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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Cresciano의 볼더(boulder) 울창한 숲속에 파묻혀 나무로 만든 '샤쿠하치'를 불고 있는 샤마 |
크리스 샤마는 누구인가? 실제로는 어떤 사람인가? 호주의 the Grampians 암벽의 바위꾼에서부터 미국 Bishop의 볼더러들
그리고 Chamonix의 알피니스트에 이르는, 전세계 클라이머들이, 샤마가 이제까지 있었던 록 클라이머 중 가장 위대한 클라이머들중의
하나이며, 그의 세대 사이에서는 우상과 같은 존재이며, 아마 지난 십년 동안 가장 유명했던 두 개의 암벽 루트, 즉, the
Mandala와 Realization과 더불어 그의 이름이 영원히 남아 있게 되리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한 인간으로서의 그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별로 없다. 샤마에 관해 대충 알기는 하나, 샤마의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 외에는, 참으로 샤마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믿기 어렵지만, 등반 상 그의 이름과 얼굴이 가장 널리 알려진 이
클라이머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이며, 그의 동기와 열정과 인스피레이션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부드러운 말투와 은둔자적인 그의 성격이
등급과 미디어를 멀리 하는 점 그리고 대마초 등과 결합됨으로써, 오래 동안 등반계에서 크리스 샤마의 참모습을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
까지는 그랬다.
놀랍게도, 그가 지난 가을 두 달 반 동안의 유럽 여행 기간 중, 클라이밍 지를 위해 일기를 쓰겠다고 동의해주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한 것은 굉장한 등반기나 멋들어진 시내 외출에 과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주로 혼자 여행할 것이며,
어떤 특별한 목적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잘 됐다. 그에게 우리가 말한 것은, 이 일기가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여행과
경험 그리고 그의 생각과 인생철학을 자세히 털어 놓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 그의 맘대로 말이다. 그의 글을 고친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그가 쓴 글 그대로 인쇄될 것이었다.
그가 지난 11월 유럽에서 돌아온지 몇 주 후, 샤마의 낡아빠진 일기가 클라이밍 지에
도착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놀랐다. 샤마는 떠난 이후, 한번도 우리에게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우리 짐작으로는, 샤마가 그냥
일기장 쓰기를 그만 두고, 그의 과묵한 성품 그대로 지내다 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우리의 생각이 잘못이었다. 샤마가 진짜로 일기를 썼고,
착실하게 50 페이지 이상을 썼다. 그 얼룩지고, 꾸겨지고, 낡아빠진 그의 노트북을 열어보고, 우린 놀랐다. 그 페이지들 속에는, 이번
등반 여행에 관해 생생하게 요약한 내용 뿐 아니라, 그가 누구인지, 즉, 크리스 샤마 개인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볼 수 있는 글, 그의 통찰력이 드러나고,
흥미진진하며, 그의 자유분방한 개인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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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산 테셍가
여기
일주일 남짓 있으니까 이제 자리잡아가는 것 같다. 늘 그렇듯이, 혼자 타국에 있으면 사람에 대해, 대인관계에 대해, 그리고 의사소통과 나 자신에
관해 많은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있는 것이 정말로 모든 사람에게 개방적으로 대하게 만든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 (그리고 특히 solo로 지내는 자유를 누리며) 매우 좋다. 그렇게 해서 자기네만 알고
있는 감추어진 곳으로 나를 초대해주는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면서 이미 여러가지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언어 장벽 때문에 좀 외로울 수도 있긴
하지만) 많은 수의 사람이 그룹으로 오기 보다는 - 특히 미국 문화의 거품을 결코 떨쳐 버리지 못하고 유럽에 미국을 갖고 오기 보다는 - 혼자
여행하고 관찰하는 느낌이 좋다. 또한 특별한 일정도 없고 기대도 없다는 것이 그저 흐름을 따르면서 하고 싶은 등반을 하고 그 순간의
필요에 맞게 지낼 수 있는, 열린 마음과 여유를 흠뻑 주고 있다. Realization을 하고 있었던 작년 같은 경우에는, 나는 특정
목적에 너무나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이 나를 메마르게 했다. 금년에는 그저 루트 등반이나 하면서 즐겁게 새로운 경험을 해보려고 한다.
