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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로이의 하나님(시 23:1-6)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다른 유대인들은 무슨 급한 볼 일이 있어, 사마리아를 지나야 하는 일이 있어도, 사마리아를 지나지 않고, 먼 길을 돌고 돌아서 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길을 돌아서 가지 않고, 사마리아를 지나서 갔습니다. 그때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렀는데, 그곳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 가시다가 너무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 안으로 들어가고, 예수님만 혼자 남으셨습니다. 그때 그 시간이 정오 12시였습니다.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림자 하나 볼 수 없는 시간인데,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 위하여, 가까운 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아서 가곤 했는데, 설령 길을 가다가,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거셨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사마리아 여자는 지금껏 헛되고 헛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온 여자였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은 그 여자를 보고 수군거렸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고, 창피하여, 아무도 다니지 않는 시간에, 살며시 물을 길러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여자를 만나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기 위하여, 수가성 우물가로 예수님은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아무도 만나주지 않는 그 여자를, 예수님은 만나 주셨습니다. 아무도 이야기 나누지 않는 그 여자와 예수님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고, 하늘의 비밀을 그녀에게 특별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사마리아 여자만 헛되고 헛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왔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드러난 잘못이 있는 반면, 드러나지 않는 잘못과 허물이 있습니다. 우리는 드러난 것만 판단할 뿐, 드러나지 않는 것은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드러난 모습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것 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헤아리는 분이신데, 우리의 드러나지 않는 것을 모르고 계실까요? 다 알고 계십니다. 사마리아 여자의 모든 것을 아시고 계셨던 것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한 마디로 우리들도 사마리아 여자처럼, 헛되고 헛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내게로 와 생수를 마셔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금 이 시간 주님은 우리들에게도 찾아오셔서 “내게로 와 생수를 마셔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물가의 여인처럼”이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그 가사를 살펴보면
1.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 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2. 많고 많은 사람들이 찾았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주 안에 감추인 보배 세상 것과 난 비길 수 없네
3. 내 친구여 거기서 돌아오라 내 주의 넓은 품으로 우리 주님 너를 반겨 그 넓은 품에 안아 주시리
후렴 :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 주소서 넘치도록 채워 주소서.
우물가의 여인은 헛되고 헛된 것들을 추구하며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그때 주님이 찾아오셔서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고백합니다.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 주소서 넘치도록 채워 주소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우물가의 여자는 변화되었습니다. 새로워졌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고, 그의 인생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공허한 마음에 하늘 양식을 채움 받음으로 인하여,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헛되고 헛된 것들만 추구하며 살았던 사마리아 여자가, 주님 만남으로 변화되었다면,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심으로 변화되었다면, 우리들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옛 삶을 청산하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더럽고 추한 옛 사람과 옛 습관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처럼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 주소서 넘치도록 채워 주소서”라고 고백한다면, 주님은 우리의 빈 잔에 하늘 양식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들처럼, 헛되고 헛된 것들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보배 중의 보배이신 주님을 만남으로, 새 삶을 시작하고, “주님, 내 잔을 채워 주세요.” “주님, 주님이 내 잔을 채워 주시니, 내 잔이 차고 넘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로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읽은 본문말씀은 다윗 왕이 인생의 말년에, 하나님께서 수많은 원수들 앞에서 자신을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시며, 흘러넘치도록 축복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을 한 시입니다.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죽였을 때에도, 그의 신하들과 아들이 배반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키셨으며, 사울 왕이 던진 창으로부터도 피하게 해주셨습니다. 그의 지나간 인생을 돌이켜 보니, 온통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과 은총이었습니다. 당대 다윗 왕국은 찬란한 문화와 역사와 전통,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서는 스스로 낮아져 ‘여호와는 나의 목자요 나는 그의 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다윗의 관계는 목자와 양의 관계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이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양으로서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라고 하며, 하나님 없이 야생의 짐승처럼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사람들은 탐욕과 욕심과 불신앙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간다 할지라도,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늘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여 주시기 때문에, 그 어떠한 해가 다가온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어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내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겠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고백이 여호와 로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목자되시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여러분의 DFLQ술을 통하여 고백되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멘.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아니시라면, 내게는 부족함이 가득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하지 않았다면, 부족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헛되고 헛된 것들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마시고 마셔도 배부르지 않는 헛된 욕망을 품고, 하루 하루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올라가고 올라가도,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삶을 바둥바둥거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채우고, 올라가고, 누린다 할지라도, 결국은 내리막길이요, 심판이요, 불명예의 삶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할 수만 있다면,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누리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설령 재물이 없다 할지라도,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늘 만족합니다. 날마다 행복합니다.
