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순 어느 좋은 날 아침에 친구 넷이 대경선 기차를 타고 왜관으로 갔다. 오늘의 목적지는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이다. 수도원 정문으로 들어가니 구 성당 건물이 먼저 보인다. 1928년에 로마네스크식으로 지어진 최초의 성당 건물인데 1952년 북한과 만주에서 추방당한 베네딕도 수도회의 임시 수도원으로 사용된 적이 있고, 1967년 왜관읍 안에 새 성당을 지어 이전한 후에는 구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성당 안쪽 단층 건물은 1935년에 본당 사무실로 지었고 왜관 첫 유치원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한국전 당시 부상병 치료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구 성당 옆에 화재 후 새로 지은 대성전이 보인다. 계단 입구에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이라는 글이 새겨진 큰 돌이 세워져 있고 오른쪽 축대 위에 성 베네딕도 성인 동상이 보인다. 계단을 오르니 성전 입구 석벽에 ‘기도하고 일하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밑에 ‘주님의 은총과 은인들의 도움으로 백 주년을 기념하여 하느님의 집을 짓다. 2008.4.18. 기공 2009.8.30. 축성’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2007년 4월에 화재로 수도원 건물이 반 이상 소실 되자 전부 철거하고 새로 지은 건물이 대성전이고 2009년 8월 준공 축성식에 이어 9월 19일부터 9월 25일까지 성 베네딕도 수도회 한국진출 100주년 기념행사가 개최되었다. 당시 건축 기금 모금 서울 후원회에서 활동한 친구의 초대로 준공 축성식에 참석하고 아기 안은 성모상을 선물로 받아서 지금도 집에 모시고 있다. 성전에서 성무일도 기도를 바치면서 수년 전에 먼저 떠난 그 친구가 떠올라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삶의 허무를 느끼면서 너무 일찍 데려간 하느님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최고의 건축가였던 김수근 건축가의 수 제자인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하여 2024년 5월에 완공한 ‘문화영성센터’는 건축물의 미적 측면 말고도 그 규모나 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여러 용도를 볼 때 성 베네딕도 수도원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고도 남는다. 수도원의 120년에 가까운 역사를 살펴보면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놀라운 사건이 있다. 첫째로 한국전쟁 당시 승선 정원이 60명인 메러디스 비토리아호라는 화물선이 화물칸을 개조하여 14,000명 피난민을 싣고 크리스마스 아침에 거제도에 무사히 도착한 사실은 최다 구조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거기에 더해 그 배의 선장인 2등 기관사 로버트 러니가 전역 후 마리너스 수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그 마리너스 수사가 운영하던 미국 수도회 사무실 운영이 어렵게 되자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인수하여 미국 분소로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둘째는 1925년 독일의 노르베스트 베버 신부가 가져가 독일의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소장하던 ‘겸재 정선의 화첩’이 돌아와 국립 중앙박물관이 소장하기까지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이다. 1975년 당시 독일 유학생 유준영이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발견하고 같은 베네딕도회 소속 수도원인 왜관 성 배네딕도 수도원 선지훈 신부의 노력으로 귀중한 문화재가 돌아오게 되었다는 이야기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도를 마치고 성전에서 나와 성물방으로 향하니 2층에 대구가톨릭대학교 유스티노 자유 대학원에서 명상 그림 강의를 맡고 있는 하삼두 화백의 해외 선교사업 기금 마련을 위한 전시회 ‘옵스꿀타(Obsculta)’가 열리고 있었다. 하삼두 화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지만, 일행의 일정에 맞추다 보니 작품 감상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작품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없어서 아쉽고 미안했다. 이번 전시 작품은 수묵에 붉은 색상이 많이 들어간 점과 나무 조각 작품이 특이하게 보였다. 특히 ‘스타 치오’(자작 합판에 목각 위 아크릴)라는 작품은 처음 보는 대작으로 작업 과정이 엄청 힘들었을 듯하다. 성경 말씀을 실천하고 청빈하게 살아가는 수도원의 정신에 맞추어 쿠바 및 해외 선교 후원 기금 마련을 위해 전시회를 연 하삼두 화백의 전시회가 큰 성과 이루기를 기도한다.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수도원의 정신에 따라 목공실, 금속 공예실, 밀랍 초방, 분도 가구 공예사, 유리화 공예실, 분도 출판사 등 수많은 작업장이 있고, 낙동강 변에 넓은 농장이 있어 많은 농산물을 생산하여 유기농 식품을 공급하고 있다. 신앙적 측면 말고도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서도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이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지대하다.
오늘은 감사할 일을 새롭게 발견한 기쁨으로 충만한 날이다. 한국전 당시 기네스북 기록상 최다의 인명 구조 기록을 세운 한 미군이 가톨릭의 수사가 되어 왜관 수도원과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고 수도원에서도 도움을 주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같은 성 베네딕도 수도원이라는 인연 덕에 귀중한 문화재인 ‘겸재 화첩’을 되찾았고 후손이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도 우연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 모든 일이 그분의 뜻으로 이루어졌을 거라는 생각 하면서 텅 비었던 가슴이 뭔가로 가득 채워진 기분으로 수도원을 나선다.
첫댓글 이기창 선생님 방금 이 글을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저는 왜관성당 소속으로 여환숙 소화데레사 입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로써 왜관이 저의 안태고향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부심과 긍지을 가집니다.
저희 칠곡군내에는 8곳(왜관, 석전, 가실, 신동, 약목, 동명, 중리, 인평)의 성당과 신나무골 성지와 한티성지(한티성지는 그 곳에서 살다가 죽고 묻힌)와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 있습니디.
그리고
매르디스 빅토리아 호 마리너스 수사님은 미국 뉴톤수도원에 잠들어 계시고
성 베네딕도 수도원의 성부인 베네딕도 성인의 수도원 규칙서는 세계적으로 규칙서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으로 몇자 적었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