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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땅과 전원주택
 
 
 
카페 게시글
―····· 부동산 공부방 스크랩 전원주택, 전원생활에 대하여
하얀쪽배 추천 0 조회 24 09.07.18 18: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첫째, 전원주택을 단기 투자(투기)의 대상으로 삼지마라!

전원생활이란? 나와 내 가족의 삶에 윤기(潤氣)를 나게 하는 생활, 나와 내 가족의 삶에 여유스러움을 가져다주는 생활, 나와 나의 가족을 건강하게 만드는 생활. 곧 요즘 유행하고 있는 Well-Being이다. Well-being이란 ? 건강(健康)하고, 안락(安樂)하고, 만족(滿足)한 인생을 살자는 의미란다. 행복(幸福), 안녕(安寧), 복지(福祉) 등의 삶의 질을 강조하는 용어(用語)로서, 물질적 가치(價値)나 명예(名譽)를 얻기 위해 달려가는 삶보다는 신체(身體)와 정신(精神)이 건강한 삶을 행복의 척도(尺度)로 삼는 것이다.

이 용어는 어쩌면 전원생활(田園生活)하고 딱 맞아 떨어지는 용어다. 그래서 나와 나의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向上)시키고, 또 유지(維持)하는데 그 목적(目的)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무엇과도 비교(比較)할 수 없는 아주 커다란 행복을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거기에 투자의 의미도 찾을 수 있다면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닌가?

6개월만 살아보라. 본인들은 잘 모르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인사말을 자주 듣게 된다. 얼굴이 좋아 졌다던가. 건강해 보인다는 말들을 많이 듣게 된다.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담배를 끊는 이 들을 자주 본다. 필자도 어릴 때 배운 담배를 끊은 지 오래지만....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사는 사람이 어떻게 내 몸이 더러워지고 또 대기(大氣)도 더럽히는 담배연기를 내 뿜을 수 있단 말인가?

필자는 한 달이면 몇 번씩 서울로 볼일을 보러 가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두 시간 정도로 정해 놓았다. 그것은 서울에 가서 그 이상은 버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눈이 찝찝해지고, 코가 막히며, 심지어는 마구 짜증까지 난다. 도시의 길을 걸으면서, 운전을 하면서도 매연의 숨 막힐 것 같은 내음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이젠 시골 공기에 푹 빠져 버렸나 보다. 그러나 도시에서의 지친 몸도 전원으로 돌아오면 또 다시 생기가 나는 것은 웬일일까?

아주 오래 전 서울 살 때 일이다. 시골의 친지 어른께서 방문하셨는데 삼일도 체 되지 않았는데 “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 내려가야겠다.”고 하신다. 그 때만해도 왜 그러시는지를 몰랐다. 그러나 이젠 실감(實感)이 난다. 전원생활을 하는 분들 중에는 몸이 불편(不便)한 분들이 많은 있다. 처음엔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보이던 그 분들의 건강이 점점 좋아지는 걸 직접 우리 눈으로 보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만큼 맑은 공기가 얼마나 우리 몸에 좋은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일면(一面)이다.

내친김에 우스개 소리를 한마디 해야겠다. 필자는 잘 안되는 게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술을 끊을 수가 없다는 거다. 그 끊기 어렵다는 담배도 끊었는데 말이다. 허기야 끊으려고 하는 노력도 해 보지 않았지만.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과 같이 숨을 쉬고 있노라면 술 생각이 난다. 그 자연을 안주삼아 마시는 몇 잔의 술맛이란 마셔본 사람들만이 아는 특별한 체험 일게다. 이런 얘기하니까 꼭 주태백이 같이 생각하시는 것 같아 은근히 걱정이 되지만 독자들은 너무 걱정하실 건 없다. 도시에서 마시던 주량(酒量)보다 조금 과(過)해도 술이 깨는 속도(速度)는 도시의 그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술이 빨리 깬다는 말이다.

가끔 야유회(野遊會)를 가서 술을 드셔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리라. 이것도 우리는 잘 느끼지 못 하지만 공기의 고마움 일게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오면 술이 안 취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마당에 모여 서서 삼겹살에 상추, 케일로 쌈을 싸고, 쑥갓과 마늘, 풋고추를 곁들여 입이 찢어지게 벌리고 먹는 맛이란?!!! 아! 여기에 어찌 술이 없을 소냐! 그러나 이것을 쓰면서 이젠 술도 더 줄여야겠다고 마음을 도사린다. 이 좋은 세상을 끝마칠 때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기에. 오래 못살면 어떤가? 건강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최고의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전원생활을 하면 자연스레 생기는 좋은 버릇 하나가 있다. 도시에선 그렇게도 안 되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가 저절로 된다는 말이다. 거리관계상 아침은 더 부지런해야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먼동이 트기도 전부터 움직이는 농사일하는 분들을 자주 접하다 보면 자연히 일찍 일어나게 되고 그러니 일찍 자게 될 수밖에 없다. 일찍 일어나 텃밭을 손질하는 일이나 새벽에 뒷동산에 올라 약수 한 컵을 마시는 일. 이런 추억들은 죽을 때 까지는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 될 것이다.

얘기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른 것 같은데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이렇게 삶의 질(質)만 가지고 따지다 보니 전원주택은 전혀 투자가치가 없느냐하면 그렇지 않다! 농지(農地)를 사서 전원주택을 짓는 그 자체(自體)만으로도 투자가치는 급상승(急上昇)된다. 우리가 구입하는 토지는 대체적으로 농지나 임지일 경우가 많은데, 이런 토지들은 지목이 대지(垈地)인 땅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많이 저렴(低廉)하다.

그러므로 이 땅에 전원주택을 건축하게 되면 농지나 임지가 대지화(垈地化)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다른 것은 다 차치(且置)하고 이것 자체만으로도 재산의 증식 효과를 가지고 오지 않았는가! 더 더군다나 손해 볼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이렇게 건강을 위한 투자와 재산의 증식을 환하게 보여주는 투자라면 확실(確實)한 투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서두(序頭)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투기를 목적으로 한다면 전원주택을 선택하시는 것은 삼가시는 편이 좋을 것이다.


 둘째, “집도 너무 크면 짐이다.”

“우와! 저 집은 식구가 많은 집인가 보다!“ ”저렇게 큰 집을 짓는걸 보면.“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필자의 생각으로는 집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만큼 규모가 큰 집을 짓는 것을 흔히 본다. 온 식구가 다 와서 살 것처럼 1층, 2층에 60평 정도를 짓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단독주택의 경우는 아파트와 달라서 거의가 전용(專用) 면적(面積)이란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아파트 80평형 정도를 상상해 보시라! 얼마나 큰지! 커도 너무 크다! 전원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대개의 경우 두 식구가 사는 것이 보편적(普遍的)일 경우가 많다.

전원에서 오래 살다 보니 집을 크게 계획한 것에 대해서는 이해가 간다. 처음에는 같이 오겠다던 큰 아들네가 슬그머니 아이들 교육을 핑계 삼아 꽁무니를 빼고 안 따라왔고, 둘짼 애시 당초 그냥 콘도로만 쓸 생각이었으니까. 결국엔 아들, 손자, 며느리는 다 안 오고 늙은 노친네들만 내려왔기 때문인 경우도 있고, 건축을 하는데 건폐율이나 용적률을 맞추다보니 어쩔 수 없이 면적이 늘어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처음엔 자주 찾아오던 친지들이랑 친척들의 발걸음도 전원생활 1년쯤 지나면 뜸해 지고 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 큰집엔 머리 허연 두 양주(兩主)만 덩그렇게 남는다. 이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그래서 그런지 벽(壁)에는 커다란 거북이 껍데기도 와서 살고 있고, 또 호랑이 가죽도, 커다란 어항에는 눈이 툭 불거진 붕어 몇 마리도지느러미를 흔들며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한다. 심지어는 청둥오리의 박재까지도 같이 사는 것을 많이 본다.

