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걱정했던 안개는 걷혔지만 밤새 안개비 때문에 텐트가 다 젖어버렸다. 누워서 바라보니 텐트 윗면에 빗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어떤 것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르륵 타고 내린다. 아침식사로 어제 해둔 밥과 국으로 식사를 했는데 국을 덥히고 나자 가스가 수명을 다했다. 마트에는 잘 팔지도 않는데 걱정이다. 식사를 마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에 괜히 늦장을 부려본다.
침낭을 눌러쓰고 뒤척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사람 인기척이 들려왔다. 텐트지퍼를 열어 살펴보니 공원 관리인 같았다. 비옷을 둘러쓰고 쓰레기를 주우며 내가 있는 화장실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서둘러 짐 정리를 시작했다. 텐트를 걷고 정리할 때 즘 관리인은 화장실에 와서 잠겼던 문을 열었다. 자전거 여행객이라고 소개하며 어제 이곳에서 야영을 했다고 했다. 그러자 관리인은 “오늘 비가 계속 올 거라며 괜찮겠냐?”고 한다.
“다이조브(괜찮아요)!”
우중모드로 짐 정리를 마치고 공원을 나와 45번 국도에 다시 올랐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내리는 가운데 계속해서 산을 오르고 내림의 반복이다. 얼마 전 고장 나버린 오른쪽 기어변속기 때문에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억지로 돌리면 반응하던 왼쪽 기어변속기마저도 빗물에 잘 들지 않는다.
점심시간이 다 됐지만 비가 계속 내려 식사할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쏟아지는 엄청난 폭우. 더 이상 달리는 것을 감행할 수 없는 폭우에 마침 발견한 휴게소, 처마아래로 몸을 피했다. 땀과 빗물이 범벅이 돼서 뺨을 타고 내리는 것을 손으로 훔치고 꼬질꼬질한 모습을 조금이나마 수습하고는 휴게소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햄버거와 카레, 야채고로케를 샀다. 햄버거는 그 자리에서 먹어 치웠다. 빵, 마요네즈, 햄패티가 전부지만 맛있다.
비가 소강상태에 이르고 휴게소를 나서려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모 캔 커피 브랜드가 적힌 작업복을 입고 있었는데 “자전거 여행 중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한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질 즘 “햄버거 좋아하냐?”며 무료라는 말과 함께 햄버거 쿠폰을 주고 간다. 햄버거와 콜라가 그려져 있는 무료쿠폰, 그것은 완소 아이템이었다.
소강상태라 생각하고 출발했건만 폭우와 소강상태가 반복되는 바람에 어느 고가다리에서 카메라 가방에 있는 카메라를 배낭으로 옮겨 담고 신발도 운동화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는 등 완전우중모드로 전환했다. 다시 폭우를 가르며 달린다.
점심때를 놓치고 달리다 결국은 오르막 정상에 있는 누군가의 집 차고 안에서 비를 피하며 밥을 먹었다. 엊저녁 싸둔 도시락과 야채고로케로 밥을 먹는데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멋진 광경에 넋을 잃었다. 비구름과 안개가 하나돼 섬들을 휘감고 있는 모습과 회색 빛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진 이 곳은 마치 신선이 노니는 그 곳 같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얼마간을 더 달려 ‘라쿠젠 타카타’에 닿을 수 있었다. 그 곳에 들어서자 나를 쫓던 비구름은 거짓말처럼 사라지며 햇볕을 내리쬔다. 짐을 감싸고 있는 비닐의 빗물도 금새 말라버리고 나도 바람막이를 벗고 땀과 빗물에 범벅으로 찝찝했던 몸을 햇볕에 말렸다. 그리고 발견한 낚시용품점에 들러 가스가 있냐고 물었더니 여기는 없고 ‘코메리(Komeri)라는 곳으로 가보라며 조금만 더 직진하면 코메리가 있다고 했다. 감사인사를 하고 코메리로 향했다.
잠시 후 코메리에 닿을 수 있었다. 코메리에 들어가 갖고 있던 가스를 보여주며 매장직원에게 물었다.
“고레 아리마스까(이거 있나요)?”
매장직원은 잠시 살피더니 가스가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해줬다. 그런데 가스 가격이 처음 샀던 것보다 무려 ¥218이나 비쌌다. 괘씸하지만 오늘 밥을 해먹어야 하고 가스 파는 곳 찾기도 쉽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가스를 샀다.
코메리 맞은편에 해양공원이 있었는데 우중라이딩의 고단함에 더 이상 달리기도 힘들 것 같아 그 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하고 공원으로 들어갔다. 이 곳도 폭우의 영향을 받았는지 많은 곳이 젖어있었는데 그 중 화장실 앞은 대형 처마로 젖어있지 않았다. 이 곳을 야영지로 정하고 야영준비에 들어갔다.