여러분! 하루 하루, 주님 주시는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남들이 보았을 때, 내게 있는 주변 환경이,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는 아니라 할지라도, 지금 누리는 나의 삶이 푸른 풀밭이요, 쉴만한 물가인 것을 고백합니다. 육신이 약하여 병들고,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몹시 불편하다 할지라도,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이러한 고백이, 앵무새처럼 입술로만 아무 의미없는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진실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만족합니다. 내 잔이 차고 넘칩니다.”
여러분! 다윗왕이 이렇게 고백했을까요? “내가 한 나라의 왕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게는 절대권력이 있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게는 많은 금은보화가 있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게는 내 마음대로 다스릴 큰 영토와 백성들이 있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수많은 신하와 백성들이 나를 위하여 푸른 풀밭을 가꾸고, 쉴만한 물가를 만들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 주위에 내 생명을 지키는 호위무사들이 많이 있기에 나는 두려움이 없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가 어디를 가고자 할 때, 내 가는 길을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윗은 결코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왕은 지나간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온통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과 은총이었음을 발견하고,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 부족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 잔이 차고 넘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목자되신 주님께서 다윗을 푸른 풀밭으로,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해 주셨음을 고백했습니다. 더럽고 추한 죄로 죽은 인생을, 씻을 수 없는 죄로 인하여, 무너질 수밖에 없는 다윗을 붙잡아 주시고, 그의 영혼을 소생케 하여 주시고, 새롭게 하여 주시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다윗을 인도하여 주셨음을 고백하며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 잔이 차고 넘칩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러분! 다윗왕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직접 지났습니다. 사울왕이 그를 죽이고자 했을 때, 수금을 타고 있는 그를 향하여 창을 던졌을 때, 그를 죽이고자 직접 군대를 이끌고, 이곳 저곳을 쫓아 다녔을 때, 그야말로 하루하루의 삶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습니다. 광야에도 도망가고, 황무지에도 도망가고, 심지어는 살기 위하여, 원수의 나라 블레셋까지도 도망가고, 또 살아 남기 위하여 침을 흘리며 미친 척도 했습니다. 왕이 되고 나서도, 결코 평안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주변의 나라들과의 전쟁을 할 때에도, 늘 사망의 그림자가 그를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 우리야를 죽인 죄로 인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였습니다.
시편 32:3-4절을 보면,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죄로 인한 죽음의 골짜기를 다녔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여 그를 죽이고자 했을 때, 한 밤중에 예루살렘을 몰래 빠져 나가 도망갈 때 그의 삶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습니다.
다윗은 훌륭한 왕이었지만, 그의 삶은 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윗의 삶을 보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저렇게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크게 쓰임받은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사람도, 늘 평안한 삶이 아니라,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났으니, 나는 오죽 하랴 하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그런데 더 크게 위로를 받는 것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라는 다윗의 고백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마침내 내가 왕이 되었기에 나는 부족함이 없다. 천하를 내 손안에 쥐었기에 부족함이 없다. 셀 수 없는 금은보화를 내 창고에 가득 쌓아 놓았기에 부족함이 없다”라고 다윗이 고백했다면, 우리는 낙심하고 좌절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백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목자가 되시기에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목자가 되시기에 내 잔이 차고 넘칩니다.”라는 고백을 했기에, 우리는 큰 위로를 받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목자는 누구십니까? 지금껏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앞으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시고, 책임져 주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십니까? 누가 도와주기에, 무엇으로 채움 받았기에, 잔이 넘칩니까? 예수님입니까? 세상입니까? 세상의 물질입니까? 권력의 중심에 앉아 있는 사람입니까? 잘 나가는 사람 때문에 부족함이 없습니까? 아니면 부모 때문에, 아니면 자식 때문에 부족함이 없고,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예수님 때문에 부족함이 없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십니까? 예수님 때문에 기뻐 죽을 지경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요 나의 주님이 되십니다.
요한복음 10:11-1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죄악에서 건지시고, 구원과 영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오직 나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고통과 멸시와 채찍과 희롱을 받으면서도, 오직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 귀하신 몸이, 십자가에서 오직 나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가 되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주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귀한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내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내 잔이 차고 넘칩니다.”라는 고백으로 늘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목자가 되실 때,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목자가 되실 때, 차고 넘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아멘.
