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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2016년 8월 4일(목)
오늘 날씨도 보슬비가 오락가락하며 흐린 날씨를 보인다. 아침 식사는 호텔 내에서 간단하게 빵으로 해결하고 우리 버스는 7시 30분에 출발한다. 오늘은 관광지 보다는 쇼핑 위주로 스케줄이 짜여 있다. 한국인들이 즐겨찾기 때문에 ‘한국인의 성지’(聖地)라고 부르는 파리 시내에 자리 잡은 몽쥬 약국(Phamacie Monge)에 가게 되었다. 버스 내에서 가이드로부터 상품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을 들으니, 내가 살만한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일반 약품과 기초 화장품류를 취급하는 이곳은 한국인 점원을 둘 정도로 한국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최근에 매장은 더 넓어졌다고 한다. 한국에서부터 목록을 미리 준비하여 구입하는 분들도 있었다. 나도 딸들에게 줄 여드름치료제와 아내에게 선물로 줄 기초화장품 하나와 변비에 좋다는 요구르트 캡슐을 구입하게 되었다. 유로 화 현금 대신에 신용카드로 결재하였더니 한화로 대략 25만원 정도였다.
몽쥬 약국에서 1시간 이상을 머문 후 우리는 버스에 올라, 다음 쇼핑장소인 쁘렝땅(Printemps) 백화점으로 향하였다. 아름다운 석조 건물에 내부에는 프랑스의 주요 명품 브랜드 상품이 전시되어있는 고급 백화점이었다. 외관상 5층 건물로 되어있으며, 3개의 건물을 남성관·여성관·생활관 등으로 나누어 상품을 진열하고 있었다. 중간에 구름다리가 있어 다른 건물로 이동이 가능하게 되어있다고 하는데,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 백화점은 파리의 중심가에 위치하며, 라파예트 백화점과 더불어 파리의 대표적인 쇼핑센터라고 한다. 아내가 함께 왔더라면 필요한 물건도 구입했을 텐데 라는 생각도 해보며, 아들과 나는 주어진 시간동안 음료수 매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버스에 올라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 백화점 부근에 위치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으로 유명한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며 통과하였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히틀러도 극찬했다는 화려한 외관과 내부 장식 등을 살펴보고도 싶었다. 쇼핑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차라리 이런 곳에 관람 시간을 허락해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파리 오페라극장: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의 이름을 따서 가르니에 궁전(Palais Garnier)이라고도 부른다. 1861~75년 동안 지어졌는데,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을 집대성한 아름다운 장식으로 유명한 보자르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1979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거대한 전면 부는 아름다운 로비에 엄청난 공간을 할애하고 있으며 공연장 후면 부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특수효과를 내기 위한 여러 기계장치를 수용하는데 쓰였다. 프랑스 소설가 가스통 르루가 1910년에 집필한 소설인 오페라의 유령이 바로 이 극장을 무대로 하고 있고,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다만 1989년에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으로 유명한 옛 바스티유 감옥 부지에 현대적인 설계로 지어진 오페라 바스티유(Opéra Bastille)가 지어지면서 오페라극장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고, 주로 발레 공연에 쓰이고 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 되는 파리 오페라극장