그래도 쓸쓸할 것 같은 노인네들을 달래려고 멍멍이 몇 마리가 털을 휘날리며 노인네들 발에 채이면서까지 자식 노릇을 대신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달팽이의 집”을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달팽이의 집(껍데기)이 달팽이 알맹이보다 많이 크다고 가정해 보자. 먹이를 찾으려 움직이기도 버거울뿐더러 다른 놈들이 들어와 실례도 하고, 하물며 어떤 놈은 거기다 둥지를 트는 놈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 달팽이한테는 지금의 그 집이 꼭 맞는 집이다.

이렇게 하찮은 미물(微物)마저도 과욕(過慾)은 부리지 않거늘......... 우리도 달팽이의 지혜(智慧)(?)를 배워야 한다. 식구들이 많은 가족이라면 몰라도 집은 너무 커서는 안 된다는 말을 몇 번이고 강조하고 싶다. 그 많은 일을 누가 감당 하겠는가? 며칠만 그냥 두어 보라! 집 꼴이 어떻게 되는가를! 실내는 실내대로, 밖은 밖대로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잔디는 수북하게 자라있고, 잡초는 잔디보다 더 잘 자란다. 2층엔 언제 올라갔는지 먼지만 쾌쾌히 쌓여 있어 청소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겨울 난방비는 왜 이리 많이 드는지! 난방을 안 하면 배관(配管)들이 얼어 터질까봐 안 넣을 수도 없다. 아! 아! 너무 큰집이 원망(怨望)스럽다.


 셋째, “텃밭도 30평 정도면 충분하다.”

전문 영농인도 아닌 도시민들은 전원생활을 하려고 계획을 세울 때부터 텃밭에 대해 더러 욕심(慾心)을 내는 분이 있다. 도시민들의 전원생활에선 영농(營農)을 한다 해도 키우기 쉬운 밭작물이 대부분인데, 막 이주(移住)해 온 전원생활의 초보자들은 텃밭에 대한 욕심이 처음부터 대단해서 제법 큰 면적을 경작(耕作)하려고 시도(試圖)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그 영농이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힘이 드는 노동이라는 건 물론이고 농사에 숙달된 농민들처럼 시간 맞추어 씨 뿌리고, 약도 주고, 잡초도 뽑고, 거름도 주고, 잎도 쳐주고 하는 등의 일들을 잘 알지도 못하려니와 안다고 해도 때맞추어 다 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도 이와 다를 게 없다. 첫해엔 100평 정도를 고집하던 텃밭을 다음해엔 반(半)으로 줄이고 그 다음해엔 더 줄여야 했다. 도저히 해 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 솔직(率直)한 고백(告白)이다. 그렇게 시행착오(施行錯誤)를 거듭하다보니 필자의 힘으로는 30평 정도가 적당하다는 걸 알았다. 이것도 영농(?)을 시작한지 3년 정도가 흐른 뒤에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봄에는 상추, 숫갓, 케일, 고추, 가지, 부추........등의 채소들을 심지만 이것들이 자라나서 먹을 수 있을 때가 되면 한꺼번에 크기 때문에 결국엔 다른 사람들이나 동기간들에게 처분을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도 흐뭇한 보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다 뽑아 간 텅 빈 밭을 보면서 “무엇 하러 욕심을 냈는가?”를 후회한 적이 몇 번이나 있다. 그러면서도 다음 해가 되면 또 다시 마음은 변하고 만다. 힘만 닿는다면 많이 심어서 알고 지내는 친지들한테 골고루 다 나누어 주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풍부해 지는 것이 전원에 사는 사람들의 풍요(豊饒)로울 수밖에 없는 마음일 게다.


 넷째, “남이 만든 집이 나에게 잘 맞을 리 없다!

이것은 남의 옷이 나에게 안 맞는 이치(理致)와 다를 게 없다. 그 분들은 그 분들의 칫 수에 맞는 집을 지었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지역에서 남이 지어 놓은 전원주택을 고르기는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전원주택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매물(賣物)의 숫자가 많지 않고 개인 건축업자(일반 집장사)가 지은 집은 믿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대개는 주인이 직접 살려고 지었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시 이주(移住)하는 분들의 집을 고르는 것이 좋은 방법이긴 한데, 그런 집을 찾는 것도 쉽지 않고 매물자체도 많지 않다는 것이 흠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그런 집이 있다 손 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원주택을 구입할 때는 아파트를 구입할 때와는 많이 달라서 식구 수에 맞춰서 평형을 고르고, 구조를 선별하는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집의 구조뿐 아니라 외관(外觀)도 천태만상(千態萬象)이란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한다. 건축주의 가족의 수나, 취미 등으로 주택의 외모는 물론이고, 실내 구조가 각양각색(各樣各色)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너무나 부부 중심적으로 지어서 다른 식구들과는 생활하기가 어려운집. 식구는 적은데 쓸데도 없는 방의 숫자만 많은 집. 다른 구조는 다 조그마한데 거실만 너무 큰집. 땅의 넓이 보다 집만 덩그렇게 큰 집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하여튼 같은 건 하나도 없다. 나와는 동 떨어진 그런 집들이 많다는 거다. 구조는 그렇다 손 치더라도 인테리어는 더욱더 나와는 이질감(異質感)이 나는 그런 집들이 많다. 결국 이런 연유(緣由)로 전원주택을 내 집으로 맞이하기 위해선 나에게 맞게 새로 집을 짓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다섯째, “토지의 가격은 어떻게 형성(形成)되는가?”

보통 의뢰인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전원주택을 지으려는데 땅 값이 얼마예요?”하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너무나 광범위(廣範圍)한 질문이라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전원주택을 지을 땅도 종류(種類)가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류마다 값도 많이 다르다. 어떻게 그냥 시장에서 파는 물건 값 같이 쉽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땅값을 책정하는 몇 가지 요건(要件)들을 우선 말씀드릴까 한다. 토지의 가격(價格)산정(算定)은 “공법(公法)적인 요인”과 “자연(自然)적인 요인”이 복합적(複合的)으로 작용해 결정된다고 보겠다.

물론 여기에 경기의 좋고 나쁨, 또 정치적인 요인이나, 국제적인 정세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독자들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분단국(分斷國)에선 북한의 태도(態度) 여하(如何)가 우리의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至大)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란다. 정치나 경제가 미치는 영향이 가장 민감(敏感)하게 작용하는 곳이 부동산 시장이라 하겠다.

공법적인 요인
1). 도시지역인가? 도시지역 밖(관리지역, 옛 준 농림지역)인가?
2). 도시지역이라면 일반주거지역인가? 녹지지역인가? 녹지지역이라면 자연녹지 지역인가? 생산녹지 지역인가?
3). 지목은 무엇인가? 대지인가? 전인가? 답인가? 임인가? 또 잡종지인가? 이루 다 열거(列擧) 할 수가 없다.

자연적인 요인
1).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2). 접근성은 어떤가? 주변도시와의 접근성은? 최소2차선 도로와의 접근성은? 승용차로서의 접근성은? 대중교통으로의 접근성은?
3).주위환경은 어떤가? 주위에 혐오시설이나 주거를 방해하는 어떤 것이 있는가? 아니면 들어설 예정인가? 어떻게 개발되어가고 있는가?
4).방향은 어떤가?
5).경관은 좋은가?

이외에도
소유권이전은 잘 될 수 있는가? 건축을 하기 위한 인, 허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도시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규모(150평에서250평 사이)인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선 303평(1000㎡)이하인가? 이상인가? 원주민과 외지인의 비율은 어떤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아직도 배타적인 원주민들이 있기에 그들이 많이 거주하는 구(舊) 마을엔 외지인들이 땅 사기를 꺼려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과 가까운 근교(近郊)에선 찾아보기가 많이 힘들어졌지만 아직도 다 쓸어져가는 집이 더러 눈에 띤다. 의뢰인들은 사무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저기, 다 쓸어져 가는 집하나 사 주세요!” 하는 분이 많이 계신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구옥(舊屋)이라 아주 싼 물건으로 오해(誤解)하시는 분이 많다. 그러나 그 구옥은 말 그대로 예전부터 있었던 집이라 그 땅의 지목이 “대지(垈地)”라는 점에 유의(留意)하시기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물론 값도 쌀 수 없다는 얘기다. 지목이 “대지“라는 것은 그 만큼 집을 짓는데 용이(容易)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그렇다면, 전원주택을 싸게 지을 수 있는 땅은 어떤 땅인가?

