 출가해서 수행을 하고 불법을 알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이러한 입장이었다. 그런데『법화경』에 와서 비로소 내가 눈을 뜨게 됐노라 하는 그런 내용이죠. 그 동안도 눈을 뜬다고는 했지만은 그때 눈을 뜬 것은 아주 실눈을 떴다고 할 수가 있다면은,『법화경』에 와서 우리가 불교에 눈을 뜬 것은 이거 이제 큰 눈을 완전하게 다 뜬것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 그런 이야기를 이 4대제자들이 하는 거죠.
우리도 뭐 어떤 인연으로 부처님께 귀의를 했던간에, 그 부처님께 처음에 귀의해서 뭐 이래저래 기도다니고 소원빌고 또 복짓고 여기저기 또 사찰순례도 다니고 별별 그런 그 과정을 이제 거치면서 또 그 나름대로 불법이 어떤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다니긴 하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 비로소 이제『법화경』에 와서 진짜 불교는 이런것이구나 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나의 인격이 되고 또 내가 몸소 실천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그건 크게 문제삼을 바 없습니다. 그건 제쳐놓고 일단은 이렇게 경전을 통해서 공부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주 희유한 인연이고 값진 인연이다라고 이렇게 이제 생각을 해야되요.
이 부처님 제자들도, 큰 제자들도『법화경』만나기전에는 자기들 나름대로 제대로 알고는 있었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제대로 안것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그렇죠. 뭐 그동안 이런 경전, 저런 경전, 이런 스님, 저런 스님, 이 절, 저 절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불교를 접합니까? 하지만은 정말 최정상에 있는 불교, 가장 바른 법, 정법(正法)으로써의 불교, 가장 부처님께서 최고로 우리들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최후의 말씀으로써 정말 아껴두었던‘불소호념(佛所護念) 교보살법(敎菩薩法)’보살수준에 오른 최고의 그 제자들에게 들려주는 아주 궁극적 가르침 그것이 이제『법화경』이다.
거기에 와서 이제 모든 결론을 비로소 이제 얻을 수가 있다.‘아~ 이것은 이렇고 이것은 이러했구나! 궁극적으로 불교란 이것이구나! 부처님의 속마음은 바로 이것이었구나! 불교에는 수많은 방편들이 있는데 그거는 정말 어린아이들을 달래는 그런 그 방편의 말에 불과한 것이고 정말 부처님 깊은 속의 마음은 이러한 것이구나!’하는 것을 이제『법화경』에서 그것을 이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법화경』은 경전의 왕이고『법화경』이 제일이다.’그런 말을 하는 거에요.
이번에 실상사 야단법석에 가서도 이제 한국불교 소의경전이『금강경』으로써는 미비하다. 부족하다. 이제 그런 말을 내가 비로소 처음으로 이제 했어요. 감히 그런 말 못하거든요. 그 저기 옛날부터 정해져 있는 그 소의경전, 교과서, 제일교과서를『금강경』으로 했는데 아이 그 부족하다. 만약에 나보고 한 권만을, 굳이 소의경전을 한 권으로 할 건 없지만은, 굳이 한 권으로 선택한다면 뭘 하겠는가? 내가 0.1초도 시간 지체하지 않고 바로『법화경』이다 이랬어요.『법화경』이다.
제가 그 많은 경전을 섭렵을 하고 또 강의도 많이 하면서 보니까 역시『법화경』이 경중에는 왕이고 불교에서 부처님께서 가르치고자하는 여러 가지 내용들이 다『법화경』안에는 포함돼있다. 그래서 내가 자꾸『법화경』,『법화경』하는 것입니다. 이『법화경』끝나도 또『법화경』계속 처음부터 할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하하 아직 끝날라면 멀었지만은...
