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일산에 사는 A씨. 지난 6월말 72세 된 아버지가 뇌경색 진단 후 6개월간 입원했던 병원에서 수술비를 포함한 병원비가 1600만원 청구됐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부담해야 했던 돈은 30만원 남짓. 국민건강보험에서 900만원을 그리고 수술 전 가입했던 손해보험사(손보사)의 민영의료보험에서 나머지 700만원가량을 부담했기 때문이다.
서초동에 사는 B씨. 대장암 수술로 입원했던 30일간의 진료비가 모두 3000만원. 이 중 본인부담금액은 950만원이나 됐다. 그 중에서 입원비가 900만원인데 그 이유는 보험이 안 되는 하루 30만원이나 되는 특급 병실에 거의 3주나 있었기 때문이다. 민영의료보험도 커버하지 않는 이 병원비는 고스란히 B씨가 부담해야 한다.
현행 국민건강보험으로는 보장받을 수 없는 의료비는 B씨의 경우처럼 특급 병실 입원 등 특별한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A씨처럼 대부분을 민영의료보험 가입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
문제는 지난해부터 보험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민영의료보험 특별법이 제정되면 보험의 보장 범위가 축소돼 일반 병실에 입원한 A씨도 특급 병실을 이용한 B씨처럼 부담액이 늘어난다는 것. 특별법 제정의 골자가 그동안 민영의료보험에서 부담했던 입원비, 검사비, 진찰비, 방사선 치료비 등에서 국민건강보험 부담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본인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입원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항목 가운데 병실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23.5%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어 입원비에 대한 보장은 법안 내용 중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됐다.
불필요한 입원환자 증가
지난해 9월 정부는 민영의료보험법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섰다. 민영의료보험의 지나친 특약 보장으로 과잉 진료를 유발해 궁극적으로는 건강보험의 재정을 해치고 있다는 게 이유다. 만약 현재 유예기간중인 이 법이 현실화한다면 입원비의 상당 부분을 개인들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정부가 민영의료보험에 대해 대대적인 수술을 가하는 이유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고민은 최근 KTX의 개통으로 지방 환자들의 원정 입원 러시로 인해 서울 시내 대형 병원들의 병실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생명보험사(생보사)와 손보사가 팔고 있는 보험 상품이 지나친 특약 보장으로 인해 가입자들은 병원 이용을 선호하고 병원 역시 시급하지 않은 입원까지도 권유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이 병원 공화국으로 갈 우려가 있어서다. 한 달 동안 입원해도 겨우 동네 약국의 약값 수준만을 본인이 부담한다면 병원 입원을 망설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이로 인해 입원이 굳이 필요하지 않는 거짓 환자들이 양산될 경우 막대한 국민건강보험 지출이라는 부정적인 외부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특별법 제정의 취지는 민영의료보험이 부담하고 있는 부분 중에서 초음파 진단비, MRI 촬영비 등 직접 치료비 등을 제외하고, 입원비나 진찰비 등은 건강보험 부담분을 제외하고 본인이 부담한다면 상당부분 불필요한 입원 환자나 진료 환자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문제는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보험사들, 특히 실제 발생한 의료비용을 실비로 정산해 주는 손보사들의 강한 반발이다. 얼핏 손보사들 입장에서 보면 보험의 보상 범위를 좁히는 게 오히려 보험금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보험사의 수익에는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영의료보험 자체의 상품 메리트가 줄어든다면 절름발이식 상품으로 전락해 판매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보험사들이 우려하는 것은 실제 의료비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병실료나 검사비, 진찰비 등을 보험으로 커버할 수 없게 된다면 지금처럼 싼 보험료를 납입하는 보험 상품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보험 소비자들이 대부분 염두에 두고 가입하는 손보사의 민영의료보험은 저렴한 보험료를 납입하고 미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고액의 입원비나 진료비를 보장받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기 때문이다.
법이 개정되면 고가의 검사비가 들어가는 특정 질병에 대한 검사비나, 진단비를 커버하는 보험 상품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고 가입자가 제한될 수밖에 없으며, 보험료도 기존에 비해 훨씬 비싸진다.
감기 등 80세까지 보장
그렇다면 민영의료보험이 꼭 필요한 보험 소비자들은 당장 어떻게 해야 할까?
보험 전문가들은 법 개정을 앞두고 보험 가입이 필요한 사람들은 이미 출시돼 현재 판매되고 있는 보험 상품에 서둘러 가입하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법 개정 이전 모든 보험 상품은 현재처럼 국민건강의료보험에서 부담하지 않는 일부 입원비나 진찰비를 대부분 보장하기 때문이다.
민영의료보험은 국민건강보험에서 적용되지 않는 항목까지 보장이 된다. 일반건강보험과 달리 감기 등 가벼운 질병에서부터 사고로 다친 것까지 모두 보장된다. 또한 수술, 입원과 같은 치료뿐 아니라 통원 치료비도 보장받을 수 있다.
