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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사랑 스크랩 중국 일본 민화와의 비교
해다천사 추천 0 조회 1,369 09.01.19 11: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의 미-최고예술품을 찾아서 (7) 中·日 민화와의 비교
中, 정밀하고 세련…日, 토속과 익살
2006년 06월 07일 (수) 00:00:00 홍선표 이화여대 edit@kyosu.net

▲청대 양류천 연화 ‘부귀도’, 종이에 목판채색, 1003.3×50.6cm, 일본 多摩미술대미술관 ©

 

‘민화’라는 개념은 1차세계대전 후 서양중심의 세계사를 일본중심의 동양주의로 초극하기 위해 민예미를 부각시킨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명칭은 현재 일본과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민간화로 부르고 있다.


중국의 민간화는 衛畵, 畵張 등으로 지칭되다 청말기에 명명된 年畵가 주류를 이룬다. 연화는 고대의 桃符板과 문배그림에 원류를 둔 것으로, 송대에 세시풍속과 결부된 제액과 송축용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명 후기부터 민간수요가 급증해 목판화로 대량 제작됐다. 청대에는 수많은 연화 제작 공방이 생겼는데, 화공과 조판공, 인쇄공, 표구공 등이 분업해 제작했다.


양류천 연화는 길상화 중심으로 북경의 전판판화와 궁궐화의 영향을 받아 선각이 정밀하고 세련된 특징을 지녔으며, 도화오의 연화는 길상화와 함께 성시경관과 교훈적인 제재도 많이 다뤘고, 연속그림인 連環畵와 서양 동판화의 투시법 등을 수용해 명징하면서 화려한 경향을 보였다. 양가부의 연화는 문신을 비롯한 신상 위주로 과장된 형태와 간략한 선묘에 색채 대비가 심한 양식을 특징으로 제작됐다.


이러한 청대의 목판 연화는 베트남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쳐 지금도 그 전통을 이어 제작 판매되고 있으며, 소주 연화는 일본 에도시대의 錦繪와 見立繪 형성과 문자도 및 경직도와 唐子圖 전개에 영향을 미쳤다.

▲大津繪 作 ‘大黑과 福祿壽의 씨름’ , 28.7×18.4cm, 종이에 채색, 에도시대, 일본 개인소장. ©
그러나 일본 민화의 주류는 에도시대의 서민용 祈福그림인 大津繪와 繪馬, 又又六繪이다. 특히 大津繪는 오츠지방에서 동해도의 여행객들을 위해 토산물로 팔던 민예적 그림으로, 柳宗悅이 이를 지칭하기 위해 ‘민화’란 용어를 만들었다. 먹으로 간략하게 그린 후 붉은 색과 녹색. 황색 등으로 채색한 粗畵이며, 민간신앙과 결부된 불교판화에서 시작해 익살스럽고 해학적으로 그리는 토속적인 戱畵가 되었고 수요의 증가에 따라 판화로도 제작됐다. 


한국의 경우는 동아시아 다른 나라에 비해 부적류를 제외하고 판화로 다량 제작하는 전문 공방제도가 구축되지 못했고 주로 육필로 그려졌다. 도상과 표현 양식에서 원체풍의 저변화와 함께 청대 천진과 산동 지역 연화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치졸하고 분방, 주략한 화풍은 명말 이래 경덕진 民窯에서 민간화공인 ‘瓷畵工’들에 의해 그려져 휘주 상인들을 통해 중국과 동아시아 전역으로 수출된 청화백자 문양들과 더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 홍선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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