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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5. 12. 29
■보학상식(譜學常識)
1. 족보(族譜)보는 법(法)
족보(族譜)는 한 씨족(氏族)의 기원을 비롯하여 시조(始祖)로부터 역대 조상(祖上)의 휘자(諱字 : 돌아가신 어른의 이름을 높여 부르는 말)와 함께 얼이 담겨있는 귀중한 보감(寶鑑)이므로 반드시 가보(家寶) 처럼 소중히 간직하여야하고 이를 대할 때는 반드시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살아계신 조상(祖上)을 모시듯 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옛 우리 조상들은 이를 소중히 하기를 보옥(寶玉)처럼 하였고 만일에 집에 화재(火災)가 있을 때는 아무리 어려워도 족보(族譜)와 신주(神主)만은 모셔 나오려다 목숨을 잃은 일도 왕왕(往往)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의 근본(根本)과 조상(祖上)에 대한 고마움을 망각(忘却)하고 동족(同族)간의 친목(親睦)은 커녕 부모마저도 저버리는 폐습(弊習)이 풍미(風味)하고 있으니 실로 개탄(慨嘆)을 금할 길이 없다.
이와 같은 폐풍을 지양하고 인간의 양식(良識)과 양심(良心)을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족보(族譜)를 자주 살펴 조상들이 목숨을 바쳐가면서 가문을 수호하고 조상의 얼을 이어받아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의 면모(面貌)를 과시(誇示)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족보(族譜)를 보려면 족보 보는 방법(方式)을 알아야 함으로 예문을 예시(例示)하며, 구체적(具體的)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족보(族譜)를 보려면 ‘내’가 어느 파(派)에 소속한지를 알아야 편리(便利)하다. 만일 파(派)를 알지 못하는 경우는 조상(祖上)이 어느 지역에 살았고 그 지방에 어떤 파(派)가 살았던가를 알아야 한다. 그래도 파(派)를 모를 때는 부득이 문중의 어른분들께 여쭤보거나 씨족(氏族) 전체(全體)가 수록(收錄)되어 있는 대동보(大同譜)를 일일이 찾아 확인(確認)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도리(道理)가 없다.
둘째,
시조(始祖)로부터 몇 세(世)인지를 알아야 한다. 족보(族譜)는 횡(橫)으로 단(段)을 갈라서 같은 세대(世代)에 속하는 혈손(血孫)을 같은 단(段)에 횡(橫)으로 배열(配列)하였으므로 자기 세(世)의 단(段)만 보면 된다. 만일 세수(世數)를 모르면 항렬자(行列字)로 세수(世數)를 헤아려야 한다.
셋째
항렬자(行列字)를 알아야 하고 족보(族譜)에 기록(記錄)된 이름(보명(譜名)을 알아야 한다. 예로부터 가정에서 부르는 이름에 항렬자(行列字)를 넣지 않았더라도 족보(族譜)에 실을 때는 반드시 항렬자(行列字)를 넣은 이름을 실었으니 이를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파(派)’이하를 예시(例示)한다.
1)항렬자(行列字)
친족집단 내에서의 계보상 종적(縱的)인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전통적 친족제도에서는 각 세대마다 일정한 순서에 따라 이름 글자 가운
데 항렬자로 같은 자를 넣음으로써 계보상 거리에 의한 친족관계를 명확히 하였다.
종적인 세대에서 형제관계에서의 같은 항렬은 동항(同行), 아버지와 같은 세대는 숙항(叔行), 조부와 같은 세대는 조항(祖行), 아들과 같
은 세대는 질항(姪行), 손자와 같은 세대는 손항(孫行)이라고 한다. 항렬자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글자는 오행(五行)·오상(五常)·십간
(十干)·수(數)이며,
이것의 순서에 따라 각 세대마다 차례로 사용하고 순서가 다 되면 다시 반복된다. 성명 3자만 보면 어느 성씨(姓氏) 몇 대손인가를 알 수
있는 독특한 작명제도로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한글이름, 예쁜 이름을 찾는 경향이 있어 항렬을 따지는 예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①은 파(派)의 이름이다. 파(派)의 명칭(名稱)은 흔히 파조(派祖)의 관직명(官職名), 시호(諡號), 아호(雅號) 등을 따서 붙인다.
이 예시(例示)는 파조(派祖) 진형(震衡)이 「증 OO대부 OOOO(贈 OO大夫 OO左O)」벼슬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좌O공파(左O公
派)라 한 것이다.
이 파(派)를 찾으려면 족보(族譜) 계보도(系譜圖)외에 세계도(世系圖)를 보아야 한다. 세계도(世系圖)에는 대략 분파계도(分派系圖)
를 그려놓고 무슨 파(派)는 몇 권(卷) 몇 면(面)이라고 표시(表示)되어 있다. 이 표시는 요즈음은 대개 숫자순으로 쓰고 있다.
② 정(淨)을 기두(起頭)라 한다. 우측(右側)에 사철(師哲)은 정(淨)의 아버지를 표시(表示)한 것이다.
③ 견상이(見上二)는 정(淨)의 상계(上階) 사철(師哲)이 ‘이(二)’면에 있다는 표시(表示)이다.
④ 00세(世)는 선조(先祖) 또는 세조(世祖)로부터 세수(世數)를 표시(表示)한 것이다.
