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여름 수련회
몇 번 오려했지만 그 때마다 일이 생겨 낙담하던 사찰이다.
이번에도 또 연이 닿지 않으면 어쩌나 내심 불안했었는데, 다른 일 다 제쳐놓고 떠나오니 마음은 오히려 한가롭다.
여기쯤인가? 울창한 소나무 숲은 간 곳이 없고 오봉산 마루에 정갈한 전각들이 푸른 하늘을 등지고 여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단원 김홍도와 겸재 정선의 낙산사도를 토대로 가람을 배치하였다고 하니 조선 중기 낙산사를 중창하였던 그 모습대로 재현했음을 짐작케 한다.
정념 스님의 고뇌와 정성과 발원이 함축된 가람을 보며 정념 주지 스님께 마음속 깊이 감사를 올린다.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후 지금까지 열 번에 가까운 크고 작은 화마와 전화에도 중건 불사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왔던 건 이곳이 실로 관음 성지로서의 영험함이 이어져 오는 까닭은 아닐까!
입재식에 모인 낯익은 얼굴들, 그리고 새로 오신 도반들 모두 이 아름답고 성스러운 곳에서의 이틀간 연수에 들 뜬 기분이다.
운 좋게도 경내 템플스테이 숙소인 취숙헌에 방을 배정 받아 짐을 풀었다. 나무 냄새 그윽한 운치 있는 방에 드니 풀숲의 매미 소리가 더없이 청량하다.
저녁의 강의는 서울 미타사 정수암 주지이신 상덕 스님의 「대승 불교의 보살행」 깔끔하게 정리한 교재 프린트가 비구니 스님답다. 교사 불자 10 바라밀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심인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방편, 원(願), 역(力), 지(智)바라밀을 일깨워 아름다운 보살행 교사 불자가 되기를 기원하신다.
각 지부에서 오신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별빛을 도와 홍예문을 지나 취숙헌으로 돌아온다. 헌데 이 고고한 경내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해변에서 틀어놓은 기계음 소리가 몹시도 거슬린다. 오늘, 한창 휴가철인 8월 초, 그것도 토요일이고보니 저들의 즐거움이나 상술도 탓할 수는 없지만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 예불을 올릴 때 까지도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음악 소리에 슬그머니 분노가 치민다. 예불을 올리는 시간만이라도 잠간 멈추어 줄 수 있는 배려가 조금도 없는 것일까? 낙산사가 예부터 유명한 사찰이고 불자가 아니라도 관광지의 역할을 충분히 하는 곳이라면 지방청에서도 그만한 단속은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외국의 유명한 해수욕장에서 이렇게 음악을 틀고 확성기로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파라솔이나 나무 그늘 속에서 햇볕을 즐기며 조용히 독서하는 그들의 여유를 부러워했다. 더욱이 저녁 8시 이후면 모두들 숙소로 돌아가고 해변의 입장도 통제됐다.
도대체 이런 광란은 어디에서 오는 문화인가? 우리의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타락하고 있는지 모두들 걱정스러워 한다.
새벽 예불은 정갈하게 복원된 원통보전에서 올렸다. 보물 제 1362호인 건칠관음상이 모셔져 있는 낙산사의 금당이다. 단정하면서도 온화한 모습. 아름다운 보관과 화려한 구슬 장식.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 주름이 섬세하다. 후불탱화 중앙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전체적으로 화려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를 자어 낸다.
원통보전 앞뜰에 칠층석탑이 반긴다. 화마는 비껴갔지만 6․25 총탄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어 안타깝다.
천수관음상을 중앙에 여러분의 관음상을 봉안한 보타전을 거쳐 해수관음상 앞으로 올랐다.
막 예를 올리고 돌아 서는데 구름 속에서 붉은 해가 서둘러 올라온다. 해돋이는 놓쳤지만 푸른 바다와 백의의 관음상, 붉은 해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다. 비록 관음상은 없었지만 간송 미술관에서 보았던 정선과 몇 조선 후기 화가가 그린 낙산사도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오늘의 강의는 익산 사자암 주지 향봉 스님의 「불교 지도자론」으로 시작되었다. 강직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자태에서 오늘의 불교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신다. 야단법석을 주관하신 스님답다. 스님이나 불자들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를 지적하시며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신다.
이어 서울 미타정사의 주지스님이신 마가 스님의 자기 행복 창조.
2년전 인가? 화엄사 수련회에서 강의하신 인상 깊은 스님. 해맑은 웃음소리가 반가웠다.
나와 커플이 된 여선생님의 인상을 다른 사람을 즐겁게, 웃게 해줄 수 있는 재주가 엿보이고 연기자로의 자질도 보인다고 했었는데 나중에 그 부부가 서로의 생각을 모두의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듣고 내 판단이 참 정확 했구나 감탄했다. 가끔씩 사람들에 대한 판단이 적중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내게 그런 직관력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아들에 대한 긍정 명상 열 가지를 쓰면서 내가 아들을 너무 모르는 구나, 내 잣대로만 아들을 보려 하는 구나, 너무 많이 반성했다.
