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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악마의 유린(蹂躪)
이미 앞에서 악마의 유린에 대해 언급했던 것처럼, 악마의 힘을 빌려 잘못이 없는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자 하는 행위이다. 이런 목적은 상당히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다른 장에서 자세히 언급하고자 한다. 또 개념 정의를 분명하게 하고자 한다. 악의 유린에 대한 공통적인 개념 정의가 없기 때문에 저자들은 말을 사용 의미에 따라 그 의미를 부과해야 한다.
악마의 유린이라는 말에 대해 나는 일반적인 단어 자체의미로 본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악마를 개입시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로 정의되어 있다. 정확한 정의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그 영향이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정의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부터 많은 혼동이 야기되고, 몇 몇 저자들은 악마의 힘을 이용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주문과 동의어로 사용하거나 주술(呪術)과 동의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악의 유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두 가지 다른 방법이 악마의 힘을 통하여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주문과 무속이다. 여기에서 과장 없이 내 경험을 바탕으로 악의 유린의 여러 가지 형태들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1) 해악을 입힐 목적의 주술 2) 저주 3) 시선을 이용한 저주(詛呪) 4) 악마의 힘을 빌려 타인에게 해를 끼칠 목적의 주문 등이다. 서로 다른 형태들이지만, 이들 요소가 자주 서로 혼합되어 분명하게 서로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1. 최고 정점인 검은 미사, 주술, 사탄 예식
이런 것들은 행해지는 형태의 유사성에 따라 한꺼번에 묶어 고찰하도록 하겠다. 실제로 내가 나열한 순서들은 악마적인 행위가 가장 심각한 것부터 배열하였다. 이들의 특징은 주술적인 주술 혹은 그에 맞는 예식을 통한 것으로, 어떤 경우는 악마에게 바쳐지는 탄원을 통한 예식이 아주 복잡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로를 통해 어떤 특정한 사람을 악마가 함부로 짓밟고 괴롭히도록 악마에게 기도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이런 행위들은 어떤 특정한 물건을 매개체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행위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의해 사탄의 하수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목적으로 사용하는 악마의 유린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이미 성서에서는 이런 행위들은 하느님을 부정하고 그 자리를 악마에 내어주는 것이 되어 절대 금지하고 있다.
“너희에게는 제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와, 점쟁이와 복술가와 요술사와 주술사, 그리고 주문을 외우는 자와 혼령이나 혼백을 불러 물어보는 자와 죽은 자들에게 문의하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짓을 하는 자는 누구나 주님께서 역겨워하신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그런 역겨운 짓 때문에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신다.”(신명 18, 10-12).
“너희는 영매들과 점쟁이들에게 가지 마라. 너희가 그들을 찾아다녀 그들이 너희를 부정하게 만드는 일이 없게 하여라.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레위 19, 31).
“나 주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나에게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너희를 민족들 가운데에서 가려내어 내 것이 되게 하였다. 남자든 여자든 영매나 점쟁이로 나서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그들에게 돌을 던져야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죗값으로 죽는 것이다.”(레위 20, 26-27).
또 레위기 19, 26-31절을 읽어보기 바란다. “너희는 주술쟁이 여자를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탈출 22, 17) 라는 탈출기에서의 말씀도 엄중하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을 통해 행한 주술행위도 사형에 처해지는 큰 벌이었다. 물론 그 의미가 서로 다르게 번역되긴 했어도(번역서 마다 제 각기 다르다), 그 내용은 분명하다. 주술에 대해 다시 한 번 언급할 기회를 만들도록 하겠다.