클라이밍 지를 위해 이 일기를 쓰니 좀 묘한 느낌이 든다. 왜냐 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등반인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풀타임(full-time) 클라이머이긴 하나, 그렇다고 그게 나의 전부는 아니다. 클라이밍이 가장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아무리 초코렛이
좋다 해도 너무 많으면 구역질이 나는 법이다.
* * * * *
오늘도 다른 날과 똑 같이 하루가 시작되었다: 내 친구 Laurent Triay,와 같이 머물고 있는 St. Guilhem이라는 곳의
오래된 마을의 중심가에서 거피와 크로아상으로 아침을 먹었다. 로랑은 프랑스 남부에서 수백 개의 루트에 볼트를 뚫었고, 뛰어난
가이드이며,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벗어난, 드러나지 않은 곳을 많이 내게 보여주었다. 우리는 정말 굉장한 동굴에 갔다. 그곳에는 튀어나온
석회암 암벽 위로 170 피트나 뻗어 있는 루트들이 있었다. 엄청난 급경사이고, 멋진 바위이며, 아무도 없다! 대단히 평화로운 곳이었다.
클래식한 5.13d를 온사이트 하여 기분이 좋았다. 내 능력 한계 끝까지 갔으며 몸 상태가 괜찮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이
여행을 하기 전에 나는 근 일년 동안 루트 등반을 하지 않았다. 그 시기는, 내게 매우 필요했던 등반 중단기이었다. 등반을
항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일단 등반을 하면 정말로 등반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니 좋았다. 항상 나의 최고
수준에서 등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꼭 내 몸이 휴식을 필요로 한다는 점 때문 만은 아니더라도, 분명히, 내 마음도 어떤 변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도를 걷는
삶이 이상적이다. 그것이 평화롭게 사는 길임은 분명하다. 하루 하루 그 길을 찾고자 나는 노력한다. 멀리서는 너무나
간단히 보였던 어떤 길에서 나는 길을 잃고 만다. 때로는 너무 게으르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서둘기도 한다. 이 양 극단 사이에서 올바르게 살고
싶다. 클라이밍에 있어서도 이 점은 역시 진실이다. 잡기 좋은 큰 홀드에 있을 때는, 작은 크림프 홀드처럼 그것을 쥘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를,
즉 그 큰 홀드를,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리라. 작은 크림프 홀드들로 구성된 다음 시퀀스가 두려워, 그 커다란 홀드에 매달린 채 그 큰 홀드를 놓지
못한다면 나는 밸런스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것은 중도가 아니다.
요즘의 나의 등반 방식 그리고 등반과 나의 관계는 9년 전 내가 등반을 처음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처음에는 로맨틱한 사랑이었고;
이제는 그 관계가 좀 더 성숙된, 매일 매일의 스타일로, 발전해왔다. 내게 있어 그 로맨스 단계는 이미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등반을 사랑한다. 달콤하고 부드러울 때가 있는가 하면 강렬한 때도 있고, 광적일 때도 있고 평정심이 유지되는 때도 있다. 바로
이것이 삶의 밸런스이다. 내가 최고의
등반을 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런 강도에 밸런스를 주기 위해 다른 일들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느낀다. 내 경우에, 그러한
평형을 이루는 방법이 바로 선수행이다 (mediataion). 그러나 이러한 밸런스를 마스터하는 것은 아직 나에게는 요원한 일임을 알고
있다.
* * * * *
마침내 오늘 등반하게 되니 참 좋았다. 두 번 시도 만에 Claret에서 두 번 시도 만에 5.14a를 했다. 나의 몸을 운동시키고 해와 나무가 있는 야외에 나와 있으면, 좀 더 완전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어려운 루트를 해보려고 할 때 정신을 극도로 집중하는 것이 좋다. 그 순간은 너무나도 순수하며; 분별심도 없고 생각하거나 알아야 할 것도 없다. 왜냐 하면 그 순간엔 모든 게 갖추어져 있으니까 (it's all right there). 지금 바로 여기, 바로 이 순간. 일체가!