⑤ 보명(譜名) 또는 관명(冠名)이라 한다.
⑥ 누구에게 양자(출계(出系))로 갔다는 표시(表示)이다.
⑦ 자(字)와 관직(官職)을 기록(記錄)하고 호(號)가 있으면 자(字) 다음에 호(號)를 기록하고 다음에 관직(官職)을 기록하게 된다.
⑧ 출생(出生) 연대(年代)는 요즈음은 서기(西紀)와 간지(干支)를 병용(竝用)하고 있다.
⑨ 사망(死亡)한 연대(年代)와 월일(月日)이다.
⑩ 관직(官職) 행적(行蹟) 묘소(墓所)의 소재지(所在地) 좌향(坐向) 등 기록이다.
⑪ 배우자(配偶者)의 성(姓) 본관(本貫) 및 부친(父親) 이름 관직(官職)과 사망(死亡) 연월일(年月日) 묘소(墓所)의 소재지(所在地)와
좌향(坐向) 등 기록한다.
⑫ 후대(后大) 하계(下系) 즉 아들이하는 견하(見下) 000면에 나타나 있다는 표시이다. 견하(見下) 000면에 후대(后大) 기두(起頭)로 되
어 계속된다.
⑬ 후융(后隆)은 차자(次子)이다. 형제(兄弟)의 차례(次例)대로 배열(配列)한 것이다. 견하(見下) 000면에 나타나 있다.
⑭ 여(女)는 출가(出嫁)한 딸의 배우자(配偶者) 즉 사위의 성명(姓名) 본관(本貫) 및 조상(祖上)의 호(號)와 휘자(諱字)이다.
⑮ 사위의 아들 딸 즉 외손(外孫)의 이름이다.
⑯ 후길(后吉)은 생정숙부「규」출후(生庭叔父「珪」出后) 후길(后吉)은 생가(生家) 백부(伯父) 앞으로 출계(出系) 했다는 표시이다.
생정(生庭) 생가(生家) : 아버지가 태어난 집
2. 보학(譜學) 상식(常識)
1) 상세하대(上世下代)
대(代)와 세(世)의 계산법(計算法) = 대불급신(代不及身)
대(代)의 경우(境遇)에는 부자(父子)간(間)이 1대(代)이고 세(世)의 경우(境遇)에는 이세(二世)이다.
2) 행(行)․수(守)의 법칙(法則)
행(行)은 직책(職責)이 계급(階級)보다 아래 일 경우(境遇) 계급(階級)을 쓰고 반드시 행(行)을 직책(職責)앞에 기록한 다음 직책(職
責)을 쓴다.
예, 숭록대부행성균관대사성(崇祿大夫行成均館大司成)이라 쓴다. 다시 말하면 계고직비(階高職卑)면 행(行), 계비직고(階卑職高)면
수(守)라 쓴다.
3) 교지(敎旨)와 첩지(牒紙)
① 교지(敎旨) : 사품관 이상 관원(官員)에게 내리는 사령장(辭令狀)으로 직첩(職牒)이라고도 한다.
② 첩지(牒紙) : 5품관이하 관원(官員)에게 주는 사령장(辭令狀)
③ 전교(傳敎) : 임금의 명령(命令).
④ 제수(除授) : 추천(推薦)없이 임금이 관원(官員)을 임명(任命)하는 것.
4) 종군(宗君), 종손(宗孫), 주손(冑孫), 사손(嗣孫)
① 종군(宗君) : 국불천위(國不遷位)의 장자(長子)
② 종손(宗孫) : 유불천위(孺不遷位)의 장자(長子)
※ 대수(代數) 계산은 위의 세(世)에서 1을 빼면 됨.
예, 29세(世)는 28대(代), 30세(世)는 29대(代), 31세(世)는 30대(代)임.
③ 주손(冑孫) : 체천위(遞遷位)의 장자(長子)
④ 사손(嗣孫) : 대(代)를 잇는 장자(長子)
5) 공신(功臣)
국가나 왕실을 위해 공(功)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칭호(稱號). 나라를 세울 때 왕을 도왔거나 왕의 즉위(卽位), 난(亂)의 평정(平定) 등
에 공(功)을 세운 사람을 봉작(封爵)하고 전토와 노비(奴婢)를 하사(下賜)했으며 자손들에게 음직(蔭職)을 주었다.
조선(朝鮮) 왕조(王朝)때는 00종의 공신호(功臣號)가 있었다.
6) 궤장(几杖)
70세이상이 된 일품관(一品官)으로서 국가의 요직(要職)을 차지하여 안석과 지팽이(궤장(几杖))을 받을 때는 궤장연(几杖宴)이 성대
히 베풀어졌다.
7) 기로소(耆老所)
노령의 왕이나 고관(高官)을 우대(優待)하기 위해서 설치된 관아(官衙) 일명 기사(耆社) 고령(高齡)의 왕이나 실직(實職)에 있는 정이
품(正二品)이상의 문신(文臣) 중 70세이상이 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면 영수각(靈壽閣)에 영정(影幀)이
걸리고 연회(宴會)가 열리며 전토와 노비(奴婢)를 하사(下賜)받았다.
8) 당상관(堂上官) 당하관(堂下官)
당상관(堂上官)은 정삼품 통정대부 이상의 관원(官員)을 말하며 당하관(堂下官)은 정삼품 통훈대부 이하의 관원(官員)을 말한다.