이건 천 번, 만 번해도 부족하고 또 할게 있고 저도 뭐 공부할때마다, 강의할때마다 또 새로운 어떤 이치에 눈을 뜨게 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꾸“읽어라! 읽어라! 사경하라! 사경하라!”내가 이제 자꾸 권하는 거죠. 그래 이 근래에는 내가 이런 말씀을 자주 드려서 부산서도 많이 하지만은 대구서도 하고 서울서도 이제 사경을 하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전세계에 이제 사경대회를 한 번 언제 준비를 해야되겠네.
71 我等長夜 修習空法 得脫三界 苦惱之患 住最後身 有餘涅槃
아등장야 수습공법 득탈삼계 고뇌지환 주최후신 유여열반
佛所敎化 得道不虛 則爲已得 報佛之恩
불소교화 득도불허 즉위이득 보불지은
我等長夜에 修習空法하야
나는 길고 긴, 우리들은 이 말입니다. 4대성문이죠. 아주 최고가는 우리들도, 長夜(장야)에 이랬습니다. 긴 밤 이런 뜻이죠. 아주 오랜 한 밤중을 헤매면서 空하다는 法을 修習했다. 그랬어요. 공하다는 법을, 공에대한 이치, 공에대한 이치를 닦았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저『반야심경』도 보면‘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하면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한다.’오온이 다 공한줄을 비춰볼 것 같으면은 일체 고통과 괴로움을 다 제도한다. 그랬어요. 그건 내 자신을 해결하는데, 내 자신의 고통문제 해결하고 내 자신의 이익을 위한데는 空한 도리 이게 좋아요. 실지로 좋습니다.『금강경』도 거의 공한 이치에 대한 거거든요. 가르침이거든, 역시『금강경』이나『반야심경』이나 그 외 600권 반야부 경전이 전부 한 마디로 표현하면 공법(空法)입니다.
그래 모든 것이 공한 줄을 알면은, 내 자신도 공하고 남도 공하고 명예도 공하고 돈도 공하고 아상(我相)도 공하고 인상(人相)도 공하고 내 자존심도 공하고 저 잘났다고 하는 소리도 공하고 다 공한 줄로 제대로 알기만 하면은, 사실은 내 문제 해결하는데 제일이에요. 누가 나를 욕하더라도‘하 그거 공한거야. 나도 공한데 뭐 나를 보고 욕하는 소리가 실제로 있을택이 있나?’아 이렇게 생각하면은 그 정말 마음에 딱 와닿으면은, 사실은 괴로움이 없어져요.
나도 그전에도 언젠가 말씀드렸지만, 정말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고통이 있을때 무슨 인간관계의 고통이 있을때라든지 무슨 신체적으로 고통이 있을때라든지 그때 이제『반야심경』을 많이 주력삼아 외우는데 자꾸 외우다보니까 한 마디로 이제‘나는 없다. 나는 없다.’야. 없다는 이게 空法이거든요. 그래 우리말로‘나는 없다.’넉 자로 번역이 되더라고『반야심경』이, 그 참 260자가‘나는 없다.’라고 우리말이 더 좋아. 더 간단하고‘나는 없다.’라고 한 마디로 그게 이제 딱 해석이 되는 거야.
