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4호BC 8000-BC 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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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가 구름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 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창9:16) | |
――――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신문 ―――― |
오늘의 세계표정 하나님의 경고대로 홍수가 내리니 노아의 가족외엔 사람이 없게 되었다. |
홍수가 세계를 뒤덮다 노아의 예견이 맞아 떨어져 노아는 왜 120년을 준비했는가? 노아가 출생하자 그의 아버지 라멕은 "이 아들은 힘써 일하는 우리를
위로하는 자가 되리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의 행동은
얼마나 악하였는지 그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플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땅 위에서 사람을 쓸어버리고 짐승과 땅위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모조리 없애버리기로 마음 먹으셨던 것이다. 그리곤 땅에 큰 홍수를 내리기로 작정하셨다고 한다. 당시 노아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웠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썩어 가는 세상을 구원할 배를
전나무로 만들라고 하셨다. 이에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산으로 올라가
3층으로 된 배를 만들었던 것이다. 배의 크기는 길이가 150m, 너비가 25m, 높이가 15m에 이르는 당시로는 매우 거대한 것이었다. 이윽고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며 그 배 안에는 그의 가족들과 땅위의 모든 생물 한 쌍씩을 데리고 들어가면 그를 구원하여 새로운 혈통을
보존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긴 120년의 신간이 지났고 노아는 배를 만들면서 늙어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웃었는지 모른다고 노아는 말했다. 그리고 지루하기만 한 작업은
언제 끝날지도 몰랐다. 더 고민인 것은 과연 온 세상을 덮을 만큼 비가 내릴 것이냐는 문제였다. 하지만 노아가 600살이 되던 해
드디어 폭우가 쏟아졌다고 한다. 땅의 근원에서 물이 쏟구쳐 올라오고 하늘은 구멍이 난 것 같이 폭우가 40일 주야를 내렸다. 낮은 지대부터 물 속에 잠겼고 점점 차 올라 결국 하늘 높이 치솟은 산까지 잠겨버리자 배는 물위에 떠올랐다. 세상의 종말이 온 것이다. 바깥에서는 사람들의 죽어 가는 아우성소리가 들렸지만 노아의 배는 물위로 떠올랐다. 문은 위로부터 하나님이 닫으셨다. 이제
땅에는 어떤 생물도 살 수 없어 다 죽었다. 단지 물 속에 사는 생물과 노아의 배속에 있는 동물들만이 그 생명을 보전 받은 것이다. (사진은 노아방주의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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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는 과연 멈추었는가 |
드디어 비가 멈추고 무지개가 찬란히 떠다. |
그렇게 억수같이 퍼붓던 비가 40일이 지나 모든 산들을 다 덮자 멈추었다. 그리고
비가 멈추자 신기하리만큼 많은 바람이 불었다. 그리하여 150일이 지나자 배는
아라랏산의 등마루에 걸터않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70일이 지나자 마침내
산봉우리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노아는 배의 창문을 열고 깜가마귀 한 마리를 내보내었다. 하지만 까마귀는 썩은 고기만을 물고 다시 돌아왔다. 얼마 뒤 다시
비둘기를 내어 보내자 비둘기는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후 다시 비둘기를 내어 보냈더니 금방 따온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다.
그로부터 노아는 다시 이레를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 보냈더니 비둘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노아는 온전히 땅이 마른 것을 알고 배에서 나와 제사를 드리니
하늘에는 그들이 처음으로 본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있었다. 그것은 다시는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의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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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호 특집 ▼▼▼▼▼ 타임머신을 타고서"심층분석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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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발간
'홍수"
과연 노아의 말은 진실인가?