9) 배향(配享)
공신(功臣), 명신(名臣) 또는 학문(學問)과 덕망(德望)이 높은 학자(學者)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일로서 종묘(宗廟), 문묘(文廟), 사
원(祠院), 서원(書院) 등에 향사(享祀)하는 것이다.
10) 봉조하(奉朝賀)
정삼품 당상관(堂上官) 이상의 관원(官員)으로 퇴직(退職)했을 때 우대(優待)하기 위해 임명(任命)하는 직명(職名). 봉조하(奉朝賀)
에 임명된 자는 종신토록 녹봉(祿俸)을 받으며 평상시(平常時)에는 근무하지 않고 의식(儀式)이 있을 때만 참례(參禮)했다.
1469년(예종1년)에 처음 시행되고 15명이 정원(定員)이었으나 영조(英祖) 때부터 정원(定員)이 없어졌다.
11) 사대부(士大夫)
벼슬이나 문벌(門閥)이 높은 사람으로 종사품(從四品) 관원(官員)이상을 말함.
12) 시호(諡號)
임금, 공신(功臣), 현신(賢臣), 학자(學者), 절신(節臣) 등이 죽은 후에 그 덕(德)을 칭송(稱頌)하여 추증(追贈)하는 호(號)
13) 원상(院相)
왕이 죽은 직후(直後) 잠시 정무(政務)를 맡던 임시벼슬. 새 임금이 즉위(卽位)는 하였으나 상중(喪中)이므로 졸곡(卒哭)까지의 26일
동안 혹은 새 임금이 어려서 정사(政事)를 보살필 능력이 없을 때 대비(大妃)의 섭정(攝政)과 함께 중망(衆望)이 높은 원로(元老) 재
상급 또는 원임자 가운데 몇 사람이 원상(院相)을 뽑아 국사(國事)를 처결케 했으며 왕이 죽고 다음 후계자(後繼者)를 세우는 시간이
지연(遲延)되어 국사의 결재를 맡아야 할 사람이 없을 경우에도 원상(院相)을 임명(任命)했다.
14) 정문(旌門)
충신(忠臣), 효자(孝子), 열녀(烈女) 등을 선양(宣揚)하기 위해 그가 거주(居住)하는 마을이나 집의 입구에 세워주는 문(門)으로 붉은
색을 칠하고 표창(表彰)의 종류에 따라 충(忠), 효(孝), 열(烈)의 글자와 직함(職銜) 성명을 새겼다.
15) 자(字)
관례(冠禮)를 행한 뒤 이름대신으로 부르는 이름
16) 청백리(淸白吏)
조선왕조(朝鮮王朝)시대 조정(朝廷)에 의해 선정(選定)된 청렴(淸廉)] 결백(潔白)한 관원(官員). 세도(世道)를 장려하고 청조(淸操)
를 진흥시키기 위해 제정한 제도로 청백리(淸白吏)로 녹선되면 품계(品階)가 오르고 그 이름이 기록에 남아 추앙(推仰)을 받았다.
17) 증직(贈職)과 수직(壽職)
증직(贈職)은 종이품(從二品) 이상 관원의 부(父), 조(祖),증조(曾祖), 또는 충신(忠臣), 효자(孝子) 혹은 학문(學問)과 덕망(德望)이
높은 사람에게 죽은 뒤에 관직(官職)과 품계(品階)를 추증(追贈)하는 것이며 수직(壽職)은 매년(每年) 정월(正月)에 80세이상의 관
원(官員)과 90세이상의 서민(庶民)에게 은전(恩典)으로 주던 직품(職品)이다.
18) 불천위(不遷位)와 체천위(遞遷位)
현대의 의례법에 있어서는 조부(祖父)까지 제사(祭祀)를 지내도록 되어 있으나 옛날은 고조(高祖)까지 지내고 철제했다.
그러므로 그 제주(祭主)인 현손(玄孫) 즉 고손(高孫)이 죽으면 그 신주(神主)를 묘하(墓下)에 묻고 제사(祭祀)를 중지했다.
이를 체천위(遞遷位)라고 한다.
그러면 왜 고조(高祖)까지 제사(祭祀)를 지냈느냐하면 장수하면 흔히 고손(高孫)을 보고 죽었으니 그 고손(高孫)이 승안(承顔)한 고조
(高祖)를 인정상 궐향(闕享)할 수 없었는 데에서 정해진 법이었다. 이것이 4대봉사(四代奉祀)의 법이었다.
정출어례(情出於禮)에서 나온 제도이다.
