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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 체험을 마치고 문화체험마을을 돌아본다. 문화체험마을 아래엔 담양 지방의 정자를 재현하여 놓았다. 소쇄원의 광풍각이며 명옥헌, 면앙정, 송강정 등. 여기는 식영정이다. 식영정(息影亭) '그림자가 쉬는 정자'라는 뜻이다. 그림자가 쉰다니?
장자라는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림자가 무서워서 재빠르게 도망을 갔다.
그러자 그림자는 더 빠르게 따라왔다.
햇빛 아래서 아무리 달려도 그림자는 떨어지지 않았는데 나무 그늘 아래 이르자 문득 그림자가 없어졌다.
장자가 그냥 그림자가 왜 생기는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 대하여 말한 것은 아니다. 좀 더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지 않는가?
↑셋은 그림자를 밟으며 식영정 앞을 걸어 가고 둘은 마루에서 쉰다. 쉬는 아이들의 그림자는 당연히 없다. 쉴 때에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쉴 줄 모르는 사람은 항상 제자리를 맴돈다. 멀리 간 것 같지만 그림자는 항상 그곳에 있다. 장자는 그림자를 인간의 탐욕으로 본 걸까? 인간과 떨어질 수 없는 부와 명예욕은 인간을 쉴 줄 모르게 한다. 식영정은 그것을 경계하라는 말일 것이다.
↑면앙정(俛仰亭)은 송순이 지은 정자이다. 면은 '힘쓰다'는 의미도 있지만 '몸을 구푸리다'는 뜻도 있다. 앙은 '우러르다'는 말이다. 하면 면앙은 '구푸리고 우러른다'는 의미다. '몸을 구푸려 땅을 보고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본다' 이 말은 맹자의 진심장에 나오는 군자삼락 가운데 '고개를 들어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몸을 굽혀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군자의 두 번째의 즐거움이다'라는 말에서 따온 말이다. 면앙은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가겠다는 도학자의 자기 다짐이리라.
실제의 면앙정 왼편 마루에는 송순이 지은 ‘면앙정 삼언가’가 걸려 있어 이 정자를 지은 뜻을 짐작하게 한다.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러보면 하늘이라
그 가운데 정자를 짓고 흥취가 호연하다.
바람과 달을 불러들이고, 산천을 끌어 들여
청려장 지팡이 짚고 백년을 보내네.
송순은 그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갔다.
↑졸업한 여학생들이 모두 면앙정 앞 마루에 모였다. 아이들이 면앙하여 천지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길 빌어 본다. 이 삭막한 시대에 양심을 지켜 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을 터, 그래도 아이들의 맑은 웃음을 보면 웬지 세상이 밝게 보인다.
↑사내아이들은 면앙정을 마주한 호숫가 돌 위에 앉아 있다.
↑뜬금없이 웬 참선? 돌을 갈아 거울 만들기.
↑바퀴를 돌리면 전기가 생산된다. 에네지를 생산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체험할 수 있다.
↑힘들어 하는 희수. 아마 이렇게 해도 건전기 하나도 생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둘은 항상 붙어 다닌다. 징한 놈들. 이 말은 지난 해 국토순례 사진첩에서도 썼던 말이다.
↑개밥에 도토리?
↑이 녀석이 오늘 정말 이상하다.
↑날씬한 희수만 통과할 수 있다. 여자애들은?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면서 담양천 관방제림을 본다. 관방제림은 담양천의 강둑으로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메타세콰어가 심어져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은 여기를 메타세콰이어 길로 착각을 한다. 관방제림의 메타세콰이어는 낙엽이 져서 조금은 황량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인간은 잎이 다 떨어진 가지 끝에서도 꽃과 나비를 본다.
↑소쇄원 들어가는 입구. 푸른 대나무가 울타리를 이루고 있다. 소쇄원은 광한루원과 다르게 기다림의 원림이다. 광풍각, 제월당, 대봉대 등의 정자와 누각은 소쇄공 양산보의 기다림을 형상화한 것이다. 소쇄공 양산보가 기다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대나무 숲이 끝나는 곳에서 조그만 계곡을 건너 소쇄원의 사랑채격인 광풍각이 보인다. 그 위 안채격인 제월당이 있다. 이 광풍제월이 이 원림의 주제가 된다.
원래 광풍제월(光風霽月)은 따로 쓰인 말이 아니라 하나로 쓰인 말로 북송(北宋)의 시인인 황정견(黃庭堅)이 주돈이를 평하여 '기인품심고 흉회쇄락 여광풍제월(其人品甚高 胸懷灑落 如光風霽月)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송서(宋書)의 주돈이전(周敦頤傳) 옮기면 '그의 인품이 심히 높아서 마음에 품은 뜻이 시원하고 깨끗하여 마치 밝은 날의 바람과 비갠 날의 달과 같다.'는 뜻이다. 그래서 광풍제월이라고 하면 맑고 깨끗한 인품을 비유한 말이 된다.