2. 저주(詛)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이 한 저주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죄 중에 있을 때는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악을 기원하는 것으로 악마로부터 발원된 악으로써 사악한 마음을 가지고 행했을 때, 특별히 그것이 저주하는 사람과 저주를 받는 사람 사이가 혈연관계라면 그 심각성은 도를 넘게 된다. 가장 심각하고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나에게 자주 의뢰되는 사건은 부모나 조부모가 자녀들이나 손자들에게 행하는 저주 행위들이다. 생명에 대한 저주이거나 아주 특별한 날, 예를 들어 결혼식 날 듣는 저주의 말은 엄청나게 심각한 사태를 불러온다. 자식들에게 있어서 부모들의 권위 그 관계는 그 어떤 사람의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세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저주를 받은 (원치 않던 생명) 젊은이 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사는 동안 줄곧 이 저주에 시달려 왔던 이였다. 이 불쌍한 젊은이는 건강문제, 상상을 초월하는 직장에서의 난관, 불행한 결혼, 자녀들의 질병 … 등등 온갖 재난이라는 재난은 모두 싸 짊어지고 있었다. 구마 기도를 통해 영적인 호전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 이상의 호전 증상은 보여주지 않은 것 같다. 두 번째 예를 들어보겠다. 젊은 자매 한 명이 끔찍히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기로 결심했지만, 그녀의 부모들은 그 결혼을 결사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결혼을 밀고 나가자 할 수 없이 결혼을 허락하였고, 결혼식에 참여하였다. 결혼식이 이루어지던 날,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한 쪽으로 불러내어 결혼하는 신부와 신랑,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자식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저주의 말을 그녀에게 퍼부었다. 아무리 참된 기도와 축복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 저주의 말 그대로 이루어졌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날 어떤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찾아와 바지를 걷어 올려 다리에 흉하게 패인 죽을 고비를 넘긴 상처를 꿰맨 수술 흔적을 보여 주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젊었을 때 상당히 똑똑하여 할머니께서 늘상 신부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이런 할머니의 청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결국 아주 유명한 전문직 인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 젊은 아버지가 집에서 독립해 나오면서부터 할머니와의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는데서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할머니는 더 이상 그 젊은이의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 젊은이는 이야기 도중 어린 남자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가 여덟 살 되었을 때 찍은 것으로 그 당시, 어린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옷인 짧은 바지에 목이 올라오는 양말을 신은 장난꾸러기의 웃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의 아버지는 이 사진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 서로 화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 사진을 어머니 집으로 보낸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다음과 같은 저주의 말과 함께 사진을 다시 돌려보낸다. “그 아이의 두 다리는 항상 병들어 있을 것이고 네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네가 태어난 바로 그 침대에서 죽을 것이다.” 그 말대로 모든 것이 일어났다.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그의 아버지가 고향에 돌아갔을 때는 이미 그의 할머니는 돌아가신 상태였다. 그런데 고향에서 병이나 갑작스럽게 고향집 자신이 태어난 침대로 옮겨지게 되고 거기에서 죽게 된다.
3. 시선을 이용한 저주(詛呪)
시선을 통해 어떤 사람에게 악마의 영향을 입히기도 한다. 사람들이 맹신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째려보았기 때문에 불행을 입는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허황된 이야기다. 시선을 이용한 악의 저주는 진짜 악의 유린으로 악마의 힘을 빌려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해를 입히려는 의도를 의미한다. 특별히 다른 사람에게 재앙이 떨어지도록 어떤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바로 시선이다. 이에 대해서 나는 크게 많은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시선을 통한 악마의 유린 효과는 있으나 원인 제공자가 정확하지 않으며 시선이라는 도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자주 악마의 유린의 원인제공자를 잘 알 수가 없다는 것이며 또한 그 악의 시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것을 이 기회를 빌려 말해두고 싶다. 중요한 것은 이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이것저것을 의심해볼 필요 없이 누구였든지 간에 자신에게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을 마음으로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시선을 이용한 악의 전이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서는 가능하지만, 분명한 사례는 아직 다루어보지 못했다.
4. 악마의 힘을 이용해 타인에게 해를 끼치려는 주문(注文)
악마의 유린을 행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가장 많이 사용되어온 방법이다. 이 명사는 ‘하다’ 혹은 ‘아주 이상하기 짝이 없는 여러 가지 것들을 혼합하여 어떤 물건을 만들도록 주문하다.’라는 뜻이지만, 이 말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닐 뿐이다. 진짜 그 의미는 해를 입히려는 목적으로 미세하게 만들어진 표적으로 악의 힘을 증대하기 위해 사탄에게 바쳐진 도구를 일컫는 말이다. 여러 번에 걸쳐 이야기 해 왔듯이, 사탄은 하느님을 철저하게 모방하는 인물로써 이런 주문(注文)에서도 하느님을 모방하기 위한 조심스런 도구로(예를 들어 세례수(洗禮水)) 은총의 도구들을 모방한다. 악의 주문에서 이런 성사들을 모방하는 이유는 어떤 사람에게 해를 입히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대상이 된 사람에게 해를 입히려는 악의 주문은 두 가지로 나누어 고찰해 보도록 하자. 직접적인 방법으로 대상자에게 직접 악의 주문을 섞은 음식이나 음료를 먹게 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많은 재료들을 혼합해 만든다. 예를 들어, 여성의 월경 혈액, 시신의 뼈, 짙은 검은색이 나는 온갖 종류의 가루(태운 가루), 동물의 기관들 중 가장 중요한 심장부위, 특별한 잡초 … 등이다. 하지만 그 악의 효과는 이런 재료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악마의 힘을 통해 해악을 미치려는 그 의지에서 온다. 왜냐하면 이런 의지는 악의 예식을 치르는 중에 이런 재료들을 혼합하면서 악마를 향해 주문(呪文)을 외워 그 악의를 재료들에 투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항상 여러 다른 방해들 말고도 특징적인 위통을 호소한다. 구마사들은 이를 즉각 분별해 낸다. 그리고 여러 번에 걸친 구토 혹은 많은 양의 대변을 통해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물질들을 밖으로 배출시킨 뒤에야 그 통증이 사라지게 된다.