다윗은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물리쳤기 때문에, 극진한 사랑과 풍성한 대접을 받아야 했던 사울왕으로부터 오히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둘째 딸 미갈과 결혼하였기에, 장인 사울왕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오히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같은 피를 나눈 형제를 죽인 압살롬을 용서해 주고, 고국에 돌아와 다시 살게 해 주었기에 감사를 받아야 했는데, 오히려 아버지 다윗을 죽이고, 왕권을 탈취하고자 하는 아들로 인하여, 오히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살아오면서, 결코 평탄치 않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속에서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더욱 더 붙잡았습니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 왜 나에게 이런 아픔과 고통과 죽음의 골짜기를 허락하십니까?”라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 주님은 나의 여호와 로이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주님이 나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주님이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지켜 주십니다. 주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라는 믿음으로, 그 사망의 골짜기를,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껏 살아왔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십니다. 주께서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심으로 내 잔이 차고 넘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빠져나온 다윗 앞에 넓게 펼쳐진 초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진수성찬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의 삶을 살펴보면, 다윗을 방해하고, 죽이고,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고, 죽이고, 상처를 주고,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가난도 때로는 우리에게 원수가 될 수 있고, 우리에게 고통과 죽음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질병도 때로는 우리에게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께서 우리에게 상을 차려 주신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수를 바라보고, 지레 겁을 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가난을 바라보고, 질병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원수 사탄 마귀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 앞에 상을 차려주십니다. 푸짐한 상을 차려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직접 우리 앞에 상을 차려 주십니다. 초라하고, 볼품 없고, 뭔가 빠진 것 같고, 먹을 것이 없는, 젓가락이 가지 않는 상을 차려 주시는 것이 아니라, 푸짐한 상, 진수성찬, 먹을 것이 가득한 상을 차려주십니다. 푸짐하게 차려진 상을 보고 “이것을 다 언제 먹노”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그런 푸짐한 상을 주님께서 직접 우리들에게 차려 주신다고 했습니다.
5절 말씀을 살펴보면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그때 그 당시 중동 지방에서는 최고의 귀한 손님에게만 베푸는 대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베푸신 이런 대접은, 원수 천만 명보다, 다윗이 더 귀하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었지만, 부모마저 인정하지 않는 목동이었지만, 하나님 마음에 들어 왕이 되었고, 그의 집에는 온갖 좋은 것으로 넘쳤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 잔이 차고 넘칩니다”
여러분! 다윗이 살던 시대에 ‘넘치는 잔’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고대 동양의 집주인들은, 잔을 가득 채워줌으로써 손님에게 ‘환영’을 표현했습니다. 잔이 계속 차 있는 손님은, 주인이 자신을 반기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니 잔이 빈 채로 그냥 있다면, 어떤 신호겠습니까? “시간이 늦었으니 슬슬 일어나시죠?”라는 주인의 신호입니다.
손님과의 자리가 정말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주인은 잔이 넘치도록 가득가득 채워줍니다. 포도주가 잔 위까지 차올라도 멈추지 않습니다. 잔을 타고 넘어, 식탁을 적실 때까지, 계속 부어줍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잔을 넘치게 부어주시는 걸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조건없이 사랑을 베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넘치는 잔’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입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고백은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은혜와 사랑, 평안이 차고 넘친다는 말입니다.
또한 잔의 맨 위까지 가득 차 올라 넘쳐흐른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잔이 작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담기에, 우리의 잔은 항상 작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잔을 내밀어도, 하나님은 더 풍성하게, 더 많이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에 차고 넘칩니다.
여러분! 우물가의 여인처럼 헛되고 헛된 것들을 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헛되고 헛된 것들을 찾았던 것처럼 헤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고 말씀하실 때, 주님께 나옴으로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맘껏 마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그 넓은 품 안에 안겨,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맘껏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어 주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고백으로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풍성한 삶을 날마다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절 말씀을 보면,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어느 한 순간만 나를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주의 품에 안길 때까지 주님은 변함없는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기에, 여호와 로이의 하나님이 되시기에, 나는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겠습니다.
주님이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나를 위하여 상을 차려 주시기에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에게 있을 것이기에 내가 영원히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머물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로이의 하나님, 목자되신 주님을 따라감으로, 늘 부족함이 없는 삶, 잔이 차고 넘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여호와 로이의 하나님,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
우리의 목자가 되사 우리를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이 계시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님이 계시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 할지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실 것을 생각하니 너무 기쁩니다.
주님께서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실 것을 생각하니 너무 행복합니다.
주님이 계시기에 내 잔이 차고 넘칩니다.
내 잔이 차고 넘치도록 늘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드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