이동 중에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바스티유(Bastille) 감옥이 있었던 곳을 통과하기도 하였는데, 현재는 그곳에 감옥 대신에 현대식 오페라 극장인 바스티유 극장이 들어서 있었다.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으로 1989년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귀족들만 즐겼던 오페라극장과 달리 여기서는 누구나 오페라 공연을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게 바로 신분제를 타파하고 민주공화정을 실현시킨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바스티유(Bastille) 오페라 극장: 프랑스 혁명 200주년이 되던 해인 1989년 7월 14일에 혁명으로 함락되었던 바스티유 감옥을 헐고 새로운 오페라 극장을 개관하여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오페라를 대중화시킨 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오페라 관람 시 편안한 복장으로도 입장할 수 있으며 주로 모차르트, 베르디, 베를리오즈 등의 거장들의 명작이 공연된다. 거대한 원형 유리 건물의 오페라 하우스는 2,700석의 객석을 갖고 있다. 한국 출신 지휘자 정명훈 씨가 한때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의 음악 감독을 맡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앞에서도 한번 언급하였지만 현재의 파리는 1850년대 나폴레옹 3세 시절, 오스망 (E. Haussmann) 파리 시장의 주도하에 지금의 도시 모습으로 변화하였다고 한다. 상하수도가 설치된 지하도로는 총길이 1,400km에 이른다고 하니 놀라운 규모이다. 그리고 전기가 생활에 이용되면서 지하도에 전선(電線)을 매설하게 되니, 지상에 전봇대가 필요 없게 되었다. 그래서 파리는 아름다운 도시 미관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당시 마차의 폭을 감안하여 도로 폭을 만들다보니 도로의 70% 이상이 현재 일방통행로로 설정되어 있으며, 주차장을 확보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 낡은 건물을 허물어서라도 도로를 확장하고 주차장을 확보하였을 터인데, 유럽인들은 건물을 쉽게 없애기보다는 비좁은 도로에 맞춰 소형 자동차 위주로 교통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프랑스인들의 단면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도심의 도로는 대부분 블록처럼 네모나게 다듬은 석재(石材)를 모자이크 식으로 무늬를 만들어 깔았기에 아스팔트 도로가 갖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품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동차를 탈 때 승차감은 좀 떨어지겠지만 도로 포장(鋪裝)에 드는 노력이 더 이상 없으니 무척 경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파리의 건물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잘 보이질 않는다. 여름이 우리나라처럼 뜨겁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석재(石材)로 지은 집은 실내가 서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돌로 만든 집은 풍화작용을 감안하더라도 대를 이어 사용할 수 있는 이점(利點)이 있으며, 화재(火災)에도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건축 기간이 길고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돌집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것 같다. 겨울에는 나무나 흙으로 만든 집에 비해 더 춥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곳의 겨울은 그렇게 춥지 않으니 견딜 만하다 하겠다.
우리는 파리시내 쇼핑을 마치고 세 번째 나라 스위스로 가기위해 파리 시내에 위치한 리옹 역에 도착하였다. 리옹(Lion)은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규모가 큰 도시라고 하는데, 이곳으로 가는 기차역이 바로 리옹 역이다. 런던에서 파리까지 이동할 때 이용했던 고속전철을 다시 타게 되었다. 이른바 테제베(TGV)라고 부르는 열차인데, 2층 구조였고 우리는 아래쪽에 승차하게 되었다. 가이드분이 나누어준 한국식 도시락을 열차 안에서 먹고 팀별로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다. 32명이 10여 일을 함께 여행을 하는데 서로 자기소개 시간도 없고, 서로 직업과 나이 등을 묻는 것도 혹시 실례가 될지 몰라 망설이면서 간혹 뜻이 맞는 분에게는 나의 신분을 밝히기도 하였다. 과거의 패키지여행과는 분위기가 달라서 인간적인 교감(交感)은 덜한 것 같다.