또 다른 방법에 대해 우리는 간접 방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이 표현은 라 그루와(La Grua) 신부의 책 서문에 사용된 표현을 인용한 것임). 악의 영향에 대상이 된 개인 물건을 통해 악마의 주문을 전이하는 것을 의미하거나 (사진, 의복 혹은 개인 소지품), 그 대상 인물을 본떠 만든 인형이나 장난감, 동물, 가끔씩은 그 사람과 나이와 성별이 같은 사람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사물을 통한 감정전이(感情轉移)에 관한 것으로써 해악을 입히려는 점찍은 대상에게 사물을 통한 악을 전이하는 것이다. 상당히 일반적인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사탄의식을 거행할 때, 인형의 목 주위에 많은 침들을 꽂는다. 이런 의식이 끝난 뒤 대상이 된 사람은 실제로 엄청난 두통을 호소하게 되고, 우리 구마사들을 찾아와 이렇게 설명한다. “제 머리 속 전체에 침들이 잔뜩 박혀 뚫고 지나가는 듯이 아픕니다.” 혹은 인형에다가 바늘이나 못을 박기도 하고 대상 지워진 사람의 신체 부위 어딘가 악을 전이하고 싶은 부위에 해당되는 인형의 부위에 이런 행위를 한다. 이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정확하게 그 부위가 찌르는 듯 아프다고 호소한다. 민감한 능력을 지닌 이들은(이에 대해 다시 언급하겠음) “여기에서부터 이쪽까지 큰바늘이 뚫고 지나가고 있다.” 라고 알려주고 명확하게도 그것이 있는 자리를 짚어낸다. 길고 이상하게 생긴 큰 플라스틱 바늘 같기도 하고 부들부들한 나무 같기도 한 것이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출되면서 이런 악으로부터 해방되는 사람들의 경우를 나도 맡은 적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자주 보여 지는 것은 아주 다양한 물체들을 배출하고 난 뒤에야 해방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색색의 면 실타래, 못, 똘똘 뭉쳐진 철사 줄, 리본 줄 등이다.
묶음 의식이라는 형식을 바탕으로 악의 주문이 준비된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써 이런 경우, 감정전이(感情轉移)는 특별히 머리카락들 혹은 가지각색의 천 타래들(특히 흰색, 검정색, 청색, 빨간 색 등 그 원하는 목적에 따라 다름)을 통해 묶여 있다. 예를 들어보겠다. 임산부의 태아에게 해를 입히려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는 인형의 목 부분에서 배꼽 부분까지 바늘과 말총을 이용해 묶어놓는다. 그 목적은 태아의 성장을 방해하기 위한 것으로 특별히 그 신체 부위를 비롯한 묶여진 그 부위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또 발휘한다 하더라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특히 묶음의식들은 신체 여러 부위를 묶을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정신적인 묶임이 더욱 자주 발생한다. 어떤 이들은 학업이나 직업 등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기도 하는데 이유는 이런 두뇌에 묶임 의식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의사들은 그 알 수 없는 증세를 찾아내려 애쓰고 약으로 치료해보고자 한다.