프랑스 남부의 홍수로 인해 일주일 간 등반을 못했다. 눈으로 보아도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물은 대단히 파워풀하다. 물처럼 바위 위에서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좀 더 물처럼 바위 위로 흘러갈 수 있을수록, 좀 더 많이 깨닫게 되고, 우리들 사이의 소외감도 좀 더 줄어든다. 그런 경지에서는 자연스럽게 어려운 등반이 이루어지겠지. 마치 범람하는 강물이 무심하게, 그 어떤 생각조차 없이, 다리를 휩쓸어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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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ge Visser와 Lauren Lee가 얼마 동안 나와 함께 지내게 되었고, 이탈리아에 월드컵 볼더링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20
시간 동안 차를 타고 갔다. 경기는 좋았다. 로런과 나는 둘 다 2위로 입상했다. 등반 경기의 가장 좋은 점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점
그리고 모두와 서로 사귄다는 점이다. 그렇긴하나, 그 세계에 삼 일 이상 머물 경우, 자신이 굉장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과대 망상에 빠져버릴 수 있다. 아마 자칫하면 자만심에 빠진 멍청이가 되기 쉬울 것이다.
노 땡규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숲 속에 있는 볼더링 바위들로 돌아가리라.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자연이 있는 곳으로.
경기가 끝나자 우리는 Cresiano에서 볼더링을 하기 위해 스위스로 다시 차를 몰고 갔다.유럽에 도착했을 때 내겐 별다른 큰 계획도 없었고, 심각한 목표도 없었으며, 그저 등반이나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가 진심으로
해보기를 원하는 등반 루트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Dreamtime이었다. 그건 정말이지 완벽한 문제였다. 일년 전 내가
Realization을 한 이래 마음 속 깊이 내게 인스피레이션을 불러 일으킨 최초의 바위이다. 나는 Dreamtime을 화두로 삼고
참선을
하고자 했으며 그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보려고 했다. 어제까지는 내 살아가는 방향을 달리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등반이 점점 진부하게 느껴지고 있었고, 개인적인 의미가 많이 없어지고 있었다. Realization을 한 후, 나는
넉 달 동안 등반을 중단했고, 일 년 중 대부분의 기간 동안 등반 의욕이 꽤 저하되어 있었다. 다시 등반을 하지 않아도
OK였다. 등반 경력 상으로 할만큼 했다고 느꼈을 뿐이고, 내가 기울였던 노력에 관해 매우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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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모두가 쉬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약간 기분이 저조했다. 마음 속의 진실에 충실하지 못했을 때는 불행하다고 느끼기 쉽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대로 - 나의 진정한 자아 - 살고 싶다. 그러나 나의 에고의 (ego, 小我) 힘은 매우 강력하며 그것이 꼭 나에게 유리하게 활동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등반할 때도 나는 나의 에고(小我)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내가 등반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because I could be free from myself). 그러나 미디어와 이미지와 평판과 자존심 그리고 기본적으로 등반하러 가는 것 이외의 그 밖의 다른 그 어떤 것 들이 내 의식에 부담을 주고 나와 바위를 갈라놓음으로써, 나의 에고가 그 중간에 놓여질 때 이상한 것이 슬그머니 끼어든다. 내가 해온 등반을 완전히 그만두고 뭔가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 느끼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러나 내가 무얼 하든 간에 여전히 문제는 있기 마련이며, 가장 완벽한 상황에서도 그러리라는 점을 난 알고 있다. 일이라는 건 결코 모두 좋을 수는 (be just right) 없다. 그러나 삶에 관해 우리를 가르쳐 준다는 점에서 모든 일은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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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ronico에서 또 한번 이럭 저럭 하루를 보냈다. 여러 차례 나는 완전한 패배를 맛보곤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선(禪)에서는 초심자의 마음을 지니고, 기대나 후회의 훼방을 받음이 없이 완전히 열린 마음으로 그리고 새롭게 체험해나가라고 말한다. 전문가의 마음은 스스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필요치도 않은 추가적인 기준을 세운다. 등반을 함에 있어 내가 초심자의 마음을 갖기는 어렵다. 왜냐 하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다 내가 전문가이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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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그럭 저럭 이틀을 더 보낸 후 지금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 그레노블에서 동전 넣는 세탁기 앞에서 내 옷을 빨고 있다. 실은 그 기계가 옷을 세탁하는 건데, 여하튼 그 공을 내가 가로채는 셈이다. 