세상에 종말은 올 것인가? 홍수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 드디어 발간, 종말에 대한 해설서 가격:비둘기 한 마리,
발행:아라라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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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십니까? "한문속의 성경 "
선(船)
배=주(舟) 여덟=팔(八) 입=구(口) "즉 여덟 식구가 탓던 큰 배"
한자는 그림글자이기 때문에 사람들간의 공통된 역사적 사실이 있어야 뜻이 통한다. 배 선(船)자는 결국 노아의 홍수가 동양인의 의식 속에 공통으로 있던 기억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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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를 대비합시다
아직 한번도 비 다운 비를
구경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홍수가 날지 모릅니다. 지금 구원을 바라시는 분은
산위로 오십시오. 저희 배로 오시면 여러분의 생명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노아가 드리는
-공익광고- | | |
아라랏산 꼭대기에 묻힌 노아의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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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담 많은 것으로 보아 사실로 판명될 수도 있어 |
1872년 대영박물관의 이집트·앗시리아부 담당자인 스미스는 1852년 발굴된 한 점토판을 읽다가 뜻밖의 문장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 점토판은 아슈루바니팔왕(기원전 668-628)이 세운 도서관 유적에서 발견된 것인데 "배가 니시르산에 도착한
다음 날려보낸 비둘기가 다시 배로 돌아왔다"고 쓰여 있었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 얘기 끝 부분과 너무나
흡사했다. 점토판에 흥미를 느낀 스미스는 또 다른 점토판을
찾아내 읽었다. 점토판 전체의 줄거리는 '구약성서'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 얘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메소포타미아에 삽입된 노아홍수 점토판의 내용은 유명한 '길가메쉬 대서사시'라고 불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빌로니아의 대서사시로 3천행에 이른다. '수메르 왕명표'에 따르면 길가메쉬는 홍수 후 수메르를 통치한
왕으로 기록돼 있다. 전설에 따르면 길가메쉬는
우트나피수팀이라는 현자가 영생을 얻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난다. 우트나피슈팀은 자신이 대홍수 때 겪은 얘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밤 우트나피시팀이 자고 있는데 에아신(神)이 그의 집
갈대벽을 뚫고 들어와서 조용히 경고했다. 바벨론의 최고의 신
엔릴이 타락한 인간을 응징하기 위해 대홍수를 일으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누구 한사람도 상대하려고 하지 않자 친족과 친구들만의 힘으로 집을 부셔 4각형의 방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7일째 되는 날 갑판 까지 6층이나 되는 거대한 배가 완성됐다. 그는 자기 가족과 하인들을 방주에 태우고 금과 은,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것의 씨앗'을 실었다. 드디어 6일 밤 6일 낮에 걸쳐 비가 쏟아지고 인간들은 모두 죽는다.
그가 탄 방주는 니시르라는 산에 닿았다. 우트나피수팀은 땅에서 물이 빠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들창을 열고 비둘기와 참새, 큰 까마귀를 날려보냈다. 어느 날 큰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자 홍수가 끝난 것을 알고 배에서 내려 제일 먼저 신들에게 제물을 바쳤다. 우트나피수팀이 홍수를
일으킨 신들을 원망하지 않고 공경하자 이에 감명 받은 신들은 홍수의 결과에 대해 토론했다.
결론은 "두번 다시 홍수를 일으킬 것이 못된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자신들을 경배한 보상으로 영생을 선사했다. 이 얘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건국신화이다.
길가메시 대서사시와 성경
세상은 진실을 알리는 임무를 맡은 사람과 반대로 진실을 숨기려는 사람, 그 두 줄기로 나누어져왔다. 가인계열의 사람들은 끝임 없이 역사적 진실을 호도하기 위하여 애를 냵고 그 결과 하나님의 진실한 기록이 많이 왜곡되었다. 길가메시의 대서사시 중에 나오는 이러한 홍수기사는 인류가 공통으로 경험했던 홍수의 이야기를 반신반인 길가메시의 영웅담과 섞어 놓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원래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살고 있던 셈족의 일원이었다. 또 '구약성서'는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경까지 약 1천년에 걸친 이스라엘 민족의 기록이다. 하지만 그전에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은 성경은 기록되기 이전에라도 구전으로 전수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밝혀진 성경의 기록연대가 점토판의 기록보다 늦다고 해서 성경속에 메소포타미아의 전설이 삽입되었다고 주장할 근거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초지일관 삼위일체 하나님의 유일신 사상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사진 : 길가메쉬의 서사시(Epic of Gilgamesh)앗수르판 제11토판 : 바벨론 홍수 설화를 담고 있다. B.C. 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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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는 실제로 존재하는가?
