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5일 (일요일)
심한 갈증으로 눈을 떴다.
내머리가 맑아 있기를 원했지만 두개골과 뇌는 따로 분리되어
걸음을 옮길때 마다 머리가 흔들흔들 거린다.
속이 뒤틀려 위와 창자를 다 들어내어 소금물에 헹구어 내고 싶을 지경이다.
고래잡이 수술을 한 사람처럼 어거적 어거적 거리며 냉장고의 문을 열어
서울우유를 집어 들고서는 벌컥벌컥 마신다.
정신을 차리고서는 휴대폰을 확인하니 벌써 출근시간은 지난지 오래고
알듯말듯한 전화번호가 수도 없이 찍혀있었다.
회사 상사분의 전화번호를 클릭하여 산행중에 미끄러져 발목을 다쳐서 병원에라도
가보아야 한다면서 휴가를 신청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서는 지난 일들을 되돌려 본다.
참으로 어이없는 발광을 낯선곳에서 부리게 되었다.
그녀석의 레파토리는 백마강달밤에서 부터 카츄샤와 단발머리까지 다양하다 못해
현란한 지경이었다. 도움이로 나선 아가씨하고는 그렇게 착착 달라 붙을 수가 없다.
떡메에 잘 메질된 찰떡처럼 척척 달라 붙는다.
서로의 대화는 단절되고 서로의 주장만 엇갈리면서 말들은 조각조각 파편이 되어
떨어지면서 만취상태로 의식이 희미해지기 시작하고 새벽3시경 6병째의 술병이
들어오는걸 확인 했는데 더이상 나의 의식은 버티지 못하고 모로 쓰러져 버리고
그리고 정신을 놓아 버린 모양이다. 더이상의 일들은 리플레이가 되지 않는다.
다들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갔는데 나는 무엇에 넋이라도 빼앗겨 버린듯이
엉뚱한 녀석을 불러 낸것이다.녀석은 나와는 예전의 직장동료 였는데 술이라면
끝장을 보고야만다. 함께 일주일 내내 술 마신적도 있었다.
그런녀석을 불러 내고 말았으니 참으로 미련한 짓을 한 것이다
처음 친구네 식당에서 칼찌찌게를 두고 소주 3병을 마실때만 해도 이승엽이가
월드베이스클래식야구 1라운드 일본과의 경기에서 8회 짜릿한 역전 투런홈런에
서로들 좋아했고 국무총리의 부적절한 골프회동에는 분노를 하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가슴을 터 놓았었는데...
이틀이 지나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포이오산악회 회장님의 전화다.
이번 칠보산 산행에 부인네들이 의외로 호응이 좋았다고 한다.
다음달 4월에는 운문사로 해서 가지산 산행후 동동주라도 한잔 하면서
멋진 추억을 만들어 보자면서 계획을 잡아 보아라 한다.
아직도 나는 칠보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다음달 산행이라니...
동기회 카페에 들어가보고 천천히 이야기 해보자고 한다.
발빠른 카페주인장이 벌써 산행사진을 올려 놓았고 함께한 친구들도
다들 즐거웠던 산행이라고 하면서 한마디씩 남겨 놓았다.
나도 이제는 어이없는 발광에서 벗어나고 미련함에서 벗어나서
칠보산의 기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써내려 가보야겠다.
칠보산(810m)
일곱가지의 보물이 있단다. 돌옷,더덕,산삼,황기,멋돼지, 구리,철등 일곱가지의
식물및지하자원이 있다하여 칠보산이라고 한다는데 어느것 하나 볼 수는 없었다.
동해의 푸른바다와 명사십리 고래불 해수욕장이 동쪽으로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백암산과 멀리 응봉산까지 웅장하게 솟아있는 모습이 첩첩산중이다.
칠보산 자연휴양림이 잘 조성되어 울창한 소나무숲과 맑은 계곡이 어우러져
산림욕과 인근 고래불 해수욕장의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지리적 위치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댄다.
산도 나무도 대지도 봄을 향한 몸짓을 시작한다.
겨우내 얼었던 눈들이 녹으면서 땅속에 스며들어 새생명탄생을 준비한다.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기 위해 자연은 쉼없이 움직이고 있다.