그러므로 신주(神主)는 고손(高孫)까지는 누구에게라도 제향(帝鄕)을 받을 수 있었다. 장손(長孫)인 고손(高孫)이 죽으면 그 다음의 고
손(高孫)집으로 옮겨가서 제향(祭享)을 받았다. 이리하여 마지막 고손(高孫)이 생존(生存)할 때까지는 계속 신주(神主)가 옮겨 다니면
서 제향(祭享)을 받고서는 5대 장손(長孫)에게 환원(還元)하여 고별제(告別祭) 〔선왕제례(先王祭禮)에 사지사대(祀止四代)하니 심수
무궁(心雖無窮)이나 분칙유한(分則有限)하여 신주당조 매우묘소(神主當祧 埋于墓所)하노이다.〕를 받고 기제사(忌祭祀)는 중지하게
되니 이 신주를 체천위(遞遷位) : 옮겨 다닌 신위(神位))라 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옮겨 다니지 않는 불천위(不遷位) 신주(神主)가 있다. 즉 불천위(不遷位)는 부조위(不祧位)라고도하며 학덕(學德)
이 높은 현조(顯祖)이거나 국가나 사회에 공이 커서 영세불가망(永世不可忘)의 조상(祖上)으로서 몇 백년 후까지도 제향(祭享)을 끊을
수 없을 현조(顯祖)이니 자자손손(子子孫孫)에게 옮겨가지 않는 조상(祖上)을 말한다.
그러므로 체천위는 일반 조상이요 불천위(不遷位)는 현조(玄祖)이다.
이 불천위(不遷位)는 또 국가에서 지정한 국불천(國不遷)이 있고 유림(儒林)에서 지정한 사불천(私不遷)이 있다.
이 불천위(不遷位)의 예우(禮遇)에 대한 차도 엄격(嚴格)하니 즉 국불천위의 장손(長孫)은 종군(宗君)이라 하고 제향(祭享)때는 사모
관대(紗帽冠帶)로 삼품관의 예복(禮服)을 입었으며 초헌관(初獻官)은 절대 종군이 하는 법이요
사불천위의 장손(長孫)은 종손(宗孫)이라 하고 제향(祭享) 예복(禮服)은 민자건(民字巾)에 람포주홍수(籃袍朱紅綬)띠를 입고 초헌관
(初獻官) 역시 불개(不改)요 체천위(遞遷位)의 장손(長孫)은 주손(冑孫)이라 하며 제사(祭祀)때는 일반 예복(禮服)으로 유건(儒巾) 착
도포(着道袍)하며 초헌관(初獻官)은 체천위(遞遷位)이기 때문에 항고연장(行高年長)으로 하는 법이나
기제사(忌祭祀)는 체천시까지는 주손(冑孫)으로 불개요 묘사(墓祀)도 계좌(啓坐)하여 재장(齋長)을 뽑지 않는 한 주손(冑孫)이 한다.
그러나 대원(代遠)하여 제석(祭席)의 계좌(啓坐)가 재장(齋長)에 의해서 행해질 때는 항고연장(行高年長)으로 초헌관(初獻官)을 재장
(齋長)이 함이 상례(常例)이다.
이와 같이 예법(禮法)은 의미가 있어서 정해진 법(法)이다. 여기에서 문행가(文行家)와 사행가(士行家)로 구별(區別)되었고 사대부(士
大夫)와 향대부(鄕大夫)도 구별(區別)되었으며 묘우(廟宇)와 사당(祠堂)이나 가묘(家廟)도 구분(區分)되었다.
종군(宗君)이나 종손(宗孫)은 죽으면 그 지하자손(支下子孫)은 모두 복을 입는 법이다.
19) 계좌(啓座)와 계접(啓接)
① 계좌(啓座)
자리를 편다는 말인데 즉 현대에 있어서의 회의의 별칭(別稱)이다. 사실은 이 계좌(啓座)란 말은 자고로 유림(儒林)회의(會議)를
말하는 것으로 도석(道席)의 별칭(別稱)이니 문중회의(門中會議) 등 속(屬)은 원칙으로는 이 말을 쓰지 않는다.
이 계좌(啓座)는 또 예좌(禮座)와 유좌(儒座)로 구분하니 예좌(禮座)는 예를 다스리며 유좌(孺座)는 학문의 토론이다.
그런데 이를 펴는 일은 어느 주최자의 통문으로 회합하며 제안은
㉠ 어느 가문의 수갈(竪碣)에 대한 합리적 사정 및 행장(行狀)이나 유사찬자(遺事撰者)의 선임 선명의 선임
㉡ 예장(銳將)에 대한 토론(討論)과 명저와 파임(爬任)(집사분정)의 선정 행사에 대한 차합 등
㉢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대한 토론(討論)
㉣ 학론토론
㉤ 향규(鄕規) 등을 위하여 개최하는 것으로 주최자(主催者)나 당가(當家)는 물론 이 자리에 참여하지 않고 좌(座)의 결정을 승복
(承服)해야되나 만약 불만(不滿)일 때는 거부(拒否)할 수도 있다.
이 계좌(啓座)의 진행방법은 청직(廳直)이가 사림들이 유숙(留宿)하며 대기(待期)하고 있는 처소(處所)에서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서 『계좌(啓座)아뢰오』하고 삼연창을 한다. 해의(解衣)하고 있던 유림(儒林)들은 일제히 유건(儒巾) 착도포 의관(衣冠)
정제(定制)하고 계장에 등청(登廳)하여 좌장(座長)을 필도(弼導)하고 서립(序立)하여 읍(揖 : 공수반례(拱手半禮))하고 정좌(定
座)한다.
이윽고 좌장(座長)으로부터 계좌(啓座)선언(宣言)과 동시에 제안을 발표하고 조사(曹司)를 뽑는 것이 통례(通例)이다.