이 배는 과연 실제로 존재했을까. '구약성서'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가 아라라트산에 닿아 그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7월 17일에 방주가 아라라트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줄어 10월 1일에는 산봉우리가 보였다(창세기 8장). 아라라트는 오늘날 터키와
이란, 옛소련 국경에 걸쳐있는 산이름이다. 성경의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고 철저하게 믿는 성경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아라라트산의 정상 부근에 호수가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고대부터 아라라트산은 사람들로부터 무척 신성하게 여겨졌다.
기원전 300년 바빌로니아의 신관 베로소스는 "방주가 있는 곳까지 올라간 사람들은 언제나 배에서 송진을 긁어내 악마를
물리치는 부적으로 삼았다"고 기록했다. 마르코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아무도 오를 수 없는 산봉우리, 만년설로 뒤덮인 그곳에 노아의 방주가 있다"고 썼다. 1829년 독일의 파로트교수는 최초로 아라라트산 꼭대기에 올랐다. 비록 그는 방주를 찾지 못했지만 "정상이 넓고 평평한 것을 보아 방주가 얹힐 만 하다"고 말했다. 1876년 영국의 브라이스경은 3천9백m 지점에서 사람의 손으로 다듬은 것이 틀림없는 나무 조각을 가지고 돌아왔다. 비록 방주의 파편이라고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노아의 방주 유물 찾기'
열기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었다. 20세기에 들어 노아의 방주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증거들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1916년 러시아 항공대의 코스코비키 중위는 아라라트산을 정찰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눈덮인 산꼭대기를 돌아 남쪽으로 날아가니
사파이어처럼 푸른 호수가 나타났다… 나는 낮게 떠서 그 언저리를 몇번이나 돌았는데, 거기에는 둥그스름한 지붕으로 덮인
묘하게 생긴 배 한 척이 얼음에 파묻혀 있었다. 엄청나게 컸다." 코스코비키 중위는 자신이 발견한 곳으로 탐험대와 함께 올라가 배의 크기를 재고 사진을 찍었다. 배 안은 몇 백개나 되는 칸막이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어떤 방은 아주 크고 천장이 높았다.
1917 년 탐험대장은 사진과 함께 자세한 보고서를 황제에게 보냈다. 그러나 보고서가 보내진 직후 러시아 제국은 볼셰비키
혁명으로 무너졌고 보고서와 사진들은 사라지고 말았다. 1960년 터키 공군의 커어티스 소령은 아라라트산을 촬영하던 중
해발 2천m의 산허리에서 달걀 모양의 물체를 발견했다. 여러 차례 거듭된 화산폭발로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 속에 묻힌
기이한 물체였다. | |
모든 민족의 설화속에 남아있는 홍수 신화 놀랍게도 인류의 모든 문명발상지에는 홍수설화가 남아있어. -각 민족들의 구전소설로 인기가 높아, 오래 동안 사람들이 기억한 듯- |
홍수의 기사가 모든 민족의 설화 속에 남아있다는 보고가 있어 흥미를 끈다. 대홍수를 테마로 하는 신화·전설. 대하 등의 유역이나 섬에 사는 민족을 중심으로 분포하는데 각기 그 지리적 조건을 반영하여 대하유역에서는 큰비를
홍수의 원인으로, 섬에서는 해수의 범람을 그 원인으로 하고 있다. 유형에
따라서 대별하면 대략 다음의 4개형으로 나뉜다. ① 징벌형(懲罰型):교만해진 인간을 징벌하기 위하여 신이 대홍수를 낸다는 형인데 ‘노아의 방주’ 신화가 그 전형적 예이다. 이집트·바빌로니아·그리스 등의 홍수신화가 포함된다. ② 예고형(豫告型):①과 비슷하나 징벌요소가 없는 형. 인도·페르시아의
전설이 이에 해당한다. 인도전설에는 뿔이 있는 소어(小魚:비슈누神의 화신)의 예고에 따라서 배를 만들어 난을 면한 마누가 인간의 선조가 된다.