흔히 일어나는 또 다른 예를 잠깐 언급해 보겠다. 악의 주문은 베개 속이나 침대 매트리스 속에서 자주 이상한 물체들을 통해 증명된다. 색색의 리본들이 꼭꼭 묶여 있는 덩어리들, 한 움큼씩의 머리카락들이 촘촘하게 덩어리로 엉킨 것들, 매듭들로 빼곡한 줄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형태로 촘촘하게 양털로 짠 왕관 형태 혹은 동물 형태(쥐 종류) 혹은 양털로 짠 기하학적인 형태들, 핏덩어리들, 나무 조각이나 쇠 조각, 쇠줄을 엉켜 놓은 뭉치, 많은 표시들이나 수없이 찔린 자국이 있는 인형 등등, 만약 내가 눈으로 이런 것들을 확인한 것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고, 이런 것에 대해 말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놀라운 것들을 솔직히 이 책에서 고백한다. 정말 모든 잡동사니들이 다 발견된다. 또 어떤 경우는 급작스럽게 아이들이나 여성들의 머리카락이 촘촘하게 얼키고 설킨 형태가 되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나 사건들은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의 개입이 없다면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또는 이런 요상한 물체들이 첫 눈에 즉시 드러나지 않다가 매트리스 혹은 베개를 뜯었을 때야 비로소 발견되기도 하지만, 거기에다가 구마 성수를 뿌리거나 아니면 축성된 상본(특별히 십자고상 혹은 성모님 상본)을 집어넣었을 때, 그런 요망스럽기 그지없는 물체들은 사라졌다.
이에 대해 뒤에서 결론을 낼 것이지만 그보다 먼저 라 그루와 신부의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의 사항을 반복해 여기에 옮겨보고자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물론 내 직접적인 경험의 결과를 기술했지만 악마의 유린, 특히 악의 주문을 통한 악마의 유린에 대해 쉽게 믿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에 대한 신중한 조사를 해보면 실제 일어나는 일보다는 아무 근거도 없는 것들에서 정신적인 불안이나 이유 없는 무서움이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악마의 유린은 자주 여러 가지 이유들로 해서 목적을 성취하지 못한다는 것을 첨부하고 싶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해악의 대상이 된 사람이 기도 생활로 무장되어 있고, 하느님과 일치해 있기 때문이다. 악의 주문을 만드는 무당들은 단순한 사기꾼들이고 그럴 능력도 지니지 못한 군상들이다. 왜냐하면 이미 복음에서 증명해 주듯이, 자신의 하수인들조차 속이는 악마 자체는 “태초부터 배반자”였기 때문이다. 악의 유린에 의한 해를 입을까봐 두려워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크게 잘못된 것이다. 성경은 절대로 악마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악마 앞에서 강인하게 남아있을 때, 악마는 도망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야고 4,7 참조). 또 악마가 덮치지 못하도록 신앙으로 무장하여 늘 깨어 있으라고 가르친다(1베드 5,9 참조).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사탄을 물리치신 그리스도의 은총 중에 있고, 인류태초부터 사탄의 원수가 된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가 우리와 함께 있다. 특별히 우리들에게는 세례성사를 통해 주어진 삼위일체의 인호가 있다. 만약에 우리들이 하느님과의 친교 속에서 살아간다면, 악마는 우리들 앞에서 모든 지옥과 함께 벌벌 떨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악마에게 문을 열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내 경험이 가르쳐 준 바대로 악의 유린의 형태들 중에서 가장 흔한 악마의 영향에 대해 몇 가지 다른 개념들을 첨부해보고자 한다.