그래‘나는 없다.’라고 하는 것이 정말 아주 큰~ 아주 약이라. 아주 특효약이여. 누가 나를 무시해도 그렇고 나를 칭찬해도 그렇고 뭐 내가 누구한테 무시를 당하든 뭐 어떤 경우라도‘나는 없다.’라고 관해버리면은 거의 싹 마음속에‘그래 나는 없는 거야. 나는 없는 거야.’이렇게만 딱 돼도 내 아픔을 치료하는데는 그보다 더 좋은 처방약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초기에는 그걸 많이 가르쳤어요. 사람들한테, 그런데 그게 이제 그런 이치가 왜 그 교과서로써 소의경전으로써 부족한가? 그것은 말하자면 보살행(菩薩行)이 결여돼있는거야. 남을 위한 보살행이 없어. 거기는, 자기만을 위한거야. 자기 문제 해결에는『반야심경』이 최고고 空法이 최고야.『금강경』이 최고야. 그게, 그럴때는 자기 문제 해결하는데는
뭐 공하다고 하니까 내가 없는데 뭐 괴로울거 뭐 있어? 남이 뭐 아 누가 욕하든지 무시하든지 무슨 뭐 며느리가 나를 무시하든지 시어머니가 나를 무시하든지 무슨 형제, 자매가 뭐 나를 제쳐놓고 지기끼리 무슨 유산 갈라먹든지 말든지 아무 상관없는 거야. 내가 없는데 뭐 그까짓거. 내가 없는데 누굴 나눠줘. 그런 문제까지도 다 해결이 되네. 사실은, 그래서 이 공의 이치가 이와 같이 처방약으로써는, 괴로움을 처방하는데 처방약으로써는 최고야. 잘 기억해놔요.
여기도 이 사람들도 수보리니 대가섭이니 목건련이니 가전련이니 하는 기라성같은 부처님 제자들도 空法(공법)을 修習(수습)했다. 닦았다. 오랜 밤중에 그랬어요. 이게 이제 我相(아상) 말하자면 자기,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그게 이제 밤입니다. 夜. 밝으면요. 옆에 사람이 다 보입니다. 그게 대승이에요. 캄캄하면 옆에 사람이 안보입니다. 그건 소승이에요. 그게 長夜야.
그건 자기 문제만 해결하지 남이야 죽든지 살든지 생각안하는 거야. 왜 남이 죽는가 사는가 굶는가 어쩌는가를 볼 줄 알고 그걸 배려하고 그걸 보살피는게 그게 이제 대승이야. 보살이라고, 그런 가르침이『법화경』에는 많이 있어.『반야심경』이나『금강경』같은 그런 그 반야부 경전에는 그게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得脫三界 苦惱之患하고
三界(삼계)의 苦惱(고뇌)의 患(환) 여기 이야기 고대로 해놨네요. 고뇌스러운 그런 근심꺼리들을 다 벗어나고, 그랬습니다.
住最後身인 有餘涅槃하야
最後(후신)의 몸인 有餘涅槃(유여열반)에 머무러서
이제 最後身(최후신)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이 몸이 마지막이다. 그 보살행을 함으로해서 자기 몸이 무한히 분신되고 분신되고 또 분신되는데 자기몸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 죽으면 누가 찾아보지도 않아요. 죽은지도 살은지도 몰라. 그게 최후신이라. 근데 보살행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그 사람을 추앙하고 그 사람의 사상을 받들고 그 사람을 이야기하고 하는 것. 그럼 그 사람은 영원한거요.
그래 동네에서도 지몸 하나만 생각하고 동네 사람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죽어도 크게 무슨 뭐 슬퍼하지도 안해요. 남을 생각하면 사는 사람에 한해서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지. 그런게 최후신입니다. 最後身 有餘涅槃에 머물러서
佛所敎化에 得道不虛라
부처님이 교화한 바에 도를 얻음에 헛되지 않았더라. 자기문제 해결은 했으니까 결코 헛된것은 아니다 이런 말입니다.
則爲已得 報佛之恩이라하노니
그래가지고는 내가‘아 부처님 은혜를 이미 얻었다. 부처님 은혜를 이미 얻은게 됐다.’
72 我等雖爲 諸佛子等 說菩薩法 以求佛道 而於是法 永無願樂
아등수위 제불자등 설보살법 이구불도 이어시법 영무원락
道師見捨 觀我心故 初不勸進 說有實利
도사견사 관아심고 초불권진 설유실리
我等雖爲 諸佛子等하야
우리들은 여기다‘비록’이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비록 여러 부처님 제자들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說菩薩法하야 以求佛道나
보살의 행할 법을 설해서 불도를 구하게 했으나
而於是法에 永無願樂이니다
그러나 이 법에 있어서 영원히 원하고 즐거워 하는 바가 없었다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끔 그런 말 많이 하시죠. 보살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도대체 관심이 없었다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또 부처님이 그런 말씀하시니까 말만 배워가지고 전하기도 해요. 전하기도 했으면서도 속으로 원하고 즐거워하는 바는 없었다. 永無願樂(영무원락) 而於是法(이어시법)에 이 법에 있어서, 이 법에 있어서 영원히 願樂하는 바가 없었습니다.