땅속에 스며드는 자양분은 낙엽과 함께 썩으면서 잘 발효가 되어 구수한
냄새까지 난다.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구절이 생각난다.
된장과 청국장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팍팍 썩어야 더욱더 구수한 맛을 낸다고 한다.
나또한 팍팍 썩어 구수한 향기로 다가설 수 있는 삶을 살아 보기를 희망해 본다.
해돋이전망대를 지나면서부터 제법 경사를 지우면서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떨어진다.
호흡이 거칠어 지고 심장이 박동이 빨라 지려고 하니 봄햇살 한줌이 아름다운 미소로
반기면서 나의 소매를 붙잡는다. 잠시 쉬었다 가란다. 등운산과 칠보산 분기점 200m
못미쳐 자리잡은 안부다.묘터가 조성되어 있어 잘 가꾸어진 잔디가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다.
먼저 올라온 준현이와 감주를 한모금씩 나누어 마시면서 목을 축였다.
뒤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기로 하면서 잔디에 눌러 앉았다.
준현이와 산행은 처음이다.나름데로 운동을 많이 하여 몸이 많이 가벼워 보인다.
포스코 교대 근무라 우리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 함께 할 수 없는 아쉬움을 나타낸다.
오래전에 함께 포스코에 근무를 했던 나인지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놓는다.
인생은 생방송이고 인생은 NG가 없다고 하지만, 만약 그때 사표를 쓰지 않았다면
지금의 삶과 그때의 삶이 어떻게 달랐을까 궁금 해진다.
포스코는 직장이 아니라 별장이라는 우스게소리까지 나오는 좋은 곳이라고 까지 하는데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시시때때로 변한다더니만 친구와 서로 비교를 하면서 애써 차별을
하고 있으니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서로 다름의 문제로 이해
하여야 될 것 같다. 너는 맞고 나는 틀리고가 아니고 너는 그렇고 나는 이렇다 인것이다.
아직도 몸속에 독한양주가 다 빠져 나오지 못한가보다 말이 길어지고 헛소리 하고 있으니...
갈림길에서 부터 칠보산 정상까지는 2 km의 거리로 호젓한 산책길이다.
산책길 내내 눈이 녹지않아 봄날에 눈까지 밟으면서 산책하는 행운까지 얻는다.
작은구비를 몇구비 오르고 내리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다.
정상아래서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는다.
갖가지 반찬들이 고급호텔부페식 이상이다.
소고기육회,과메기무침, 굴무침에서 부터 각종 야채쌈... 그리고 마지막은
라면국물에 부대찌게까지 부부가 함께 하는 산행에는 먹거리가 다양해진다는 사실을
오늘 나는 처음 알았다. 먹거리에 취해 술은 안주로 마셨다.
하산길은 휴양림쪽으로 내려섰다.
잘 가꾸어진 소나무와 이국적인 팬션들이 하룻밤 쉬어 가고 싶은 마음을 들게한다.
언제 우리 포이오회원들 모두가 이곳에서 모여 밤새워가면서 수다를 떨어보는 것도
제법 알뜰한 재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먼저 하산한 친구가(창수) 참소주와 오징어땅콩으로 나를 유혹하고 나는 그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말았다. 적당하게 기분좋은 상태에서 포항으로 달려오는길에 휴게소에
들러 우리둘은 오뎅국물을 안주로 삼아 소주한병을 뚝딱 헤치우면서 오늘 칠보산 산행기는
산행기가 아니고 술취해 부르는 슬픈전설의 예고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게 인생인지 다시한번 감격 해야했다.
비록 칠보산의 산행후기가 슬픈전설이 되었지만 칠포를 지나 흥해로 진입하는 7번국도에서
멀리 비학산 너머로 쓰러지는 아름다운 석양의 모습이 나의 마음 깊은곳에 못 박힌다.
노을 지면서 쓰러지는 황혼의 아름다움은 너무나 빠르게 산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지는 해는 그렇게 빨리 지고 마는가 보다.
내삶 또한 더욱더 빠르게 쓰러지고 말것이다. 우리들 모두의 삶은 점점 빠르게 쓰러지고
말 것이다.
주절주절 술에 젖어본 칠보산 산행기 끝까지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