악마의 유린은 그 준비된 것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름들로 불려질 수 있다. 이것은 사람사이의 이별을 가능하게도 하는데 직접적인 해악을 미치고자 할 때, 어떤 한 쌍의 약혼자들이나 신랑신부나 두 친구가 서로 헤어지도록 만들기도 한다. 내게 자주 일어났던 케이스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약혼자들이 서로 사랑하면서도 도저히 가까워지지 못하고 파혼하는 경우이다. 그 둘 중의 어떤 부모가 결혼을 반대해 어떤 무당에게 찾아가 이들을 헤어지게 해달라는 악마를 이용한 주문을 넣었다고 실토하는 경우다. 혹은 직접적인 방법이라면 두 사람이 결혼에 골인하도록 연애를 가능하게도 한다. 이에 대해 기억나는 케이스는 어떤 아가씨가 자기 여자 친구의 약혼자를 사랑하게 되어 여러 가지로 유혹을 해보다가 안 되니까 결국에는 주술사를 찾아간다. 두 약혼자들은 헤어지게 되고 그 젊은 남자는 주술사를 찾아갔던 아가씨와 결혼했다. 그 결혼 생활이야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불행한 결혼이었으면서도 신랑은 도저히 부인을 버리지 못하는,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결혼을 강요당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외 다른 악마의 유린들은 질병을 불러오는 것들로 대상 지워진 사람이 항상 질병 속에 남아 있도록 기원한다. 또 다른 것들은 파괴(소위 말하는 죽음의 악마의 유린)를 불러온다. 이런 피해를 입은 사람은 구마기도를 받기 시작해야한다. 또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기도를 받아 죽음이라는 악마의 유혹이 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이런 케이스들을 상당히 많이 다루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주님께서는 적어도 인간적인 형태로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서 윤리적인 위험, 특별히 자살의 위험으로부터 이들을 구원하시고야 만다. 거의 항상(적어도 내가 맡은 경우들을 볼 때 항상 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악마의 유린의 심각성은 악마의 괴롭힘이나 심지어는 부마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구마기도가 필요하다. 가족 전체 혹은 가족 구성원을 해하기 위해 준비된 악마의 유린은 두려운 것들이다.
구마 예식서 8항에서는 첫 번째 해야 할 일로써 악마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을 무당이나 주술사 등, 교회 직무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보내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 이는 악마의 피해를 입은 사람이 어떤 형태의 미신이나 이와 비슷한 쪽으로 빠지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우리 구마사들의 경험이 이런 규범의 충고를 그대로 증명해주고 있다. 구마사들은 극소수이지만 주술사들은 그 숫자가 엄청나다. 더군다나 전문가인 몬시뇰 꼬라도 발두치는 자신의 세 권의 모든 책에서 악마에 의한 또 다른 짓밟힘을 당할지라도 이런 유린에서 해방되기 위해 주술사를 찾아가라는 충격적인 충고를 하고 있다(악마, pg 326 참조. Piemme 출판사).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충고다. 몬시뇰은 다른 여러 저서들을 통해 아주 훌륭한 사고(思考)를 보여주었던 분인데, 유감스럽게도 위의 세 권의 책에서는 실수를 해도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무당이나, 치료사, 주술사와 이런 부류의 무속인들을 맹신하는 것은 지구의 탄생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경고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문화, 과학, 사회의 진보와는 아무 상관없이 이런 맹신은 “과학화된 세계”와 아주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다는 이들, 더 나아가서는 문화적으로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건축가, 의사, 교수, 정치가 등등 … ) 까지도 이런 미신의 뒤를 쫓고 있는 실정이다.
구마 예식서 20항은 구마사제가 악마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제시하고 있으며, 그 특정한 사람의 몸에 들어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악마의 유린으로부터 부마의 시작 여부를 묻도록 제시하고 있다. 이 경우 악의 주문을 통해 만들어져서 악마에 의해 전염된 무엇인가를 먹거나 마심으로써 올 수 있기 때문에 구마사는 악마에게 그것을 토해내도록 명령하라고 제시하고 있다. 반대로 신체가 아닌 다른 곳에 어떤 악마의 영향을 받는 물건을 감춰두고 있는 경우, 구마사는 그 장소가 어딘지 그 물건을 찾아내 태우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런 권고들은 유익한 것들이다. 실제로 악마의 주문에 의해 만들어진 무엇인가를 먹거나 마심으로써 악마의 유린으로부터 오는 해악은 이미 앞에서도 여러 번에 걸쳐 언급했던 것처럼, 항상 극심한 위통을 호소하게 되며, 신체적인 반사 작용이나 구토를 통해 벗어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수나 구마 된 성유와 소금을 먹게 함으로써 이를 배출하도록 해야 한다. 악마로부터 전염된 어떤 물건들은 설명 불가능한 방법으로 빠져 나오는데 나는 이미 이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와 같다. 예를 들어 갑작스럽게 위 속에 돌덩이가 든 것처럼, 묵직하게 느껴지면서 돌덩어리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고 그 통증은 사라지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색색의 실, 갈래로 땋은 얇은 실들 … 등, 그 외 다른 여러 가지 물건들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런 모든 물건들은 그 즉시 성수를 뿌리고(고통을 당한 당사자가 직접 할 수도 있음), 외부에서 태워야하며 그 재와 타지 않는 물건일 경우에는 흐르는 물에 던져버려야 한다(강, 하수도).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절대로 집안의 변기에다 버리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했을 때, 불상사가 일어나기 때문인데 집안 전체가 물바다가 되거나 집안의 모든 하수구들이 꼭 막히는 일들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베개, 매트리스 등을 뜯었을 때, 나타나는 요상스런 물건들은 부마자를 통해 그것이 있는 곳을 악마에게 물어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민감한 능력의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들이 가르쳐 준 것을 바탕으로 한다(이에 대해 다시 언급하겠음). 이런 물건들이 발견된 뒤에야 악마에게 유린당한 것을 알게 되고, 그 즉시로 구마사를 찾게 된다. 이런 물체들을 찾아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집밖에서 그 베개와 매트리스 등을 불태우고, 그 잿더미에다가 성수를 뿌린 뒤, 잿더미는 위에서 말한 대로 처리를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면서 악마에 의해 유린된 물건들을 태워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우연한 기회에 발견된 악마의 주문, 혹은 악마가 가르쳐 줘 발견된 것은 소홀히 다룰 수 없는 것들이다. 깐디도 신부님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그가 젊은 시절 막 구마사 직무를 시작했을 때 저질렀던 “젊은 시절의 과오”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에 옮겨 보겠다.