우선 전원주택을 지을 땅을 말하기 전에 전원주택을 마련하는 방법부터 집고 넘어가기로 하자. 그 방법을 대별(大別)하면 땅을 사서 짓는 방법과 지어 놓은 주택을 구입하는 방법으로 양분(兩分)할 수 있겠다. 요즘 같으면 전원주택 부지를 전문으로 개발하여 분양하는 전문 업체에서 구입하여 짓는 방법도 있고, 또 완전히 지어 놓은 업체의 전원주택을 구입 할 수도 있다. 물론 개인들이 지어 놓은 집을 바로 구입 할 수도 있다. 농지(관리지역)를 사서 허가절차를 거쳐서 집을 짓는 방법도 있고, 다 쓸어져 가는 옛날 집을 사서 리모델링해서 사는 방법도 있고, 농업용 창고나 심지어 축사를 개조하여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전원주택을 싸게 지을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농지(農地)나 임지(林地)를 구입하여 전원주택을 건축하는 방법이 제일 보편화(普遍化)된 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농지나 임지는 다른 토지에 비해 값이 싸다는 장점 대신에 땅의 규모가 너무 크거나 모든 인, 허가의 번거로움을 감내(堪耐)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고생한 만큼 금전적(金錢的)인 면에선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어쩌면 많은 인내(忍耐)를 감수(甘受)해야 한다는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농지를 구입할 때에는 논보다는 밭을 사는 게 유리하다. 논은 대부분 낮은 곳이나 평지(平地)에 위치하고 있어, 집을 지으려면 성토(盛土)작업(作業)을 수반(隨伴)해야 하기 때문이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뒤편으론 인접한 야산이 있는 곳이라면 최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조심하고 명심해야할 부분이 있다. 전원주택을 지을 부지를 조금 싸게 구입했다고 해서 전원주택 자체를 싸게 구입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구입한 땅에 건축을 시작 할 때까지 들어갈 돈이 얼마인가를 잘 따져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땅들은 절토를, 성토를, 축대를, 옹벽 등을 설치해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들어가는 토목공사비가 만만치 않다. 이런 돈들이 추가로 들어가는 땅이라면 조금 비싸더라도 애초에 그런 비용이 덜 들어가는 땅으로 선택하는 편이 훨씬 나을 수 있다.


 일곱째, 이젠 도시민도 농지(農地)를 소유 할 수 있다.

정부는 2003년 1월 1일부로 “농지법 개정안”을 발효시켜 도시민에게도 일정규모 이하의 농지를 소유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지금까지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법칙”이라 해서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絶對)로 농지를 소유 할 수 없게 했었는데 그 법을 조금 수정하여 이젠 도시민에게도 “주말농장 용”이란 명칭으로 1000㎡(약303평)미만의 농지를 소유하게 한 것이다.

여기에는 세계 각국에서 처 들어오는 무역전쟁을 이길 수 없을 때를 대비하여 농민들에게 농토를 매매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티어주어서 농민들의 원성(怨聲)을 조금이라도 피해보자는 당국의 얄팍한 속셈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 개인적으로 본다면 농민(農民)들을 위해서나,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서나 아주 고무(鼓舞)적인 변화(變化)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더구나 금년부터는 농가가 폐업을 희망할 경우 폐업보상금까지 지급 하겠다고 하니 지금까지의 농지(農地)규제(規制)는 많이 풀릴 전망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문제가 많다. 규제를 많이 풀어 놓은 것 같지만 실제는 풀린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 손엔 사탕을 들고 또 다른 한 손엔 시퍼런 칼을 들고 있는 그런 형상이다. 요즘 연일 매스컴에 쏟아져 나오는 토지 정책들은 도저히 갈피(葛皮)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기 짝이 없다. 그럼 우선 확실하게 풀린 부분에 대해서만 얘기해 보기로 한다. 예의 말씀 드렸듯이 도시민들의 주말농장용으로 약303평 미만의 농지를 구입할 수 있게 한 것이 확실하게 풀린 부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규모의 농지는 거의 없기 때문에 빛깔만 요란한, 그냥 생색(生色)만 내는 그런 정책에 지나지 않다고 본다. 논밭이 한마지기 정도의 규모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래서 규모가 조금 큰 땅을 외지인들이 사는 방법은 여럿이 어울려 사는 방법이 있지만, 그것도 소유권이전을 하는데 그리 만만치 않다. 그러나 어렵게라도 사 둘 수만 있다면 다음 날 전원주택을 짓는데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처음엔 주말농장으로 이용하다가 시간이 되어 전원주택을 짓고 싶으면 그 때에 가서 모든 구비(具備)조건(條件)을 갖추면 되지 않겠는가?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중에 농림부장관이 아주 중요한 발표를 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이르면 내년부터 도시민의 주말농장용 농지의 구입이 900평까지 허용되고, 농지에 집이나 공장을 지을 때 면적제한을 폐지한다는 것이다. 결국 쌀 시장 개방과 더불어 농민들을 달래려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고, 그래서 농지를 다른 용도로 이용 할 수 있게 함으로서, 도시자본을 농지로 끌어들이고 나아가서는 농민들의 일자리 창출(創出)을 돕겠다는 취지(趣旨) 일게다. 물론 이런 규제를 푸는 것과 농지의 전용과정에서 부동산 투기와 마구잡이식 개발이 우려(憂慮)되지만 죽어가는 농지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니 숨은 뜻이 무엇이던 우선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러면 무얼 하나?

온통 수도권은 “토지거래 허가지역”이란 걸로 묶여 있고 또 토지거래를 받아야 할 면적도 지금보다 반으로 더 줄인다니 정말 빛 좋은 개살구 정책이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정책인 것을 당국은 모르는 걸까? 차제(此際)에 정부에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면 ,“현지인”이 아니더라도 조그마한 규모의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은 도시민들에게 전원주택을 가질 수 있는 법적인 장치를 마련하여 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조금 쉽게 전원주택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으면 한다. 물론 이것이 “투기”나 “난 개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前提)로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선행(先行)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며칠 전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 97년부터 이 고장에 사는 C씨는 으리으리하게 큰 집에 농토도 상당부분 가지고 있고,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그런 분이다. 그런 C씨가 얼마 전 부근에 있는 농지를 구입했다. 물론 “토지거래허가“면적이 초과되어 허가관청에 허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 허가는 반려(伴侶)되고 말았다. 두 자녀들이 아직 어리고 안 사람 되시는 분은 시골생활이 싫다고 하여 그동안 주-욱 C씨 혼자서 이곳과 서울살림을 병행(竝行)하고 살았었는데 가족이 함께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주민등록이 같이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 실제 생활하고 있고 재산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현지인“이 아니라는 구실을 달아 ”토지거래허가“를 얻을 수 없었으니 이 얼마나 모순(矛盾)된 행정인가? 정말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이다. 또 이해 당사자는 얼마나 금전적인 피해를 입겠는가? 상상을 해 보라! 결국 “토지거래허가”는 이 지역에서 가족모두가 6개월 이상 거주하지 않으면 득(得)할 수 없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으니 오호! 통재라!


 여덟째, “동호인 주택이 어려운 까닭은?”

