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겨울, 잊지 못할 따뜻한 시간들
맨해튼의 빌딩 숲에서 30여 년을 보낸 나는 다시 고향의 시골로 발길을 돌렸다. 도시에서의 삶은 화려했지만 차가운 바람과 끝없는 소음 속에서, 마음 한편엔 늘 고향의 겨울이 자리하고 있었다. 눈 내린 풍경, 따뜻한 웃음소리, 그리고 부모님과의 추억이 나를 고향으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나 자신을 찾고 싶었다.
내가 자란 고향의 겨울은 특별했다. 하얀 눈이 온 마을을 덮으면 논과 밭은 흰 이불을 덮은 듯 고요해졌다. 새벽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남기는 강아지들, 방앗간 근처를 기웃거리던 참새들, 그리고 지수지에서 썰매를 타던 우리들. 모든 것이 조용하면서도 생동감 있었다. 눈 내린 들판을 걸으며 우리는 내년의 풍작을 기대했고, 친구들과 눈사람을 만들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러나 이번 겨울, 고향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눈 대신 황량한 벌판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더 이상 하얗게 덮인 겨울을 보기 어려웠다. 논은 물기를 잃고 영산강은 잔잔한 호수처럼 멈춰 있었다. 나는 강둑을 걸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랜 친구가 나를 반기듯 다가왔다.
어린 시절, 고향의 겨울은 동심이 가득한 시간이자 희망의 계절이었다. 논에 물을 채워 얼린 스케이트장에서 친구들과 동심을 나누었고, 연을 날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연처럼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었던 조종사의 꿈도 그때 꾸었던 것 같다. 설날이면 객지에서 돌아오는 형들을 기다리며 동생들과 동네 어귀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추위를 견뎠다.
하지만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젊은이들이 떠난 마을은 이제 노인들만 남아 있었다. 마을 회관에 들러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과거의 추억을 떠올렸다. 이웃들의 따뜻한 미소는 여전히 나를 감싸주었지만, 그리움은 더 짙어졌다. 나는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뒷동산 부모님의 산소를 찾았다. 산소에서 본 석양은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해와 달이 동시에 저무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리움과 감사가 마음을 채웠다.
고향의 겨울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뿌리이자 나의 정체성이며,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이었다. 겨울은 논과 밭이 쉬는 휴식의 계절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고향의 겨울을 지내며 나는 내 삶의 방학을 보내는 듯했다. 땔감을 정리하고, 계량기를 단단히 감싸는 어머니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고, 그 안에서 나는 새로운 씨앗을 심을 준비를 했다.
맨해튼의 화려함 속에서 나는 종종 외로움을 느꼈지만, 고향의 겨울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고향은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반겨주었다. 고향의 겨울은 잊지 못할 추억과 새로운 희망을 내게 선물했다. 나는 이제 고향의 따뜻함을 품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려 한다.
이 겨울, 나는 고향의 품 안에서 다시 나 자신을 찾았다. 고향의 겨울은 내게 돌아가야 할 이유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선물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