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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암릉과 계단의 앙상블 여름 같은 초봄의 월악산
1. 일자 : 2013. 3. 9(토)
2. 장소 : 월악산 (1,094m)
3. 행로 및 시간
[덕산탐방센터(10:00) -> 굴사뎅이(10:12) -> 신륵사(10:25, 신륵사 삼거리 2.8km) -> 수렴선대(10:40) -> 국사당(10:51) -> (된비알) -> 능선안부(11:06, 신륵사/영봉 1.8km) -> (된비알) -> 신륵사 삼거리(11:41, 영봉 0.8km, 940m) -> 보덕암 삼거리(11:58) -> 영봉(12:14) -> (중식 12:30) -> 신륵사 삼거리(13:00, 덕주사 4.7km) -> 송계삼거리(13:20, 950m) -> 960봉(13:24) -> 전망대봉(13:53) -> (계단 길) -> 마애불(14:32) -> 덕주사(15:05) -> 학소대(15:20) -> 탐방센터(15:30)]
4. 동행 : 홀로, 28인승산악클럽
< 월악산 산행을 준비하여 >
산악인을 대상으로 국내의 산 중 가장 오르기 힘든 산을 묻는 조사를 했더니, 1위는 ‘월악산’이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2위 이하는 가물가물하다. 2008년 늦가을 수산리에서 출발, 하봉, 중봉, 영봉을 거쳐 덕주사로 하산한 경험에 의하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험한 산임에 틀림없다. 그 험한 곳에 다시 오르려 한다.
월악산은 포함산, 대미산,
어떤 고수가 월악산을 ‘幺(작을 요)자형 산’이라 했다. 수산리에서 출발하여 보덕암을 거쳐 하봉, 중봉, 영봉을 지나 신륵사까지의 길 형상이 ‘위 <’라면, 다시 영봉에서 시작하여 동창교 갈림길을 거쳐 덕주골까지의 길 형상이 ‘아래 <’이 될 것이고, 한참 밑에 떨어져 있는 독립 봉우리가 ‘,’에 해당하는 만수봉이 될 것이다.
지난 산행의 기억을 더듬는다. “하봉 우회로를 거쳐 중봉 안부까지 1시간여는 ‘지옥의 오르막’ 길이었다. (중략) 통천바위는 ‘하늘과 산’ 그리고 ‘산과 마을’을 통하는 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바위 옆으로 난 계단을 올라 서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우회하여 올라온 하봉이 보인다. 지나가는 산객이 우리의 모습이 정다워 보였는지 자기 사진기로 사진을 찍고 싶다 한다. 모델이 된 느낌이다. 중봉에는 뚜렷한 표지가 없다. 정상으로 추정되는 널따란 바위에서 내려다 보는 충주호와 주변 산들의 풍경은 최고의 전망을 제공한다. 흐린 날에도 이 정도의 풍경이라면 날이 맑았더라면 어느 정도일까? 월악산이 왜 명산 반열에 오를 수 있는가를 이곳에서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되는 듯하다.”
월악산이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오른 까닭은 “산세가 험준하고 기암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졌으며 송계 8경과 용하 9곡이 있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신라말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마주보고 망국의 한을 달래고 있다는 미륵사지의 석불입상, 덕주사 마애불, 덕주산성 등이 유명’ 이다. 산이 크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많다. 이번 산행이 월악과 그 인근 산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 희망사항 >
월악산 산행을 예약하고 나니 출발 버스에서의 달콤한 시간이 어서 왔으면 하고 기다려진다. 원거리 산행이 잦아지며 버스 안에서의 나름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익숙해져 간다. 비몽사몽 간에 음악을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습관이 되니 오랫동안 근교 산행만을 하면 버스에서의 시간이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수컷은 외로운 존재인가 보다.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진취적 욕심도 있지만, 책임져야 할 것, 내 몫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심하다. 때론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며 내 것을 쟁취해야 하는데, 욕심이 적어서 인지 능력이 부족해서 인지 다툼이 싫다. 그래서인지 자꾸 산으로 발 길이 간다. 산은 내가 아는 가장 품이 넓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왠지 그곳에 가면 힘겨운 삶의 고난이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솟는다.
