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뭇가지에 핀 크리스털 빙화의 향연, 춘천 뒷산 순례
1. 일자 : 2012. 12.
15(토)
2.
장소 : 구봉산(441m), 명봉(643m), 대룡산(899m)
3.
행로 및 시간
[구봉산 쉼터 전망대휴게소(10:10) -> 구봉산(10:37) -> 428봉(11:03) -> 순정마루(12:00) -> (중식 12:13-18) -> 명봉(12:38) -> 갑둔리고개(12:53, 대룡산 3.1km) -> 임도 갈림(13:18) -> (크리스탈 얼음길) -> 이정표(13:38, 대룡산 2.1km) -> g활공장(13:45) -> 대룡산(14:17-22) -> 낙엽송숲(14:31) -> 잣나무숲(15:07) -> 임도 이정표(15:07, 고은리 0.8km) -> 고운소(15:25)]
4.
동행 : 홀로
<
대룡산 산행을 준비하여 >
금요일 늦은 오후 이런 저런
주말 계획들이 하나 둘 취소되면서 산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 진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 탓에 성원이
되지 않아서 인지 몇 곳의 산악회는 산행이 취소되었다 하고, 안전산악회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했더니 반갑게 맞아준다. 가야 할 산도 제대로 모른 체 일단 예약을 한다. 호반의 도시 춘천을 휘감고 있는 세 개의 산, 구봉산, 명봉, 대룡산이 오늘의 행선지이다.
산악회 홈페이지에 오른 태극기가 날리는 대룡산 정상의 설경이 멋지다. 눈 덮인 산이 나를
부른다. 이렇게 다시 춘천의 산과 인연을 맺는다.
급조된 산행이라 정보가 많지
않다. 그 흔한 지도 한 장 구하기도 쉽지 않다. 아쉬운
대로 산악회 홈페이지에 오른 정보를 머리에 집어 넣는다.
구봉산 : 호반의 도시 춘천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춘천시가지 동쪽을 둘러친 산으로 봉우리 9개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명명되었다. 춘천외곽도로가 산중턱까지
연결되면서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춘천시의 야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주변 곳곳에 카페들이 들어서 있으며, 패러글라이딩을
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대룡산 : 춘천을 에워싸고 있는 분지 산 중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가리산에서 뻗어온 산줄기에 솟아 있다. 산세는
완만한 육산 이어서 초보자도 산행하기 쉬운 곳이다. 정상 전망대에 서면 의암호와 삼악산, 주금산과 춘천 시가지 전경이 펼쳐져 있고, 석파령 뒤로는 대금산과
깃대봉·약수봉·매봉·연인산이
조망된다. 남으로는 멀리 용문산·유명산도 보인다.
조각 정보로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눈 덮인 산을 5시간 동안 신나게 헤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ㅋㅋ
<
희망사항
>
날씨는 등산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최대 변수이다. 겨울 산행은 특히 그렇다. 산행 전날인 금요일, 초겨울 치고는 이례적으로 하루 종일 많은 비가 내렸다. 지난 한
주가 몹시 추웠던 것을 감안하면 비는 뜻밖이다. 이 비가 춘천에는 눈으로 바뀌어 멋진 은백의 설경이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
춘천 가는 길에
>
평소보다 1시간 가량 늦은 8시 30분
복정에서 차에 오른다. 늘 사람들이 붐비던 1번 출구 앞이
한산한 것도 그렇고 영업에 방해된다고 등산객을 밀어내던 주유소가 위례성 복원공사로 폐쇄된 것도 그렇고 세상은 늘 이렇게 변하고 있다.
좁은 버스 안 35명 남짓의
산객들이 저마다의 기대를 안고 춘천으로 떠 난다. 오늘 산행은 평소보다 이동거리가 짧다. 출발 1시간도 되지 않아 가평에 도착했다. 휴게소에서 넉넉한 시간을 보내고도 산행들머리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10분, 빨라도 너무 빠른 행보다.
연무 낀 날씨가 기지개를 펴고 있다. 둘러 보는 춘천의 산야는 온통 새하얗다. 비가 눈으로 바뀐 것이 틀림없다. ㅎㅎ
<
구봉산에서 명봉
>
그럴듯해 보이는 카페 건물
건너편 비탈을 오르는 것으로 산행이 시작되었다. 시작 고도가 200미터
남짓 구봉산이 441미터,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서는데, 눈과 예사롭지 않은 비탈에 10분만에 걸음을 멈춘다.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종아리에 가해지는 묵직한 느낌에 호된 ‘클램폰’ 신고식을 치룬다. 다시 15분 남짓 오름짓 끝에 갈림을 만나고 그 갈림에서 머지 않은 곳에 오늘의 첫 목적지 구봉산이 있었다.
