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세대에서 화재가 발생해 입주민이 사망했어도 화재경보기의 지구경종이나 스프링클러 미작동이 이 사건 화재와 인과관계가 없다면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소장에게는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제12민사단독(판사 신안재)은 최근 대구시 달서구 J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사망한 Y씨의 가족이 “화재 발생시 스프링클러와 자동화재경보기의 지구경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Y씨가 사망하는 등의 손해가 발생했으므로 이 화재로 사망한 Y씨의 일실수입, 장례비, 위자료 등 모두 8천5백79만여원을 지급하라.”며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소장 L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입주민들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아파트 화재 당시 지구경종, 주경종, 사이렌, 비상방송 등이 작동하지 않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원고 입주민들 주장과 같이 피고 관리소장 L씨와 소방시설 관리담당자 C씨 등이 이를 작동하지 않도록 고의로 화재수신기상 버튼을 조작했다는 점에 관해서는 제출된 자료만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설령 피고 관리소장 L씨 등이 지구경종 등의 작동버튼이 꺼져 있었던 상황을 방치해 시설물의 유지·관리책임자로서의 과실이 인정되더라도 새벽 2시 52분경 이 화재 당시 사망한 Y씨가 자던 방에서 감지기가 최초로 작동했으므로 지구경종 등이 꺼져 있지 않았다면 이때 화재수신기에 연결된 지구경종 등이 울렸을 것이지만, 이 시각은 이미 가족들이 잠에서 깨어나 Y씨를 구출하려다가 강한 불길 때문에 포기하고 대피할 무렵이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지구경종 등이 울리지 않았던 사실과 이 화재로 인한 손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지구경종 등의 미작동을 이유로 피고 관리소장 L씨와 그 사용자인 피고 대표회의에 이 화재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스프링클러를 제어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상 오류로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으나, 피고 대표회의는 사고 발생 약 9개월 전에 업체에 용역을 줘 법령에 따른 종합정밀점검 및 소방시설 작동기능점검을 실시한 후 하자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수리·교체를 완료했으며, 이후에는 업체를 통해 소방시설을 정기적으로 점검, 관리해 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 대표회의와 관리소장이 스프링클러를 제어하는 프로그램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점에 관한 입증이 없는 이 사건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상 오류로 스프링클러가 화재 당시 작동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피고들에게 이 화재에 대한 과실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설령 피고들에게 컴퓨터 프로그램상 오류 여부를 상시적으로 점검하지 않은 과실이 인정되더라도 화재감지기의 감지시기와 원고 입주민들이 Y씨의 구출을 포기할 정도로 강했던 당시의 화염진행 정도 등에 비춰볼 때 컴퓨터 프로그램 오류로 인한 스프링클러 미작동과 화재에 따른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아파트 Y씨는 지난 2007년 2월 28일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자던 중 새벽 2시 30분부터 45분사이에 이 방에서 발생한 원인 미상의 화재로 사망했다. 이에 다른 방에서 자던 Y씨의 부모는 Y씨가 자던 방문을 어렵게 열었지만, 강한 불길이 방안에서 치솟아 Y씨의 구출을 포기한 채 베란다를 통해 아래층으로 대피했고, Y씨의 누나는 화재로 발목에 전치 3주의 화상을 입었다.
화재 당시 이 아파트에는 세대 내 화재감지기를 제외한 화재수신기상 지구경종, 주경종, 사이렌, 비상방송 등의 작동버튼이 꺼져 있었고, Y씨의 방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도 화재수신기의 컴퓨터 프로그램상 오류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에 사망한 Y씨의 가족은 “작동버튼을 꺼버리거나 컴퓨터 프로그램 등의 오류를 방치해 지구경종과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손해가 발생했다.”며 지난 2007년 9월 이 아파트 대표회의와 관리소장 L씨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이같은 판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