③ 우발형(偶發型):우발적인 사건이 홍수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서 홍수를
일으키는 것은 생령(生靈)이기도 하고 개구리이기도 하여 반드시 신에
한한 것은 아니다. 폴리네시아·호주·남아메리카의 미개인 사이에 널리
분포한다. 소시에테제도(諸島)의 전설에서는 한 사람의 어부가 낚시로
해신(海神) 루아하크의 머리를 걸었기 때문에 루아하크가 성이 나서 해수를 범람시켜 인간을 멸망시킨다. ④ 치수형(治水型):중국의 《회남자(淮南子)》 《산해경(山海經)》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인데 홍수 그 자체보다도 치수에 중점을 둔다. 홍수신화의 기인에 관하여는 지질시대의 현상을 전한 것이라고 하는 J.림, 태양이나 달은 천계의 바다를 항행한다고 하는 관념에서 나왔다는 E.베클렌, 과거의 대홍수가 그 소재로 되어 있다는 A.랑이나 J.플레이저 등 여러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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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인텨뷰 (사진 설명 : 터키 쪽에서 바라본 아라라트 산 )
노아가 산으로 간 까닭은?
홍수 이후 한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노아의 식구들을 모시고 기자는 인텨뷰를 가졌다. ★..............먼저 노아에게 묻겠는데 어떻게 배를 만들 생각을 했는가? ◇나는 평범한 늙은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홀연히 신이 나타나 내게 말했다. 이 땅에 사람 지은 것을 한탄하며 땅의 모든 산 것을 휩쓸어 버릴 것이라고 한 것이다.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반복되는 말에 나는 믿게 되었다. 그래서 산으로 갔다. ★,.............노아의 첫째 아들에게 묻는다. 산으로 가자고 살 때의 심경은? ○산으로 가자고 할 때, 우리 식구들은 아버지가 연세가 많아지셔서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인줄 알았다. 그래서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강경했다. ★...............다음은 첫째 자부에게 묻겠다. 배를 만드는 일이 어떠했는가? ○생각 해보라 사실 그게 사람이 할 일인가? 너무 힘들었다. 배만드느라고 인생이 다 갔다. 8식구만 들어가면 될 배를
만들지 왜 그렇게 큰배를 만드는지 죽는 줄 알았다. ★...............그러면 끝으로 마지막 아들에게 묻겠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신세대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새로운 기회를 잘 이용해서 좋은 세상을 한번 만들어 보이겠다. ★...............마지막 자부에게 묻겠다. 어디로 갈 생각인가? 우리는 북쪽으로 가서 정착할 예정이다. 첫째 형은 동쪽으로 둘째 형은 남쪽으로 가서 살게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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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공연 안내
"홍수이야기" 내일부터 공연
두 번 다시 없는 불후의 명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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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지명연구-터키 아라랏산 |
터키는 성서의 어떤 땅인가 -한때 기독교와 그리스문화의 영향으로 화려한 비잔틴 문화번성-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산이 있는 곳 강진으로 4천여명 이상의 사망자와 1만8천 여명의
부상자를 낸 터키는 기독교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지진의 진앙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즈니크는 동로마 시대에 니케아로 불렸으며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황제가 종교회의를 소집해 기독교를 공인한
중요한 장소다.콘스탄티누스황제의 기독교 교인으로 당시 매우 신앙심이 좋았던 그의 어머니 헬레나는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했으며 골고다 언덕 주변의 한 저수조에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혔던 십자가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예수무덤교회를 건립하는 등 예수의 중요한 발자취에 수많은 기념교회를 세웠다.