어제 밤에는 잠을 푹 잤다. 일주일 만에 가장 잘 잤다. 스위스에 있는 그 귀신 나올 것 같은 아파트에서 벗어나서 참 좋다. 전에 거기 살았던 사람은 아마 미쳐 버렸으리라. 얼굴에 덤벼드는 그 빌어먹을 모기들 때문에 매일 밤 뒤척이면서, 나도 역시 거의 미칠뻔 했다. 어제는 Chironico의 V12 짜리를 첫 시도에 오르게 되어 나 자신도 놀랬다. 그 전날 만 해도 그 문제에 완전히 압도 당하고 말았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지역의 클라이머들도 만났다. 드디어 여섯 명인 우리 그룹 이외의 사람들과 어느 정도 알게 된 것이다. 이 스위스 클라이머들은 매우 친철하고 개방적으로 보였는데, 이 점은 우리처럼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을 보면 움찔하는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느낌과는 훨씬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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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시간 전에 일어나, 지금 아침 햇살 속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어제의 활동 후에 침착성을 되찾으려고 노력해본다. Jorge와 나는 러닝에 푹 빠져 있다. 그건 내게 있어 새로운 경험이었고, 달리기를 해보니 건강해짐을 느꼈다. 몸 속의 모든 피가 대청소되는 느낌이 기운을 북돋아 준다. 우리가 6 마일 정도 달린 것으로 짐작했는데, 그것은 이제까지 내가 달려 본 거리 중 가장 먼 거리였다. 그 달리기가 그 날의 제일 중요한 활동이라고 느껴졌고, 그 자체로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Claret에서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 때문에 등반하러 가게 되었다. 사실 등반하고 싶진 않았고, 그 곳에 이르니 오후 5시이었는데 기온이 알맞았다.
몸풀기는 그저 그랬다. 심한 펌핑이 왔고 5.13a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잠시 몸을 식힌 다음, 바로 그 왼쪽에 있는 5.14a 하나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으나, 나는 ‘프로젝트 하기’ 라는 생각이 맘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프로젝트 삼아 오르는 연습을 하지 않고, 그냥 온사이트로 해버렸다! 바위와 나 자신이 조화를 이루는 느낌은 정말 이상하다. 왜 이상하냐 하면, 그 루트가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 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는 동안 내내 크럭스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는데 결국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앵커에 이르고 말았다. 그런 온사이트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어서 매우 인상적이라고 어떤 사람들은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정말 인상적인 것은 그 루트가 어렵지 않았다는 점이다. 별로 힘이 안 든 편이었다. 좀 이상하다고 느꼈으며, 이런 체험을 하게 된 점에 대해 그리고 등반의 정신적인 면을 접하게 된 점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주*객이(主客)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잠시라도 맛보고, 또한 일체가 녹아내리면서 진면목이 드러나고 온전한 기능을 발휘함을 보는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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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의 삶 속의 삶. 여기선 모든 것이 꽤 캐주얼하다. 아마 그 때문에 게으름이 나를 지배함을 느끼게 된다. 게으름이 나를 짓누르고 있거나 또는 걱정이나 뭔가 다른 것을 바라는 등의 쓸데없는 일들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나를 항상 위협하는 것은 내 삶 속의 모든 일들을 내가 즐길 능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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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14b 루트에서 열심히 등반했다. 두 번째 시도 만에 해냈다. 정말 좋은 루트였다. 나는 저말 그렇게 정식으로 등반하기를 즐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실제로 내가 하는 일에 일종의 목표를 제공한다. 그 목표가 좋으냐 나쁘냐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등반 자체를 위해 등반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Nimes를 내일 떠나게 되어 기분이 좋다. 여기 있는 것도 좋았지만, 그러한 안락함이 나를 게으르게 만들고 있다. 난 등반을 좀 더 하고 싶다. 훨씬 더 많이 하고 싶다. 다행히 그 등반지에 도 오후 네 시 가까이 되어 도착했는데, 그래서 등반할 시간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프랑스의 이런 훌륭한 암벽들에 좀 더 가까이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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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하든 간에 문제가 있기 마련이라는 점을 안다. 심지어 가장 완벽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만사가 다 잘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삶에 관해 가르쳐 준다는 점에서는 역시 그 나름대로 좋은 것이다.