↑광풍각의 편액.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송시열은 이 광풍각 뿐만 아니라 제월당, 대봉대. 애양단, 오곡문 등 소쇄원의 거의 모든 글씨를 썼다고 한다. 글씨가 유려하면서도 힘차다. 춤을 추는 듯 바람에 날리는 듯 그 기세가 표표하면서도 경망스럽지 않다. 저 확신에 찬 획은 거침이 없다.
↑대봉대. 한 칸 짜리 초가 정자이다. 이 대봉대야말로 소쇄원을 이해하는 열쇠다. 소쇄원, 광풍각, 제월당 등의 이름은 겉으로는 중국의 성리학자 주돈이를 흠모하여 자신도 그렇게 살리라는 마음의 다짐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이들이 대봉대를 만나면 사뭇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봉황을 기다라는 대. 대봉대 옆에는 오동나무가 있고 원림의 입구부터 그 주변에는 대나무 밭이 있다. 봉황은 벽오동 가지 위에만 앉아 쉬고 죽실(대나무 열매)만 먹는다는 신령스러운 새다. 봉황이 올 수 있는 조건은 다 갖춰져 있다. 그러나 봉황은 아무 때나 나타나는 새가 아니다. 성군이 나타나야 봉황은 나타난다. 창덕궁의 천장과 임금이 가마를 타고 다니는 답도의 판석에 봉황이 그려져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임금에게 성군이 되라는 무언의 경책이 아닌가.
대봉대에는 양산보의 소망이 드러나 있다. 즉 성군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훌륭한 임금이 나타나 어진 정치를 펴서 나라를 화평하게 하는 것 이것이 양산보가 꿈꾸는 세상이었다. 그렇다면 광풍제월은 현실이 아닌 미래의 이상세계가 된다. 광풍제월이란 말 속에는 당시의 암울한 정치적인 상황이 암시되어 있다.
애양단은 볕을 사랑하는 담장이라는 의미이다. 양산보가 노모를 위하여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역시도 당시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혀 따뜻한 볕이 내리쬐는 세상을 말한 것이 아닌가?
소쇄처사 양산보는 스승 조광조를 따라 벼슬길에 나섰다. 그러나 스승의 개혁 정책은 수구세력인 훈구파의 필사적인 저항에 부딪히고 우유부단한 임금 중종은 조광조를 유배 보내고 이어 사약을 내린다.(이를 역사에서는 기묘사화란 한다.) 이런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양산보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소쇄원을 조성한다. 볕이 그리웠던 것이다.
↑오곡문. 다섯번을 굽이쳐 흘러 들어오는 물길의 문이라는 뜻이다. 굽이치는 물길은 생명의 상징이다. 풍수이론에서 산이나 물길이 바로 흐르는 것을 흉하다고 하여 기피한다. 기운이 맺히지 못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바로 흐르는 한탄강의 상류 강변에는 수목의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산도 길게 직선으로 늘어선 것은 사룡이라 하여 그곳에는 묘를 쓰지 않는다. 그런데 왜 돈을 들여 물길을 직선으로 만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직선으로 흐르는 강은 유속이 빨라져 필시에는 둑을 무너뜨린다.
↑오곡문의 수구. 수구(水口)는 물이 흘러 들어오는 곳이다. 수구 가운데 서 있는 막돌로 쌓은 굄돌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지만 아직까지 건재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제주에서 온 기술자가 음양석 쌓는 방법으로 축조하여 끄떡없다고 한다.
↑소쇄처사 양공지려. 소쇄처사 양공의 소박한 집이라는 뜻. 소(瀟)는 강 이름인데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을 가리킨다. 쇄(灑)는 '뿌리다', '깨끗이 청소하다' 는 뜻이다. 소쇄는 '물을 뿌리고 청소한 후의 맑고 깨끗한 기운'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양공은 양순보를 높여 부른 말이다. 원래 공은 삼공(三公)에서 나온 말로 가장 높은 벼슬이나 작위(爵位)를 말한다.
↑소쇄원 가장 놓은 곳에 위치한 제월당은 그 앞의 광풍각과 함께 이곳의 주인격인 건물이다. 광풍각이 안채라면 제월당은 사랑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올라 오느라 더워진 체온을 식히기에 제월당 마루는 더 없이 좋다.
↑제월당 측면의 아궁이. 아이들이 아궁이에 둘러서서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들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을 보기는 한 것일까?
↑제월당에서 광풍각으로 내려 오는 길에 있는 쪽문. 쪽문을 넘어서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문을 낮게 만들었느냐고 투덜댄다. 그러자 한 녀석이 옛날 사람들은 우리보다 키가 작아서 그렇다고 아는 척을 한다. 옛사람들이 문을 낮게 만들어 항상 머리를 숙이고 다니는 것이 예(禮)와 관계 있다는 것을 알까? 그것까지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광풍각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길 위에는 이제 빛이 남아 있지 않았다. 저 멀리 무등산 정상이 석양을 받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우리는 근처 휴게소에 들러 컵라면으로 우선 요기를 하였다. 나주까지 가려면 거리가 제법 멀다.