보살법에 대해서 듣고 설명도 해주고 그랬지만은 거기에 願樂 원하고 즐거워하는 바는 없었으며
道師見捨하사 觀我心故로
도사께서 부처님께서, 見捨(견사)라고 하는 것은 버려두다. 일단 그냥 두는거여.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을 觀(관)하는 故(고)로
初不勸進하사 說有實利하시니
처음에는 실다운 利, 참다운 이익있음을 勸進(정진)하지 아니했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도 크게 그렇게, 저 사람들이 자기문제 해결이 바쁘니까 뭐 보살행해라 하는 말이 귀에 들어갈 리가 없다. 그래서 버려둔거요. 그대로 두고 우리들의 마음을 잘 관찰해가지고서 그런 어떤 그 실다운 이익이 있는거, 보살행이야말로 진짜 실다운 이익인데 그것을 勸進 권하지 아니했더라 이 말이여.
그건 예컨대 뭐와 같은고 하니, 예컨대 비유죠. 이것은
73 如富長者 知子志劣 以方便力 柔伏其心 然後乃付 一切財物
여부장자 지자지열 이방편력 유복기심 연후내부 일체재물
佛亦如是 現希有事 知樂小者 以方便力 調伏其心 乃敎大智
불역여시 현희유사 지요소자 이방편력 조복기심 내교대지
如富長者가 知子志劣하야
그러니까 어떤 장자가 있었는데 아들을 잃어버려가지고 그 아들을 찾을려고 하고 그래서 아들이 그 집 문 밖에 갔다가 정말 아버지인줄도 모르고 도망가다가 기절하고 또 일꾼들에게 유혹을 당해가지고 그 집 저기 끄트머리에 일꾼들 자는 방에서 겨우 자고 똥이나 치고 거름이나 치고 청소나 하고 하는 그런 그 기가막힌 그런 그 상황을 겪어 오게 된 그런 이야기죠.
그래서 장자가 아들의 뜻이 하열하다. 劣 용렬하다. 아주 못났다. 아들의 뜻이 아주 못난 것을 알아서 그래서 할 수 없이
以方便力으로 柔伏其心하고
방편력으로써 그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고
然後乃付 一切財物이라
그런 연후에 차츰 차츰 그 집에 출입을 하게 됐죠.‘출입자재방등시(出入自在方等時)’라고 해서『방등경』을 설할 때가 그 집에 출입을 자유롭게 할 때고 그 다음에‘영지보물반야시(令知寶物般若時)’라고 해서 그 집의 재산상황과 보물과 논, 밭, 전지라든지 무슨 어느 나라에 회사가 얼마있고 어느 나라에 땅이 얼마있고 그런 것을 전부다 알게 되는 것이 이제 저『반야경』을 설할때여.『반야심경』,『금강경』
보물알면 뭐합니까? 보물을 물려받아야지. 재산을 물려받아야 되는거라. 그래 그러한 과정을 다 거친뒤에 그런 연후에 이에 付 줬다. 무엇을? 一切財物(일체재물)을, 일체재물을 다 아들에게 주었다 이 말이요.
그게 이제 우리가『법화경』에 와서 비로소 부처님의 정말 깊고 오묘한 그 마음을 우리가 다~ 이해하게 되고‘부처님 마음이 이것이구나! 진짜 불교는 이것이누나!’하는 것을『법화경』에 와서 우리가 제대로 알게 됐다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런 내용이에요. 이게
그래서 그런 연후에 일체재물을 주었음이라.