Chemis de Katmandu 는 Gorges du Jonte에 있는 대단히 좋은 스포츠 클라이밍 지역이다. 전에그곳에서 초등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 느낀다. 그 루트는 정말로 기절할 만큼 멋지다. 나 같이 땅을 사랑하는 사람은 (ground lover) 감히 로프 한 동 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경우가 드물다. 그에 필요한 에너지와 의욕 그리고 그에 필요한 조직적인 기술이 내게는 거의 없다. 그래서 친구인 로랑이 멀티 피치 프로젝트를 같이 올라가자고 한달 전 쯤 내게 제안했을 때, 나는 꽤 망설였다.
그 루트는 프랑스에서는 어느 정도 전설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별로 기대를 갖지 않고 그 루트를 올라갔었고 우리는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 첫 피치의 시작 부분은 그 루트 끝 부분과 거의 비슷한 정도로 어렵다: 오버행을 이루고 있는 오렌지 색 바위이며, 길이가 51 미터나 되는 5.13d이고, 작은 포켓 홀드들, 극히 두께가 얇고 흐르는 엣지들, 확보물 간의 긴 거리, 그리고 볼더링 동작들을 요한다. 그 다음에는, 엄청나게 힘든 볼더링 동작을 요하고 노출이 많이 되어 있는 5.13d/14a를 지나 황금빛 헤드월로 (headwall) 이어진다. 오, 세상에, 그 헤드월은 정말 멋졌다! 아마 5.13d/14a인 것 같고 꽤 힘들다. 그 기막힌 노출감!
몇 주 전, 처음 할 때는 Chemis de Katmandu의 어떤 피치도 나는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 풀었기 때문에, 다음 번 시도에서는 가능하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좀 더 빨리 이곳에 오려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 나라의 그 많은 멋진 등반지들로 인해 마음이 좀 흔들렸었다. 로랑의 (Laurent) 목표는 이번에 Chemis de Katmandu의 그 마지막 피치 동작을 파악하겠다는 것이고, 한편 내 목표는 이 세 피치 짜리 루트의 레드포인트다.
그 크럭스 피치 시작 부분의 매달려 빌레이 보는 지점에 (hanging belay) 내가 달랑 매달려 있으면서, 로랑이 느끼는 부담감을 알고 있으니까, 마치 내가 1000 피트 높이에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처음 두 피치는 레드포인트로 한 적이 있고 마지막 피치의 크럭스 위의 굉장히 쉬운 동작에서 이제 막 떨어지고 말았다. 그 루트는 그의 것이었으며, 좀 자의적(恣意的)이긴 하고, 심지어 에고이스트 적인 관점일지라도, 그것의 초등은 정말 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다음 번 시도에서는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점을 그는 알았다 - 이번이 그가 그 마지막 피치를 시도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였다. 그리 하여, 그가 그것을 완등했다. 이렇게 간단하다. 그가 그 행잉 빌레이 (hanging belay) 지점까지 내려지고 난 후, 내가 그 피치를 선등했을 때 하늘은 진한 적색이었다. 우리는 둘 다 기운이 넘침이 다행이라고 느꼈고 이번에 완벽한 등반 순간을 경험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 * * * *
다시 한번, 등반에 몰입하고 열중하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다.