장애인 화장실에서 빗물과 바닥에서 튀어 오른 흙으로 더럽혀진 비닐을 씻어내고 샤워도 하는 등 빗물로 더럽혀진 것들을 씻어냈다. 그리고 화장실 앞에 텐트를 치고 식사준비도 하며 분주히 야영준비를 마치고 밥을 하기 위해 버너에 불을 지폈다.
비 때문에 고생한 덕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해양공원을 나와 어제와 마찬가지로 45번 국도를 따라 계속 북진했다. 엊저녁에 오늘도 비 날이 되면 어쩌나 했는데 흐릿하긴 하지만 비를 뿌릴 것 같진 않을 것 같다.
해양공원을 벗어나고 본 첫 번째 이정표에 드디어 아오모리(Aomori)가 나타났다. 도호쿠(동북) 여행의 목표점 아오모리, 그 아오모리에서 북해도에 있는 하코다테(Hakodate)로 배를 이용해 갈 예정이다. 어쨌든 이정표에 아오모리가 나타나자 이전에 이정표에 동경이 처음 나타났을 때 느꼈던 반가움이 들었다.
이런 반가움은 우후나토(Ofunato)에 들어서는 오르막을 한결 쉽게 오르게 만들어 줬다. 오르막 정상에 닿자 우후나토의 구역임을 알리는 이정표와 작은 쉼터와 전망대도 나타났다. 이 곳 또한 화장실, 수도 가 등이 구비돼있어 야영지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전망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다와 함께 내려가야 할 내리막 길이 눈에 들어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스릴감 넘치는 내리막 길이 될 것 같다.
과연 최고속도를 53.8km/h로 갱신하며 쏜살같이 내려왔다.
그리고 좀 전 오르막에서 봤던 바다를 한결 가까이 끼고 45번 국도를 달릴 수 있었다. 편의점에 들러 야채고로케와 카레를 구입하고 계속 달리는데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이 살짝 덥긴 하지만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리막이 끝나고 다시금 오르막이 시작되자 역시나 햇볕은 나쁘다는 생각이 크다.
10%짜리 경사의 오르막도 오르며 꾸역꾸역 오르막을 차고 올랐다.
오르막의 끝인 터널을 지나 꾸역꾸역 오른 오르막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그 것은 바로 내리막길. 마치 이륙이라도 할 듯 그 엄청난 내리막길은 최고속도를 57.6km/h로 다시 갱신시켜 버렸다.
그 엄청난 내리막을 내리고 점심을 먹기 위해 매트를 도로 옆에 깔고 앉았다. 어느덧 구름은 걷히고 내리쬐는 햇볕이 따갑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마침 식사를 하려는데 모터사이클의 굵직한 엔진소리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 모터사이클의 주인공은 내 주위에 정차하더니 내려서 나에게 인사를 건 냈다. 그는 오카와 코세상으로 사이드 바를 달고 시험 중이라고 했다. 내가 일본어가 안 되는 관계로 둘은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함께 사진도 남겼다.
그가 떠나고 식사를 마친 후 나도 햇살이 작렬하는 그곳을 떠났다. 점심을 먹은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람답게 식사 할 수 있는 휴게소의 쉼터가 나를 반겼다. 씁쓸한 미소를 남기고 휴게소를 스치듯 지나 또다시 오르막을 올랐다.
오르막 이후 터널 그리고 내리막 그리고 또다시 오르막, 터널, 내리막의 반복이 계속 이어진다. 오늘만 10번의 터널을 지난 것 같았다. 터널 안의 굉음 따위는 이미 면역이 돼버린 듯 아무렇지도 않다.
우후나토에서 가마이시를 지나 계속해서 오르던 중 발견한 해수욕장을 발견했다. 아직 이르지만 이곳에서 야영 하기로 하고 45번 국도를 이탈, 해수욕장으로 들어섰다. 백사장에서 강아지와 산책을 하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쳐 눈인사를 건 내는데 의미심장한 미소를 던진다. 그 미소는 뭐였을까?
백사장 끝까지 달려 들어가자 쉼터, 취사장 등이 눈에 띄었다.
쉼터에 자리를 잡아볼까 했지만 화장실이 멀어서 결국 화장실 한 켠에 텐트를 치고 야영준비에 돌입했다. 야채고로케 카레라이스로 저녁을 먹고 곧 잠에 들었다.
해수욕장의 아침은 분주했다. 해수욕장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곳은 어촌마을인지라 아침 일찍부터 마을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고 주말이라 낚시꾼들도 많이 찾다 보니 아침부터 꽤나 시끄러웠다. 어제하고 남은 밥으로 식사를 마치고 해수욕장을 나섰다.
