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두통 부르는 두통약 "약 주고 병 주네"
[속보, 생활/문화] 2003년 11월 30일 (일) 20:18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한 L(25)씨. 취업 원서를 벌써 50여곳 내고 수십 차례 면접까지 치렀지만 아직 직장을 갖지 못했다.
1년을 허송세월했다는 허탈감에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최근 두통이 심해지자 약에 의존하고 있다.
대학수능시험을 치른 K(18)양은 시험이 끝난 직후부터 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성적 발표를 며칠 앞둔 요즘은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통증으로 진통제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사상 최악의 실업난, 대기업에서 다시 부는 구조조정 바람, 수능점수 및 대학선택에 대한 고민, 연말연시 분위기에 따른 초조감 등 이런저런 걱정으로 머리가 아파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개 진통제로 해결하려 하지만 두통이 딱히 호전되지 않는다.
전문의들은 “두통 원인을 찾아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무조건 두통약을 사먹는 것은 증상을 오히려 악화시킨다”고 조언한다.
두통약이 두통 악화시켜, 전 인구의 90% 이상이 두통을 경험하고 여자의 68%, 남자의 64%는 1년에 적어도 한번 이상 두통을 겪는다.
그러나 고대 안산병원 신경과 박민규 교수가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7.8%가 두통이 생길 때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의사처방 없이 약국에서 쉽게 구입하는 진통제가 오히려 두통을 더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
실제로 강남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문동언 교수가 한 달에 15일 이상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 104명을 분석한 결과, 조사대상의 80%가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증세가 더 심해졌다.
문 교수는 “환자들은 의사처방이 필요 없는 게보린, 펜잘, 뇌신, 판콜 등 카페인이 함유된 진통제를 마구 복용하고 있고 하루에 30알 이상 복용하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타이레놀 같은 단순 진통제는 1주일에 5일 이상, 게보린 등 카페인이 함유된 두통약은 1주일에 3일 이상, 그리고 편두통 치료 전문약(미가펜, 마이드린, 카펠고트)이나 마약성 진통제는 1주일에 2일 이상 복용하면 두통이 생길 수 있다.
진통제를 주당 10알 이상 1개월 이상 복용하면 원래 환자가 겪던 두통의 형태가 바뀌면서 거의 매일 두통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진통제를 너무 많이 복용하면 뇌에서 통증을 억제하는 신경 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조금씩 사라져 두통에 대한 반응이 더 예민해진다.
신경이 예민해지면 신경에 염증과 흥분반응이 잘 생기고 뇌혈관이 확장되며 통증을 유발하는 물질이 많이 분비된다.
어떤 두통이 있나?
두통은 뇌 자체의 원인으로 생기는 1차 두통과 병이나 사고로 생기는 2차 두통으로 나뉘며, 1차 두통은 다시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긴장성 두통과 원인이 불분명한 군집성 두통 및 편두통으로 분류된다.
긴장성 두통은 스트레스나 불안, 우울증 등이 원인이며 같은 자세로 너무 오래 있어도 생긴다. 대부분 양쪽 머리가 다 아픈 것이 특징.
근육이 수축하면서 머리 뒤쪽과 뒷목이 뻐근한 통증이 발생하는데 때로는 머리 앞쪽과 관자놀이도 아프다.
군집성 두통은 흔하지는 않지만 젊은 남자에게서 가끔 나타나는데 통증이 너무 심해 ‘자살 두통’이라고도 한다.
밤에 15~30분간 매우 심한 통증이 한쪽 앞머리와 눈 주변에 나타나며 눈이 충혈되거나 콧물, 눈물을 동반하기도 한다. 일정기간 집중적으로 발병한다.
편두통은 뇌 신경전달물질의 분비에 생긴 이상이 원인.
음식이나 냄새, 기후 변화, 수면습관 변화 등이 도화선이 돼 발작을 일으킨다.
성인 남성의10%, 성인 여성의 25% 정도가 증세를 호소할 정도로 대표적인 두통이다.
발작이 오기 전 환자 10명 가운데 1,2명은 눈앞에 지그재그로 번개가 치거나 시야가 희미해지는 등 전조증세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그저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느끼면서 수십 분에 걸쳐 점점 두통이 심해진다.
보통 구역질이나 구토가 동반되고 빛과 소리, 냄새에 아주 민감해진다.
어떻게 극복하나?
두통을 없애려면 무엇보다 진통제 과다복용을 경계해야 한다.
진통제를 중단한 뒤 1~4개월이 지나면 10명 가운데 7명은 뚜렷한 두통 감소효과를 본다. 가장 중요한 기간은 약을 끊은 뒤 2~10일간.
이 기간에 참을 수 없는 두통, 구역질, 구토, 불면증, 우울증 등의 금단 증세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두통이 아주 심하면 통증클리닉에서 통증 부위에 국소 마취제를 주사해 흥분신경을 가라앉히는 ‘신경블록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한 달에 3회 이상 심한 편두통이 계속 나타나면 의사 처방을 받아 베타차단제, 칼슘차단제, 항경련제 등을 먹고 평소에 두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이라도 갑자기 증세가 심해지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정진상 교수는 “두통과 함께 토하거나 의식변화ㆍ반신마비ㆍ경련이 동반하는 경우에는 뇌종양 등과 같은 심각한 질병일 수 있으므로 즉시 신경과 전문의를 찾는 게 좋다”고 말했다.
세란병원 신경과 박지현 과장은 “두통 치료에는 약보다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두통은 아침밥을 굶거나 늦잠 등의 불규칙적인 생활습관과 과음, 흡연 등으로 인해 잘 생기므로 잘못된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