터키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하던 기원전 2000년부터 1200년까지 이집트와 함께 최강국을 형성했던 히타이트족의 하티왕국이 있던 곳이다.당시 수도 하튜샤스(오늘날 도아스커이)는
아나톨리아 고원에 자리잡고 있던 무적의 도시였으나 바다민족에게 멸망했다.모세의 출애굽시기와 비슷한 때 히타이트와 이집트의 왕 람세스가 시리아 카데쉬에서 벌인 전투는 인류전사에 남는 유명한 전투였다.이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동쪽으로 가면 쿠르드왕족이 살던 반호수지역이 나타난다.구약시대에는
이 지역은 우라루트로 불렸으며 이는 성서에 아라랏으로 표시, 노아의 방주가 닿았던 아라랏산이 우뚝 솟아 있다.신약시대에는 터키는 사도 바울의 주요 전도지역이었다. 바울의 고향인 다소(타루수스)가 있고, 선교본부였던 안디옥(안탁키아)이 있다
(사진 설명 :- 아르메니아쪽에서 본 눈덮힌 아라랏트 산 - 노아의 방주 전설이 있는 아라랏트 산이 성스럽게 솟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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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노아는 왜 구원받을 수 있었는가? "But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성경 KJV6:8)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사랑을 발견하였더라)
노아가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구원을 얻은 것은 어떤 연유일까?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義)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7:1), 그렇다면 도대체 노아의 의(義)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이 물론 성경에 나온다. 그런데 우리성경에서는 그 뜻을 찾기가 좀 힘들고 영어성경을 보면 좀더 확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 바로 이 대목이다. 그런데 이 대목을 KJV(킹제임스 버전)에서는 "But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성경 KJV6:8)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읗 해석하면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사랑을 발견하였더라"는 것이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아도 이 해석이 옳다. 노아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눈에서 뜻밖에도 "사랑"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성령으로 난 사람의 시력(視力)이다. 아버지를 신뢰하고 이해하는 자녀는 아버지가 매를
드실 때 그 아버지의 눈에서 사랑을 발견한다. 아버지가 잘못한 자녀를 때리는 이유는 바로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사랑을 발견한 자녀는 삐뚤어 진 길을 가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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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미술
메소포타미아 남부지역에서 가장 오래 된 문명을 이룩한 수메르인(sumer)의 미술. 메소포타미아란 그리스어로 ‘두 강의 사이’를 뜻하는 말로, 티그리스강(江)과 유프라테스강(江) 사이에 있는 광활한 지역을 가리킨다. 이 지역에는 수만 년 전부터 인류가
살았던 흔적이 있으며, BC 5000~BC 4000년에는 농경생활을 영위한 정착주민도 나타나고, 이어 BC 3500~BC 3000년에는
이미 역사시대로 접어들었다. 즉 수메르인에 의해 많은 도시국가가 건설되고 설형문자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수메르인이 건설한 도시국가에 국왕이 나타난 BC 3000~BC 2340년에 이르는 초기 왕조시대에는 도시문명의 발달과 함께 미술 또한 고도로
발달하였지만,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건축물은 석재가 거의 산출되지 않기 때문에 수메르인은 햇볕에
말린 벽돌이나 목재로 집을 지었다. 따라서 그들 건축물은 건축물의 기초부분을 제외하고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풍부한 부를 바탕으로 미술을 즐겨던 것 같다고 전문가는 전한다. | |
관련사이트:▶http://www.creationresearch.org/ 다음은 웹에서 살펴볼 만한 관련자료들이다 ▶ttp://www.answersingenesis.org/Webman/article.asp?ID=1305&ViewALL=11 |
ㅡㅡㅡㅡㅡㅡㅡ첨부 자료ㅡㅡㅡ |
-노아의 방주-
노아의 방주 발견? 이란 4,000m 산에서 121m 길이 선박 발견
[팝뉴스 2006-07-03 13:59]
노아의 방주로 추정되는 고대 선박 잔해가 이란 엘부르즈 산 정상 인근에서 발견되었다고 29일 CBN, ABC 등 미국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성서 연구 단체인 BASE(Bible Archaeology Search and Exploration) 소속 연구팀에 의해 발견된 선박 잔해는 약 400피트(121m) 길이로 성서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와 크기가 일치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
고고학자, 성서학자, 지리학자 등 과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은 지난 6월 초 13,000피트(약 4,000m) 고도의 이란 엘부르즈 산 정상 인근을 조사하던 중 선박으로 보이는 물체를 발견했고, 화석화 된 선박의 잔해 일부를 미국으로 공수, 현재 정밀 검사가 진행 중에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동안 노아의 방주는 터키 북동부 아라라트 산에 묻혀 있다는 것이 관련 학계의 추측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사를 진행한 연구팀은 성서 기록을 분석 결과, 노아의 방주가 묻혀 있는 장소가 아라라트산이 아닌 이란 테헤란 북서쪽에 위치한 엘부르즈산이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실제 목제 선박의 잔해를 발견했다는 것.