시속 300km를 달리는 고속열차는 파리를 출발하여 광활한 농촌지역을 달린다. 평야라기보다는 나지막한 구릉지가 펼쳐지는데, 여기에 푸른색과 황금색이 교대로 나타난다. 바로 푸른색은 양이나 소를 방목(放牧)으로 키우기 위한 초지(草地)이며, 황금색은 이들의 주식인 밀밭이라 하겠다. 서안해양성 온대기후에 나타나는 이른바 혼합농업의 전형적인 경관인 것이다. 스위스 국경이 가까워지면서 구릉은 점점 높아지면서 협곡(峽谷)도 나타난다. 아마도 알프스산맥의 서쪽 자락이라 할 것이다. 나중에 구글 (Google) 지도로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곳이 프랑스-스위스 사이에 위치한 쥬라(Jura)산맥에 해당하는 곳이다. 지질시대 중 중생대 쥬라기(Jurassic Period)가 바로 이 산맥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이동시간 4시간 만인 오후 4시 10분경, 우리는 스위스 제네바를 거쳐 목적지 로잔(Rauzan)에 도착하였다. 입국수속 없이 기차로 국경을 통과하였는데, 유럽이 하나의 나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로잔 역에는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五輪)이 걸려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국제올림픽위원회 본부가 위치한 곳이다. 스위스는 정치적으로 중립국을 표방하기 때문에 각종 국제기구의 본부가 위치하고, 국제회의가 자주 열리는 곳이다. 스위스에서 가장 규모가 큰 ‘레만’(Leman)호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로잔은 한적한 도시로 융프라우 산에 가기위해 관광객들이 들르는 곳이다.
로잔 기차역에서 빠져나와 우리는 전세버스에 올랐다. 이 버스는 이탈리아에서 출발한 하나투어 전용버스로 다음 나라인 이탈리아까지 이용할 계획이다. 버스는 목적지 인터라켄(Interlaken)을 향해 달린다.
이곳 스위스에서는 현지가이드 없이 인솔자 염해자씨에게 직접 안내를 받을 예정이다. 가이드님은 버스 안에서 스위스라는 나라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을 해주시는데, 상당히 깊이 있는 설명을 하였다. 베테랑의 여행 전문가로서 권위가 느껴진다. 융프라우 산에 오를 때 주의사항까지 일러준다. 그곳은 고산지역이니만큼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절대 뛰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한다.
가는 동안 그림 같은 스위스의 전원풍경이 펼쳐진다. 프랑스에서 보았던 것처럼 여기서도 푸른색과 황금색이 교차한다. 방목을 위한 초지 외에 밀밭이 펼쳐지고 해바라기와 옥수수 등 몇 가지 밭작물이 펼쳐지는데, 특히 여름에 노랗게 꽃이 핀 해바라기 군락이 시선을 잡는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모두 가축 사료용으로 재배한다고 한다. 알프스의 심장부에 접근하면서 산은 점점 경사가 급해지고 빙하시대 만들어진 빙하호와 빙식계곡 그리고 산정상부의 빙하(氷河)까지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산 정상부에 쌓이는 눈을 만년설이라고 부르지만, 이것은 빙하를 이루어 아래쪽으로 서서히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그 빙하는 설선(雪線: Snow Line) 아래쪽에서부터 녹아 흘러내리게 된다. 알프스 곳곳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호수는 지질시대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곳이다. 여기에 빙하가 녹은 물이 담기게 되는데, 유입되는 물의 양만큼 물이 강으로 빠져 나가기 때문에 일정한 수위를 유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호수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고 가옥이 침수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빙하지형을 교과서로만 가르치다가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며 여행을 할 수 있으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스위스의 산과 강, 호수와 맑은 하늘,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농촌 가옥과 경작지 등이 어우러지면서 보는 이들의 탄성(歎聲)을 자아낸다. 우리 일행은 아름다운 장면이 나올 때마다 자리에서 들썩거리며 카메라에 풍경을 담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스위스(Swiss): 유럽 중부에 있는 연방 공화국으로 1648년 신성로마제국에서 독립하여 1815년 빈회의에서 영세 중립국으로 승인받았다. 알프스 산맥이 있어 경치가 아름다운 국제적 관광지로 과일과 낙농 제품이 많이 나고 수공업적 기계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적십자사 같은 많은 국제기구 본부가 있다. 주민은 독일계와 프랑스계 이탈리아계로 구성되어 있고 주요 언어는 독일어와 프랑스어이며 수도는 베른이고 사법수도는 로잔이며 면적은 4만 1293㎢이고 인구는 753만 명(2006 추계)이다. 스위스의 정식 명칭은 헬베티카 동맹(Confederation Helvetica: 약자로는 CH, 라틴어)이고, 통상적으로는 스위스연방(Swiss Confederation)이라고 한다. 북쪽으로 독일, 동쪽으로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남쪽으로 이탈리아, 서쪽으로 프랑스에 접하고 있고 행정구역은 26개주(canton)로 이루어져있다.