그는 또 다른 예수 고난회 사제이면서 주교로부터 구마사직무를 받은 사제와 함께 어떤 처녀에게 구마기도를 하던 중에, 악마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그 처녀가 악마의 주문에 의한 부적을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그게 무엇인지 묻자 손바닥만 한 길이의 나무통이라고 하자, 구마사들은 그것을 어디에 숨겼는지 악마에게 묻고 악마는 주문을 숨긴 장소를 실토하였다. 어떤 나무 밑 일 미터 깊이에 파묻어 놓았던 장소를 악마가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분발한 구마사들은 삽과 곡괭이를 들고 악마가 가르쳐 준 장소로 갔다. 악마가 말한 그대로 거기에는 나무통 하나가 파묻혀 있었고, 이를 열어 그 내용물을 검사한 결과, 잡동사니들과 함께 음란한 형상의 조각이 들어 있었다. 즉시 그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알코올을 이용해 태워 잿더미로 만들었다. 하지만 태우기 전에 성수를 뿌리는 것을 잊어버린 채, 그것들이 다 탈 때까지 예수님의 성혈의 보호를 청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여러 번에 걸쳐 그 물건들을 만진 뒤, 즉시 성수로 손 씻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깐디도 신부님은 삼 개월 동안 위통으로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 했고, 이 통증들은 심한 고통으로 거의 10 여 년 동안 신부님을 따라다녔고, 평생을 살아가면서 그 고통이 계속 재발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나를 비롯한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아주 큰 경험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실제로 그 처녀는 해방될 수 있었는지 깐디도 신부에게 물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 사건은 악마의 주문은 가끔씩 악이 모두 전이되었을 때 그것이 지닌 모든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내서 없애버리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악마의 유린과 악마의 주문을 찾아내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흘러버려야 했던 여러 사건들을 자주 맡곤 했다. 찾아내는데 시간이 걸릴수록 악마의 주문을 통해 전이되는 악마의 유린은 점차로 효과를 드러내버린 뒤여서 그것을 찾아내어 없애버리는 것만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런 호전 증상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구마기도, 성사생활, 기도 등이 호전증세를 보여주었다.