필자의 업소엔 만8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 없이 많은 분들이 동호인주택을 지을 목적으로 방문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필자는 동호인 주택을 짓는 Team을 볼 수가 없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 학교 동창들, 동문들, 직업이 같은 분들, 직장이 같은 분들, 형제, 자매들, 친목회 회원들 등등 마음이 맞는 사람들 끼리, 취미가 맞는 사람들 끼리, 지금도 이웃에서 같이 살지만, 전원으로 가서도 같이 살자고 모인 이웃들.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동호인 주택을 짓겠다고 찾아 왔었는데 지금까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라도 동호인 주택을 지었다는 소문을 들어 보기가 힘들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고 했잖은가? 입지 선정에서부터 티격, 태격이다. 같이 모이긴 했어도 성격들은 백인백색(百人百色)이기 때문에 쉽게 의견의 통일을 가져 올 수도 없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자금사정(資金事情)도 모두가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일관성(一貫性)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추진력(推進力) 있고, 실력(實力) 있는 사람이 이 모든 일들을 기획(企劃)하고, 추진(推進)해야 되는데, 전문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거니와 시간적으로 많은 여유(餘裕)를 가진 사람들은 더욱 없기 때문이다. 처음엔 여러 가지 토지의 규제(規制) 때문에, 산림의 형질변경이나 농지의 전용허가가 까다로워서, 모든 일(허가, 건축 등)을 같이 시작해야하는 번거로움이, 결국은 포기 하게 하는 줄로만 생각했었다. 물론 그런 것들도 동호인 주택이 어려운 까닭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런 것 들 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는 아주 간단한 곳에 있었다. 어렵게 입지선정까지 마치고 부지의 계약을 앞둔 시점에서 벌어진다. 시골에서 주택을 지을 때는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산림은 형질변경을, 농지는 전용허가(개발행위허가)를 득하여야 하는데, 이 땅들의 면적이 들쑥날쑥 고르지 못하다보니 큰 것은 잘라야 하고, 작은 것은 붙여야 하기도 하고, 부지의 높고 낮음이 다르므로 위, 아래로 또는 옆으로 필지가 나누어지게 되어서 이런 작업을 하는 자체도 어렵거니와, 억지로 작업이 끝날 시점이면,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필지와 나쁜 필지로 구분되게 마련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게 친하던, 죽을 때 까지 같이 살자고, 옹기종기 모여서 천년만년(千年萬年)살자고 해놓고 이 문제에 봉착(逢着)하면 누구라도 일보(一步)의 양보가 없는 것이 우리 민족(民族)의 속성(俗性)인가 보다. 돈 많은 친구는 돈 많은 친구대로 좋은 부지를 갖고 싶어 하고,-돈을 좀 더 주더라도_ 돈 없는 친구는 오기(傲氣)로 라도 안 빼앗기려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들의 본성(本性)은 나타나게 마련이고 결국 어떤 모임은 이 일로 사이가 벌어져 모임마저도 깨어지고 마는 모습을 씁쓸하게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모든 인, 허가와 건축을 거의 같은 시기(時期)에 해야 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모든 사정들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서 시기를 맞춰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가 생각하기엔, 동호인 주택은 어느 한 사람이 주도(主導)하여 한 명씩 점차적으로 나누어 갖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업자들이 개발한 단지에 가서 서로 서로 마음에 맞는 부지를 고르는 방법이 현명(賢明)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홉째, “전용허가(개발행위허가)”나 “형질변경허가”를 득한 땅이라고 무조건(無條件) 좋은 건 아니다

농지나 임지가 많은 규제를 받으면서 전용허가(개발행위)나 형질변경허가를 득한 부지(敷地)들이 가격이 치솟았다고 매스컴에서 오르내리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팔당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 1권역에선 더욱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어 보자.
“갑”(매도인)이 득한 허가(개발행위허가 또는 형질변경)를 “을”(매수인)이 바로 이전(移轉) 할 수 없다는데 그 문제점이 있다. “갑”이 득(得)한 허가를 “을”이 사용하기 위해선 “受 허가자 명의변경”이란 절차(節次)를 거쳐야 하는데, 이것도 처음 “갑”이 허가를 득할 때와 꼭 같은 과정(過程)을 밟아야만 한다. 우리 생각으로는 모든 자격(資格)과 조건(條件)이 맞는다면 그냥 검토(檢討)하여 명의(名義)를 이전(移轉)해 주는 것이 허가를 이전 하려는 사람이나 이 일을 처리하는 담당 공무원들의 업무를 덜어 줄 수 있는 일인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리고 가장 까다로운 것은 허가를 이전 받는 사람은 “현지인”이라는 조건이 붙는데 이 “현지인”이란 조건이 아주 모순(矛盾)투성이 라는 것이고, 전원주택을 원하는 분들 중의 90%이상이 “현지인”의 범주에 속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深刻性)이 있다.

그렇다면 “갑”의 이름으로 건축을 완료(完了)하고 등기를 필(畢)하고 다시 양도(讓渡)하는 방식으로 “을”에게 소유권이전을 해야 하는데 중복된 등기료(登記料), 파생(派生)될 수 있는 양도소득세는 어느 쪽에서 부담(負擔)할 것인가? 계약 당시에 이런 문제들을 자세하게 짚어 놓지 않으면 감당(勘當)하기 어려운 큰 문제를 야기(惹起)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들이 중개업소 마다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물론 어떻게든 마무리 되고 있긴 하지만.............

금전적(金錢的)인 고생은 물론 정신적(精神的)인 피로(疲勞)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으리 만큼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전원주택을 빨리 건축하고자 할 때는 부득이하게 기(旣) 허가를 득한 물건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허가를 득한 물건을 구입 할 때는 이런 방법을 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얼마간의 편법(便法)이 가미(加味)되지만 안전하게 하려면 그래도 이 방법이 가장 나은 방법이라 소개 해 본다.

우선 계약과 동시에 주민등록 이전(移轉)을 현지(現地)에 하여야 한다. 집도 없는데 어디로 주민등록을 이전하겠느냐고 반문(反問) 한다면 필자도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위장전입”이란 불법적(不法的)인 것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허기야 우리나라 고관대작(高官大爵)들도 다 “위장 전입”으로 치부(致富)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라고 못 할리 없지만 준법정신(遵法精神)이 투철한 우리 민초(民草)들에겐 여간 꺼림직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다 허가를 담당한 공무원들이 실제(實際)로 거주(居住)하는가를 실사(實事) 한다고 하니 겁(怯)까지 왈칵 난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행정(行政)의 모순(矛盾)의 일면(一面)을 볼 수 있다. 아직은 땅도 없고, 집은 더욱 더 없는데 주민등록을 옮기고 실제로 거주하여야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없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물론 이것이 모두 투기(投機)를 방지하고, 난개발(難開發)을 막겠다는 의도(意圖)에서 나온 졸속(拙速) 행정이지만 악법(惡法)도 법이니 우리는 지켜야 한다. 주민등록 전입신고는 하여야하고 위장전입은 불법이라고 하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필자도 여기에서 자세하게 쓸 수 없는 것을 양해(諒解)해 주시길 바란다. 그러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 뜻이 있으면 길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잔금(殘金) 일을 될 수 있는 대로 길게 잡아 계약하는 것이 유리(有利)하다. 보통은 한달정도의 계약기간으로 모든 거래는 끝나는데 조금이라도 날짜를 늦춰서 잔금을 치르는 것이 시간을 버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래는 끝났지만 소유권(所有權) 이전 등의 행정적(行政的)인 절차(節次)가 많이 남아 있으므로 될 수 있는 데로 그 사이를 좁히려는데 의미가 있다. 물론 거래를 알선한 중개업자가 가운데서 중재(仲裁)를 하니까 큰 염려는 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만사(萬事) 불여(不如) 튼튼이라 했다. 돌다리도 두드려 가면서 건너야 실수(失手)가 없다.

그리고 잔금을 치른 후 건축공사를 시작하라. 물론 매도인의 양해(諒解)가 이루어 진다면 잔금 전에도 공사를 시작 할 수 있겠지만, 잔금을 받지 않고는 도저히 먼저 건축을 하는 것을 용납(容納) 안하는 매도인도 있을 수 있으니 계약 시에 짚어 두어야 한다. 이렇게 공사를 하다보면 6개월이란 거주(居住) 기간(期間)이 넘어 “현지인”으로의 자격(資格)을 갖추게 된다. 이때 “受 허가 자 명의변경”을 하면 된다. 아무 하자(瑕疵)가 없다고 사료되면 약20일 정도면 허가 자 명의변경을 받을 수 있고 그 허가증을 첨부(添附)하여 내 명의로 토지의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고 다시 건축 준공을 하여 등기를 필(畢)하는 방법이 있다.