45번 국도를 따라 어느 시골마을을 따라 페달을 열심히 굴리는데 오른쪽이 허전하다. 페달이 다시금 빠져버렸다. 뒤뚱거리는 철군을 브레이크를 잡고 세워 페달을 크랭크에 끼워 넣었다. 역시나 삐딱하게 들어가는 페달. 언제 또 빠질지 모를 일이다.
시골마을 지나 달리는 중 비가 슬금슬금 내리는데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다. 편의점에 들러 야채고로케를 사려는데 야채고로케가 없어 생선까스와 카레를 구입했다.
곧 미야코에 도착하고 점심을 먹을만한 곳을 물색하는데 마땅한 곳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은 자전거 도로 옆에 있는 차도와 이어주는 계단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과 함께 생선까스로 점심을 먹었다. 한참 맛있게 먹는데 마을 아주머니가 집에서 끓인 녹차라며 건 내며 수고하라고 응원해주며 유유히 사라졌다. 미처 뭐라고 말도 할 겨를이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녀의 뒷모습만을 담을 수 밖에 없었다. 갓 끓여낸 녹차의 따뜻함에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타난 다리를 건너는데 황당한 일을 겪었다.
다리의 자전거로를 따라 달리는데 그 자전거로가 갑자기 계단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속도라도 붙었다면 그냥 멍 때리고 달렸다면 상큼한 일을 당할 뻔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고 어이없이 나타난 계단을 철군을 이끌고 조심스레 내려왔다.
그리고 이정표에 나타난 ‘조도가하마’, 조도가하마는 사실 여행을 하기 전엔 전혀 생소하고 몰랐던 곳인데 가이드북에 실린 사진을 보고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 중 한곳으로 리스트에 올렸다. 어떤 모습을 내게 보여줄지 기대되고 들뜬다.
이정표에 나타난 데로 철군과 함께 들어갔다. 어촌마을을 가로지르고 심한 오르막을 하나 넘어서자
‘조도가하마’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서 사진을 남기고 카메라 가방만을 갖고 사람들을 따라갔다.
그런데 유람선과 오리배가 둥둥 떠다니는 첫 모습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진에서 봤던 모습과는 동떨어진 그냥 그런 바다의 모습이라 ‘유람선을 타야 사진에서 본 그런 광경을 볼 수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따라 계속 들어서자 그것은 괜한 오해였다는 걸 증명이라도 할 만큼 멋진 절경을 선사했다.
가이드 북의 사진이 오히려 무색할 만큼 그 아름다움이란 사진이나 글로는 감히 담을 수 없는 엄청남이었다. 조도가하마, 그 곳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도호쿠 여행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간의 고생이 조도가하마의 절경에 모두 인정됐다.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카메라, 캠코더 혹은 휴대전화로 그 감격을 담아냈다. 나 또한 수십 장의 사진을 담아내고서야 겨우 셔터 질을 멈출 수 있었다.
아쉽지만 조도가하마를 나서 다시 45번 국도를 따라 오르는 길. 오르막 길도 조도가하마 효과로 씩씩하게 차고 올랐다.
5시를 막 넘겼을 때 어느 휴게소에 들르게 되는데 휴게소 끝에 마련된 휴게시설은 하룻밤 묵어가기 안성맞춤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묵어가기로 하고 배낭과 카메라 가방을 갖고 들어왔다. 화장실에 들어가 씻고 콘센트를 이용해 카메라 배터리, 휴대전화 배터리, MP3를 충전하기도 했다.
눈에 띄는 경고문구가 있었는데 2개의 경고문구였는데 하나는 금연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뭔지 모르겠다. 마침 휴게시설에 들어온 아주머니가 있어 물어보니 천장에 카메라를 가리킨다. 대충 짐작은 했는데 역시나 카메라 감시 중이란 문구였던 것 같다. 밥을 해먹고 싶지만 안 될 것 같아 점심때 먹고 남은 생선까스와 휴게시설 안에 있는 티서버라는 기계에서 무료 제공되는 녹차로 허기를 달래고 일찌감치 잠에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휴게시설 밖에서 밥해먹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순진했다.
여행기간: 090611~090613/ 일본여행 20일차
이동지역: 게센누마 → 우후나토 → 가마이시 → 미야코
경유지: 게센누마의 어느 공원 → 라쿠젠 타카타의 해양공원 → 키리키리 해수욕장 → 조도가하마 → 미야코의 어느 휴게소
이동거리/누계: 213.4km/ 1,652.2km
한화지출/누계: / ₩139,450
엔화지출/누계: 가스 ¥898 + 전화 ¥100 + 카레 3개 ¥315 + 야채고로케 2개 ¥210 + 햄버거 ¥105 + 생선까스 ¥105 = ¥1,733 / ¥17,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