이곳 스위스의 관광 기념품으로는 소 방울(Cowbells), 초콜릿, 다용도 칼 등이며, 유럽연합(EU) 미가입국으로서 화폐는 스위스 프랑이라고 한다. 국민이면 누구나 ‘국민제안제’를 통해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하며, 26개 지방(Canton)별로 지방자치제가 잘 발달해 있어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정부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고 한다. 다시 말해 스위스 국민으로서가 아닌 자기가 속한 지역의 주민으로서의 자긍심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인은 명예직이며 나라 전체의 일을 결정할 때는 수도 베른(Bern)에 있는 연방의회에 모여서 하게 된다.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이라고 하지만 유사시 전 국민을 병력(兵力)으로 전환할 수 있는 민병대(民兵隊) 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은 스위스의 국토수호에 대한 결연한 태도에 부담을 느끼고 공격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게 가능한 게 알프스 산악지역의 모든 교량과 터널을 차단한다면, 공격력이 우수한 독일이라도 게릴라 전법에 말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산악지대가 대부분인 스위스의 자연환경은 인간거주에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하지만, 전쟁 시 저항하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준다고 볼 수 있다.
스위스는 유럽의 지붕이라고 할 수 있는 알프스의 심장부이기 때문에 사계절 중 겨울이 가장 길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기나긴 겨울 동안 실내생활을 위주로 하게 되는데, 그들의 손기술이 발휘되면서 오늘날 시계, 무기, 비행기 등 정밀기계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1인당 GNP가 세계 최고인 나라,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하여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 그리고 지방자치제를 바탕으로 하는 참여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 등의 타이틀을 붙여줄 만한 부러운 나라가 바로 스위스 연방공화국이다. 스위스에 지방자치제가 발달한 이유는 고대그리스가 산지지형으로 인한 폴리스(도시국가)가 발달한 이유와 비슷하다 하겠다. 산악지형에다가 언어권이 4가지(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쉬[Romansh]어)로 나뉘다보니 중앙집권제를 실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을 것 같다.
알프스의 나라라고 하면 우선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정도를 떠올리지만 인접한 나라로는 서쪽에 프랑스, 북쪽에 독일, 남쪽에 이탈리아 그리고 동쪽에 슬로베니아 등을 거론할 수 있다. 프랑스 남부의 도시 니스(Nice)에서 시작하여 활처럼 크게 휘어져 동쪽의 슬로베니아에서 끝나는 산맥이 바로 알프스산맥이다. 흔히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지진대)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산맥인 것이다. 지질구조상 신생대 제3기에 형성된 신기습곡산지에 해당하는 젊은 산맥이다. 산정상부 골짜기에 쌓이는 빙하가 오랜 세월 동안 깎아 만든 뾰족한 봉우리(Horn) 등 빙하지형이 잘 나타나는 곳이다. 대서양·지중해·흑해의 분수령을 이루는 알프스는 론 강·라인 강·다뉴브 강·포 강의 지류(支流)가 발원하는 곳이다. 또한 유럽의 지붕으로서 북서부 유럽과 남부유럽을 나누며 자연과 문화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소이다.