이 조사(曹司)는 좌중(座中)에서 비교적 연소층(자(自)62~3세 지(至) 40대(代))인의 중견(中堅) 사림(士林)을 3˙5ㆍ7ㆍ9로 기
수(基數)로 뽑아서 의결에 있어서 동점을 피하고 또 공사원(公事員)을 선출하며 조사(曹司)중에서는 수조사를 뽑아 집필(執筆)한
다.
공사원(公事員)은 노유층에서 뽑으며 이 공사원(公事員)들에 의해 본안을 처리할 파임을 뽑는 데 이 공사원(公事員)들의 의결사항
을 만약 조사(曹司)가 기록해 주지 않는다면 이것은 거부의 표시로 재심(再審)을 요구하는 의사이니 이때는 공사원(公事員)은 재론
(再論)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이와 같이 하여 파원(派員)이 확정(確定)되면 조사(曹司)는 이 기록을 방(榜)하고 선임된 자들에게 통기한다.
이 방(榜)에 의하여 소집된 파임(爬任)들이 전권(全權)을 위임받아 제반 안건을 집행(執行)한다.
물론 안건 심의는 조사(曹司)를 뽑기전에 토론하여 가결하고 세목은 파임(爬任)들이 집행하면서 심의 결정함이 상례이다.
이 토론이 종결(終決)되면 청직(廳直)이 다시 『파좌 아뢰오.』를 연창하여 폐회(閉會)하고 의결항목은 방(榜)한다.
파임(爬任)이라는 것은 즉 소임(所任)을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회장단(會長團)이나 이사(理事) 감사(監事) 같은 집행(執行)기구
(機構)를 말한다. 예장(禮葬)에 있어서는 호상(護喪)이 수임(首任)이요 그 외는 대개 수임(首任)은 집례(集禮)이나 제례(祭禮)에 있
어서는 초헌관(初獻官)이 수임(首任)이다.
토론에 있어서는 학덕(學德)으로 수좌(首座)를 내고 향좌는 원로가 된다. 자리가 대규모일 때는 집례(集禮)위에 도집례를 내어 수임
(首任)으로 한다. 그 외에도 안동ㆍ예천지방에는 없으나 영천ㆍ경주 등 지역에는 반수(班首)를 뽑는 수가 있는데 이 반수(班首)라는
것은 각 문중(門中)의 원로(元老)들로서 자리가 크면 다수를 뽑기도하니 이는 곧 현대의 고문(顧問)과 같은 것이다.
② 계접(啓接)
이는 오늘 날 시합계장(試合啓場)과 같은 것이다. 옛날 서당(書堂)에 글 읽는 유생(儒生)들이 과거(科擧)에 앞서서 실력을 시험해 보
는 유일(唯一)한 수단(手段)이었다.
서경(書經)이나 시부표책에서 어느 과목을 선발 게재하여 조를 짜고 경쟁을 하는 데 접(接)은 현대명으로 조(組)와 같으며 접(接)에는
접장이 있어 이 접장을 중심으로 학문을 연마(硏磨)해 갔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계접(啓接)아뢰오.』하면 이는 곧 어떤 유생(儒生)들
의 실력을 테스트하는 시회(詩會)나 학회(學會)를 개최한다는 말이다. 계접에는 파접(罷接)으로 종회(終會)한다.
20) 친족(親族)과 족친(族親)
친족(親族)이라함은 촌수(寸數)가 가까운 겨레붙이를 말하며 족친(族親)은 촌수(寸數)가 먼 겨레붙이를 말한다.
복(服)을 입는 촌수(寸數) 즉 8촌이내(以內)를 친족(親族)이라하며 그 사이를 대소가(大小家) 또는 가내(家內)(집안)라하고 십촌(十
寸)이 넘으면 족친(族親)이라하여 그 사이를 문내(門內) 혹은 파내(派內)라 한다.
촌수(寸數)가 먼 사이는 일가(一家) 혹은 일족(一族)이라 하며 또 종친(宗親)이라는 말도 쓰이니 이는 본래 왕의 친족(親族)을 이르는
것으로 조선조때는 종친부가 있어서 왕실(王室)의 계보(系譜)와 쉬용(晬容 : 어진(御眞))을 보관(保管)하며 양궁(兩宮: 국왕과 왕비)
의 옷을 관리하고 종반(宗班)을 통솔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왕실이 없어짐으로해서 사회에 있어서도 같은 씨족(氏族)간에 종친(宗親)
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21) 비조(鼻祖)와 시조(始祖)
시조(始祖)는 제일 초대(初代)의 선조(先祖)로서 보상(譜上)의 일세(一世)를 말하며 비조(鼻祖)는 시조(始祖) 이전의 조상(祖上) 중
가장 높은 현조(顯祖)를 일컫는 말인데 시조(始祖) 이전의 현조(顯祖)가 없는 가문(家門)에서는 혹 정중하게 시조(始祖)를 비조(鼻
祖)로 부르는 예도 있다.
22) 봉사(奉祀)와 시사(時祀)
봉사(奉祀)는 조상(祖上)의 제사(祭祀)를 받드는 것으로서 옛날에는 그 가문(家門)의 지위(地位)에 따라서 한계(限界)가 있었으니 즉
사대부(士大夫) 가문(家門)에서는 사대봉사(四代奉祀), 향대부 가문(家門)에서는 삼대봉사, 중인(中人)은 이대봉사, 천인(賤人)은 무
사였다.