佛亦如是하야 現希有事하사
부처님도 또한 이와 같아서 희유한 일을 나타내시사
知樂小者하시고 以方便力으로 調伏其心하고는
작은 것을, 아주 작은 법 이런 것 즐겨하는 것을 아시고 우리 중생들은 큰 법 욕심없죠. 사실은, 뭐 100억이나 1000억 욕심없죠? 한 1000만원이나 이렇게, 1억도 얼만지 몰라 잘. 몇백만원, 몇천만원쯤 되면 겨우 이제‘하~ 굉장한 돈이라.’하지 1억하면 이게 도대체 가늠이 안가는거야. 그러니까 몇백억, 몇천억하는 거는 도대체 알 바가 없는 거라. 그런걸 모른다 이거지. 그자 날 몇백만원만 주면 그냥 뭐 나로서는 최고다 이래 생각하는 거야.
知樂小法(지락소법)이라. 부처님이 그런 그 작은 법 좋아하는 것을 아시고 방편력으로써 그 마음을 조복하고는 그 다음에 뭐라고?
乃敎大智니다
그리고 나서 큰~ 지혜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런 것입니다. 큰 지혜는『법화경』의 가르침이에요.『법화경』의 가르침을 큰 지혜라고 그런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내가 어떤 것을 실천하느냐 안하느냐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할것인가 말것인가 이거는 우리들의 그릇의 문제니까 그 다음 일이고 일단은 우리가 불교안에서 불교에 귀의해가지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얼마나 많은 돈과 얼마나 많은 공을 들입니까? 그렇게 어차피 공을 들일바에는 알고는 있어야 되요. 내가 그것을 좋아하든 내가 거기에 푹빠지든 안빠지든 그건 그다음 문제고 알고는 있어야 된다.
백화점에 가서 무얼 살거냐 하는 것은 자기 수준과 주머니 사정에 따라서 사지마는 그 백화점에 뭐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는게 중요해. 신을 사도 무슨 종류의 신이 쫘악 있다. 그런데 내 주머니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이걸 산다. 그거하고 똑같은 거에요. 그 알고는 있어야 돼. 그 나중에 집에와서 돈을 좀 더 준비해가지고 가서 더 큰 더 값진 신을 사도 좋고, 이와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커지고 원력이 커지고 보리심이 커지고 그러면은 이제 큰 법이 그때사 성이 차는 거요. 큰 법이 성에 차는 거라. 근데 여러분들 그래도 이『법화경』을 알뜰히 공부하는 걸로 봐서는 마음이 클데로 다 큰것같에요. 왜냐하면 이『법화경』은 이게 이러한 가르침이 그래도 마음에 흡족하고 재미가 있고‘아 그거 들어보니 다는 모르겠지만은 하루에 한 두 마디만 들어도 그 괜찮다.’하는 생각이 가니까 그래도 공부하는 거거든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에 큰 지혜를 가르치사, 가르쳤습니다.
74 我等今日 得未曾有 非先所望 而今自得 如彼窮子 得無量寶
아등금일 득미증유 비선소망 이금자득 여피궁자 득무량보
我等今日에사 得未曾有호니
우리들이 오늘에사 일찍이 있지 않던 그런 거. 처음 본 도리를 배우게 됐다.『법화경』이 그와 같은 거요. 未曾有(미증유)를 얻었으니
非先所望을 而今自得이라
먼저 소망하지 않던 것을, 우리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그것을 저절로 얻은 것입니다. 이런 말입니다.