< 산행 들머리 / 구봉산 정상에서 >
비록 400미터급 낮은 산이지만 굽어보는 경치는 멋지다. 수묵화 마냥 단순한 색체의 농담만으로도 천하 제일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호수가
보이고 풍경 중간에 우뚝 솟은 산이 보이고 그 주변으로 늘어선 건물들, 그 중심에는 흰 눈과 검은 산의
있었다. 결코 흔치 않은 풍경에 초반 호된 신고식은 벌써 아득한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 구봉산에서 내려다 본 춘천 시가지 전경 >
멀리, 가야 할 산줄기에 끝에 첨탑이 보인다. 대룡산 정상일 것이다. 발 길을 그리로 옮긴다. 올랐으니 다시 내려 가야지. 기껏 오른 고도를 까먹으며 안부로 내려온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오름, 시시각각으로 발 밑 상황이 바뀐다. 눈이 그대로 남은 곳이 있는가 하면, 뻘이 나오고, 눈이 나뭇잎과 엉켜 붙은 곳도 있다.
11시 무렵 428봉을 지난다. 구봉산에서 1km를 왔고 명봉은 2.7km, 대룡산은 6.5km를 더 가야 한다. 되풀이 되는 내리막, 기울기가 장난이 아니다. 건너편으로 마을이 보인다. 완전히 내려갔다 올라야 하나 보다 하고 생각할 무렵, 앞서 내려
갔던 이들이 올라온다. 길이 없단다. 제기랄, 왔던 길을 다시 올라간다. 화가 치밀었으나 대장이 길을 놓쳤다 하니
할 말이 없다. 다행히 새로 가는 길은 걷기에 그만이다. 늦게나마
제 길을 찾게 되어 다행이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뒤섞인 산허리 길을 터벅터벅 걷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제
목표는 ‘순정마루’란 곳이다. 구봉산에서 명봉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다. 중간에 순정마루 0.6km라는 이정표를 지난다. 눈 속에서의 거리는 평소보다 10%이상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다시 시작되는 긴 오르막, 죽었다 하고 걷는 걸음에 그나마 춘천 시가지의 전경이 펼쳐지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12시 무렵 순정마루 전망대에 올랐다. 지나온 구봉산의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먼 풍경에는 구봉산에서 잠시 놓아두었던 춘천시가지의 풍경이 있다. 풍경은 골프연습장의 녹색 그물망을 빼고는 온통 수묵(水墨)의 조화다.
< 순정마루에서의 풍경 >
쉼을 취하는 일행들을 멀리하고 먼저 길을 나선다. 눈 속에서의 내 걸음은
현저히 늦어지는데 쉼까지 남과 같이 하면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오름이 시작된다. 길가에 작은 공터가 있기에 기회를 놓칠세라 도시락을 편다. 인스턴트
닭죽도 식은 콩나물밥도 산에서는 천하제일의 음식으로 변한다.
밥 힘으로 오름을 올라 명봉에 도착했다. 고도 643미터, 작은 공터에서도 춘천의 전경이 어김없이 드러난다. 저 멀리로 대룡산의 정상도 날보고 손짓하고
있다.
<
명봉에서 대룡산 지나 고은리로 >
그리 크지 않은 고도 차에도
공기가 달라진다. 발 길에 닿는 눈의 무게가 더해간다. 15분만에
그 깊이를 알 수 정도로 멀리 내려 왔다. 이정표가 나온다. 갑둔리
고개한다. 해발 300미터 남짓, 대룡산까지는 3.1km를 가야 한다. 400미터, 600미터 산을 넘어왔으니 조금 더 오르면 대룡산에
오를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산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또 20여분 이상을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간간이 하늘에서 ‘물’이 떨어진다. 쏟아지는
햇살에 가지에 붙은 얼음이 녹아내리나 보다.
1시 18분, 임도 갈림에 선다. 단조로운 산 길에 변화가 생기니 작은 희망이 솟는다. 기묘한 모양의
고사목이 얼어붙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어지는 길은 ‘크리스털
빙화(氷花)와의 데이트’였다. 고도가 조금씩 높아감에 따라 나뭇가지마다
엉켜 붙은 빙화는 그야말로 겨울 산 풍경의 절정을 보여준다.
< 크리스털 빙화(氷花)
>
이리 풍성한 빙화의 잔치는 짧지 않은 내 등산인생에 최고의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아직 잎을 다 떨어내지 못한 단풍나무 가지에 풍성하게 붙은 붉은색 빙화는 색다른 눈 맛을 선물해 주었고, 키 큰 나무 먼 가지에 붙은 크리스털은 아득한 아름다움을 주었다.