오후의 선택 일정은 빠지기로 했다. 사실 임전회장과 둔황에 다녀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좀 무리한 연수였는데 아무래도 좀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취숙헌의 찬 방바닥에 누워 깊은 오수에 빠져버렸다. 마음 한 구석 갈등을 접어둔 채.
저녁 강의는 동국대 양승규 박사의 붓다의 근본사상.
인도의 불교가 소멸되면서 후기 대승불교가 완벽하게 티벳으로 전달돠었고, 여기서는 티벳불교에서 널리 읽히는 쫑카빠의 「도의 세가지 핵심」에 대해서 강의 하신다.
그것은 출리심(出離心), 보리심(菩提心), 빈것(空性) 세가지로 설명된다.
출리심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현생의 삶에 집착하는 작은 사람과 내생의 안락에만 집착하는 중간 사람처럼 현생의 한계와 고통의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게 되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
보리심은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기위해 부처님의 깨달음을 획득하는 마음이다. 깨달음을 얻는 것과 얻지 못함은 오로지 보리심의 유무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일체 중생을 어머니로 생각하고 일체 중생이 처한 상황을 어머니가 처한 상황으로 대치하여 명상할 것을 일러주신다.
공성. 본질을 깨닫는 지혜, 빈 것을 깨닫는 심오한 견해가 없으면 출리심과 보리심의 방편에 아무리 노력해도 아집을 없애지 못하며 윤회의 근본인 아집을 끊지 못한다. 그러므로 윤회에서 해탈하기 위해서는 무아를 깨닫는 지혜만이 가능한 길이다.
박사님은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신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과 나같이 아둔한 청중이 얼마나 이해했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저녁 야식으로 낙산사 주지 무문스님께서 감자와 옥수수를 가득 쪄 오셨다. 한입 베어 물자 그래! 이 맛이야! 강원도의 인심이, 그 순박함이 물씬 묻어난다. 공양 때마다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신 주지스님과 보살님들께 감사드린다.
일요일이라 휴가객들도 다 떠났는지 오늘은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짙은 어둠 속에 실낱같은 그믐달이 경내의 정적을 더욱 돋우어 준다.
어디선가 높은 곳에서 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원효대사를 희롱하던 파랑새는 아니겠지.
저 새는 화마에 스러져간 뭇 생명들의 고통의 울부짖음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까?
낮에 오수를 그렇게 즐겼는데도 아직도 피곤이 풀리지 않은 듯 홍련암 철야기도에 가보자는 임회장의 제의도 물리치고 새벽 예불을 위해 또 잠을 청했다.
새벽의 찬 기운이 두 팔에 싸늘히 와 닿는다 창문을 닫고 다시 누웠다. 언제 쯤 새벽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릴까? 귀를 기우리다 다시 잠이 들었는가? 놀라 깨어나니 창문이 훤하다. 어쩜 방안의 일곱 사람 모두가 소리를 듣지 못했는가! 어제는 그 요란한 음악소리 속에서도 도량석을 알리는 북소리를 선명히 들었었는데… 너무 난감하여 서둘러 일어났다.
절집에서 새벽 예불에 늦은 건 처음이다. 어제 임회장의 말을 듣지 않은 자괴감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홍련암으로 내달아 늦게 온 몇몇이 예불을 올렸다. 늦은 이유로 첫 예불이 끝나, 조그만 암자에 들어 갈 자리가 있었다. 바닥에 난 작은 창을 통해 관음굴도 찾아 볼 수 있었다. 파도 속에서 본 것이 과연 관음굴이 맞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예불을 올리고 나서는데 저 수평선으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복숭아처럼 뾰족이 올라오던 해가 어느덧 둥실 물위로 솟아오르고 바다를 가로질러 눈부신 빛이 내게로 달려오지 않는가! 물결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그 거대한 빛의 줄기를 온 몸으로 받으며 나도 몰래 나무 괸세음보살을 읊고 있었다. 아! 이 해돋이를 보여주기 위해 늦었는가? 무한한 감동이 나를 휩싼다.
관음도량 답게 마지막 날 첫 강의는 낙산사 법인 스님의 천수심경의 공덕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매일 외우고 있는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대다라니. 다분히 밀교적 성격을 띠고 있는, 관세음보살에게 올리는 예경과 참회와 발원이 주제인 낮 익은 경이다. 법인 스님의 구수한 입담에 아침부터 웃음꽃이 피었다. 교사였으면 최고로 인기 있는 교사가 되셨을 게다.
마지막 강의는 동국대학교 정각원 지도법사 이신 태광 스님의 「붓다가 지도한 행복의 7진법」
마음속의 관념, 형상을 잘라내어, 순간순간 마다 나룰 버리는 무아(無我)수행으로 마음속에 있는 일체 번뇌가 사라지면서 적멸, 허공이 들어나면 자연히 무량자비로 충만 된다. 매 순간 허공신과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삶이 수행자의 삶이다.
몸소 명상 체조를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셨다.
강의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렇게 뜻있는 곳에서 알찬 프로그램을 계획한 강영철 회장님과 임원진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전국의 회원님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람니다. 안 경 희
첫댓글 서울지부 안경희 선생님글을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