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는 미친 짓이다 ⑥] ‘눈맛’
낚싯대는 주로 2대를 편다. 처음 도착하면 상태를 보기 위해 세대를 펴서 탐색을 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두 대로 줄인다. 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딱 한 대만 펴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열 대를 넘게 펴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대물(大物) 낚시라고 월척급 이상을 노리는 프로 낚시인들이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시도를 해 보진 못했다.
십년 전 잡은 월척
월척(越尺)이란 “자를 넘는다”는 뜻으로 한 자, 즉 30.3cm를 넘는 경우를 말한다. 한 치는 3.03cm다. 결국 월척이란 열 치, 한 자에 해당한다. 낚시인들이 여덟 치, 아홉 치 할 때 대강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붕어 낚시에서 월척을 잡는 것은 낚시인들의 로망이다. 물론 떡붕어가 아닌 참붕어만 쳐 준다. 참붕어는 다른 물고기에 비해 성장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월척이 되려면 최하 5년 이상, 서식지 여건에 따라서는 10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지금까지 내가 잡아본 최대어는 음성 모란지에서 잡은 36Cm였다. 벌써 10년도 넘었지만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 물론 낚시인을 위해 큰 붕어를 마구 방생해서 잡게 하는 그런 낚시터에서 잡은 건 안쳐준다. 월척을 만나려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노력을 한다고 잡는 것도 아니다. 물고 안 물고는 순전히 붕어 마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 샤를르 드 푸코 詩 [나는 배웠다] 중에서 –
붕어가 딱 그렇다. 우리는 다만 그가 유혹과 매력을 느낄 만큼 충분한 조건을 만들 뿐이다. 그리곤 기다릴 일이다. 무엇보다 조용해야 한다. 대물(大物)일수록 경계심이 많다. 사실 그래서 오래 살아남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큰 붕어는 잔챙이들처럼 입질이 가볍지 않다. 경망스럽게 움직이지 않는다.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찌를 올린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일이다.
상상해 보라. 야광찌가 한마디 한마디씩 수면 위에 올라오는 모습을! 숨이 멎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 더” 하는 그 순간의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 그걸 잊지 못해, 미친 사람처럼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것이다.
낚시를 하다 보면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옆 사람은 계속해서 잡는데 자기만 못 잡으면 묘한 경쟁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미끼가 잘못되었나 싶어서 바꾸기도 하고, 낚싯대의 편성을 바꿔보기도 한다. 심한 경우는 자리를 아예 옮기기도 한다.
사실 자리를 옮긴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을 필요로 한다. 낚싯대를 하나씩 접고, 받침대를 풀어서 옮겨야 하고, 다시 수심을 맞춰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밤중이면 더욱 어렵다. 나는 주로 한번 자리를 잡으면 그 자리를 사수하는 편이다. 보수적인 셈이다. 그러다 문득 마음을 비우는 순간이 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이 몇 마리를 잡든 신경 쓰지 않게 된다. 물론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는 수많은 마음 수련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얼마나 많은 경쟁을 하면 살고 있는 것일까? 다행히 노동운동을 하게 돼서 경쟁보다는 ‘연대와 협력’을 주된 가치로 살아왔지만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경쟁하도록 만든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심리의 한편에도, 경비노동자를 하찮게 대하는 마음의 한편에도 그런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 거기에 진정한 삶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 보다는
나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나는 배웠다
– 위 詩 중에서
낚시터에 조용히 앉아 있어보라. 최선을 다한 후 붕어를 기다리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라. 혹시 월척을 잡는 것보다 더 큰 기쁨과 깨달음을 만나게 될 지 누가 알겠는가?
<침묵연습> 7
모두 다 흘러가는 거야
난 널 기다리고
넌 다른 사람에게 가고
난 너만 쳐다보고
넌 다른 곳을 응시하지만
괜찮아
어제를 말하지 마
난 이미 거기 없어
너 없이도 살 수 있다
주문을 외며
돌아오는 길에
제비꽃 무리지어 피고
민들레 꽃 옆에 할미꽃 하나
만지고 싶고
안아 주고 싶지만
괜찮아
또 기다리면 되지
삶의 절반은 기다림이야
<황청지>
강화도에 있는 황청낚시터는 1993년에 민들어진 준계곡형 저수지다. 수면적은 약 2만3천여평이다. 평균수심은 2.5m~4m이며 최고 깊은 곳은 15m가 넘는다. 깊은 산과 오래된 노송들로 이루어져 있어 아늑하고 조용하다. 산으로 올라가 내려다 보면 넓은 바다와 아름다운 섬이 보이기도 한다. 입어료는 남성 3만원, 여성 2만원을 받는데 가족 단위가 찾아도 아주 편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관리형 저수지다.
경우에 따라 엄청나게(?) 힘이 좋은 붕어를 아주 많이 잡을 수 있다. 1인당 10마리만 잡아갈 수 있도록 마릿수를 제한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물론 정반대의 경우도 많다. 그 역시 붕어마음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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