지난 해 이 무렵 나는 불교도로서의 행각(行脚) 차 일본에 있었다. 등반은 내 마음에서 가장 먼 곳에 있었다. 등반가로서의 삶을 끝내고
수도승이 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보았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새로운 관점에서 등반을 발견할 수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얼마나 등반을 추구하는
행위가 극히 이기적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완전히
에고를 (小我) 부풀릴 수도 있음을 나는 본다. 자기가 잘 났다는 마음가짐 없이, 자유로우면서도 겸손하고, 열린 마음이면서도
초심자 같은 접근 방법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 (It’s so hard to keep a free-and-humble,
open-and-fresh approach without taking on an attitude of self-importance.)
자신의 성취, 등급, 이미지, 그리고 구데기가 가득 담긴 푸대자루 같은 것들에 나 스스로도 얼마나 집착할 수 있는지를 나는 본다. 이런 것에
집착할수록 탐욕과 성냄과 남들의 필요와 감정에 눈이 점점 더 멀게 된다. 이런 식의 어려운 루트의 추구가 진짜로 위험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며, 나 자신도 좀 더 주의해야할 필요가 있다.
* * * * *
어제는 나를 한계까지 밀어 부쳤다. Gorges du Tarn에서
또 하루 동안 등반. 최고 속도를 올린 하루였으며, 이
길고, 힘들고, 이상하고, 묘하며, 거북하면서 또한 기막히게 멋진 루트들의 꼭대기에 이르기 위해, 진짜 저 밑바닥에 있는 에너지까지
찾아내고 깨달아야 했다. 어제 나는 Tenesse라고 부르는 150 피트 짜리 5.13d를 최초로 온사이트 했다. 정말 멋진 싸움을
했다. 내 평생 최고의 전투 순간 중의 하나였다. 그 크럭스까지는 꽤 쉽게 이르렀다. 그러나 저 높이 있는 어렵고, 읽어 내기 힘든
동작에서 완전한 좌절을 맛보고 말았다. 그 전부를 오르는데 약 45 분 걸렸고, 그 시간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부분에서, 즉, 오르락내르락 하며
몇 번 씩 거듭해서 해보느라고, 소비되었다.
내가
그 구간을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해보려는 생각에 집착했고, 세 손가락 쓸 수 있는 접시 모양의 홀드로부터 한 손가락 포켓이라고
짐작되는 홀드로 게속해서 몸을 날리곤 했다. 점프해서 거의 그것을 잡을 뻔 하다가, 도로 3 피트 떨어지고, 두 개의 굉장히 흐르는
홀드에서 추락을 멈추고 나서, 몇 동작을 다시 다운클라이밍 하여 잡기 좋은 큰 홀드에 이르러 다시 한번 시도할 준비를 했다.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보면 틀림없이 이상하게 보였겠지만, 나는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것을 해내기를 원했다. 드디어 올바른 시퀀스를
찾아냈고, 그랬더니 실은 꽤 쉬운 것임이 드러났다.
등급이나 어떤 루트를 해낸 것이 마치 전혀 중요치 않은 듯이 나도 항상 말하곤 하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사실 그렇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그리고 이 장소, 이 몸뚱아리와 에고(小我)라는 작은 그림에서 보면, 등급과 실적이 그 어떤 의미를 갖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긴 하나, 등급과 자신의 등반 실적을 지나치게 중요시 하는 것은 그릇된 길로 빠지는 것이다.
나 자신도 어떤 어려운 것을 하려고 준비하긴 하나, 나는 과연 그것이 정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머지 않아 그것이 나타날 것이고 그에
대한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아직 워밍업 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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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일기를 쓴 이후 몇 개의 다른 좋은 등반을 했는데, 그 중에는 하루 안에 해낸 몇 개의 5.14 급 루트가 포함된다. 그런 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참고 기다리려고 했다. 그러나 비는 우리를 Gorges du Tarn에서 쫒아내기로 작정을 한 것 같다. 비가 그 암벽과 우리의 마음을 압도했고, 로랑이 사는 St. Guilhem으로 우리는 도망갔다. 그곳에서는 맑고 따스한 햋볕이 우리를 반겼고. 그것이 내 얼굴에 닿는 순간, 프랑스에서의 내 목표 의식을 다시 불러 일으켰다.