여기에서 조심하여야 할 것은 잔금을 치른 후에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모든 (허가 자 명의변경이나 소유권이전등기) 정리가 되므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매도인에게 받아둘 서류 및 취해야할 조치(措置)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장구(長久)한 설명을 드렸지만 읽으시는 분들은 잘 이해되지 않으시리라고 생각된다. 하여튼 이렇게 까다롭다는 사실만을 주지(周知)하시라는 뜻에서 장황(張皇)한 설명을 드리는 것이니 허가를 득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잘 따져 본 후에 계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열째, “농가주택(구옥, 폐가)의 리모델링”

얼마 전 다 쓸어져 가는 구옥 한 채를 依賴人에게 소개했다. 물론 그 의뢰인은 처음부터 그런 집을 원 했었다. 누가보아도 을씨년스러웠던 그 집. 여러 사람들이 보았건만 대책이 없던 그 집. 이렇게 옛날에 지어 지금은 낡아버린, 그냥 바람만 조금 세게 불어도 쓸어 질 것 같아 보였던 집을 보면 보통의 의뢰인들이면 거의 다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번의 의뢰인은 달랐다. 본인이 꼭 원하던 물건이라는 거다.

그 동안 여러 의뢰인에게 이 집은 뼈대가 튼튼하여 리모델링만하면 얼마든지 마음에 드는 집으로 변신(變身)시킬 수 있다는 얘기를 수(數)도 없이 했건만 도무지 용기(勇氣)가 안 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요번 의뢰인은 쾌(快)히 구입하고자 하는 의사를 표시했고 가격도 적당하다고하여 쉽게 거래가 성립되었다. 그리고 이내 공사를 시작했고, 벽채가 헐리고, 용마루와 기둥만 남았다. 너무 낮은 옛집을 그대로 뼈대를 키워 요즘 주택의 키로 변신시켰고, 차양(遮陽)이 있던 곳에 버팀목을 써서 평수도 늘렸다. 조그마한 창문을 큰 창문으로 바꾸었고, 지붕에는 예쁜 기와를 올렸다. 지금은 이 집이 얼마나 예쁜 집으로 변신을 했는가는 아는 사람만이 아는 일이다.

이렇게 너무 낡아서 쓸모없어 보이는 시골집을 고쳐 전원생활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새로 지은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풋풋한 분위기와 투박한 질감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집이 없는 그냥 대지 값만을 쳐서 주고 샀으니 땅 값은 같다고 치더라도 집을 짓는데 평당 300만원은 든다고 생각하면 30평짜리 집이면 9000만원인데 단돈 3000만원에 고풍(古風)스럽고 아담한 흙집을 완성했다. 가장 중요한 집의 뼈대를 그냥 사용했기 때문이다. 옛것을 버리지 않고 살려서 쓰는 지혜(智慧)! 얼마나 멋진 생각이며, 얼마나 값진 투자인가? 사람의 머리는 쓸수록 빛이 나나 보다. 그래서 누가 “용불용설(用不用說)”을 제창 했던가?!


 열한째, “토지거래 허가제”와 “규제법”들.

말 그대로 “규제법(規制法)”이란 “.......하면 안 된다.”는 부정적(否定的)인 의미의 말이다. 필자도 자세히 모르던 토지규제법이 참여정부의 “토지규제를 과감히 풀겠다”는 정부의 발표와 함께 각 부처로부터 발표한 “토지 규제법”의 종류는 정말 다양했다. 건설교통부가 28개, 환경부가 18개, 산업자원부가 15개, 행정자치부, 농림부가 각각 10개, 국방부, 해양수산부가 각각 8개 ........등등 모두 112개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나 놀랐다. 그러나 더욱 놀랄 사실은 이 법이 요술(?)을 부리면 자그마치 315개 정도의 중복된 규제로 둔갑(遁甲)을 한다는 말이다. 때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과감히 푼다고 하니 정말 반갑다.

우리의 어린 시절 어른들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물가에 가지마라!” “높은 산에도 가지마라!” “나무에 오르지 마라!” 등등 우리의 부모님들은 “이건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식으로 우리를 가르치셨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토지에 관한 법들이 그 때의 부모님들을 꼭 닮았다. 무엇을 해준다는 법이 아니라 이래서 저래서 못해 준다는 법이다. 모두가 네가티브한 법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바뀐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이건 여기까지는 되고 저건 저기까지는 된다”는 식으로 예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으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그래도 반갑기 그지없다.

물론 요즘 신세대 부모들같이 무엇이던지 다 O.K해서 아이들을 버릇없는, 공중도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하도 어렵고 가지 수가 많은 규제법들 때문에 정작 땅을 갖고 있는 땅주인도 자기 땅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부는 작년에 천정부지로 오르는 아파트의 값을 잡기위하여 투기지역, 투기과열지역을 정하고, 투기가 예상 되는 지역을 미리 공개하는 등으로 규제법을 발표하고 또 토지로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하여 토지에 대하여는 “토지 거래 허가 지역”이라는 것으로 발을 묶어 놓았다. 말 그대로 토지를 거래하는데 나라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 허가라는 것은 결국은 땅을 사는 목적이 투기냐? 아니냐? 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판단의 기준이 아주 애매모호(曖昧模糊)하다.

현지(같은 시, 군, 구)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이 땅을 살 때는 모두가 투기로 간주하고 “토지거래허가”자체를 안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모순 덩어리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전원주택 한 채를 지으려고 땅을 사는데 투기는 무슨 투기란 말인가! “자라보고 놀란 사람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식으로 정부에선 서울의 아파트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 오르니 수도권의 땅에도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미리 방패막이를 한 것이다.

“현지거주“나 ”현지인“에 대해선 뒤에 설명하기로 하고 ”토지거래허가지역“은 어디 어디인가를 탐구해 보기로 한다. 이 “토지 거래 허가 지역”은 수도권에서는 경기도 일원이 거의 포함되는데 더러 빠진 곳도 있다.“수도권”이란 서울특별시와 대통령령이 정하는 그 주변지역을 말한다고 되어 있는데, 그 주변지역은 인천광역시 및 경기도 일원으로 되어있다. 여기에서 토지거래 허가지역에서 빠진 곳은 “남양주시의 일부” “용인시의 일부” “안성시의 일부”와 처음에 같이 지정되었다가 풀린 “양평군”이 있다. 그러나 “토지거래허가지역”에서도 예외가 있다. 말하자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땅도 있다는 말이다.

주거지역- 180㎡(54평) 상업지역- 200㎡(60평) 공업지역-660㎡(200평) 녹지지역- 200㎡(60평) 농지 - 1,000㎡(303평) 임지- 2,000㎡(605평) 이하는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지만 어디에서 요런 조그만 자투리땅을 찾을 수 있겠는가? 거기에다 며칠 전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앞으로 허가를 받아야 살 수 있는 땅의 면적을 지금의 반(半)으로 줄이겠다니 또 기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반이라면 주거지역 27평, 상업지역 30평....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정책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설명에서 보신 바와 같이 농지(관리지역)를 구입하여 전용허가 (개발행위허가)를 받아 전원주택을 짓는 것이 가장 싸게 지을 수 있는 방법인데, 303평 이상의 토지는 “현지인”이 아니면 토지거래를 허가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不可能)하다. 이것은 곧 소유권이전 등기를 함으로서 얻어지는 권리를 얻지 못한다는 얘기와 같다. 다시 말하면 토지의 거래 자체를 막아놓은 셈이다.

그러나 현지인이라면 얼마든지 토지를 구입 할 수 있는데 “현지인“이란 용어가 너무나 난해(難解)하고, 또 중요해서 여기에 옮겨 적을까 한다. 이 용어는 환경부고시 2000-120호에 의한 것인데, 여기서 “현지인”이라 함은 “세대주를 포함한 세대 원 전원(全員)이 당해(當該)지역(地域)에 주민등록이 되어있고 실제(實際)로 거주(居住)하고 있는 자를 말하고,“

“세대(世帶) 원(員)”이라 함은 “세대주와 동일(同一)한 세대별 주민등록표상에 있지 아니한 배우자와 미혼인 직계(直系)비속(卑屬)을 포함하되, 다만 세대주 또는 세대 원 중 취학, 질병요양, 근무지이전 또는 사업상 형편 등 불가피(不可避)한 사유(事由)로 인하여 당해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자만 제외(除外)된다.“ 고 되어있다. 참으로 어려운 단어 들이고 어떻게 보면 융통성이 많은 것 같이 보인다. 누구나 불가피한 사정은 있게 마련인데 그것을 해석하는 담당 공무원의 말씀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다.