< 빙화와 먼 산 / 활공장에서 >
능선 절벽에 올랐다. 빙화 속을 뚫고 멀리 강원도의 산들의 파노라마가 물결치고 있다. 빙화만으로도
황홀한데 흐르는 산이라, 이 아니 행복할 수 있을까? 겨울
풍경의 절정을 본다.
행글라이더 활공장에 올라선다. 고도는 어느덧 800미터 어름이다. 공기가 다르다.
주변은 온통 흰색뿐이다.
< 대룡산 정상 가는 길의 풍경 1 >이제 대룡산 정상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래도 남은 거리는 1.2km, 황홀한 경치에
취해 있는 사이 내 다리는 눈 길에 많이 지쳤나 보다. 작은 오르막에도 힘에 겹다. 그 와중에도 각양각색 특이한 형상의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눈과 얼음의 잔치는 그 끝을 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때마침 다시 푸르름을 선보이는 하늘과 햇살과 빙화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가히 천상의 설원 풍경이다.
< 대룡산 정상 가는 길의 풍경 2 >
이제 대룡산 정상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래도 남은 거리는 1.2km, 황홀한 경치에
취해 있는 사이 내 다리는 눈 길에 많이 지쳤나 보다. 작은 오르막에도 힘에 겹다. 그 와중에도 각양각색 특이한 형상의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눈과 얼음의 잔치는 그 끝을 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때마침 다시 푸르름을 선보이는 하늘과 햇살과 빙화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가히 천상의 설원 풍경이다.
< 대룡산 정상 가는 길의 풍경 2 >
군부대의 통신탑마저 이곳 대룡산에서는 설경의 일부분이었다. 높다랗게 솟은
첨탑의 아득함은 그 언젠가 보았던 미래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모든 것이 꿈만 같다.
마침내 대룡산 정상에 섰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높이를 높이려 하는 세태에
역행하듯 정상석의 높이 표식은 899미터이다. 900을 넘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나니 더욱 꽉 차 보인다.
< 대룡산 정상
풍경 1 >
대룡산 정상은 한마디로 빛과 눈의 화원이었다. 그 누가 이리 아름다운
흰 색의 잔치를 펼칠 수 있을까? 한 바탕 바람이 인다. 순십간에
주변이 연무에 쌓인다. 찰나 라는 말을 실감한다. 괜시레
뒤에 오는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좋은 경치를 나 혼자 즐긴 것 같아서이다.
먼저 도착한 대장 일행에게 부탁하여 사진 몇 장을 찍는다. 전망대에 내려가
춘천의 전경에 취한다. 비록 바람이 일어 순간적이었지만 눈과 구름과 바람이 만들어주는 황홀경에 충분히
취했다.
< 대룡산 정상 풍경 2>
시간이 2시 반을 향해 흘러간다. 약속된
3시 30분 하산 완료를 위해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뒤돌아
보는 정상 풍경에 길게 눈 길을 주고는 미련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 대룡산 정상 풍경 3 >
잠시 임도 길 옆 평지 길이 이어지더니 내리 꽂히듯 가파른 비탈이 고도를 급격히 낮춘다. 클램폰을 차고도 자빠진다. 그만큼 길이 미끄럽다. 한동안 괴롭히던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비’는 고도가 낮아지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빠른 속도로 고도가 낮아지고 주변 풍경도 변한다. 짙은 연무가 낀 숲에
낙엽송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다. 그 아득한 수직의 전율에 감동한다. 대룡산은 꼭 눈과 빙화만 좋은 것은 아니다. 곳곳에 색다른 풍경을
감추고 있었다. 다시 시작되는 내리막 길, 이번에는 푸른
잣나무 숲이 시선을 끈다. 그 큰 키는 낙엽송 숲과 다르지 않지만 푸르고 훤한 풍경은 자못 다르다. 다양한 숲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는다.
고도는 낮아지지만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응달에는 눈이 엉켜 붙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그 길의 끝에 이름도 고운 고은리가 있었다.
< 대룡산 하산 길의 숲 >
<
에필로그
>
우연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행운은 그런 우연에 의한 성공을 일컫는다. 오늘 대룡산 산행은 행운이었다. 눈과 바람과 햇살이 만든 풍경에서 겨울 산의 매력을 만끽한 하루였다. 날씨는 등산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최대 변수임에 틀림없다.
고산준령이 아니더라도
산은 충분히 멋질 수 있다. 호반의 도시 춘천을 둘러싼 높지 않은 산들을 거닐며 즐겁고 멋진 휴일 하루를
잘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