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남는 사찰에 대해 짧은 글을 쓰라고 하니 강진의 만덕산 기슭에 있는 백련사가 떠올랐다.
강진, 영암, 해남의 3군은 한반도 서쪽 최남단으로 기후가 온후하고 풍광이 수려하며 먹거리가 풍요로운 축복받은 고장이라 할 수 있는데 불교 사찰로도 대흥사, 무위사, 도선사 등 유명한 사찰이 많다. 백련사는 앞에 말한 세 사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고 그러면서도시적인 정취가 넘치는 절, 다시 찾아가고 싶은 절로 생각했는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보니 사찰로써도 앞의 세 절 못지 않게 중요한 사찰임을 알 수 있었다. 그곳 주지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천년간 단 하루도 목탁 소리가 끊기지 않은 가람인 것이다.
나는 백련사를 세 번 찾아갔는데 그때마다 깊은 감회에 젖게 하는 것은 자연의 시정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풍광과 다각을 맡은 스님이 빚어주는 차 한잔의 맛 때문일른지 모른다. 이곳 풍광이 여느 절과 다른 것은 보통 절이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데 백련사는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동시에 바다를 내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바다가 밀물일 때, 썰물일 때 포구와 같은 바다의 풍경이 달라진다. 바다 쪽에서 보면 절이 보이지 않으나 절에서 내다보면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고, 그래서 조선 시대 왜구가 침입해 오는 것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한
다.
원래 70여 개의 전각이 있는 큰 가람이었는데 왜구가 침공해 불을 지르고 파괴해 폐허가 된 것을 원묘국사, 행초 스님 등이 재건을 위해 결사를 하고 어려움과 아픔을 딛고 버틴 사찰이라고 했다. 바다를 내다보면서 차를 마시면 모든 것이 잊혀지고 시간이 멎는 것 같은 착각 속에 禪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공간이면서 그 공간 속에는 민족의 드라마가 깃들어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백련사는 불교의 가람이지만 가까이에 다산초당이 있고 시인 김영랑이 강진에서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우리 문화의 하나의 숨은 중심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강진에 사시는 영랑 문중의 향토시인 김수자 여사는 ‘전남 강진 도안면에 천하 명산 만덕산은 동방의 제일도량 백련가람 키워낸 곳 … 무량심 새길 적에 독백수 시봉삼아 정기 받아 가보자 하고 연물로 목을 닦아…’ 이렇게 백련사와 차문화의 어울림을 노래했는데 백련사에서 마시는 차 한잔은 우리에게 영원의 순간을 일깨워준다.
김정옥(연출가, 예술원 회훵)
<2003-04-16/702호>
입력일 : 2003-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