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 이공(碧梧李公)을 제사하며 올리는 글
천계 6년 병인년 2월 초8일 신사일에,
행사직 이성구는 삼가 술과 과일의 제수를 올리며
돌아가신 상서 월성 이공의 영전에 고합니다.
갑자년 여름 무렵,
공께서는 강화도를 시찰하라는 명을 받고 배를 타고 내려오셨습니다.
그때 미천한 저는 군무를 맡고 있었는데,
무장을 갖추고 공을 맞이하였습니다.
공께서는 저를 업신여기지 않으시고
앞으로 나오게 하여 자리를 권하시며,
관청의 일과 민간의 사정을 두루 물으셨는데,
말씀은 온화하시고 웃음은 화평하셨습니다.
공께서는 군사를 검열하시고
포수들의 사격도 시험하셨습니다.
며칠 머무시는 동안 업무는 매우 번다하였으나,
지세를 살피기 위해 여러 곳을 순시하셨습니다.
이에 배를 갖추고 갑곶에서 키를 잡아 출발하니,
밀물이 빠르게 흘러
배는 마치 날아가는 듯 물살을 갈랐습니다.
빈량은 가장 험한 곳이라
바위들이 우뚝 솟아 있었고,
눈 깜짝할 사이 덕포를 지나쳤습니다.
바다는 하늘처럼 넓고
풍랑은 사납게 배를 흔들었습니다.
동우의 배가 뒤따라와
빠르고도 안정된 배를 바쳤으며,
술과 음식, 생선과 과일을 풍성히 올렸습니다.
이어 연미정 방면으로 올라가
모든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마쳤습니다.
또 한강으로 거슬러 오르니
배들이 서로 이어졌고,
누런 삿갓 쓴 사공들은 바람을 타며 술잔을 올렸습니다.
저녁 무렵 금릉에 이르렀을 때
강가의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공께서는 마을에서 묵으셨고
저는 배에서 잠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서로 길이 갈라져
더는 화답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훗날 병문안을 갔을 때는
기력이 이미 크게 쇠해 계셨습니다.
누가 말했겠습니까.
가벼운 병이라 여겼던 것이
끝내 큰 화가 될 줄을.
아아, 이런 분은
덕행이 치우침이 없으셨는데,
어찌 오래 사시지 못하셨습니까.
하늘의 보답이 너무 박하지 않습니까.
남쪽 선영을 바라보니
길은 멀고도 아득합니다.
상여가 이제 떠나려 하고
빈소도 이미 떠날 채비를 마쳤습니다.
고향의 노모께서는
백발을 흩뜨리신 채
문에 기대어 돌아오지 못하는 아들을 기다리시니,
통곡하심을 어찌하겠습니까.
혼이시여, 돌아오소서.
초사의 노래로 혼을 위로하나이다.
한 번 통곡하며 영원히 작별하오니,
바라건대 공께서 이 정성을 흠향하소서.
아, 슬프고도 슬픕니다.
흠향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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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인 양력]
찬인 이성구(李聖求,1584~1644)는 조선 인조 때의 문신으로, 자는 자이(子異). 호는 분사(分沙)ㆍ동사(東沙). 대사헌, 병조 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에 왕을 호종(扈從)하였고 왕세자가 볼모로 심양(瀋陽)에 갈 때에 수행하였다.
[부주]
본 작품은 이성구(李聖求)가 지은 제문(祭文)으로, 단순한 애도문을 넘어 생전의 교유와 강화도 일대의 순행 경험을 회상하는 서사적 성격을 함께 지닌다. 일반적인 제문이 망자의 덕행과 인품을 중심으로 추모하는 데 치중하는 데 비해, 이 글은 실제로 함께 이동하고 군무를 논의하며 수로를 왕래하던 장면들을 구체적으로 회고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특히 강화도 순시 과정에서의 선박 이동, 조수(潮水)의 변화, 포구와 나루의 형세, 군사 점검 및 수행 인물들의 움직임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단순한 의례문을 넘어 일종의 “행로 추억형 제문” 혹은 “기행 서사형 제문”의 성격을 띤다. 이는 조선 중기 사대부 문학 가운데서도 비교적 드문 유형에 속한다.