어떤 경우는 악마의 주문에 의한 부적을 태웠을 때 거기에서 비롯되는 악마의 영향이 멈추는 경우다. 나는 상대방이 썩어 문드러지는 “죽음을 기원하는 악의 주문"의 사건을 다룬 적도 있다. 이것은 악에 의해 유린된 생고기를 묻는 것인데 그것이 부패하기 전에 찾아내어 없애버려야 했던 일도 경험했다. 이뿐 아니라 심지어는 두꺼비 종류를 이용해 살아있는 동물들을 매장하는 형태로도 사용된다. 이런 동물들이 죽기 전에 발견해 내면 악마의 영향이 갖는 효과를 중단시킬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치료책은 구마 예식과 기도, 성사들과 준성사들의 활용에 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악마를 막기 위한 도구에 의한 효과가 늦게 나타날지라도 무당이나 주술사를 찾아가지 말고 이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몇 번이고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이 갖는 힘을 주셨고, 기도(개인과 공동체기도)와 교회가 행하는 전구의 힘을 주셨다. 악의 주문을 푸는 주술을 쓴다는 속임수를 쓰는 주술사를 찾아가는 것은 이미 악마의 방해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 혹을 떼려고 갔다가 덧붙이고 오는 격이 되고 만다. 성경은 한 영혼에서 악마가 나갔다가 그 악마보다 더 악한 일곱 악마가 들어온다는 구절이 있다(마태 12, 43-45 참조). 이 말씀은 분명 주술사를 찾아가 혹 떼려다가 오히려 붙이고 오는 경우다. 이에 대해 그 동안 내가 겪은 경험 중 자주 부딪치게 되는 의미심장한 세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첫 번째 예다. 육체적인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약을 써보고 이 의사 저 의사들을 찾아다니면서 고통을 오히려 증대할 뿐, 도대체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다. 그러다가 신통하다는 무당, 주술사를 찾아가거나 카드점을 치는 점쟁이를 찾아가면 듣는 말이 “아이쿠, 악마를 이용한 주문에 걸렸군요. 단 돈 100만원에 악마를 이용한 주문을 풀어 드리죠.” 찾아간 사람은 잠깐 망설이다가 결정하고 돈을 지불한다. 이럴 때, 가끔 무당은 대상자의 사진을 달라고도 하고, 속옷이나 머리카락을 요구한다. 며칠 뒤 실제로 모든 병이 사라진 것처럼 느끼고 100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게 생각된다. 일 년쯤 지나자 그 병이 재발한다. 불행을 겪는 사람은 다시 의사들 사이를 전전하지만 의약품은 전혀 효과를 가져다주지 못하게 되고, 고통은 점차 심해진다. 이렇게 악마는 훨씬 더 나쁜 일곱 악마와 다시 그 몸으로 돌아온 것이다. 참다못한 그 사람은 “백만 원씩이나 지불하고 무당을 찾아가 병을 고쳤는데 어찌된 것인지”, 생각하다가 다시 그 주술사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악화되어 재발된 병은 주술사의 악마에게 바친 제사 때문이란 걸 알 리가 없다.
찾아간 주술사는 “지금 보니까 그 때보다 훨씬 더 큰 악마를 이용한 주문에 걸려 있군요. 원하면 액땜을 해 드릴 테니, 오백 만원이면 충분하겠습니다.” 라고 요구한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만약에 이런 희생자들이 처음에는 아주 미미한 악마의 영향의 시초라고 간단하게 생각하고, 구마사를 찾아가서 실제로 구마기도를 하다 보면 주술사에 의해 엄청난 악에 걸려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악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두 번째 예를 보자. 위의 예와 똑같다. 환자가 돈을 지불하고 주술사에 의해 치유되고 그 치유가 유지된다. 하지만 그 대신에 그 악은 부인이나 자식들이나 부모, 형제지간으로 옮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악마의 영향은 여전히 몇 배로 증대된 채 남아있게 된다(철저한 무신론이나 삶 속에서의 죄, 자동차 사고, 불행, 우울증 등의 형태로 감춰진 채).
세 번째 예다. 여기에서도 위의 예와 마찬가지다. 주술사에 의해 치유된 사람의 치유는 유지된다.
그러나 질병의 대상이 된 사람은 죄를 속죄해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기도생활과 교회와 성사생활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질병의 목표는 그 영혼 구원의 엄청난 영적인 결실들을 얻는데 있다. 악마를 통한 치유는 이런 목적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질병의 원인이 선함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악이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하느님께서 질병을 허락하시는 것은 그 속에서 선을 찾아내라는 것임을 잘 알아야 한다. 십자가를 허락하심으로써 이를 통해서만 천국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그 예는 특별한 카리스마를 받은 사람들은 자주 고통에 시달리고 이로부터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통해서 증명된다. 성 비오 신부는 50년 동안 창으로 찌르는 듯한 오상의 고통을 감수해야 했으면서도 주님께서 그의 고통을 없애주시라고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 고통은 분명 하느님께서 엄청난 영적인 목적을 위해 주신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악마는 예리하다. 비오 신부님의 육체에 새겨졌던 수난의 오상의 표시들을 없애버렸으니까! 물론 악마에 의한 오상과 이를 통한 거짓 신비가들을 만들어내는 것과는 천지차이로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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