손보사의 민영의료보험은 예전부터 꾸준히 판매되고 있었지만, 보험 기간이 10년 또는 15년으로 80세까지 보장하는 생보사의 일반건강보험의 보험 기간에 비해 짧은 편이었다.
이런 점이 가입을 망설이게 하는 원인이 됐지만 최근 들어 최고 80세까지 보장하는 상품이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찾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보험료도 상품별로 최저 3만원부터 5∼6만원 정도면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건강보험과 큰 차이는 없다. 또 손보사의 민영의료보험은 일정 기준 내에서 납입하고자 하는 보험료를 선택할 수 있어 보장 내용과 보험료 수준을 적정하게 조절할 수 있다.
특정 고액 암보험을 들었지만 실제 병원 의료비 혜택에는 불안한 사람, 20~40대 중반까지 질병이나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사람, 고액 사망 사고만을 보상하는 교통·상해보험 등에 가입하고 있는 사람, 주요 질병 및 사고에 대해 정액형 수술비, 입원비 보장만의 보험에 가입하고 있는 사람 등에 적합하다.
그럼 민영의료보험은 암보험, 일반건강보험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먼저 보상하는 방법이 다르다. 생보사의 일반건강보험은 몇 건을 가입하건 모두 중복해서 보장을 받는다.
예를 들면, 암 진단 시 2000만원을 보장받을 수 있는 두 개의 상품에 가입돼 있다면, 암으로 진단 시 각각 2000만원씩, 총 4000만원을 보장받게 된다. 그러나 민영의료보험의 의료비는 중복 보상이 불가능하다. 의료비를 보장해주는 두 개의 상품에 가입돼 있더라도 보험 상품의 가입 금액에 비례해 보상을 받는 비례 보상 형태로 본인이 부담한 실제 치료비용보다 더 많이 보상 받을 수는 없다.
또 일반건강보험은 가입 시 약관에 의해 정해진 질병만 보험금이 지급되지만, 민영의료보험은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높거나 우연적 발생 질병으로 볼 수 없는 질병을 제외하고 사소한 감기에서 사고로 인한 치료까지 모두 보장된다. 또 통원 치료 시에도 보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민영의료보험 중 일부는 생보사에서는 이미 보장이 없어진 뇌졸중에 대한 진단 자금을 보장해주고 있다. 뇌졸중은 뇌출혈과 뇌경색증을 포함하고 있어, 뇌출혈 진단금을 보장하는 생보사의 특약보다 보장의 범위가 넓으며, 보장받을 가능성도 더 많다. 발생률 또한 뇌출혈보다는 뇌경색증이 더 높아 이왕이면 뇌졸중을 보장하는 상품을 선택하는 게 좋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민영의료보험의 기본 계약은 상해 사망과 후유 장해를 보장하고 있다. 선택할 수 있는 특약으로는 생보사의 건강보험과 같이 정액으로 보장하는 주요 질병 진단자금과 각종 질병에 대한 수술비, 입원비가 있고, 손보사에서만 가입 가능한 일상생활 중 배상책임 특약 등이 있다.
민영의료보험에서 가장 중요한 특약은 의료 실비를 보장해주는 상해 의료비 또는 입원 의료비, 통원 의료비 특약이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의료비 관련 특약은 3000만원 한도의 입원 의료비 특약과 10만원 한도의 통원 의료비 특약이 대부분이며, 이 특약들은 5년 만기로 자동 갱신된다.
가입 전 꼼꼼히 체크해야
보험 전문가들은 법 제정 이전에 보험을 가입해야 한다면 이것만은 알아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먼저 중복 가입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이미 세계 6대 보험국인 한국에서 자천타천으로 보험 상품을 가입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상품에 대한 중복 가입이 늘고 있다. 중복 가입된 상품인 경우 민영의료보험에서 보장하는 것은 모든 보험사에서 의료비를 중복해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입한 비율만큼 나눠서 지급하기 때문에 중복 가입은 낭비다.
또 가능한 질병이 없을 때 빨리 가입해야 한다. 많은 보험 상품들이 질병이 있는 경우 보험 가입이 어렵다. 따라서 이미 지병이 있거나 치료 경험이 있는 경우 가입 자체가 안 될 뿐더러 가입이 되더라도 불리한 조건으로 가입할 수밖에 없다. 잔병치레가 많거나 각종 성인병이 우려될 경우 하루라도 빨리 가입하는 게 유리하다.
이밖에 입원비 보장 한도와 장기 보장이 가능한 상품에 가입해야 한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은 앞으로 2010년에는 평균수명이 79세, 그리고 2030년이 되면 노인인구가 1000만 명(전체인구의 19.3%)을 넘게 된다. 따라서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할 때는 장기로 가입하는 게 유리하다.
현재 민영의료보험의 경우 15년납 80세 만기 등으로 이뤄져 있고 5년마다 한 번씩 보험료를 다시 산정한다. 또한 입원비 보장 한도도 180일보다는 360일까지 보장하는 상품에 가입하는 게 좋다.
특히 이번 특별법 제정을 앞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입원비 보상 제외 등의 이슈는 자칫 보험 소비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켜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를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