월악산은 지난 2008년 11월 중순 강형, 대식과 함께 올랐던 산이다. 처음으로 3명이 함께 산악회 버스를 타고 간 산인데다, 6시간 30분의 긴 산행 시간과 험한 길 사정 그리고 산정에서 굽어본 황홀한 충주호 풍경으로 기억되는 산이다. 당시에는 수산리에서 출발 하봉, 중봉을 거쳐 영봉에 오른 후 덕주사 방향으로 내려왔었다. 계절이 단풍이 진 시절이라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산행이었다. 오늘 코스는 덕산에서 출발 신륵사를 거쳐 영봉 밑 신륵사 갈림까지는 처녀 길이고 나머지는 이전과 같은 길이다. 소요시간은 덕산에서 영봉까지 2시간 20분, 영봉에서 송계삼거리 1시간, 이후 덕주사까지 90분 총 5시간의 산행이 될 것 같다. 산 자체가 험한데다가 계절적 요인도 있어 힘겨운 산행을 예상해 본다.
예전 사진을 본다. 촌스럽기 그지없는 구도다. 그래도 그때는 지금보다 머리 숱이 많았고 웃는 미소가 지금보다 덜 야비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좀 더 온화한 모습으로 변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산을 타며 좀 더 우직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계절이 우수, 경칩을 지나며 완연한 봄 기운이 느껴진다. 조춘의 산에서 봄이라는 희망을 보고 싶다.
(여기까지는 산행 전 준비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지난 산행의 추억 >
< 충주 가는 길에 >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식사도 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집을 나와 버스에 오르니 평소와 별 다름 없이 복정에 도착했다. 낮에 더워 진다 하여 가벼운 복장으로 나왔더니 약하게 나마 한기가 느껴진다. 그 속에서 아침을 일찍 여는 자들만이 느끼는 벅참을 느껴본다.
28인승 버스가 온다. 남들은 늘 집객에 어려움을 겪는데 이 산악회는 오늘도 만원이다. 오늘은 집객이 넘쳐 버스가 두 대다. 연구의 대상이다.
여주에서 아침을 먹고 충주호를 지나 월악산 산 머리를 접어든다. 연무가 걷힌 들녘에는 생명의 기운들이 꿈틀거린다. 월악산 덕산 탐방센터에서 길을 시작한다.
< 신륵사에서 영봉 >
월악산민속학교를 지나니 곧 탐방안내소가 나타났다. 널찍한 도로 길을 따라 숨을 고른다. 산은 오늘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까 궁금하다. 길가에 새로 설치한 짙은 주황빛 전봇대가 인상 깊다. 간간이 펜션 등 숙박시설이 눈에 띄는데, 철도 침목과 양철 지붕, 합판을 덧대 외관을 꾸민 건물이 눈 길을 끈다. 붉은 색 페인트가 특히 자극적이다. 그러나 가까이가 살피니 폐가다. 멀리서 본 자극적 시각에 홀린 것이다.
길이 좁아지는가 싶더니 다리를 지나며 넓어진다. 계곡 부군에 너른 반석지대가 있다. 여름철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이 상상된다. 지금은 반석 뒤로 열병하듯 서 있는 산줄기에 먼저 눈 길이 간다. 10여분 더 가니 신륵사 절 집이 보인다. 경내는 출입을 금하고 있다. 인근에 월악산 노래비 등 새로 설치한 인공 구조물이 즐비하다. 광장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길을 나아간다.
< 반석 부근 풍경 / 신륵사 >
포장도로가 흙 길로 바뀌었으나 길은 여전히 널찍하다.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가 계절을 착각하게 만든다. 완만하게 천천히 높아지던 고도는 출발 40분만에 가팔라진다. 수렴선대로 추정되는 지역에 출입금지 팻말이 있고 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이제부터 말로만 듣던 신륵사 된비알이 시작된 것이다. 영봉까지는 3km 정도를 올라야 할 것이다.
10여분 다리를 길에 적응시켜 가며 힘겹게 돌 비탈을 오르자 우측에 통나무로 기둥을 세운 건물이 보인다. 국사당이다. 평소에는 용도가 없고 행사 때나 문이 열리는 곳일 것이다. 이곳을 기점으로 앞서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발 길이 뒤쳐진다. 산이 일어난다는 말이 어울리듯 가파르기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바라보는 하늘가에 월악의 암릉 하나가 빼꼼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왠지 모를 희망이 찾아 든다. 그 힘에 쉼 없이 다리를 놀린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15분의 사투 끝에 신륵사와 신륵사 삼거리가 똑같이 1.8km 남은 안부에 도착했다. 윤대장과 앞서 온 일행들이 간식을 먹고 있다. 이곳의 고도는 660미터 어름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쉼의 유혹을 멀리하고 이내 길을 나선다.