참 얼마나 횡재입니까? 횡재중에 횡재에요. 우리가, 바라지도 않았는데 왔어. 우리는 그저 몇백만원이면 참~ 기분이 정말 최고다라고 생각하는데 아 수백억을 갖다준거하고 마찬가지야 이게.『법화경』이 그런거에요. 이게 마음에 푹 빠지든지 그거는 우리가 두고두고 공부하면은 저절로 마음이 거기에 빠질것이고, 일단은『법화경』과 인연되면은 이게 도대체 뭔가 하고 후벼파고 열심히 이제 읽고 쓰고 해서 그 깊은 뜻을 알려고 노력은 해야됩니다.
而今自得(이금자득)하니
如彼窮子가 得無量寶니다
저 예컨대 비유하자면, 앞에 비유가 있었죠. 저 못난 아들, 거지생활하고 노숙자생활하고 품팔이하고 똥이나 거름이나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이고 그 뭐 3D라고 하죠. 그런 힘든 일이라도, 뭐 품값만 주면은 좋다 이거야. 그런 그 처참한 처지로 살던 사람이 한량없는 보물을 한꺼번에 다 얻어버린거요. 아『법화경』이 그런 거요. 이 말 한 마디만 하더라도 우리가 뭐 정말『법화경』에 목을 매도 맬 그런 그 가치가 있는 거죠.
한량없는 보배를 얻은 것입니다.
75 世尊我今 得道得果 於無漏法 得淸淨眼 我等長夜 持佛淨戒
세존아금 득도득과 어무루법 득청정안 아등장야 지불정계
始於今日 得其果報
시어금일 득기과보
世尊我今에 得道得果하며
세존이 지금 우리들이 지금에 있어서 우리들에게 道를 얻고 果를 얻다. 도가 이렇게 이제 붙여서 말하기도 해요. 도의 결과를 얻게 됐으며
於無漏法에 得淸淨眼이니다
無漏法(무루법)에 있어서 淸淨眼(청정안)을 얻었습니다. 샘이 없는 법 이건 한 번 얻으면은, 한 번 대승법을 최상승법을 한 번 듣기만 하면은 말하자면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무루법이에요.
다이야몬드는 우리가 삼키면은 소화가 안됩니다. 저~ 똥통속으로 거름속으로 논으로 밭으로 산으로 들로 아무리 굴러다녀도 그 다이야몬드는 닳아지지도 않아요. 워낙 그거는 견고한 것이 돼놔서 돌이 거기에 부딪치면은 돌이 상하지 다이야몬드는 상하지 않습니다. 다이야몬드를 깎을때는 다이야몬드로써만 깎을 수 있어요. 다른걸로 못깎아요. 어떤 강한 쇠도 거기에 다이야몬드에게는 다 그 저기 저 상처를 입게 돼있기 때문에
그래 무루법이라 하는 거요. 무루법에 있어서 청정한 눈을 얻었습니다. 이제사 이 사람들도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아주 청정한 안목을 얻게 되었으며
我等長夜에 持佛淨戒나
우리들이 길고 긴 인생의 밤에 부처님의 淨戒(정계)를 가지기는 했으나
始於今日에 得其果報이니다
비로소 금일에야 그 과보를 비로소 얻게 되었습니다.
76 法王法中 久修梵行 今得無漏 無上大果 我等今者 眞是聲聞
법왕법중 구수범행 금득무루 무상대과 아등금자 진시성문
以佛道聲 令一切聞 我等今者 眞阿羅漢 於諸世間 天人魔梵
이불도성 영일체문 아등금자 진아라한 어제세간 천인마범
普於其中 應受供養
보어기중 응수공양
法王法中에 久修梵行하다가
法王法 가운데, 법중의 왕이니까 부처님은 또『법화경』에서나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법왕 가운데 제일이거든요. 그래서 법왕의 법 가운데 오랫동안 梵行(범행) 청정한 행을 닦다가
今得無漏인 無上大果이니다
지금에 샘이 없는 새나가지 않는, 다른 법은 다 이제 새 나가요. 왜냐? 하~ 복을 지어라. 공덕을 지어라. 수행을 해라. 뭐 참선을 해라. 염불을 해라. 뭐를 해라 하면은 한것만치 쌓입니다. 한것만치 쌓이다가 안하면 그게 또 사라져요. 없어져요. 그건 이제 유루(有漏)야. 샘이 있는 거라. 새나가는 게 있다 그말요.