환경부의 고시(告示)는 팔당 상수원 특별대책지역 1권역에서는 건축허가 또는 건축허가를 위한 개발행위 허가 등의 인. 허가를 신청 할 경우에 많이 적용(適用)되는 아주 무시무시한 법이다. 대체로 우리가 건축을 하려 했을 때 적용되는 법이 어마 어마하게 많은데 이곳 팔당 상수원 특별대책지역1권역에서의 규제법들은 다음과 같다.

한번 나열해 보자!
우선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있고, 그 다음이 수도권 정비 계획법으로 큰 틀이 마련되면, 건축법, 농지법, 환경정책기본법,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그 외에 팔당 상수원 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의 고시들, (환경부에서 정한 여러 가지가 있음) 상수도보호구역법, 한강수계 법, 수변구역에 관한 법, 개발 제한 구역 법 등등 중개업을 전문으로 하는 필자도 솔직히 다 모를 정도로 많이 있다. 이런 규제법들이 전원주택을 짓는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는 아직 지어보지 못한 분들은 도저히 이해하실 수가 없겠지만, 지어본 분들이 “다시는 안 짓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헤아려 짐작이 가시리라 믿는다. 얼마나 많은 행정적인 까다로움이 있었는가를.

여기서 ‘상수도 보호구역법“과 자주 혼돈되는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에 대하여 언급(言及)하지 않을 수 없다. “상수도 보호구역법“은 ”수도법”에 근거를 두고 대부분 “개발제한구역”과 중복 지정되어 있어 실제로 현지인이 이축권이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건축을 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러나 “ 상수원 수질 보전 특별 대책 지역”은 “환경 정책 기본법“에 의거하여 고시된 것으로서 넓은 의미로서의 제약은 받지만 전원주택을 짓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참고로 “팔당 상수원 수질 보전 특별 대책 지역”에는 “1권역”과 “2권역”이 있는데 여기에선 “1권역”이 어디인가를 살펴보자!

팔당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 1권역

남양주시 화도읍 (가곡리 제외), 조안면
여주군 능서면 (구양리. 번도리. 내양리. 백석리. 왕대리), 흥천면,
금사면, 대신면, 산북면.
양평군 양평읍, 옥천면, 강상면, 강하면, 서종면, 양서면, 개군면.
광주시 광주읍, 오포면, 초월면, 퇴촌면, 남종면, 중부면, 실촌면,
도척면.
가평군 설악면(천안리. 방일리. 가일리), 외서면(하천리. 청평리.
대성리. 삼회리)
용인시 모현면

지금 이 지역은 특수(特殊)한 몇 곳을 빼고는 토지 거래 자체를 허가 받아야하는 것 (소유권 이전)외에도 집을 지으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허기야 이렇게 규제가 많기에 청정(淸淨)지역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만약 여기에 이런 규제들이 없었다면 벌써 “자연보전권역”은 난 개발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러나 필자가 달포 전에 직접 겪었던 씁쓸한 경험담(?)을 소개 안 할 수 없어서 여기에 옮기려고 한다. 그것은 이만큼 어려운 일도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함이다.

얼마 전 조그마한 상가(商家)를 하나 지으려고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그런데 현지인의 요건(要件)에 안 맞는다고 서류 보완 통보를 받았다. 이유인 즉 필자의 두 아들이 현지에 같이 거주하지 않아 “현지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으니 왜 같이 살지 않는가를 복명(復命)하는 증빙서류를 보완해 제출하라는 것이다.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일을 원만히 하기 위해서 관련부서에서 원하는 대로 두 아들의 재직증명서를 첨부하기로 했는데 불행하게도 작은 놈은 작년 봄 유학을 가느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지나간 재직증명서를 제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관계부서는 엄격했다. 지금은 취업준비생으로 다니지도 않는 직장의 현재의 재직증명서를 첨부(添附)해야 된다는 것이다. 전후 사정을 다 복명하고 충분히 작년의 재직증명서(在職證明書)로도 가족이 떨어져 사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느냐고 반문(反問) 했으나 막 무가내였다. 필자는 12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올 때부터 우리 두 아이들은 서울에 그냥 있어야만 했다. 학교 문제로... 그러다가 군복무로, 또 취업으로..... 그러다 보니 지금 나이가 만으로도 29, 30세 이다.

“결혼 안한 자녀들은 나이가 성인이 되어도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란 질문엔 담당자들도 머뭇거리면서도 환경부고시에 따를 뿐이라는 것이다. 법대로 하라는 식이다. 필자는 내 이름으로 건축허가를 내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기 싫었다. 건축허가를 얻는 일보다 우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싸움(?)을 시작 했다.

우리 시에선 많은 얘기를 들었으므로 관계부처인 환경부로 질의를 했다. 그러나 어렵게 한 질의에 학수고대(鶴首苦待) 기다리던 답장은 너무나 간단했다. “2003년 4월 며칠자 민원 몇 호를 참조 하시오”였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어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참조하라는 곳엔 전에 말씀드린바와 같은 환경부고시2000-120호의 내용만이 수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민원인들이 원하는 것이 이런 답변이 아니라는 것도 담당 공무원들은 잘 알고 있을 텐데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소신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그런 자리에 앉혀 놓고 일을 할까? 참을 수 없는 분노보다는 참으로 한심한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은 “국민고충 처리 위원회”에 질의(質疑) 중이다.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처리 중“이라는 단어만 뜰 뿐이지만 언젠가는 정말 양심 있는 담당자의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렇게 상식(常識)으론 풀이가 안 되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전원주택을 짓는데도 이 범주(範疇)에서 벋어 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셔야 한다.

* 이 글을 쓰던 중 “국민고충처리위원회”로부터 답변이 왔다. 그러나 그 답변은 “혹시나 했던 것이 역시나”로 바뀌고 말았다. 우리 같은 소시민(小市民)이 관(官)을 상대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따져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만을 재확인 시켜주었을 뿐이다. 실망 또 실망이지만 어떻게든 이렇게 그냥 물러서진 않겠다. 다음은 “신문고”를 두드릴 차례다. 만약 그것도 안 된다면 “행정소송”을 제기해서라도 꼭 바로잡겠다는 생각뿐이다. “악법(惡法)도 법(法)“이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아는 일이지만 그것이 악법이라는 것을 알고도 바로 고치지 않는 행정관청이 원망스러워서라도 그냥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열두째, “시골에서 살려면!”

1). 다른 사람의 마음을 두드려라!

내 마음을 두드려 주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시골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려라! “내 마음을 먼저 열어라“는 말 대신 필자는 ”열고만 있지 말고, 직접 가서 두드려라” 라고 외치고 싶다. 전원에 와서 생활을 시작하다보면 예전부터 그곳에 살던 분들의 살가운 정(情)을 느낄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배타적(排他的)임을 금새 알 수 있다. 지금 와선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얘기를 할 수 있는 이곳 원주민(단어 표현이 좀 이상 한 것 같지만 읽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현지인 대신 이 단어를 쓴다.)의 얘기를 들어보면 도시 사람들한테 너무 많이 속아서 그렇게 무뚝뚝해 졌단다.