이어지는 길은 가파르기는 이전보다 덜 하나 바위가 많은 험한 오르막이다. 좌우로 조망이 터진다. 우측으로는 북으로 이어지는 산들의 능선들이 연무에 젖어 흐르고, 좌측으로는 월악의 봉우리들이 험준함을 뽐내고 있다. 소나무가 있는 전망지대에 올라선다. 유유히 흐르는 북쪽 산그리메를 사진에 담으려 하나 겨울나무 가지들이 얄밉게 방해를 한다. 몇 번이나 카메라를 들었나 놓았다 한다.
< 신륵사 삼거리 부근 풍경 >
긴 오르막에 심신의 피로가 극에 달할 무렵 신륵사 삼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도는 940미터, 들머리의 고도가 체 200미터가 되지 않았으니 750미터의 비고를 1시간 40분만에 오른 것이다. 산을 오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그만큼 다리에 힘도 생기고 길에도 익숙해져 간다는 반증일 것이다.
신륵사 삼거리를 지나고부터 길을 확연히 달라진다. 일단 잊혀졌던 눈(雪)이 실존한다. 그리고 시야가 확 트여 전망이 달라진다. 험한 길에 다리와 계단이 놓여 있다. 계간 전망대에서 원 없이 산그리메를 사진에 담았다.
< 영봉 가는 길의 산그리메 >
데크 길과 계단이 연결된 곳을 올라서자 소나무 전망대가 나타나고 주변은 온통 빙판이다. 반대편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의 발에는 어김없이 클램폰이 신겨져 있다. 간간이 눈이 녹은 곳을 밟고 일단 클램폰 없이 길을 이어간다. 영봉을 우회하며 산 어깨 길이 이어져있다. 이미 경험한 길이지만 계절이 달라 그런지 낯설다. 그리고 생각보다 험하다. 비탈과 계단 길이 반복된다. 더 이상 늦으면 낭패를 볼 것 같아 발에 쇠붙이를 붙인다,
12시 무렵 보덕암 삼거리에 도착했다. 보덕암 길은 폐쇄되어 있다. 그 길이 얼마나 험준한지를 알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제부터 영봉까지는 오로지 철계단 길이다. 그 아찔한 고도감을 기억하기에 다리가 벌써부터 휘청거린다. 길이 응달이기에 두터운 눈이 얼어붙어 길을 힘겹게 오른다. 길을 가는 모든 이들의 표정에서 낭패감이 묻어있다.
< 영봉에서의 풍경 1 >
계단 중간에서 뒤를 돌아본다. 중봉에서 하봉으로 이어지는 월악 주 능선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충주호의 전경이 머릿속에 그려져 잠시나마 미소 지어 본다.
< 영봉에서의 풍경 2 >
정상으로 향하는 데는 잠시 평지 길이 이어지더니 다시 계단이 나오고 이를 넘어서자 월악의 영봉이 그 도도한 모습을 드러냈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내가 다시 왔음을 알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옅은 연무 속에 충주호가 주변 산들을 거느리며 유유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산세가 가장 험하다는 이 지역 산줄기들이 만드는 파노라마를 넋 나간 표정으로 한참 동안 바라본다. 아아(峨峨) 하다는 말이 실감난다.
< 영봉에서 마애불 >
밀려드는 산객들로 붐비는 정상을 피해 건너편 바위지대로 자리를 옮긴다. 정상부근이 훤하게 보인다. 이 좋은 경치를 두고 그냥 내려가기가 싫어 조금은 이르지만 점심 도시락을 편다. 빵과 딸기로 조촐한 식단이 차려지고 여기에 경치까지 더해져 성찬이 완성된다. 옆에서 김밥을 먹는 사내들의 입에서 일본어가 쏟아진다. 잘은 몰라도 풍경이 멋지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와 같은 풍모에 젓가락으로 김밥을 먹는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인데 말이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는 유일한 다름이었다.