그럼 이『법화경』의 가르침은 無漏(무루)라 하는 것. 지금 무루법을 얻었는데, 지금 무루법인 無上大果(무상대과) 최고로 높은 큰~ 결과를 얻었습니다 라고 했는데 왜 無漏냐? 본래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성을 말하자면은 드러내 보이는 거야. 우리들 마음에 본래로 타고난 그 불성 그거는 닦는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닦는다고 그게 더 첨가되는 것도 아니야. 아무리 나쁜짓을 하고 지옥을 수십 바퀴를 돌아도 그것은 손실함이 아니야. 그리고 절대 기스도 안가. 조금도 그 불성자리 본래인 자리, 부처자리 거기에는 조금도 손색이 없는 그런 자리기 때문에 그래서 無漏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공덕을 닦았다 그러면 그 공덕 안닦고 어디가서 뭐 이렇게 엄한짓하면은 그 공덕 싹 없어져버려요. 그래서 그 有漏야. 그런것은, 그렇다고 이제 안닦는것보다야 낫겠지. 낫겠지만은 정말 근본적으로 본래인의 그 가치, 우리의 본래 부처라고 하는 그 가치에 이해가 되고 눈을 뜨고 느껴지고 거기에 대한 자기 확신이 설때 그게 이제 無漏입니다. 그걸 두고 하는거야.
그러나 우리가 설사 뭐 감옥에 가고 저 지옥에 간다 하더라고 그 마음자리에는 전혀 손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있는거에요. 이게, 크게 어려운게 아닙니다. 사실은, 有漏法(유루법)과 無漏法(무루법)이라는게
예를 들어서 어디가서 복좀 잘 지어놓고 거기가서‘아 내가 복을 지었는데’하면은‘내, 내, 내’세 번만‘내, 내, 내’하면은 거기에 아무리 공을 지었고 공헌을 했어도 그거 다‘아이고 니 내한테 가져가라. 가져가라.’이리 되는거야. 아무 소용없어지는 거라. 이 有漏福(유루복)이라는게 그런거요. 금방 뭐 뭐 없어져버리는게 유루복입니다.
그것은 늘 우리는 이 대승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인연이『법화경』하고 됐으니까 이러한 이치에, 無漏法에, 정말 본래 갖추고 있는 완전무결한 그 인간의 본래가치에 관심을 갖고 거기에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그걸 이제 無漏인 無上大果라고 했잖아요. 지금에는 무루인 무상대과를 얻었습니다. 최상가는 큰~ 결과를 얻었습니다.
我等今者에 眞是聲聞이라
지금이야말로 진짜 이제와서 참 성문이다. 참 부처님 제자다.
以佛道聲으로 令一切聞이니다
부처님이 道를 설하는 그런 소리로써 일체로 하여금 듣게 했습니다.
그래 부처님도 별별 방편의 설을 많이 했어요. 방편설법을 많이 했지만은 그건 어디까지나 방편설법이고 정말 하고싶었던 최후로 눈을 감으면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일러주고자했던 가르침은 바로『법화경』이다.『법화경』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당신은 부처님이다. 사람이 부처님이다.’하는 그 말입니다.‘사람의 본성 그것은 누구나 똑같은 부처님이다.’
我等今者에 眞阿羅漢이라
우리들이 지금에사 진짜 阿羅漢(아라한)이다.
於諸世間과 天人魔梵인
諸世間(제세간)과 그리고 人과 天과 魔梵(마범)인
普於其中에 應受供養이니다
널리 그 가운데서 응당히 공양을 받을만하니라. 이제는 공양 마땅히 받을만 하다 말이야. 그동안에는 아라한이라는게 응공(應供) 공양 받을 만한 사람 이런 뜻이거든요. 阿羅漢 그 부처님도 應供이라고 하는 거죠.