무엇이든 나누고 싶어 하고, 거들고 싶어 하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을 도시 사람들이 많이도 괴롭혔나 보다. 최소한 이 곳 사람들이 느끼기엔 도시에서 온 사람들을 좋은 눈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저리도 마음의 문을 안 여는걸 보면...... 사실 무뚝뚝하단 표현은 좀 나은 표현이다. 아주 냉정하다고나 할까? 아니면 건방지다고나 할까? 사실 말투 자체가 위, 아래가 없는 말투고, 외모로 봐서 나이 차이가 비슷하게 느껴지면 그냥 맞먹고 놀자는 투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처음엔 무척이나 당황(唐惶)스럽다 못해 황당하기 까지 했다. 옛날에는 순박(淳朴)하고 정(情)이 많았던 시골 사람들이었다는데 지금은 그 상황이 많이 다르다. 고도로 발달된 매스미디어는 도농(都農)간의 격차(格差)를 좁히는 구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시골 사람들은 도시인에 비해 때가 묻지 않았다고 생각하다가 실제로 겪어본 시골 사람들의 배타적이며, 도시인들 뺨칠 정도로 똑똑한 것에 많이들 놀라곤 한다. 아니! 시골 사람들이 똑똑하고 아는 게 많다 기 보다는 도시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이라고 무시(無視)해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나 부동산과 관계된 일에 대해선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다. 최소한 도시인들 보다는 경험이 많기 때문에 부동산과 관계되는 일에 대해선 말조심, 입 조심하라고 당부 드리고 싶다. 알아도 모르는 척, 조심하시고 그 분들에게 한 수 배운다는 마음으로 임해 주시길 바란다. 또 도시인들은 대체적으로 사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 생활한 사람들에 비해 시골사람들은 비사교적이고 약간은 폐쇄적(閉鎖的)인 것도 사실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필자도 처음 내려왔을 때, 보는 사람마다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네 보려고 여러 번 노력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반응은 “왠 놈이 인사를 하는 거야?” 식으로 의아스런 표정들뿐이었다. 나이가 한 참이나 적은 사람들한테도 얼마나 많고 깍듯한 인사를 했던가!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서로 위, 아래를 찾고, 허심탄회(虛心坦懷)한 사이가 되었다. 다음은 필자가 이곳에 처음으로 이주했을 당시의 대화 내용의 일례이다. 부근에 사는 아저씨께 “고추는 언제 심으면 되죠?“하고 물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남이 심을 때 심어!“가 그 대답이었다. “남이 똥 장군 지면 너도 지라”는 그런 뜻일 거라는 건 알겠지만, 그리 기분 좋은 답변(答辯)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오래 살다 보니까 그 말뜻을 통감(痛感)하게 되었다. 그 말뜻을 다시 한번 잘 음미(吟味)해 보자!

얼마나 함축성(含蓄性) 있는 대답인가! 고추는 몇 월 며칠쯤에 심으라고는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어떨 땐 기후 탓으로 며칠 차이가 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경험 있는 우리가 심을 때를 눈 여겨 보고 있다가 심으라는 그런 뜻이었을 텐데, 그 때는 무척이나 불쾌(不快)하기까지 했던 게 사실이다. 시골 사람들은 책임지는 말을 잘 하려들지 않는다. 공연히 안 해도 될 말을 했다가 쓸데없는 구설수에 휘말릴 것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그럴게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지나다 보니 “너는 너!” “나는 나!” 서로가 시큰둥하게 생각했지만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심중(心中)을 조금씩 알게 되고부터는, 도타운 정(情)으로 변해갔다. 나중에 온 사람들이 이 고장에 대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먼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한 발작 닥아 갈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낮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하겠다.

2).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아라!

또 시골에 살려면, 반드시 마을 공동체(共同體)의 구성원(構成員)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마을을 위해 최소한의 헌신(獻身)이라도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볍게 생각하면 토지나 전원주택을 취득(取得)할 때, 또는 처분(處分)할 때를 위해서도 주위의 도움이 꼭 필요하지만, 마을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 가져오는 불이익(不利益)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리라. 집을 지었을 때는 물론이려니와 땅을 구입한 후라도 곧 바로 돼지 한 마리쯤 잡아 (돼지가 값도 싸고 여럿이 먹을 수 있어 좋다.) 동네잔치를 벌이면 좋다. “어떻게 돼지를 잡느냐?”고 물으실 필요는 없다. 그런 것쯤은 큰 돈 안 들어도 다 해결할 수 있고 마을 분들 중에는 그 방면(方面)에 전문가가 꼭 한, 두 명씩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을 분들의 경조사(慶弔事)에도 될 수만 있다면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이 마을 사람들과의 유대(紐帶)관계를 넓히는데 많은 기여(寄與)를 한다는 것도 명심하시길 바란다. 전원생활에는 이른 아침 마을 확성기에서 “이미자씨”노래나 “주현미씨”노래가 귀가 따갑게 흘러나올 때가 한달에도 여러 번 있다. 그것은 분명 마을 “이장님”께서 마을의 공지사항(公知事項)을 안내하려고 하니 주민들은 들을 준비(準備)를 하라는 예고(豫告) 방송이다. 여름철이면 창문을 열어놓고 생활하는 시간이라 그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으나 위치에 따라 띄엄띄엄 들리는 곳도 있고, 그것이 문을 닫고 생활하는 겨울에는 더욱 잘 안 들릴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방송이 있는 날 방송을 잘 듣지 못하였다면 꼭 마을 회관이나 이장님한테 물어서라도 무슨 일인지 확인하시길 바란다.

그 방송은 필경(畢竟) “오늘은 동네 어떤 어른의 생신이니 아침 드시러들 오라”는 것일 수도 있고, “마을의 대동회 날이니 점심을 같이하자”라거나, “정월 대보름날 척사대회를 하는데 주민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는 방송이거나, “비료나, 씨앗을 타가”라는 방송일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원생활을 하는데 놓쳐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일들이다. 우리는 “전원일기”라는 드라마에서 많이 접 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전원생활을 시작해 보니 절대로 무시해선 안 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을 땐 간단한 선물(先物)이라도 가지고가서 예를 갖추는 것이 전원생활을 하는데 얼마나 좋은 일인지 독자도 아시게 될 것이다.

“박카스‘한 상자면 어떻고 싼 ” 소주“몇 병이면 어떤가? 모든 것이 다 성의(誠意)가 아니겠는가! 옛말에도 “코밑에 진상이 최고”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렇게 하찮은 조그마한 선물이, ---필자는 선물(膳物)이란 표현보다는 관심(關心)이라 하고 싶다.-- 얼마나 많고 커다란 인정(人情)이 되어 돌아오는 가를 여러분은 곧 실감(實感)하게 되실 것이다. 세상엔 공짜란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3). 전원생활은 품앗이 생활이다.

“품앗이”란 국어사전에 이렇게 설명 되어 있다. “힘 드는 일을 거들어 주어서 서로 품을 지고 갚고 함” 전원생활은 아파트생활하고는 많이 달라서 이웃과 어떻게 융화를 잘 이루느냐가 전원생활의 필수 관건(關鍵)이 될 수 있다. 아파트에선 조금 섭섭한 일들이 있다 해도 서로 문 닫고 들어가면 에레베이터 안에서나 가끔 마주칠 뿐, 별로 크게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생활을 즐길 수 있지만, 정(情)이 그리운 전원생활은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집도 띄엄띄엄, 사람도 띄엄띄엄 그래서 시골은 적적하기 마련이다. 우선 이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서먹한 감정을 오래 지니고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외롭다. 또 무거운 짐을 들거나 가구를 옮길 때, 특히나 농사를 지을 때는 이웃의 아쉬움은 말 할 수 없이 크게 닥아 온다. 이렇게 전원생활은 서로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어 사는 맛이 난다. 새로 담근 김치를 맛보라고 가져다주는 인심(人心)에 “요번에 동해안에 갖다가 사 왔다”고 아직 덜 마른 오징어 몇 마리를 건네는 풍부한 인심이 있는 곳이 시골이다.

시골에선 한해에 적어도 서너 차례 정도는 동네잔치가 벌어진다. 그런데 사실 외지(外地)에서 이주(移住) 해온 분들은 “남의 집 불보기”다. 그러나 이젠 이렇게 동네의 많은 분들이 모이는 장소에도 자주 참석하여 작은 성의(誠意)라도 표하면서 서로의 사이를 좁히는데 노력하는 그 자체가 삶의 질을 높이는 것 아니겠는가?

나와 내 가족만 살려고 전원생활을 시작했다면 잘 못 시작한 전원생활이다. 시골사람들과의 사귐이 없다면 전원생활을 하더라도 반쪽 전원생활을 하는 셈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면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의 멋도 있고, 우리가 모르는 여러 가지를 알고 있어 “말이 잘 안 통 한다.”는 고정관념(固定觀念)을 버리고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풋풋한 시골 인심을 맛볼 수 있어서 좋고, 또 여러 가지 내가 알지 못하는 지식(知識)도 얻을 수 있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면 분명 반쪽 생활임에 틀림없다.

4). 담장을 낮춰라!