< 영봉에서의 풍경 3 >
식사를 마치고 시계를 본다. 12시 30분, 귀경 버스 출발시간이 4시 30분이니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 예상 하산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낭패다. 최근 들어 자주 반복되는 현상이다. 망설여진다. 그 좋은 풍경도 오래 보니 그것이 그것 같다. 점점 더 많아지는 정상 부근의 인파를 보며 이제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때라 판단하고 하산 길에 나선다.
계단 사이 위치한 평지 길에서 하릴없이 주위를 서성인다. 절벽 난간에 선다. 오르면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끝을 가름할 수 없는 고도감이 느껴진다. 영봉의 다른 모습이다.
다시 철계단에 섰다. 낯익은 얼굴들이 힘겨운 표정으로 계단을 오르고 있다. 평소 같으면 호기 있게 길을 앞서가던 이들이 패잔병의 모습으로 숨을 고르고 있다. 밑에서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가 이내 지워버린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이 떠올랐다.
꼬맹이를 앞세운 가족이 올라온다. 4년 반 전 이곳에서도 ‘아빠와 아들’은 있었다. 당시에는 아들을 다그치는 아빠의 모습이 보기 흉했는데 오늘은 묵묵히 길을 오르는 부자의 모습이 흐뭇했다.
1시 무렵 다시 신륵사 삼거리에 도착했다. 반대편에서 길을 오르는 이들이 놀라는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아이젠을 꼭 차야 합니까? 예, 있으시면 차시는 것이 좋습니다. “ 번번이 대답하는 것이 싫어. 클램폰을 벗어 버렸다. 작은 변화에 발이 날아갈 듯 가볍다.
이제는 영봉을 우측으로 끼고 돈다. 10여분 걷자 암회색의 거봉 영봉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 모습이 너무나 거대하여 가까이서는 전모를 파악하기 조차 힘들다. 송계삼거리에 도착했다. 우측으로 가면 송계계곡을 지나 동창리로 떨어질 것이다. 너른 공터를 올라서자 960봉 헬기장이 나타났다. 영봉 조망터로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주변에 시야를 방해하는 것이 없이 그야말로 알짜배기로 영봉을 조망한다. 정상 부근에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그 색이 음침하여 보는 이에 따라서는 흉물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영험한 기운이 느껴진다. 무언가 꽉 찬 느낌을 받았다.
< 960봉에서 본 영봉 >
땅이 질다. 3월초 기온으로는 100년 만에 최고라는 예사롭지 않은 날씨 덕분에 겉옷을 벗어도 더위를 느낀다. 진창 길을 피해가며 우보 산행을 이어간다. 작은 언덕에 올라선다. 1시 38분, 이정표는 영봉 2.2km, 마애불 1.2km, 덕주사 2.7km를 알린다. 영봉을 출발한지 70분만에 2.2km를 왔으니 이대로 가면 덕주사까지는 1시간 20분이면 도착할 것이다. 더 천천히 걸어야겠다.
우측으로 만수봉으로 이어지는 슬랩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영봉과는 성질이 다른 화강암 암괴가 햇살에 빛나고 있다. 작은 전망대에 선다. 경상도 할머니 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부탁을 했더니 엉뚱한 것만 누르다 화를 낸다. 순간 기분이 상한다. 낯 모르는 이에게 사진 부탁을 할 때 주저하는 이유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길이 바위 길로 바뀌고 잘 생긴 소나무들이 하나 둘 많아진다. 철책이 쳐진 전망대에 올라선다. 멀리 충주호도 보이고 영봉도 선명하다. 주변 경관으로 볼 때는 정상 못지 않은 훌륭한 전망대다. 황사인지 연무인지가 점점 짙어진다.
< 소나무 전망대에서 >
2시가 지나고 있다. 긴 철 사다리가 앞에 떡 하니 나타난다. 고도감이 상당하다. 햇살에 비친 소나무 군락이 하도 푸르러 순간 계절을 착각할 정도다. 밝음은 분명 기분을 좋게 해 준다. 길은 계속해서 가파른 계단이다. 900미터 어름에서 멈춰져 있던 고도가 순 십간에 곤두박질 친다. 언제부턴가 혼자 길을 걷는다. 이 황홀한 풍경을 홀로 본다는 것 자체가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훌륭한 일을 해 놓고 누군가 알아주는 이가 없어 아쉬워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덕주사 하산 길에서 >
길 좌측 아래 마애불이 보인다. 비탈을 타고 내려서면 바로 닿을 듯한데 길은 멀리를 돌아가게 되어 있다. 평소 같으면 조바심을 냈을 텐데 오늘은 이 우회로가 오히려 고맙다. 그 만큼 남는 시간을 주체하기 어렵다.
