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落花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현대문학>(1957)
시 <낙화〉는 꽃이 지는 모습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이별의 아픔과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인간의 생사와 인생의 삶의 근원적인 본질적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 시의 시상은 변증법적인 흐름으로 전개된다. 꽃이 피어 꽃잎이 떨어지고 그 결과 열매를 맺듯이 인생도 만난 후 헤어짐이 있고 그 결과 더 큰 성숙을 이룬다는 것이 이 시 내용의 논리적 흐름이다. 우리는 '죽음'이나 '이별'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해 왔다. 그것은 슬픔과 아픔, 외로움과 쓸쓸함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여 아름답게 승화했을 때 또 하나의 생성과 성숙이 이루어진다는 자연의 이법을 망각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시는 '낙화'와 '결별'이라는 유사성을 변증법적 논리로 파악하여 자연의 이법을 인생의 법칙에 투사한 시라 하겠다.
『다시 읽는 한국의 명시』 김원호 지음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