시사(時祀)는 춘추향(春秋享)을 말하는데 대현(大賢)은 2월~8월, 명현(名賢)은 3월~9월에 그 외는 4월에 지냈다.
또 4월제는 문무관(文武官) 2품이상은 초순(初旬)에, 사품이상은 중순(中旬)에 그 외는 하순(下旬)에 지냈으며 고덕의 발천(拔薦)이
없는 이는 지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근대는 이러한 규제(規制)는 포기(抛棄)한 곳이 많다.
23) 신도비(神道碑)와 묘갈(墓碣)과 묘표(墓表)
신도비(神道碑)는 종이품(從二品) 이상의 고관(高官) 및 이에 대등한 명현(名賢)의 묘갈(墓碣) 이외에 분묘(墳墓)가 있는 근처의 노
변(路邊)에 세워서 세인(世人)들이 그 덕(德)을 감화(感化)하도록 한 비석(碑石)으로서 관석(罐石)은 의열에는 용두로 하고 덕화(德
化)에는 우산각(雨傘閣)으로 했다.
묘갈(墓碣)은 정삼품 당하관(堂下官) 이하로부터 대부계(大夫階)까지의 묘(墓) 앞에만 우산각개석(雨傘閣蓋石)을 덮고 명(銘)을 지
어 세웠다.
묘표(墓表)는 그 이하의 묘(墓)에 세운 표석(表石)인데 전면에는 관직(官職)과 명호(名號), 후면에는 음기(陰記)라하여 사적(事蹟)
을 약기(略記)함에 그쳤으며 또 개석(蓋石)을 덮지 못했다. 일반인은 묘표(墓表)도 세울 수 없었다.
24) 대감(大監)과 영감(令監)
국왕은 상감(上監)으로 금관자(金貫子)를 달았다. 관자(貫子)라 하는 것은 옛날 머리의 망건(網巾) 당줄을 꿰는 고리로서 금ㆍ옥ㆍ각
ㆍ골(金ㆍ玉ㆍ角ㆍ骨)등으로 만들어서 품계(品階)에 따라 사용했다.
대감(大監)은 정종일품(正從一品)과 정이품(正二品)까지로 일품관(一品官)에게는 민자옥관자(民字玉貫子 : 속칭 환옥(還玉))를 달
았으며 정이품(正二品)은 금관자(金貫子)를 달았다.
영감(令監)은 종이품관과 정삼품 당상관(堂上官)까지인데 이품관은 금관자(金貫子)요. 당상관(堂上官)은 조각옥관자(彫刻玉貫子)
였다.
나리는 정삼품 당하관(堂下官)의 호칭(呼稱)인데 흑각관자(黑角貫子)를 달았다. 그 이하에 내려가서는 원(員) 생원(生員)등이 있으
며 백두(白頭)의 양반(兩班)에게는 서방님으로 통칭(統稱)했다. 가문(家門)의 칭호(稱號)에 있어서도 대감(大監)과 영감(令監)은 대
감댁, 영감댁으로 4대(代)까지 그 신주(神主)가 매주(埋主)될 때까지 호칭(呼稱)되었고 그 이하는 당대(當代)로 지칭(指稱)했다.
25) 향(享)과 수(壽)
문헌(文獻)이나 보상(譜上)의 기록에 일생이 70세 미만일 때는 향(享) 몇 세(歲)라고 하고, 70세 이상일 때는 수(壽) 몇 세(歲)라 했
다.
26) 행직(行職)과 수직(守職) 및 권직(權職)
관의 품계에 비하여 그 소임(所任)직이 낮을 때는 행직(行職)이라하고 높을 때는 수직(守職)이라하며 임시직(臨時職)일 때는 권직(權
職)이라 했다.
27) 음직(蔭職)과 영직(影職)
대과를 못한 진사(進士)나 생원(生員) 또는 유학(幼學)이 취관(就官)한 것을 음관(蔭官)이라하고 조상(祖上)이 고관(高官)인 덕(德)
으로 취관한 것을 음직(蔭職)이라 했다. 영직(影職)은 실지로는 근무하지 않고 이름만 얻은 것을 말하며 이를 차관(借官)이라고도 한
다.
증직(贈職)은 종이품(從二品) 이상 관(官)의 부, 조, 증조 또는 충신, 효자, 혹은 학덕(學德)이 높은 학자에 대하여 사후에 관직(官職)
과 품계(品階)를 추증(追贈)하는 것이다. 수직(壽職)은 매년 정월(正月)에 80세가 넘는 관원과 90세가 넘은 양반에게 은전으로 내린
직품이다. 그리고 또 은일(隱逸)은 초야(草野)에 숨어있는 고덕학자(高德學者)를 왕이 특천(特薦)하는 것이며 일천(逸薦)은 특출한 인
재를 발탁해서 직첩을 내리는 것이다.
28) 훈봉(勳封)과 가자(可資)
○훈호(勳號)는 나라에 공(功)을 세운 자 즉 개국공신(開國功臣)같은 자에게 공신호를 내렸다.
○봉호(封號)는 이 공신(功臣)에게 ○○부원군(府院君) 또는 ○○군(君)으로 봉군(封君)을 하였다.
○시호(諡號)는 사후에 국왕이 시호(諡號)를 추증(追贈)하여 그 행적(行蹟)을 위무(慰撫)했다.