문체적으로는 조선 사대부 제문 특유의 압축적 고문체가 잘 드러난다. 사자구(四字句)와 육자구(六字句)를 중심으로 문장을 전개하면서도, 대구(對句)와 병렬적 리듬을 적극 활용하여 장중한 운율감을 형성하고 있다. 글의 구성 또한
“생전 회고 → 죽음에 대한 비탄 → 혼령에 대한 초혼(招魂)”
이라는 전통적 제문 구조를 충실히 따른다.
특히 다음과 같은 구절은 절제된 애도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有唱無和(유창무화)
“이제는 서로 화답할 사람이 없게 되었구나.”
짧은 문장이지만, 이전에는 함께 시와 말을 주고받던 벗이 이제 세상을 떠났다는 상실감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조선 후기 제문체에서 흔히 보이는 절제된 비애와 여운의 미학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문학적 가치 외에도 역사 자료로서 의미가 크다. 작품 속에는 강화도 군사 시찰, 수군 운용, 조운(漕運) 및 선박 이동, 지방 행정 운영, 사대부 간 교유 방식 등이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있어, 당시의 생활사·군사사·교통사 연구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문체 계보로 보면, 당송 고문(唐宋古文)의 영향 아래 형성된 조선 사대부 예문체의 전형에 속한다. 특히 지나친 수사보다 실제 경험과 담박한 회고를 중시하는 흐름은 범중엄·구양수 계열의 산문 정신과 가까우며, 조선 중기 이후 예문(禮文)의 사실 서술적 경향과도 연결된다.
[주해]
◇天啓六年 : 명(明) 희종 천계(天啓) 6년, 조선 인조 4년(1626).
◇行司直 : 조선시대 무반(武班) 산직(散職)의 하나.
◇月城李公 : 경주 이씨 인물을 가리킴. 여기서는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 계열로 추정된다.
◇江都 : 강화도(江華島). 조선 후기 국방·해방(海防)의 핵심 거점이었다.
◇流火 : 음력 7월 무렵을 가리키는 고전적 계절 표현.
◇櫜鞬 : 활과 화살을 넣는 군장(軍裝).
◇豹尾 : 의장용 깃발 혹은 군영의 의장 장식.
◇言誾笑瑳 : 말은 온화하고 웃음은 화락함.
◇鷁飛矢破 : 배가 물살을 가르며 나는 듯 빠르게 나아감을 형용.
◇楚些 :《초사(楚辭)》 「초혼(招魂)」의 형식을 빌린 만가(輓歌)적 표현.
◇松楸 : 선영(先塋), 즉 조상의 묘역.
◇靈輀 : 상여.
◇鶴髮 : 백발 노인을 비유.
국역 >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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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祭碧梧李公文」
李聖求 撰
維天啓六年丙寅二月初八日辛巳,行司直李聖求謹以酒果之奠,昭告于故尙書月城李公之靈。
歲紀甲子,節屬流火。公視江都,承命走舸。維時賤劣,鐸任是荷。櫜鞬候迎,豹尾右嚲。公不鄙夷,進前命坐。問難官私,
言誾笑瑳。閱試戎兵,砲射幷課。留連信宿,事務叢脞。欲詢地形,巡省迺可。爰飭具舟,甲津治柁。潮回迅奔,鷁飛矢破。
賓梁最險,石出硪硪。瞬目失睹,德浦炎過。海闊昇天,風濤怒簸。桐宇來追,快船甚妥。獻以酒禮,盛魚多果。北趨燕尾,
竣事靡惰。仍陪上漢,接舳連舵。後先張風,黃帽酒祼。夕抵金陵,江日西墮。公宿村居,我因船臥。自茲分行,有唱無和。
逮拜好賢,神氣頓挫。誰云末疾,遂成凶禍。命矣斯人,其德不頗。胡不眉壽,食報未大。南望松楸,路悠且左。靈輀將啓,
殯發塗裹。慈堂在鄕,鶴髮播播。倚門不歸,哭擗無奈。魂兮歸來,侑以楚些。一慟永辭,庶公歆我。嗚呼哀哉。尙饗。
출처 >《碧梧先生遺稿》 卷八 附錄 所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