연구팀은 이번에 발견된 고대 선박의 잔해가 노아의 방주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는데, 해발 4,000m 고도에서 발견된 목제 선박을 설명할 방법은 노아의 방주 외에는 없다는 것이 연구팀 관계자의 설명. 또 연구팀은 선박 잔해 인근에 조개껍데기 등 대홍수 당시의 동식물 화석이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고 언론은 전했다.
미국으로 옮겨진 선박 잔해에 대한 정밀 검사 결과는 조만간에 발표될 예정. 한편 지난 3월에는 터키에서 노아의 방주가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었다. 7월3일 현재 '노아의 방주'가 실시간 검색순위 1위를 차지했다 (사진 : 노아의 방주 발견 지점(왼쪽 위) 및 잔해들(BASE가 촬영, 언론에 제공한 사진) 김민수 기자 (저작권자 팝뉴스). 2006-07-03
상세 자료 제공 : 성화 사랑
노아의 방주로 추정되는 아라랏산의 지형 자료출처 - [http://www.specialtyinterests.net]
지형을 토대로 노아의 방주를 복원해 본 상상도
방주 터
방주 터 발견의 역사
노아방주 모형
노아방주 터 위성사진
미국 일간 USA 투데이는 9일자 온라인 기사에서 '노아의 방주 미스터리'가 또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연구자들이 '노아의 방주'로 주장해 온 물체(혹은 지형)를 담은 선명한 위성 사진이 공개되었기 때문. 포르세 테일러 등 노아의 방주 연구자들은 성서에 묘사된 40일 대홍수가 끝난 뒤 방주가 터키 아라라트 산에 안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해왔다. 그 증거로서 4663미터 높이의 산허리에 있는 비정상적인 지형의항공 및 위성 촬영 사진이 제시되어 왔다. 그림자에 불과하다거나 자연 지형이라는 반박도 있었지만,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라는 가설도 있어 왔다. 그런데 최근 문제의 지역을 촬영한 선명한 위성 사진이 공개되면서 다시 논란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디지털글로브(DigitalGlobe)사의 위성이 2003년에 촬영한 사진이 일반에 공개된 것이다. 노아의 방주가 실존한다고 믿고 10여 년 동안 연구를 진행해온 포르세 테일러는, 이번에 공개된 사진이 노아의 방주 미스터리를 푸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문제의 물체가 노아의 방주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길이와 너비가 6:1 비율로 노아의 방주에 대한 성서 기록과 일치한다는 것이 그가 제시한 논거 중 하나. 아라라트 산허리의 물체 길이는 309미터이다. 언론은 상업 위성 사진은 물론 군사 위성 사진들도 속속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노아의 방주 미스터리가 풀리게 될 것으로 낙관하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 : 디지털글로브사의 상업위성 퀵버드가 2003년 촬영한 사진
ⓒDigitalGlobe 출처 www.space.com)
(사진 설명 :- 아르메니아쪽에서 본 눈덮힌 아라랏트 산 -
노아의 방주 전설이 있는 아라랏트 산이 성스럽게 솟아 있다. |
첫댓글 이렇게 자세한 하나님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