○가자(可資)는 ○○대부(大夫)나 ○○낭(郎)으로 관직(官職)에 준하여 품계(品階)를 내렸다.
29) 문행가(文行家)와 사행가(士行家)
문행가(文行家)는 학문을 힘써 세전(世傳)한 가문으로 수신제가(修身齊家) 범절(凡節)을 중히 여기며 청빈(淸貧)함을 자랑으로 삼
고, 벼슬길을 권력과 세도로 인하여 혹세무민지도(惑世誣民之都)에서 풍파(風波)가 심한 불인지도(不仁之道)라하여 탐하지 않았다.
사행가(士行家)는 치세의 길을 중히 여겨 품계(品階)가 올라가고 선정(善政)의 명성(名聲)을 얻음을 자랑으로 삼으면서도 학문(學問)
역시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와같이 문사행의 전통적 요인은 여말에 두문동의 유신파(遺臣派)와 신조의 공신파(功臣派)간의 결별이 사상적인 응고(凝固)로서 이
가 무수한 사화(史禍)를 몰고 왔으며 그 부산물(副産物)이 곧 당쟁(黨爭)이라 할 수 있다. 과거(科擧)에 있어서도 문과(文科)는 관리채
용시험에 해당되며 생원(生員)과 진사시는 자격만을 테스트해 본 시험이라 할 수 있다.
이로 볼 때 은일제도(隱逸制度)는 그 정책적(政策的)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짐작(斟酌)할 수 있는 의미 심장한 조치였다.
30) 세보(世譜)와 대동보(大同譜)
보사(譜事)는 그 기원이 중국(中國)의 육조(六朝)(오ㆍ진ㆍ송ㆍ제ㆍ양ㆍ진(吳ㆍ晋ㆍ宋ㆍ齊ㆍ梁ㆍ陣)시대로 특히 북송의 천하(天
下) 문장(文章) 사부자(四父子)로 유명(有名)한 소순(蘇洵):노천(老泉) 소식(蘇軾):동파(東坡) 소철(蘇轍):란성(欒城)가(家)의 범례
가 소보법(蘇譜法)이라 한다. 고대에는 왕실에만 세보(世譜)가 있었을 분 사대부(士大夫) 가문(家門)에는 가승(家乘)만 있었다.
16세기초부터 각 가보(家譜)가 시작(始作)되었다고 한다.
① 대동보(大同譜)는 한 시조(始祖)하의 각파(各派)가 합보(合譜)함을 말한다.
② 족보(族譜)는 동성족간의 합보요.
③ 파보(派譜)는 파문중보요.
④ 가첩(家牒)은 한 가정에서 직계조만 발췌(拔萃)한 것이다.
⑤ 가승(家乘)은 한 가문의 역사 기록이요.
⑥ 계보(系譜)는 세계도(世系圖)를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대명사(代名詞)를 족보(族譜)라 통칭(統稱)한다.
31) 자손(子孫)에 대한 호칭(呼稱)
일세(一世)는 자(子), 이세(二世)는 손(孫), 3세(世)는 증손(曾孫), 4세(世)는 현손(玄孫), 5세(世)는 래손(來孫), 6세(世)는 곤손(昆
孫), 7세(世)는 잉손(仍孫)ㆍ이손(耳孫), 8세(世)는 예손(裔孫)ㆍ운손(雲孫), 8세(世)이후는 운손(雲孫) 또는 원손(遠孫)이라 함.
32) 본관(本貫)이란?
본관(本貫)은 관적(貫籍)이라고도 하는데 시조(始祖)의 출생지(出生地)나 정착지(定着地) 또는 세거지(世居地)를 말한다.
각 성씨(姓氏)의 족보(族譜)에 기록된 본관(本貫)의 연원(淵源)을 살펴보면 국가에 큰 공훈(功勳)이 있어 ○○군(君)에 봉(封)해 졌
으므로 봉군(封君)을 받은 지명(地名)을 따라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정하는 가문(家門)도 있고, 또 어느 지역에서 시조(始祖)로부터
누대(累代)를 살아 왔으므로 그 지명(地名)을 따라 후손(後孫)들이 본관(本貫)을 정하는 집안도 있다.
또한 선조(先祖)가 받은 영화(榮華)를 자손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 위업(偉業)을 계승(繼承)하고 자기의 본관(本貫)을 지킴으로
서 다른 성씨(姓氏)와 구별된 긍지(肯志)를 갖는데 그 지방에서 득세(得勢)한 연유에 따라 부락명 또는 지명을 따라 본관(本貫)과는
달리 부르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일족일문(一族一門)이 번영(繁榮)하여 동성(同姓)만으로는 동족(同族)을 구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본관(本貫)이 필요하게 되
었던 것이다.
33) 본관(本貫)과 성씨(姓氏)와의 관계(關係)
본관(本貫)과 성씨(姓氏)와의 관계(關係)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가. 동족동본(同族同本)의 동성(同姓)
나. 이족동본(異族同本)의 동성(同姓)
예 남양홍씨(南陽洪氏)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이면서 당홍(唐洪)과 토홍(土洪)이란 별개(別個)의 남양홍씨(南陽洪氏)가 있다.