2시 30분 마애불 앞에 섰다. 넓적한 얼굴에 별 표정 없는 부처님이 바위에 조각되어 있다. 언뜻 보면 좋은 재료에 비해 조각가의 솜씨가 아쉬운 모양새다. 그러나 몸통 부분을 조각한 선의 부드러움은 예사롭지 않다. 얼굴 부분보다는 나머지 부분이 더 감동적인 특이한 마애불이었다. 마애불 인근은 불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흐르는 물에 얼굴을 씻는다. 오후 햇살이 얼굴에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다.
터벅터벅 길을 내려선다. 덕주산성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새 것의 티를 벗지 못하고 있다. 4년이면 멋지게 돌 이끼가 낄 만도 한데 여전히 날 것의 냄새가 난다. 이어지는 돌 길은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 마애불에서 / 학소대 부근 풍경 >
덕주사 절 집이 눈에 들어온다. 시간은 이제 막 3시가 지났다. 절 곳곳을 둘러본다. 역시 새 것의 흔적이 강하다. 덕주사가 명찰 이라지만 내게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하다. 절 보다는 부근 계곡의 깊은 소(沼)와 담(潭)이 더 멋지다. 물 살만으로 보면 분명 지금은 겨울의 끝은 아니다.
학소대를 지나 탐방센터로 내려온다. 길가에 늘어선 음식점 중 한 곳에서 발 길을 멈춘다. 청국장 한 그릇을 시켜 놓고 속초 성우에게 전화를 한다. 안부를 묻는 지극히 평범한 대화 속에서 사람이 그리워진다. 홀로 하는 산행에 익숙해져 가지만 벗도 그리워진다.
정갈하고 맛깔나게 잘 차려진 음식상을 받는다. 맛도 일품이다. 문뜩 4년 전이 생각난다. 그때도 유원지 음식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맛난 음식에 놀랬던 것이 기억난다. 한 지역의 음식 맛은 분명 집단적 특징이 있다. 월악의 그것은 정갈과 맛깔로 대표된다.
3시 30분 약속보다 1시간 먼저 들머리 주차장에 섰다. 행복한 주말 오후가 이제부터 시작된다. 작은 성취에 오늘도 감동한다.
< 에필로그 >
겨울과 봄, 초여름을 동시에 경험한 하루였다. 4년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월악은 역시 만만한 산이 아니었다. 수렴선대
부근에서 영봉까지는 비고 700미터에 육박하는 오름의 연속이어서, 그간
민주지산과 속리산에서 잠시 우쭐했던 자만감을 다시 멀리로 돌려 보냈다. 특히 신륵사 삼거리에서 영봉
길은 그야말로 얼음과 계단의 고난 길이었다. 영봉 계단에서의 공포감은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 험한 경험 속에 도착한 영봉은 진한 감동으로 산꾼을 다독거려 주었다. 조용히 존재를 알려주던 충주호, 넘실거리는 산그리메, 암봉들의 향연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감동이었다.
오름 길이 힘겨웠는데 내림 길이 편할 리가 있겠는가? 비록 우보산행이었지만 3시간 30분의
하산 길도 계단이 많아 힘겨웠다. 그래도 하산 길에 올려다 본 영봉,
그 암회색의 자태는 오랜 시간 눈을 뗄 수 가 없었고, 계단과 암릉과 소나무가 만드는 앙상블은
왜 월악이 명산임을 다시금 알려 주었다.
'월' 이란 말은
달의 음독이고 높이 떠 있는 것을 의미하니 결국은 산이다. 그것도 바위 많은 산. 월과 악이 같은 뜻이니 초지일관 힘겨운 산 길이 이어지는 건 당연지사, 그
속에서 '락(樂)'을
찾은 하루였다. 계절이 겨울에서 여름으로 달음질 치려 한다. 변화
많은 세상에 계절만은 그저 순리대로 흘러 갔으면 좋겠다. 올핸 오래 동안 봄을 느끼고 싶다. 다시 생명이 움터 옴을 지긋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싶은 바램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