이름만 아라한이었지 진짜 아라한이 못됐다 이거여. 그럼 그동안은 전부 헛밥 먹은 거야. 이제사 진짜 신도들 밥 얻어먹어도 당당하게 얻어먹을 수 있다. 應受供養(응수공양)호리라. 이제 여러분들도 밥 얻어먹을만 해. 자격이 있어요.
그러니까 인간의 본성의 소중함에 어떤 확신을 가져버리면 그게 큰~ 보물이고 큰~ 재산입니다. 누가 뺏어가지도 못하고 손상도 입히지 못하고 누가 나를 뭐 아무리 감옥에 가둔들, 그거는 꼼짝없어요. 아무 뭐 저 탈이 없습니다. 자유자재에요. 그거는, 대해탈(大解脫)이야. 어떤 감옥에 갇혀도 그 자신은 대해탈입니다.
여기와서도 내가 아무리 힘줘서 침을 튀겨가면서 이야기하지만은 여러분들 마음대로 딴생각하면 뭐 나는 무슨 영험없어. 대해탈이야. 그렇잖아요? 어디가서 뭐하고 누구하고 놀아도 지금 이 자리에 몸만 여기다 놔두고 누구하고 노는지 나는 아무 관계없네. 대해탈이야.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은 대해탈이야. 그대로
바로 이 도리입니다. 그걸 한 번 잘 우리가 모르고 맘대로 쓰고 있지만은 맘대로 쓰고 있는 그것을 부처님은 일깨워 주는 거야. 그대들이 마음대로 현재도 쓰고 있고 과거에도 썼고 미래에도 쓰고 있을 그 물건에 대해서 눈을 떠라. 그것은 정말 무량대복이고 무량신통이다. 그보다 더 가치있는 존재가 어디있나? 그거는 만든것도 아니고 닦아서 되는것도 아니고 공덕을 쌓아서 되는것도 아니고 복지어서 되는것도 아니야. 부처님에게 귀의한다고 되는것도 아니고 부처님에게, 부처님을 비방한다고 안되는것도 아니야. 부처님에게 칭찬하는 사람이나 비방하는 사람이나 그 능력은 똑같애. 그 능력은 똑같다구요. 불교하고 아무 관계없어. 이거는, 부처님 가르침하고 사실 관계없는거요. 이거는
단 부처님이 그러한 것을 깨달으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너희들에게 전부 이런것이 있다라고 우리에게 깨우쳐줘서 그렇지. 부처님 비방하는 사람도 그 능력 그대로 다 가지고 있다는거.
이런 이야기도요. 불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디 다른 종교에 그런 소리했다가는 큰일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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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들 마음에 본래로 타고난 그 불성 그거는 닦는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닦는다고 그게 더 첨가되는 것도 아니야'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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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의 소중함에 어떤 확신을 가져버리면 그게 큰 보물이고 큰 재산...고맙습니다._()()()_
[說菩薩法하야 以求佛道나 而於是法에 永無願樂이니다.] [법화경을 공부하는 우리는 본래 갖추고 있는 완전무결한 인간의 본래가치에 관심을 갖고 거기에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화풍정 님! 수고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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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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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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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_()_
於無漏法에 得淸淨眼이니다 ........
완전무결한 그 인간 본래가치에 관심을 갖고 거기에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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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에게 칭찬하는 사람이나 비방하는 사람이나 그 능력은 똑같애. 그 능력은 똑같다구요. 불교하고 아무 관계없어.
단 부처님이 그러한 것을 깨달으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너희들에게 전부 이런것이 있다라고 우리에게 깨우쳐줘서 그렇지. 부처님 비방하는 사람도 그 능력 그대로 다 가지고 있다는거. 이런 이야기도요. 불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지혜제일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보았읍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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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2번째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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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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