처음 전원생활을 시작한 분들의 대부분은 담장을 높이 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철옹성(鐵甕城)을 만든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째는 방범문제이고, 둘째는 사생활(私生活) 침해(侵害)를 이유로 드는 것이 대부분의 말씀들이다. 그렇다! 다 옳은 말씀들이다. 그래서 이사 오기도 전에 벌써 “X콤”을 단다, “Y”콤을 단다. 난리 법석도 아니다.

허기야 낮에는 남자들도 거의 집에 없는 시간이니 겁이 날 수밖에 없다. 도시에선 부부싸움만 크게 해도 온 동네사람들이 다 알 정도였다. 그러나 전원생활에선 소리, 소리 질러도 들어 줄 사람이 없다. 어찌 겁이 안 나겠는가? 그러나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X콤, Y콤 하던 물건들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고 만다. 돈이 아까워서도 작동(作動)시킬 수가 없다. 하루, 하루 전원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겁(怯)이 없어지는 건 물론이고, 좀도둑 하나 들었다는 얘기도 못 들어 봤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니다.

담장을 높이 친 그 다음부터 그 집과 이웃 사람들과의 보이지 않는 벽(壁)이 그 담장의 높이만큼 만들어 진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사안(事案)이다. “지가 서울에서 왔으면 왔지. 돈이 얼마나 많기에 저리도 높이 담장을 쌓아!“ “시골 놈들은 다 도둑놈인 줄 아나보지!” “지가 얼마나 돈이 있는지 몰라도 나도 땅 좀 팔면 지깟 놈 정도는 돼!” “웃기지 말라고 그래!”

사실 그렇다. 돈으로 따지자면, 요즘 시골 사람들이 어지간한 도시 사람들 정도는 된다. 땅값이 많이 오르다 보니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논 몇 마지기나 밭 몇 떼기만 있어도 몇 억대는 실(實)히 간다. 시골 사람들한테 돈 얘기 잘못하다간 공자 앞에서 문자 쓴 꼴이 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얘기들은 이렇게까지 비약(飛躍)하고 만다. 이것도 이웃과 친교를 나눌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원래 시골에 사시던 분들은 도시에서 온 사람들 자체를 건방진 놈들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짓들이 더욱 더 그 분들과의 사이를 벌려 놓는다. 또 실제로 자기네들은 대문은 물론 방문도 잠그지 않고 다닌다. 가지고 갈 것도 없거니와 혹여 가지고 갈 것이 있다고 해도 예전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별다른 의식(意識)이 없다.

그런데 별 볼일도 없는 도시 것들이 내려와서 건방을 떤다. 도저히 그냥 봐 줄 수 없다. 그러기에 사사건건(事事件件) 시비를 걸어댄다. 이렇게 되면 전원생활의 첫 단추를 잘 못 낀 경우가 되니 조심하여야 한다. 대개의 도시 사람들은 주위와 조그만 불화(不和)만 생겨도 “법대로 하라!”는 식이지만 전원생활에선 법보다 훨씬 빠른 것이 순수(純粹)한 마음이고, 서로 의논하고, 타협(妥協)해 나가는 것이 일을 빨리 해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따지기 좋아하는 도시사람들은 쉽게 해결 할 것도 그 좋아하는 “법“이고 ”따지는 것“ 때문에 망치는 것을 자주 본다. 서울서 내려온 K씨는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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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지목(地目)이 “대지”인 곳에 구옥(舊屋)이 있던 것을 허물고 새로 건축을 하는 것이라 허가과정에선 아주 순조로운 진행이었다. 그러나 공사를 시작한 다음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침에 중장비(重裝備)가 들어와야 그 날의 공사를 하는데 골목길을 경운기(耕耘機)가 버티고 있고, 그 경운기 위에는 촌 노인네가 앉아서 “이 길은 내 길이니 못 간다.”고 하니 아연실색(啞然失色)이 아닐 수 없지 않는가?

여기서 잠시 부언해 둘 말이 있다. 시골의 골목길들은 예전엔 다 논두렁, 밭두렁이던 것이 사람들이 살면서 차츰 넓어져서 현재에 이른 것이다. 바로 이 노인네는 지금 이 길이 자기가 옛날에 내놓은 땅이니 다니지 말라는 생 떼(?)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땅값을 내어 놓고 길을 사용하던지, 아니면 어떠한 보상(報償)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참!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 길을 통해서 몇 집이 새로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있다.

도로에 문제가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K씨는 우선 버럭 화(禍)부터 냈다. 그리고는 파출소에 연락하여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말하니 노인네는 파출소로 끌려가는 사태로까지 진전(進展)되고 말았다. 그러기를 두, 세 차례. 그러나 경찰관들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이다. 같은 관내(官內)의 어른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또 얘기를 들어보니 법(法) 이전에 옳은 말이기도 하다. 법(法)이면 되겠지 하고 생각한 K씨만 속 터지는 일이 되었다. 결국은 다른 사람들이 중재(仲裁)에 나서서, 노인네 댁의 담장을 수리해 주는 조건으로 타협(妥協)이 일단락(一段落)되었고, 그 후 순조로운 공사로 전원주택에 입주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저녁식사 자리에서 K씨는 이런 말을 했다. 처음부터 그 정도의 요구였다면 그런 난리법석 떠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시골에 처음 내려온 K씨로서는 우선은 겁이 났고, 그 다음은 이 참에 아주 혼을 내 주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골생활은 법(法)으로는 문제없이 이길 것 같은 일들도 많은 시간과 정력(精力)과, 돈만 낭비 할뿐 소득(所得)은 없는 경우가 많다.

5). 오물(汚物)은 무서워 피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쓰면서도 필자는 겁이 난다. 시골 사람들을 오물로 표현한건 아닌데 혹시나 오해의 소지가 될까 두렵다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오물이란 표현은 외지인이 집을 지을 때나 그 밖의 다른 일에도 사사건건이 시비를 걸어오는 예전부터 그 고장에 살았던 사람이 간혹 있다.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 큰일이 아니라면 아니꼽고 더러워도 참아내는 법(法)도 배워야 하겠다. 결국엔 그렇게 싸움을 하고 나서도 이웃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 때의 앙금(鴦衾)은 쉽사리 가시질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전원생활에 익숙해지면 웃으면서 해결하는 현명한 방법을 배우게 된다. 될 수 있다면 내가 한 발 양보(讓步)하는 미덕(美德)을 보인다면, 그들도 다정한 마음으로 내게로 닥아 온다는 진리(眞理)를 잊지 말아야 하겠다.

또 이런 분들의 대부분이 신고식(?)을 치르지 않은 분들이다. 땅을 구입했을 때, 아니면 건축허가가 났을 때, 그 때도 못했으면 건축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돼지 한 마리쯤 잡아서 막걸리라도 이웃에게 대접했다면 그분들의 자존심이 풀려서 그냥 넘어 갈 수도 있었는데. 결국 텃세를 톡톡히 당한 셈이 되고 말았다. 그 돼지 한 마리가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겠냐마는 그러나 그 돼지 한 마리가 시사하는 뜻은 크고도 많다.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필자가 시골 사람들한테 아첨(阿諂)이라도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란다. 필자 자신이 못한 모든 것들이 후회(後悔)로 쌓여 이렇게 피력(披瀝)하는 것이라고 보아 주길 바라고, 불화(不和)로 시작하면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도 풀리기 어렵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한다.

그냥 시골에 살면서 느낀 바로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뿐이다. 처음부터 웃음으로 지나면 친할 수 있는 이웃이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들 때문에 매일 매일을 등 돌리고 사는 생활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얘기다. 이웃주민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실제 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고, 또 반대로, 간섭도 받지 않으므로 편하다고 생각될지 모르나 그것은 요즘 아이들 말로 “천만의 말씀,만만의 콩떡”이다.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시골사람들과 어울려 우리가 지금껏 모르던 시골의 풍습이나, 농사짓는 방법, 들이나 산에 자라는 풀이나 나무에 대해서 하나하나 배우면서 정(情)을 쌓아가는 재미를 모른다면 전원생활의 많은 재미중 가장 큰 재미 하나를 잃어버리는 셈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전원의 생활이 은둔(隱遁)의 생활, 나만의 생활을 도모(圖謀)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서의 사회생활과 같은 연장선상(延長線上)에서 우리는 사고(思考)할 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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