다. 동족이본(同族異本)의 동성(同姓)
예) 강릉김씨(江陵金氏)와 광산김씨(光山金氏)는 시조(始祖)를 달리하고 있으나 모두 신라 김알지로부터 나온 동족(同族)이다.
라. 이족이본(異族異本)의 동성(同姓)
예)연안이씨(延安李氏), 한산이씨(韓山李氏), 광산이씨(光山李氏)등은 성(姓)을 같이 하고 있으나 이족(異族)이면서 이본(異本)이
다.
마. 동족동본(同族同本)의 이성(異姓)
예) 김해김씨(金海金氏)와 김해허씨(金海許氏)는 성은 다르지만 모두 가락국 수로왕의 후예(後裔)이다.
바. 이족이본(異族異本)의 이성(異姓)
예) 경주손씨(慶州孫氏)와 경주이씨(慶州李氏)와 같이 본은 동일(同一)하나 이족(異族)이면서 성(姓)이 다르다.
34) 사성(賜姓)과 사관(賜貫)
사성(賜姓)과 사관(賜貫)은 글자 그대로 왕으로부터 하사(下賜)된 성(姓)과 본(本)을 말하는 것으로 이 사성(賜姓)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흥미있는 전설의 기록이 많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신라가 국가(國家)를 설립하기 이전의 원시 부족사회(部族社會)인 서라벌(徐羅
伐)은 모두 6촌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 육촌(六村)에는 6명의 신인(神人)이 천강(天降)하여 각각 6촌의 촌장(村長)이자
시조(始祖)가 되엇으며 뒤에 신라 제3대 유리니사금 9년에 이르러 6촌에 각각 최,손,이,정,배,설(崔,孫,李,鄭,裵,薛)씨 등 6성을 사성
(賜姓)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본성(本姓)이 지씨(池氏)였다가 겨드랑이에 고기비늘이 셋이 있어 고려태조가 어씨(魚氏)로 사성(賜姓)했다는 충주어씨(忠州魚
氏)의 전설도 있다.』 이 밖에도 사성(賜姓) 받은 성씨(姓氏)로는 서(徐),왕(王), 김(金), 남(南),안(安), 인천이씨(仁川李氏), 고(高),
권(權),한(韓)씨 등 여러 성씨(姓氏)가 있다.
3. 용어(用語)풀이
1) 선조(先祖)에 관한 용어(用語)
① 시조(始祖) : 관향(貫鄕)별 단일(單一) 종족(宗族)의 첫번째 조상(祖上)
② 비조(鼻祖) : 시조(始祖)이전의 선계에서의 초대조(初代祖)를 지칭(指稱)하나 선계가 없을 경우 시조(始祖)를 정중하게 표현(表
現)하기 위해 쓰기도 한다.
③ 중시조(中始祖) : 앞의 세계를 고증할 수 없거나 한미(寒微)한 가문(家門)을 중흥(中興)시킨 선조(先祖)를 : 전 종중(宗中)의 공론
(公論)으로 결정(決定)된 시조.
④ 관향(貫鄕) : 시조(始祖) 혹은 선조(先祖)의 출생지(出生地) 세거지(世居地) 연고지(緣故地)를 지칭(指稱)함.
2) 계통(系統)에 관한 용어(用語)
① 선계(先系) : 시조이전의 세계(世界) 또는 중시조(中始祖)이전의 세계를 말함.
② 세계(世系) : 시조(始祖) : 기세조(起世祖)이후의 대대(代代)혈통(血統)의 서차(序次)
③ 선대(先代) : 보첩에 있어서 시조이후의 상계를 말한다.
3) 휘함(諱銜 : 이름)에 관한 용어(用語)
① 휘자(諱字) : 돌아가신 어른 이름의 존칭(尊稱)
② 함자(銜字) : 살아계시는 어른 이름의 존칭(尊稱)
③ 아호(雅號) : 스승이나 친구가 지어주거나 스스로 짓기도 한다.
④ 작호(綽號) : 남이 지은 별호(別號)
⑤ 자호(自號) : 스스로 지은 별호(別號)
⑥ 당호(堂號) : 거처(居處)하는 집 이름을 따서 부르는 별호(別號)
⑦ 사호(賜號) : 국왕(國王)이 내려준 별호(別號) : 생시(生時)
⑧ 시호(諡號) : 생전(生前)의 행적(行蹟)을 사정(査定)하여 국왕(國王)이 내려주는 칭호(稱號) ; 사후(死後)
4) 칭호(稱號)에 관한 용어(用語)
① 공(公) : 남자의 성(姓) 또는 관작(官爵) 사(賜), 시(諡)밑에 붙인다.
② 씨(氏) : 남자의 성명밑에 붙인다. 별호(別號), 관작(官爵)밑에는 붙이지 않는다.
③ 선생(先生) : 남자의 성명(姓名), 아호(雅號), 당호(堂號)밑에 붙인다. 사호(賜號), 시호(諡號)다음에는 쓰지 않는다.
④ 옹(翁) : 남자 노인(老人)의 성(姓) 밑에 붙인다.
⑤ 장(丈) : 남자의 아호(雅號), 당호(堂號), 직함(職銜), 대명사(代名詞) 밑에 붙인다. 노인장(老人丈), 형장(兄丈), 존장(尊丈), 생원
장(生員丈), 참봉장(參奉丈)
글쓴이 : 산수갑산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