내가 가기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데려가는 라이프스타일을 갖게 된 점에 대해 복받았다고 느낀다. 때로는 나 자신이 불쌍하다고 여기고 기분이 언짢기도 하다. 그러나 한걸음 물러서 보다 큰 그림을 볼 때는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를 알게 된다: 전 세계를 여행하고, 좋은 친구들과 좋은 가족이 있는 것이다. 이 마음가짐을 지닐 수 만 있다면, 다음 주에 있을 이태리 대회는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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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루트를 몇 개 더 완등했다고 보고할 거리를
만들고 싶다. 어려운 등급 몇 개 정도, 내가 뭔가 생산적인 것을 하고 있다고 보이는 그 어떤 것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주에는 수없이 떨어지곤 했다. 어떤 홀드를 잡고 그것을 당기려고 할 때, 보통 때의 나의 파워는 온데 간데없다. Gorges du
Tarn에서의 비와 더불어 이렇게 되기 시작했고 뷰(Buox)의 강렬한 햇볕 속에서 등반 한 이후에 그렇게 된 것이다. 아, 변명거리를
필히 비해두어야 겠다.....
어제는 “Livin' Large"라는 미국 TV 쇼를 위해 뷰(Buox)에서 등반했다. 끔찍한 하루였다. 뭐, 그렇게 까지 나빴다고
말하면 안되겠지만, 그 일이 정말 나를 아연실색케 했다. 인터넷에 읽은 것 말고는 전혀 나에 대해 모르는 이 사람들이 나를 인터뷰하니까,
나는 정말 재판 받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미디어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극히 제한된 취재를 하려는 그 구상이 내게는 정말로
불편했다. 그 방송 기자들이 ”익스트림 애슬렛“이라는 (”extreme athelete") 틀 속에 나를 짜 맞추려고 했고, 나를 만나
보기 이전에 나를 어떻게 묘사할 지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야하게 떠들고, 남에게 밉상 받기 쉽고, 잘난 척하는 사람이었으면
차라리 그들이 더 좋아했으리라: 그들에게는 그런 모습이 대부분의 시청자에게 좀 더 쉽게 팔아먹을 수 있는 성격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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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진정할 필요가 있다. 요즘 나는 긴장감을 느낀다 - 정말 안절 부절하고, 침지 못하고, 불안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좀 더 큰 그림 속에서 숨쉬고 사는 법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 나는, 내가’ 라고 말하는 걸 중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클라이밍이 드러내는 나의 단면 중의 하나, 즉, 잔뜩 부풀어 오른 에고가 이것이다 (inflated sense of
ego). 클라이밍에다 핑계를 대면 안 되겠지만, 내가 하는 행위가 모두 자기도취 위주가 될 때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대한 배려,
마음 비우고 행동하기, 만족할 줄 알기 등등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것은 항시 주의를 요하는 일이다. 나는 계속 노력해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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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월드컵에서 나는 완전한 패배를 맛보았다. 월드컵 난이도 경기에 마지막으로 참여한 것은 내가 16살이었던 오년 전이었고, 그 때는 우승했다. 이번에는 결선 진출도 못했다. 아마 엉덩이가 너무 무거워져 가는 게 아닐까. 그래 좋아. 자기 연민은 이제 그만 두자 - 망신과 창피는 내게 좋은 일이다. 그 클라이머들의 수준 그리고 그들이 등반 경기에 맞도록 적응된 정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에게 있어 경기가 바로 그들의 삶이다. 나는 그 곳에 잘 맞지 않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 경기 후, Val di Mello라는 알파인 계곡에서 볼더링 하러 가자마자, 금방 모든 일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자연이 나를 고무시키는 것처럼, 내 마음을 이끌리게 하지 않는 그 플라스틱 인공 구조물을 떠나, 다시 자연 속으로 돌아 온 점 그리고 그저 등반이 좋아서 등반 하는 그 느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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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대로
Dremtime으로 되돌아 가게 되었다. Crescianof로 돌아오니 정말 좋았다. 이번에는 볼더링 바위들이 (boulders) 있는 지역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새 경험을 하게 된다. 차에 탈 일이 별로 없고; 항시 자연 속에 있다. 이렇게 극히 단순한 여정으로
생활할 때는, 어떻게 나쁜 일들이 생길 수가 있겠는가? 그저 자고 일어나, 커피 준비하고, 가까이 있는 볼더에서(boulder) 몸을 풀기
시작하고, 천천히 아침을 먹는다. 해가 산등성이를 넘어갈 쯤 되면, 매끈한 화강암 슬랩 멋진 폭포까지 걸어가서 얼음처럼 차가운 샤워를
하고 쉰다.