↑돌아나오는 길의 가사문학관. 오늘은 들르지 못했다.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가사문학관이 따분할 수도 있겠다싶어 견학코스에서 제외시켰다. 이 사진 역시 지난 번 답사 때 찍은 사진이다.
↑광주호. 저 멀리 무등산 봉우리가 보인다. 천왕봉,지왕봉, 인왕봉 세 봉우리가 장엄하다.
↑숙소인 담양 중흥골드스파에 도착하니 시간이 많이 늦었다. 시장기를 반찬 삼아 아이들은 저녁을 맛있게 먹는다.
↑김치와 상추 그리고 돼지불고기. 조촐한 밥상이지만 불고기가 있으니 아이들은 아무런 불평없이 먹는다.
↑식사 후 설거지도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한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오늘 답사한 과정에 대하여 문답을 한다. 이 문답에서 통과하여야 자유시간을 얻을 수 있다. 몇 번이고 재시험을 본 후 아이들은 노래방에 갈 수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침구부터 정리한다.
↑경빈이는 아직 잠이 덜 깼나?
↑아침식사 후. 후식 딸기.
↑스파 물놀이장. 여기서는 설명이 필요가 없다. 말 그대로 아이들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놀았다.
↑남원에 있는 석현이가 와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어 아주 재미있었다.
↑점심식사. 물 속에서 세 시간 이상을 놀았으니 배도 고프겠지.
↑식당에서 배려하여 밥을 몇 공기씩 먹을 수 있었다.
↑담양에서 한 시간 반이나 달려서 도착한 태백산맥 문학관.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하여야 한다'는 작가의 웅변이 건물 전면에 새겨져 있다. 소설 '태백산맥'은 2002년에 출판되어 지금까지 일천 만부 이상 팔린 대하소설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공간, 그리고 한국동란까지 벌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민족간의 이념투쟁을 생생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분단시대를 다룬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임권택 감독이 소설 태백산맥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들 영화 속의 인물들이 그 성격을 가장 나타내는 대사를 골라 들을 수 있게 하였다. 승원이가 열심히 대사를 듣고 있다.
↑이층에 있는 도서실. 아이들이 이외로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책을 읽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에 대하여 잘 몰라도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그 엄청한 에너지를 아이들이 느끼는지 자못 엄숙하게 전시관을 둘러본다.
↑무려 일만육천오백 장이나 되는 태백산맥 원고. 왼쪽부터 며느리의 필사원고, 그리고 아들과 독자들의 필사 원고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언제 떠올랐는지 모를 그믐달이 서편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밤마다 스스로의 몸을 조금씩 조금씩 깎아내고 있는 그믐 달빛은 스산하게 흐렸다. 달빛은 어둠을 제대로 사르지 못했고, 어둠은 달빛을 마음대로 물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달빛과 어둠은 서로를 반반씩 섞어 묽은 안개가 자욱히 퍼진 것 같은 미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소설 '태백산맥'은 이렇게 시작한다. 해방 직후의 현실은 이렇듯 모호하기 그지없다. 어슴푸레 보일듯하면서 무엇 하나 명료하지 않은 해방정국에서 소설의 주인공들은 좌우의 이념 갈등에서 생사를 건 모험을 벌인다.
↑전시관을 나와 마당을 둘러본다.
↑소설 속의 정하섭의 연인 소화의 집이다. 소화는 무당의 딸로 정하섭을 사랑하여 목숨을 걸고 그의 심부름을 하며 사랑을 이룬다. 정하섭 때문에 옥중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유산까지 하는 고초를 겪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일편담심이다. 무당의 딸이라고 천대를 받지만 마음이 곱고 심지가 굳은 아름다운 여인이다. 소화의 집이 여기 였다면 근처 어디에 신당이 있었을 것이다.
↑현부자네 집 대청에서. 현부자네 집은 한옥이지만 일본식이 가미된 집이다. 그 집의 규모로 보아 대단한 부자였음을 알 수 있다. 태백산맥 서두에 이 현부자네 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나온다. '언뜻 보아도 명당자리임을 알 수 있'는 이 현부자의 집은 소설 태백산맥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그런데 이 명당터에 자리잡은 현부자는 발복은커녕 이 기와집을 짓고 오년이 다 못 되어 살림이 거덜이 나고 말았다고 소설에서 기술하고 있다.
두 줄기의 산등성이가 양쪽으로 뻗어내리고 있는 사이에 포근하게 감싸이듯 자리잡은 그 터는 눈여겨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묘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자연의 조형에 대해서 느낌 감정이 으레 그 터에 버티고 선 터무니없이 큰 기와집들로 손상되고는 했다.
아무리 좋은 명당이라도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오히려 화를 자초했다고 작자는 말한다. 현부자뿐만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 탐욕스런 부자들은 대개가 응징을 당한다.
첫댓글 저때로 돌아가고싶다ㅠ
재미있었겠당!
여자애들도 충분히 통과할 수 있어요!!!
_설희_
저 잠다깼어욧!!!!!!!!
물놀이 진짜 재밌었는데. ㅎㅎ. 소중한추억많이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