스위스의 수도는 베른(Bern)이지만 가장 큰 도시는 취리히(Zurich)이며, 국제도시로는 제네바(Geneva)가 유명하다. 국토면적은 우리나라 남한의 절반 정도지만 지역별 특색이 뚜렷하고, 도시와 농촌 간 생활수준의 격차도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목축업을 주로 하는 농촌지역의 생활수준이 높을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서유럽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목축업과 달리 산악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목축업은 계절에 따라 가축을 이동시키는 이른바 이목(移牧)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여름에는 가축을 산 정상부에 가까운 고지대에 방목하고 겨울에는 산 아래 축사(畜舍)에서 기르게 된다. 이러한 관습 때문에 농촌에서는 산 아래 마을에 자기 집이 있지만, 여름에는 가축을 관리하고 시원한 여름을 지내기 위해서 고지대에 별도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지대 주택은 국가적 차원에서 해발 1,000m 이하로 거주공간을 제한하고 있다한다. 스위스의 농촌마을에는 목조로 된 전통가옥 샬레(Chalet)가 푸른 초지에 펼쳐져 있어 이 자체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즐겨보았던 일본 애니메이션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주인공 하이디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 일행은 스위스의 자연을 맘껏 감상하면서 약 2시간 반 만에 목적지 인터라켄(Interlaken)에 도착하였다. 인터라켄은 말 그대로 두 개의 호수 사이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로 융프라우(Jungfrau) 봉우리를 오르는 관광객들이 머무는 도시이다.
*인터라켄(Interlaken): 스위스 베른 주에 위치한 도시로, 면적은 4.3㎢, 해발고도는 568m, 인구는 5,429명(2008년 통계), 인구 밀도는 1,234명/㎢이다. 도시 이름은 독일어로 "호수 사이"를 뜻한다. 동쪽에 있는 브리엔츠 호와 서쪽에 있는 툰 호 사이에 위치한 도시이며 시내에는 라인강의 지류인 아레 강이 흐른다. 융프라우 산 등산의 거점이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 융프라우산에는 인터라켄 동역을 거쳐 올라간다. 여기서 융프라우는 남쪽으로 직선거리 약 18km 지점에 위치한다.
인터라켄 시내 한 복판에는 너른 잔디밭이 있는데 행글라이더 착륙장이라고 한다. 겨울에는 스키를 즐기고 여름에는 행글라이더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숙소에 가기 전까지 우리는 인터라켄 시내 중심부에서 자유시간을 즐겼다. 아들과 나는 초콜릿도 사서 먹어보고 융프라우 산의 만년설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었다. 겨울에는 알프스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이겠지만, 여름에는 정상부의 흰색과 설선(雪線: Snow Line) 아래쪽에 형성되는 푸른색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어쩌면 겨울과 여름의 공존이라 하겠다.
스위스의 관광도시, 인터라켄의 시내풍경
우리가 하룻밤 머물 숙소는 인터라켄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으며, 인터라켄에서 출발하는 산악열차가 정차하는 빌더스빌(Wilderswill) 역 부근에 위치한, 스위스 전통가옥 ‘샬레’의 형태를 띠고 있는 고풍스런 호텔이었다. 배정된 방에 들어가 보니 가구 등 모든 것이 골동품 같은 느낌이다. 숙소가 넓지 않고 불편한 점도 있지만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하니 친근감이 들었다. 아마도 스위스에 다른 목적으로 왔다가 스위스의 풍광(風光)이 좋아 그대로 정착한 경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녁식사로는 ‘쇠고기 덮밥’ 메뉴의 한국식 식사를 하게 되었다. 빵 대신 밥을 먹게 되니 이 자체로도 행복감이 밀려온다. 오늘도 아들과 나는 두 개의 캐리어(여행용 가방)를 방바닥에 펼쳐놓고 옷도 정리하고 전기용품에 충전도 하며 내일 일정을 준비하였다. 아들은 샤워 후 피곤한지 쉽게 잠이 든다. 난 아침시간에 늦지 않도록 휴대폰에 알람시간을 여유 있게 맞추어 놓고 잠자리에 누웠다.
아들은 여행이 길어지면서 엄마가 보고 싶은 지 가끔씩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여행으로 몸이 피곤하고 먹는 것도 입에 맞지 않아서 더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떨어져 보아야 가족의 소중함도 알게 되는 것 같다.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