그 다음에 그 날의 등반을 하러 간다. 아니 적어도 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때로는 볼더가 (boulder) 너무나 어려운
적도 있다. 그래서 그냥 연습만 한다. 특히 Dreamtime에서 연습을 해왔다. Dreamtime을 알고자 많은 에너지를 기울여
왔었다. Dreamtime은 멋진 등반을 요하는 멋진 바위다. 획기적인 등반 루트다. 이틀 간 무섭게 그것을 오르는 연습을 했고 거의 될
뻔 하다가, 그 마지막 동작에서 떨어지곤 했다. 이제는 그것을 끝낼 때가 되었는데 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여전히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떨어진다는 것은 아직 그것을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고; 그저
계속 시도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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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는, 플라스틱 인공구조물을 떠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니 좋았고 또한 클라이밍을 사랑하기에 그저 등반하는 느낌이 좋았다.
어제 아침은 편안하고 느긋하게 시작되었고 한가하게 폭포수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Dreamtime 루트에 가서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내가 기대 했던 바 그대로를 느꼈다. 하나하나의 동작이, 마치 꿈속에서 깨어난 듯이, 다음 동작으로 흐르듯이 이어졌고, 그 꼭대기에 도달했다. 이제까지 해본 것 중 단연코 가장 멋진 등반 라인 중의 하나이다. 내 한계 수준에 있는 것을 시도하는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바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참으로 알아야만 했다. 현미경 같은 초점을 갖고 그 루트를 오르는 것 그리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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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번 여행 경험도 이젠 끝에 이르렀고 이미 새로운 체험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열 시간 후에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 어떤 다른 종류의 모험을 시작하게 되리라. 이번 여행은 아주 좋았다. 내가 등반과 자연 그리고 나 자신의 몸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함을 느끼게 되었다. 지난 두 달 반 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 굉장히 많이 웃고 울었으며,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 완등과 프로젝트와 추락, 논쟁과 괴로움, 강점과 약점 등이 그 기간을 꽉 채웠다.
이 여행 중, 등반이라는 흥미진진한 윈도우를 (window) 통해 사람들의 관점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정말 행복한 클라이머들을 만나기도 했고 정말 불행한 클라이머들도 역시 만나 보았다. 자존심 때문에 등반하는 클라이머들도 만났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삶에 대한 열정이 있고, 역시 그것을 등반에서도 보여주는 클라이머들도 만나보았다. 가장 강한 클라이머라고 해서 꼭 가장 행복하고 같이 지내기 제일 좋은 클라이머라는 법은 없다; 또한 그 중에는 정말 순수한 동기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V17을 또 하나 오른다고 해서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록 클라이밍“이라는 이 활동은 수많은 살아가는 방식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방식이며, 한 순간으로부터 다음 순간으로 진화하고 성장하는, 수 많은 삶의 방식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클라이밍 지, 조나산 테셍가
첫댓글 자유로운 영혼을 만난다는것은 여러 기쁨 중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